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든 되겠지.”
돌이켜보면 매사가 그랬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상대가 나를 좋아하지 않아도 그 뒤는 생각하지 않고 곧장 고백했다. 소위 로또 당첨 확률이라는 캐나다 워킹홀리데이 비자 합격을 받고 나서도 캐나다로 이주한 이후의 삶을 잠시 걱정했을 뿐, 오래 생각하지 않았다. 원래 인생은 원하는 대로만 되지 않는다는 고리타분한 충고를 들어와서 그렇다기보다 아직 벌어지지 않은 일을 고민해봤자 해결될 리가 없으니 미래의 나에게 떠넘기는 것이다.
B급 취향을 열 때도 그랬다. 고정지출과 재료비만 충당하면 그럭저럭 운영될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과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점포 계약부터 사업자등록까지 모든 과정을 속전속결로 진행했다. 나는 그렇게 사장이 되었다.
사업자등록증에 기재된 개업일은 10월이지만, 진짜 시작은 1월이었다. 올해 1월부터 석 달 정도는 내게 마치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긴 터널처럼 느껴졌다. 갑자기 폭증한 코로나19 확진자와 한파 때문인지 거리에 사람은커녕 차조차 다니지 않았다.
오지 않는 손님을 기다리며 매일 디저트를 만들고 청소했다. 팔리지 않아 그대로 남은 디저트를 버리기 아까워 입에 욱여넣을 때는 비참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아무도 없는 공간을 지키는 것 자체가 고된 일이었으나, 가장 힘들었던 것은 외로움이었다.
많은 설명을 요하지 않아도 대화가 가능한 사람들을 찾고 싶어서 시작한 일이 오히려 나를 고립시키고 있는 것만 같았다. 어마어마한 시간의 공백은 나를 압도했고, 한동안 나는 갈피를 잡지 못한 채 무기력한 날들을 보냈다.
“하고 싶었던 일이니 해봐. 그래야 후회를 안 한다. 손님이 없어도 책 읽고 공부하면서 니 놀이방이다 생각해.”
하루가 억겁의 시간처럼 느껴지던 어느 날, 임대차 계약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엄마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매일 우울하게 시간만 보낼 바에야 뭐라도 해보자는 마음에 혼자 꾸역꾸역 삼켜내던 감정을 글로 쓰기 시작했다. 제대로 된 글을 써본 것이 오래전이라 정리되지 않은 생각이 키보드 위로 마구 쏟아졌다.
글의 힘은 대단했다. 모니터 앞에 앉아 훌쩍이기도 상념에 젖기도 하면서 글을 쓰자 마음에 얹힌 무언가가 조금씩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내 일상의 사건들을 톺아보며 내 감정에 집중할 수 있게 됐고, 어느새 글감을 생각하는 일마저 행복해졌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글을 쓰는 기쁨을 다른 여성들과 함께 누리고 싶다는 마음으로 이어졌다. 각자 다른 위치에서 섬처럼 떠 있는 삶을 살고 있을 여성들과 글로 연결되어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고 싶은 욕망이 생겼다.
그러려면 나와 B급 취향을 많은 사람에게 알려내는 것이 주요한 문제라고 생각했다. 때마침 좋은 기회로 페미니즘 인터넷 저널 《일다》에 글을 올리게 되었고, 그 후 경북 대안 언론 《뉴스풀》에 매월 기고하게 되었다. 혼자 쓰던 글이 외부로 게시되는 일을 동력 삼아 한두 개만 운영하던 독서 모임을 배로 늘리고, 글쓰기 모임을 시작하면서 B급 취향을 전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매번 마음 졸이며 모임 모집 글을 올렸지만, 우려와는 달리 참가 문의를 보내오는 사람들은 꾸준히 있었다.
이제는 안다. 이곳을 찾는 그들 역시 나처럼 험지와도 같은 곳에서 연결점을 찾으려 노력했을 것이라는 걸. 그래서 그 발걸음이 너무나도 소중하다.
늘 답보상태인 한국 정치와 여성 혐오 문제를 젠더 갈등으로 비화하는 언론과 여론을 보면, 바뀌기는 할지 의심될 정도로 절망적이라서 모든 활동을 그만두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러나 결코 몰랐던 때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알기에 평생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탐색했고, 보다 다양한 경로를 여전히 탐색 중이다.
이번 여름, 한겨례 21과 유튜브 씨리얼 채널에 내 인터뷰가 업로드되면서 나와 나의 신념 그리고 B급 취향을 응원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들 덕분에 잠시나마 팍팍한 현실을 잊고 내가 가는 길이 맞다는 확신을 더 할 수 있게 됐다.
나는 계속해서 B급 취향을 매개로 파트타이머와 계약직이 대다수인 구직 사이트 화면 앞에서 더 나은 일자리를 찾으려 발버둥 치는 청년들, 결혼과 출산으로 경력이 단절된 여성들 그리고 세상이 정한 정상성의 규범 밖에 존재하는 이들을 만난다.
내가 언제까지고 경제적 어려움 속에 이곳을 지킬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가능한 오랫동안 운영하고 싶다는 소망은 업장에서 매일 홀로 손님을 기다리는 공백의 시간 속에 희미해질 때가 많다.
그래도 부러 먼 길을 달려 여기까지 왔다고 수줍게 말하는 사람들과 인터뷰를 보고 공감해 찾아왔다는 사람들, 편리한 인터넷 서점을 마다하고 내게 책을 주문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릴 때면 있는 힘껏 자리를 지켜내야 한다는 마음을 되새기게 된다. 앞으로도 혼자 머무는 시간이 많을테지만, 어둠의 공백 너머에 있는 더 많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 나는 오늘도 이곳을 지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