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 쌓인 이야기
가끔씩 어머니와 얘기할 때 곧잘 들었던 말들이 있습니다.
제가 어릴 땐 참 말이 많았었다고... 그래서 대화를 받아주기 힘겨웠다고...
그치만 한 귀로 흘려듣고 버릴 말이 별로 없었다고 하셨습니다.
어린이가 했다곤 생각 못할 말들도 있었고, 아이의 관점으로 얘기하는걸 듣는게 참 좋았다고 하셨었죠.
제가 했지만 저는 기억을 못하는 말들을, 어머니는 모두 알고 계셨었습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참 과분한 사랑을 받고 살았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추억 속에서도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이 오늘의 글 주제입니다.
때는 6살 때 쯤 추석 외갓집으로 가는길, 창 밖 고속도로 풍경을 보며 운전을 하시는 어머니께 던진 한마디.
참으로 아이가 할만한 단순한 말... 어머니는 그런 동심을 좋아하셨던걸지도 모르겠네요.
그 때의 기억을 더듬어보면, 산과 무덤이 비슷하게 생겼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그치만 거인의 무덤일까 라는 말은... 했던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어머니가 거짓말을 하실 이유가 없으니 아마 제가 거인의 무덤이라고 했겠죠.
거인의 무덤... 지금에 와서 보면 그런 발상의 시작은 산에서 나오는 두려움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어린아이들은 부정적인 인식이 있는 것은 반드시 부정적으로 비유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콩은 밭에서 나는 고기라고 어른들은 비유하곤 합니다.
콩을 싫어해도 밭에서 나는 고기라고 하죠. 콩에 있는 단백질에 중점을 뒀으니까요.
언젠가 한번 콩을 싫어하는 아이에게 콩이 어떻냐고 물어봤는데 토끼똥...이라는 답변을 받았었습니다.
아마 맛이 끔찍하리만큼 없었나봅니다. 콩 = 맛없고 둥글둥글하다 = 토끼똥
토끼똥이라니... 그 말을 듣고 웃은게 기억이 납니다.
아무래도 저도 그런 심리의 일환으로 산을 무덤이라고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회상해보면 어릴 땐 산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집 근처에 산이 있어서 등산을 자주 갔었는데, 가기만 하면 모기 물리기 일쑤였고. 거미도 많아 무서웠고...
특히 나무와 풀이 복잡하게 얽혀 어두운 분위기를 내는 산 깊은 곳을 보고 있으면, 꼭 무서운게 확 튀어나와서 저를 잡아갈 것이라 착각하고 무서워 했던 것 같습니다.
어린이의 삼단논법에 의거헤
이런 결론이 완성된것이죠.
산은 무덤이라는 말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닌게, 묫자리는 다 산에다 마련하잖아요?
선산이라는 단어도 있죠. 우리의 조상들이 묻혀있고 나도 언젠간 묻힐 산...
아마 그런 생각도 산은 거인의 무덤이라는 생각에 힘을 실어줬을 것입니다.
가끔씩 본가에 내려와서 어릴때 자주 올라가곤 했던 산을 바라보면, 뭉클한 감정이 들기도 합니다.
나는 키가 몇배는 컸고, 어른이 되었는데, 산은 그대로구나...
여전히 산을 오르시는 어르신분들이 많더군요. 심지어는 어제 봤던 분들이 오늘 또 산을 오르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이 동네에 살면서 애정이 깃든 산이겠죠. 저도 마찬가지고.
산을 오를 일이 별로 없는 오늘날의 저도 이런데, 과거의 사람들은 오죽했을까요?
산에서 뛰어놀기도 하고, 쉬기도 하고, 나무나 식량을 구하기도 하고, 각별한 사랑을 받았으리라 짐작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산에 묫자리를 파는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릴 때나 컸을 때나 늙었을 때나, 항상 우리 곁에 있어줬기에 죽을 때 까지도 함께 있고싶다는 그 마음.
어쩌면 거인보다 더 큰 사랑을 몇백 몇천년이고 받아왔겠죠.
오늘도 본가 근처의 산을 추억해봅니다. 어릴 때 무서워했던걸 미안해 하면서. 자주 못 간걸 아쉬워 하면서.
그 친구에게 있어 저는 스쳐지나가는 수많은 사람들 중 하나겠죠.
산의 시간으로는 너무나도 짧은 인간의 수명이 다할 때 까지, 제가 기억하고 추억할겁니다.
영원히 새기진 못하겠지만, 평생을 새기리라... 그렇게 다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