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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니 Sep 25. 2022

태풍이 지나간 자리엔

태풍 힌남노가 포항을 휩쓸었다.


태풍이 온다는 소식에 그날은 임시 휴무로 하고 집에서 무사히 시간이 지나가기를 바랐다. 태풍을 예고했던 모든 언론이 의심스러울 만큼 바람은 고요했고 하늘은 맑았다. 이튿날 새벽 B급 취향에 물이 들어갔으니 와서 확인하라는 건물주의 전화에 탄식이 절로 났다.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었다. 새벽에 쏟아진 비로 도로 곳곳이 물에 잠겨 교통이 통제됐다. B급 취향이 위치한 동네 상황을 알아보려고 언니 아이디를 빌려 포항 맘 카페에 접속했지만, 사람이 갇히고 차가 침수되는 심각한 상황의 동네 이야기로 가득해 확인할 수 없었다.


정오가 지난 오후 도로 위에 남아 있는 물살을 갈라 B급 취향에 도착했을 때, 건물주가 뒷 출입구를 비질하고 있었다. 건물주는 뒷 출입구로 물이 들어와서 침수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야기를 들으며 알게 된 것은 1층에 있는 4개의 상가 중 뒷 출입구와 가까운 B급 취향과 바로 옆에 있는 뷰티샵만 침수가 됐다는 사실이었다.


수년간 3개 층 상가에 한 번도 공실이 없던 건물을 소유한 건물주는 깐깐하고 인색한 사람이었다. 비닐까지 분류해 버리는 내게 하루가 멀다하고 분리수거를 제대로 하라는 말을 했고, 밤 늦게까지 있다가 퇴근했던 다음 날 일찍부터 찾아와 어제 뭐했느냐며 밤새 히터를 작동시키면 안 된다는 말을 늘어놓았다. 공동 화장실이 있는 복도의 불을 켜 두면 수시로 불을 껐고, 적지 않은 관리비를 내는데도 왜 상가 별로 돌아가면서 화장실을 청소해야 하느냐는 질문을 무시하기 일쑤였다. 화장실 전구가 나가 불을 켤 수 없는 날이 이어져도 전구를 갈아주지 않았고, 문이 고장 나거나 비가 새 수리를 요구해도 들은 체하지 않았다. 심지어 계약서에 찍힌 도장이 마르기도 전에 다른 상가 주인에게 관리비를 올려 받아야 할 것 같다며 앓는 소리를 하는 출중한 연기까지 보였다.

그런 그가 어정쩡한 자세로 나를 따라다니며 해명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자 침수는 폭우가 아니라 건물 자체 결함 때문인건지 의심됐다. 1층 상가 중 두 곳만 침수됐다는 것도 의아했지만 , 이미 한참 전에 나는 건물의 배수 공사가 잘못된 것 같다는 배관업체 사장과 건물주의 대화를 들은 바 있었다.


건물주는 빗자루를 든 채 나를 따라 B급 취향 안까지 들어왔다. 뒷문으로 들어온 물이 앞문까지 찬 흔적이 있었다. 진흙과 벌레, 나뭇잎이 물과 뒤섞인 바닥을 보며 간밤의 소동을 가늠했다. 침수 상황을 확인하던 내게 건물주는 "대청소한다고 생각하세요."라고 말했다. 예상치 못했던 실언에 나는 풉 하고 웃어버렸다. 위로도 위안도 아닌 그 말이 마치 나를 놀리는 것 같았다.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웃는 내게 건물주는 “돈 많이 벌어서 다음에는 물 안 새는 곳에서 장사하세요.”라는 말을 남기고 돌아 나갔다.


코로나19가 창궐했던 2020년 초, 청도 대남병원은 코호트 격리 조치됐다. 코로나19로 국내 첫 사망자가 발생했던 곳이라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내가 주의 깊게 보았던 건, 정신병동 안에 있던 환자 중 2명을 제외한 100여 명이 모두 감염됐다는 소식이었다. 모두의 안전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외부와의 접촉을 통제하고 집단 수용소처럼 운영되는 정신병동의 실태가 세상에 드러난 순간이었다.

제아무리 감염 속도가 빠른 코로나19라 할지라도 관리의 효율만을 고려해 만든 정신병동의 두터운 문을 넘지 못했다. 환자들은 사회와 분리되어 정신병동에 갇힌 존재였다.


힌남노가 상륙하기 몇 달 전 강남 일대를 마비시켰던 홍수 역시 대남병원의 상황과 닮았다. 물이 차오르는 반지하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죽어가던 사람들은 세상에서 밀려난 이들이었다. 마포구청장이 식사하는 사진과 함께 “꿀맛”이라는 게시물을 SNS에 업로드할 때, 돈이 없거나 돈을 아끼려고 반지하에서 삶을 이어가던 사람들은 황망히 죽어갔다. 외신들과 몇몇 국내 언론은 영화 기생충과 같은 상황이라며 빈곤 문제의 심각성을 보도했다.


정신병동 환자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갈 수 없었고, 반지하 거주민들은 지상으로 가고 싶어도 갈 수 없었다. 재난은 모두를 덮쳤으나 도드라진 건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이었다. 그리고 건물주의 말은 내 상황을 전보다 또렷하게 보도록 만들었다.


   하늘이 맑다는  알면서도 푸른 하늘이 그날따라 왠지 야속했다. 쨍한 햇살을 온몸으로 맞으며 혼자  시간 동안 바닥을 쓸고 닦았다. 매출액의 대부분을 건물주에게 바쳐야 하는 날이 계속되면서 계약 기간이 끝나면 이곳을 떠날 것이라 다짐했. 그리고 침수 흔적을 지우며 반드시 떠나겠다는 다짐을 곱씹었다. 그런데 내가 정말 떠날  있을까?


자본주의는 돈 있는 사람이 계속 돈을 버는 구조다. 가만히 앉아 다달이 월세만 받아도 생활이 가능한 건물주에게 물이 새지 않는 곳으로 이사하는 일은 별것 아닐 수 있다. 그러나 물이 새도, 밤사이 들어온 거미나 콩 벌레를 아침마다 쓸어야 해도 나는 쉽게 이사할 수 없다. 이사하더라도 고정비용을 줄이기 수월하도록, 내 삶이 가능하도록, B급 취향을 오래 지킬 수 있도록 지금보다 작고 외진 곳으로 가야 한다. 여건에 따라 이사는커녕 폐업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통제와 효율 그리고 경제 논리에 의해 병동으로, 반지하로, 외진 골목으로, 휑한 거리로 사람들은 옮겨간다.


태풍이 지나간 자리에는 여전히 사람이 남아 있다. 선택지가 없는 사람들은 떠나고 싶어도 갈 곳 없는 현실 앞에 망연해진다. 빈곤보다 안전의 프레임으로 사태를 봐야 한다는 일부 지식인들의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인간은 자연 앞에 평등할지라도 재난 앞에서는 평등하지 않다. 안전 역시 기득권만이 누릴 수 있는 특혜라는 걸 인정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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