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문을 열다 누적된 피로를 풀라는 몸의 신호를 느끼면 가끔 임시 휴무 공지를 띄운다. 쉬는 날이면 종일 집에서 뒹굴면서 순돌이와 시간을 보낼 때도 있지만, 포항의 다른 책방을 방문해 그곳의 대표님을 만나기도 한다.
상가 계약 종료 시기와 휴식 기간이 맞물려 오랫동안 폐업을 고민한 끝에, 같은 곳에서 시즌2를 시작하기로 한 포항의 어느 책방에 작은 화분과 다과를 사서 간 날이었다. 아무도 없을 것 같은 시간에 맞춰 간 것이었지만, 책방 대표님과 마주 앉은 한 여성이 있었다. 머리가 하얗게 센 그는 책방의 고충을 안다면서 포항의 동네 책방을 홍보해 주고 싶은 마음에 라디오 인터뷰 연재를 계획 중이라고 했다.
고마운 마음도 잠시, 자신의 이야기에 심취해 상대의 상황이나 표정은 고려하지 않고 혼자서 말하기 바쁜 모습에 그가 인터뷰어의 자질을 갖추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졌다. 듣자 하니 그는 인터뷰 제안의 기본인 사전 연락도 하지 않고 무작정 찾아와 책방 대표님의 시간을 소모하고 있었다. 책방지기의 일상을 모르는 사람은 책방의 일이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없다. 그도 그런 사람 중 하나라 여기고 이해하려 했지만 그럴 수 없었던 건 그의 무례함 때문이었다.
대표님의 불편한 기색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연신 떠들어대던 그는 내게 B급 취향에 대한 질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나는 시즌2 오픈 첫날을 맞은 책방에서 굳이 B급 취향을 중심으로 대화하려는 그가 탐탁지 않았다. 내 심경이 표정으로 드러난다는 것을 잘 아는 대표님은 안절부절못하며 다급히 나와 그를 번갈아 봤다. 나는 건조한 톤으로 그의 질문을 제지했고, 약간 민망해하던 그는 잠시 후 도착한 그의 지인들과 함께 자리를 이동했다.
그가 떠나고 난 뒤 대표님께 들은 이야기는 가관이었다. 그는 포항의 몇몇 책방을 언급하며 그 책방들은 찾는 사람이 꽤 되고 나름 유명한데, 여기는 왜 이렇냐는 망언을 아무렇지 않게 했다는 것이다. 동네 책방을 살리기 위해 인터뷰하려 한다는 말이 무색할 만큼 무례한 그의 언행은 책방을 운영하는 이라면 누구나 불쾌감을 느끼기 충분했다. 속상해하는 대표님을 위로하자, 대표님은 “저분, 곧 B급 취향에도 갈 거라고 했어요.”라고 말했다. 대표님의 말에 나는 가만히 당하고 있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몇 주 뒤 그는 정말 B급 취향에 왔다. 들어오면서부터 서가를 살피던 그는 한참 책을 뒤적였다. 그리고는 중고도서 두 권을 들고 와 음료를 주문했다.
“이따가 여기서 모임 할 건데 여기 앉아도 되죠?”
그와 처음 만났던 날에 했던 모임을 이번에는 B급 취향에서 하기로 했는지 그는 6인석 테이블을 가리키며 물었고, 나는 괜찮다고 대답했다. 그가 주문한 커피를 쟁반에 받쳐 가져다주고 돌아서는데, 뒤에서 “뭐 좀 물어볼게요.”라는 말이 들렸다.
“동네 작은 책방은 책만 팔아서 유지가 안 되잖아요. 그래서 이런 디저트나 음료도 같이 파는 걸 텐데. 책 매출이 어느 정도 돼요?”
내 귀를 의심하며 잘못 들은 척 그에게 다시 말해달라 요청했고, 그는 전체 매출에서 책 매출이 얼마나 되느냐고 물었다. 첫 만남에서 보았던 그의 모습이 실수가 아니었음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그의 물음에 황당한 건 둘째치고 불쾌했다. 어떠한 대화도 하지 않아 서로에 대해 아무런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심지어 첫 방문에 그런 질문을 할 수 있는 용기와 무례가 어디서 나오는 건지 궁금했다.
지금보다 어린 시절의 나였으면 바로 응수했을 테지만, 어느 정도 나이를 먹고 시행착오를 겪으며 알게 된 사실은 그런 부류의 사람에게 똑같이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답을 회피하려고 “글쎄요. 잘 모르겠네요.”라고 말했다. 거기서 그만뒀으면 좋았으련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그런 것도 계산 안 해요? 매출 계산 안 해봤어요?”
이런 때마다 튀어나오는 내 성질대로 손님에게 사납게 굴어서는 안 된다고 되뇌면서 미소를 머금은 채 “계산하지만 그걸 제가 손님께 말씀드릴 이유는 없죠.”라고 답했다. 그의 얼굴에는 무안함이 순식간에 왔다가 사라졌고, 스스로를 안정시키려는 듯 황급히 가라는 듯이 손을 내저으며 “말하기 싫으면 하지 마세요.”라고 말했다.
널찍한 공간에 그와 나 단둘이 침묵의 시간을 보냈다. 공교롭게도 나와 마주 앉은 듯한 위치에 있던 그는 내 시선을 피하려 애썼고, 나는 무심히 책을 읽었다.
얼마 뒤 그의 일행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속속들이 도착했고, 5명의 여성은 각자 음료를 주문한 뒤 모임을 시작했다. 한 시간 가량 모임이 진행됐을 무렵, 나는 아까의 장면을 떠올리며 머리를 긁적였다. 어쨌든 일부러라도 이곳을 모임 장소로 택한 사람이니, 다른 방식으로 대답을 피해도 됐을 텐데 싶은 마음에 괜한 짓을 했나 후회가 밀려왔다.
새로 출시하려고 만들어 본 디저트 몇 개를 담아 그들이 있는 곳으로 가서 드시라고 내었다. 테이블 위에 큼지막한 동화책 여러 권이 어지럽게 놓여있어 디저트를 어디에 둬야 할지 갈피를 못 잡는 와중에 까딱이는 손가락 두 개가 보였다. 그쪽으로 시선을 돌리니 내내 내 눈을 피했던 그가 내게 귀찮다는 표정으로 “여기 두세요.”라는 말과 함께 손가락 두 개로 테이블을 툭툭 쳤다.
한 테이블에 있으면서도 고맙다고 인사하는 사람들과 전혀 다른 행동을 하는 그를 보며 나는 잠깐이나마 후회했던 것을 후회했다. 마음 같아서는 그를 콕 집어 “손님은 드시지 마세요.”라고 말하고 싶기도 했다. 그러나 몰지각으로 무장한 그에게 먹을 걸로 차별하는 치사함과 줬다가 뺐는 졸렬함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치미는 울화통을 움켜쥐고 내 자리로 돌아와 그가 어서 떠나기만을 기다렸다.
내가 끝내 그에게 화를 내지 않았던 건 화낼 가치가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을 두고 흔히 사용하는 후안무치(厚顔無恥)라는 말을 한다. 추측하건대 나는 그가 단지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아는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만날 때마다 목격한 그의 행동은 책방의 생리를 잘 아는 척, 책방을 도우려는 척하는 것으로 느껴졌고, 그것은 마치 권력자의 횡포처럼 보였다. 내가 너희를 홍보해 줄 테니 내가 하는 질문에 너희는 응당 답을 해야 한다는 듯이.
유튜브나 구글에 동네 책방을 검색하면 관련된 내용이 쏟아져 나온다. 전국에 있는 동네 책방이 언론에 나온 횟수는 결코 적지 않다. 그러나 동네 책방은 사라지고 있다.
산업의 흐름은 세계적으로 동일하기에 동네 책방이 쇠퇴하는 것은 비단 한국의 문제만이 아니라 전 세계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현상이다. 홍보만으로도 책방이 흥할 수 있다면 세상에 망하는 책방은 없을 것이다.
책방이 어딘가에 노출돼 불특정 다수에게 보이는 것은 굉장한 기회이자 기쁜 일이다. 그러나 그건 잠깐의 환희일 뿐 지속 가능하지 않다. 실제로 방문하는 손님이 얼마나 되는가, 그리고 책을 구입하는 손님이 얼마나 있는가에 따라 책방의 존폐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럴진대 홍보를 빌미로 무례를 일삼는 그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나는 사람이 무지(無知)할 수는 있지만 무치(無恥)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 둘을 동시에 가지기란 쉽지 않다고 여겼는데, 나는 그를 만났다.
나는 그가 다시 B급 취향에 오지 않을 것을 안다. 나 역시 그가 오지 않았으면 한다. 설사 그가 인터뷰를 제안한다고 하더라도 나는 하지 않을 것이다. 동네 책방을 사랑한다면서도 진심이 전혀 보이지 않는 사람과 마주 앉을 용기가 나에게는 아직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