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라치
타입 : 강철/에스퍼
희망사항 포켓몬
도감설명에 의하면 소원을 무엇이든지 이뤄주는 자비롭고도, 위험한 포켓몬입니다.
그렇지만 1000년 중 7일을 제외하곤 잠을 자고 있으며, 7일이 지나면 다시 1000년의 잠을 잔다고 합니다.
처음 이 포켓몬의 상세한 설명을 봤을 땐 지라치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지라치는 1000년이란 아득히 길게 느껴지는 시간을 잠을 자는데 쓸 정도로 오래 사는 포켓몬이죠.
만약 지금 지라치가 잠에서 깼다고 한다면 이전의 활동 시기는 1024년 고려시대였겠지요.
그 이전의 활동 시기는 24년 삼국시대... 그 이전은 기원전...
인간의 기준으로는 지라치를 기다리기엔 너무나도 먼 시간입니다.
지라치를 만나 소원을 빌고 싶다는 염원을 내 손자의 손자의 손자까지 이어져도, 턱없이 시간이 부족하겠죠.
내가 천년동안 잠을 자고 있을 때, 나를 만나 도움을 청하고, 소원을 이뤄주기를 바라고 사라졌던 해변의 모래 알갱이와 같은 목소리들, 천년을 건너 잠에서 깨어났을 때 이 세상의 누군가는 나에게 소원을 빌기 위해 하염없이 기다리다가 바로 어제, 아니 조금 전에 죽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이런 죄책감이 지라치를 옥죄고 있진 않을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제가 지라치라면 정신을 차리지 못하 미쳐버렸을 것 같습니다.
왜 나는 이런 저주에 걸린 걸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염원을 허황되게 만들었을까...
지라치가 강철 타입인 이유는, 이런 여린 마음으로는 살 수 없기 때문일까...? 생각해 봅니다.
오거폰
타입 : 풀
가면 포켓몬
지라치까지는 아셔도 이 친구는 잘 모르는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1세대 관동지방부터 시작된 포켓몬스터의 여정은 9세대 팔데아지방으로까지 왔는데요.
이 친구는 바로 그 9세대의 2차 무대, 북신의 고장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는 포켓몬입니다.
지라치는 3세대, 그러니까 호연지방 출신 포켓몬으로 2002년에 등장했고
오거폰은 20년 후인 2022년에 등장한 최신 포켓몬이죠.
오거폰의 모티브는 병감이라는 귤과 도깨비입니다.
오거폰의 분류대로 오거폰은 가면을 쓰면서 타입을 바꿀 수 있는데, 그런 헤비하고 이해하기 힘든 이야기는 제쳐두고 포켓몬의 설정, 이야기를 주제로 한번 글을 써보겠습니다.
도깨비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오거폰의 모티브가 된 도깨비는 일본의 모모타로 설화에 나오는 도깨비입니다.
일본의 설화라 잘 모르셔도 모모타로가 착한 애고, 도깨비가 나쁜 애인건 모두가 아실 겁니다.
도깨비 말고, 모모타로와 모모타로의 동물 친구들도 포켓몬스터에 있는데...
바로 위가 복숭악동, 모모타로가 모티브인 포켓몬이고
왼쪽부터 조타구, 이야후, 기로치로, 모모타로의 친구인 개, 원숭이, 꿩이 모티브인 포켓몬입니다.
뭔가 딱 인상만 봐도 한 성깔 하는 친구들처럼 보이지 않나요? 착한 아이들의 표정과 행색이 아닙니다.
얘네들 전부 독 타입이 붙어있기도 하고... 심상치가 않습니다.
좌우지간 포켓몬스터에서는 모모타로 설화를 어떻게 각색했을까요?
아래는 포켓몬스터 스토리에서 알 수 있는 모모타로, 아니 복숭악동 이야기입니다.
오거폰은 본래 타 지역에서 어느 떠돌이 사내와 함께 북신의 고장으로 찾아온 포켓몬이다.
북신의 고장 사람들은 둘의 이질적인 겉모습을 경계해 그들을 마을의 일원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들은 서로에게 의지한 채 마을에서 떨어진 뒷산에서 살았다.
어느 날 그들을 딱하게 여긴 가면장인이 둘을 위한 4개의 가면을 만들어줘 얼굴을 가릴 수 있었고, 마을의 축제가 열릴 때만 마을로 내려와 사람들과 어울렸다.
축제에만 나타나는 가면을 쓴 둘의 이야기는 널리 퍼져나갔고, 복숭악동과 함께 사는 노부부의 귀에까지 그 소문이 퍼지게 된다. 노부부는 복숭악동에게 그 가면을 원한다고 하였고, 복숭악동은 자신의 부하인 조타구, 이야후, 기로치와 함께 북신의 고장으로 갔다.
복숭악동의 부하들은 오거폰과 사내가 축제를 즐기고 있을 때를 틈타 그들이 지내던 산에서 가면을 훔치려 하였으나 사내에게 들키게 되었고, 이는 싸움으로 번지게 된다. 하지만 오거폰이 없었기 때문에 사내는 죽고, 벽록의 가면을 제외한 3개의 가면을 빼앗기게 된다.
오거폰이 산속으로 돌아왔을 때, 자신이 없을 때 벌어진 참혹한 현장을 보고 충격에 빠졌다.
평생 함께 지냈던 사내의 죽음은 슬픔에서 분노로 바뀌고, 오거폰은 복숭악동의 세벗을 찾아내 마을사람들 앞에서 방망이로 때려죽이게 된다.
그렇게 복수를 끝내고, 사내가 아직 살아있을지도 모르겠다는 희망을 품고 산으로 돌아간다.
이런 뒷이야기를 알리가 없는 마을 사람들은 오거폰의 행동에 큰 두려움을 느꼈다.
마을 사람들은 죽게 된 3마리의 동물들을 도깨비로부터 마을을 지켜준 영웅으로 오해해서 세벗이라는 명칭과 함께 마을에 묻어주게 되고, 세벗들을 기리는 축제를 열어 현재까지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
중간중간 사내가 죽었다던가, 오거폰이 세벗을 때려죽였다던가 하는 포켓몬에 나오기 다소 과격한 내용들이 있는데, 직접적인 표현은 없고 정황으로 어떤 일이 일어났을지를 알려줍니다.
저는 북신의 고장 스토리를 진행할 때 참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자세히는 몰라도 일본에서는 매우 유명한 이야기임을 알고 있었기에 도깨비가 사실은 착하고, 모모타로 쪽이 도둑놈에 한량무리였다는 전환... 참신한 전개방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전래동화로 따지면 콩쥐가 사또와 결혼하고 출세해 권력을 쥐어 크게 한몫하려는 나쁜 마음을 품고 있었고, 팥쥐와 계모가 이를 바로잡으려고 하는 전개이려나요?
특히 오거폰의 이야기에 저는 감명받았습니다. 사내를 떠나보내고 얼마나 혼자서 힘들게 살았을지...
포켓몬에는 성격이란 것이 존재하는데 보통 포켓몬의 성격은 25가지의 성격 중 랜덤으로 나옵니다.
하지만 오거폰은 성격이 '외로움' 고정으로 나오더군요. 이제는 외롭지 않게 제 파트너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저 이야기를 보고 그럼 복숭악동은 뭐 하고 있길래 자기 부하들이 죽어가는데도 모습이 안 나오냐? 생각하실 수 있겠습니다.
복숭악동도 방망이에 맞아버리는데, 죽지는 않고 저 복숭아처럼 생긴 껍질 속에 들어가서 봉인되었습니다.
나중에 그 봉인이 풀려서 복숭악동을 잡는 스토리가 나오는데, 복숭악동과의 배틀에서 오거폰을 꺼내면 복숭악동을 보자마자 불같이 화를 내는 컷신이 재생됩니다.
나중엔 잡는 데 성공해서 해피엔딩으로 북신의 고장 스토리는 막을 내립니다.
오거폰이 보통이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게, 결국 이야기를 진행하며 부활한 세벗과 복숭악동까지 잡을 수 있는데요, 제가 오거폰이라면 극구반대하며 빨랑 버리라고 트레이너에게 요구했을 것 같습니다.
이런 놈들이랑 한솥밥 못 먹는다고...
그렇지만 오거폰은 별 생각이 없어 보이더군요. 속으로 용서라도 한 걸까요?
누명을 쓰고 악역으로 살아야 했던 도깨비의 이야기
참 슬프고도 인상 깊은 내용이었습니다.
사내가 죽은 후에도 오거폰은 가면을 쓰고 축제에 참가했었는데요.
사내 없이 딱 하나 남은 가면을 쓰고 자신의 진짜 이야기엔 관심 없이 웃고 떠드는 마을 사람들을 봐왔던 오거폰의 가면 속 표정은 어땠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글을 쓰고 쭉 읽어보니 오거폰에 대한 내용이 지라치보다 훨씬 크네요...
아무래도 오거폰은 외모나 스토리나 제가 제일 좋아하는 포켓몬 중 하나고, 다룰 내용도 많아서 편애 아닌 편애가 들어간 것 같습니다.
이상 두 포켓몬들에 관한 제 생각이었고, 아무쪼록 게임 내용이 과하지 않고 읽기 편한 글이 되었음 합니다.
포켓몬을 좋아하는 아이들과 포켓몬을 좋아하는 아이들이 커서 된 저 같은 어른들을 모두 만족시킬 스토리와 세부설정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개발자 분들이 존경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