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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니 Oct 11. 2022

자영업자 ‘나’와 진짜 ‘나’ 사이

나는 평소에 오늘 매출이 어땠는지 그래서 내 기분은 어떤지에 대해 가족에게 말하지 않는다. 원래도 내 감정이나 생각을 가족과 공유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B급 취향을 연 뒤로 늘 나를 염려하는 가족을 더 심란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매일 밤늦게 귀가하는 내게 오늘은 어땠냐고 묻는 엄마를 향해 “오늘은 손님이 별로 없어서 피곤하다.”라고 장난스럽게 말하면 엄마는 “원래 가만히 있는 게 제일 힘들어.”라고 말하며 엄마만의 방식으로 나를 위로하곤 했다.     


손님의 방문이 며칠째 저조해 마냥 웃을 수만은 없었던 어느 날, 엄마와 마주 앉아 왜 손님들이 안 오는지 모르겠다고 넋두리를 했다.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엄마는 B급 취향을 방문했던 지인이 말한 그대로를 전한다며 말했다. 엄마가 무슨 말을 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첫째 딸과는 다른”, “냉랭하다”, “안 웃는다”는 말들이 뚝뚝 끊긴 채 뇌리에 박혔다. 생글생글 웃으면서 ‘친절하게’ 손님을 맞으라는 엄마의 당부로 우리의 대화는 끝났다.


나는 엄마에게 말을 전한 그 사람이 누구인지 모른다. 안다고 하더라도 얼굴을 기억하지 못한다. 오고 가는 손님이 많지 않더라도 방문하는 손님을 모두 기억할 수는 없다.

엄마의 말을 들은 후 한동안 곰곰이 생각했다. 손님이 오지 않는 건 나의 문제인가에 대해서, 그리고 서비스 업종 노동자들이 과도하게 요구받는 친절을 나도 장착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B급 취향을 방문하는 손님께 감사한 마음이 드는 건 당연하다. 그렇다고 책뿐 아니라 음료나 디저트까지 구매하는 손님들을 극진히 대접한다거나 살갑게 대하려 애쓰지 않는다. 그저 내게 먼저 말을 걸어오거나 웃는 얼굴로 나를 대하는 손님에게 그와 같은 형식으로 응대할 뿐이다. 나는 그들의 성향을 모르니까.

언니와 비교해가면서까지 나를 평가했던 그가  기억에 남지 않은 , 그가 내게 특별히 기억될 만한 모습을 보인 손님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런데 그는 혹시 내게 대접받고 싶었던 걸까?     


한국인은 모르는 사람에게 여간해서는 미소를 보이지 않는다는 말을 어디에선가 들은 적이 있다. 내가 건네는 인사에 답을 않고 무표정한 얼굴로 음료를 주문하던 손님들이 떠올랐다. 그들은 필요 이상의 대화를 원치 않은 사람일 수도, 아니면 자신은 표정이 없더라도 상대는 미소로 일관하며 친절하기를 바라는 사람이었을 수도 있다.

나는 찰나의 순간으로 손님 개별적 특성을 알 수 있는 방법을 모른다. 손님의 단편적인 모습만으로 내게 어떤 친절을 기대는지, 나와 대화하고 싶은지, 그저 조용히 머물다 가고 싶은지 알 수 없다.

     

‘남자들은 주인이 얼굴을 알아보는 곳은 두 번 다시 안 간다.’라는 글이 어느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오면서 엄청난 공감을 얻었다. 그 글은 캡처되어 쉽게 볼 수 있는데, 그때마다 많은 사람의 공감한다는 내용의 댓글 세례를 받았다. 그러나 반대로 어떤 사람은 자신이 자주 온다는 것을 알아주기를 바라기도 한다. 사람마다 입맛이 다르듯 친절의 기준 역시 모호하다. 그러니 소상공인들은 배달 앱 리뷰나 인터넷 후기 하나에도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다.     


사실 나는 애초에 상냥함과 거리가 먼 사람이다. 스스로 생각하길, 나는 그냥 따지는 것을 잘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웃긴 사람일 뿐이다. 누가 됐건 무례함은 용납될 수 없는 행동이라고 생각하기에, 나는 손님이라 할지라도 무례함을 목격하면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몇 달 전 중년 남성이 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대뜸 반말로 무언가를 물었다. 설마 내게 반말을 한 건가 싶어 되물었지만 내가 잘못 들은 것이 아니었다. 왜 반말을 하느냐는 내 물음에 그는 그런 말은 평생 처음 들어본다는 표정으로 “내 자식 뻘이니까.”라고 말했다.

성격유형 검사 결과 나는 ENTP다. 간략히 말하자면 쉽게 지지 않는 ‘말빨’의 소유자이자 강자에게는 강하고 약자에게는 약한 ‘강강약약’ 유형이다. 나름대로 상황을 해명하는 와중에도 반말을 고수하는 그에게 “저는 아저씨 딸이 아니고, 저도 성인입니다. 나이가 어려 보인다고 반말하시면 안 되죠.”라고 말했다.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무어라 중얼대다 끝내 인정하지도 사과하지도 않던 그에게 나는 손님이라는 이유로 친절해야 했을까?     


B급 취향은 돈의 노예로 살지 않고 내가 뜻한 것을 이루겠다는 다짐을 무너뜨렸다. 그 다짐 때문에 B급 취향을 연 것인데도.

손님이 왕인 것 같은 상황을 종종 마주할 때 나는 철저한 ‘을’로 존재했다. 무리한 요구를 하는 손님에게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했던 때, 나는 스스로 ‘을’의 위치를 찾아가야 했다. 본래의 ‘나’와 자영업자의 ‘나’ 사이 괴리가 점차 벌어져 울화가 치밀어도 다시 ‘을’이 되어야 했다. 그래야 먹고살 수 있으니까.

그래도 가끔 정도가 지나친 손님에게는 본래의 내 모습으로 돌아가기 대응하기도 했다. 평소 주변의 감탄을 자아낼 만큼 찰진 욕을 하는 내가 적어도 아직까지 손님에게 욕한 적은 없으니 다행이다. 아마 욕이 목까지 차오를 때마다 본래의 ‘나’와 자영업자의 ‘나’ 사이 어딘가에서 주춤했을지 모른다. 먹고사는 문제는 매번 내가 이성을 되찾는 것을 도왔다.     


화폐는 시장에서 사용하는 교환의 매개체에 불과하다. 화폐를 이용해 누군가를 군림하려는 태도는 왜곡된 자본주의를 체화한 결과다. 뉴스에 자주 보도되는 배달업체 라이더와 택배 노동자들을 향한 폭언, 갑질, 콜센터 노동자 희롱 등이 그러하다.

돈을 주고 사람을 사고파는 인신매매가 불법이듯 사람의 감정이나 기분을 사는 것도 불법이다. 몇 년 전 제정된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과 감정노동자 보호법이 그것을 증명한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은 서비스나 재화를 제공하는 노동자가 사람이라는 것을 잊고 그들의 감정을 사려고 한다. 자신 역시 노동자로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2018년 대선에서 모든 후보가 내걸었던 최저임금 1만 원 공약은 여전히 지켜지지 않은 채 빈부의 간극은 더욱 커지고 계약직, 하청, 도급 등의 이름으로 나쁜 일자리만 늘어나고 있다. 엇비슷한 상품의 난립과 경제 불황 속에 업주들은 손님의 얇은 주머니라도 열기 위해 직원 서비스 교육에 열을 올린다. 이런 현상을 보고 있으면 사회가 나서서 ‘비용을 지불하니 이 정도는 마땅히 요구해도 된다.’고 사람들을 부추기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다시 엄마에게 말을 전한 그의 이야기로 돌아가 그가 원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내가 어떻게 해야 만족했을지 가늠해본다. 그가 다시 B급 취향을 방문한다 해도 아마 나는 영영 그를 만족시키지 못할 것이다. 나는 몇 차례 짧은 순간만으로 손님의 니즈를 알 수 없고, 손님의 성향이나 성격을 파악하고 싶은 마음이 없으니까.     


며칠을 고심한 끝에 답이 나왔다. 사회에서 어떤 직종에 있든, 나이가 어떻든. 성별이 무엇이든 나는 그냥 나라는 답이. 내가 앳된 얼굴로 앞치마를 두르고 손님을 맞는다고 해서 누군가로부터 평가받을 대상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내 감정을 팔고 싶은 생각이 없다.     


생계와 직결된 일이지만 결코 이윤만을 좇아서는 할 수 없는 것이 책방이다. 생계와 책방 모두를 지키고 싶은 것이 과분한 욕심인가 싶기도 하지만, 왜 그것이 나에게만 욕심으로 작용하는지 분할 때도 있다. 그렇게 현실과 이상의 차이가 극명하게 보일 때 울적해진다. 이런 미묘한 감정이 드는 건 불황에도 책방을 여는 사람들, 오래전부터 책방을 지켜온 사람들 모두 같을 것이다.     


책방을 계속하고 싶은 마음에 디저트와 음료를 만든다. 카페와 서점을 겸하는 B급 취향과 이런 공간이 익숙하지 않은 포항의 문화적 특성상 방문하는 손님에 따라 이곳이 카페인지 책방인지 모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적어도 책을 찾아 방문한 손님만큼은 나를 ‘사람’으로 대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다. 내가 책에서 노동 뒤에 가려진 사람을 발견했듯, 책방을 오가는 누구나에게 모든 노동자를 ‘사람’으로 볼 수 있는 마음이 스며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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