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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꿈의 색깔

나의 꿈은 무슨 색일까

by 혼백

꿈을 크게 가져라. 깨져도 그 조각이 크다.

라는 명언이 있습니다.

호랑이를 그리려고 해야 고양이라도 그린다랑 비슷한 맥락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이 명언에 힘을 얻고 꿈을 꾸곤 합니다.

그러나 저는 아직도 이 말의 의미를 잘 모르겠습니다.


꿈이 깨진 파편으로 뭘 할 수 있지? 꿈이 크면 실패해도 얻어가는 것이 크다는 뜻일까?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었습니다. 꿈이 클수록 실패했을 때의 좌절이 크다.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예를 들어 캔버스에 그림을 그려봅니다. 나름대로 멋진 풍경을 담아 흰 여백을 채워갑니다.

정말로 그리고 싶었던 풍경... 조심히 색을 입혀봅니다. 완성된 그림을 보며 웃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합니다.

그러다 본인의 실수든, 주변의 영향이든 지울 수 없는 물감을 잘못 칠해버렸습니다. 그림을 망쳐버린 거죠.

사람들은 손가락질하며 제게 말합니다. "애초에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면 편했을 텐데... 시간 낭비했네."

결국 다시 붓을 잡으려 하지만 쉽지 않습니다. 다른 걸 하려 해도 쉽지 않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요?


전 이 명언을 제 방식대로 변형해서 쓰곤 했습니다.

꿈이 클수록 깨진 조각에 더욱 아파하고, 회복하기 힘들다.

여전히 틀린 말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요즘 세상에서는 꿈을 크게 가질수록 바보가 되는 것 같습니다.

꿈을 위해 들인 시간이 길 수록, 실패했을 때의 부담은 커져가고, 그 시간은 허송세월이라 불립니다.

그래서 나이를 먹을수록 다들 안전한 꿈을 가지려고 합니다.

자신이 맨 처음 가진 꿈을 그대로 성인이 된 지금 이룬 사람은 몇이나 될까요?

저는 이미 제 꿈을 저버렸습니다. 어릴 때 꿨던 꿈 중 그 무엇도 이루지 못했습니다.

어린 시절의 저를 마주 보며 대화할 수 있다면 맨 첫마디는 "미안해..."일 것입니다.


새벽에 잠이 안 와 내방을 인생을 살아가는데 필요 없을 생각으로 가득 채우다 문득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내 꿈의 색깔은 무엇일까...?'

꿈의 색깔... 선뜻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꿈이 있어야 대답을 하는데...

한 40분 동안을 고민한 것 같습니다. 내 꿈은 무슨 색깔일까...

밝은 색이라기엔 꿈이 없다... 어두운 색이라기엔 영원히 이렇게 살 수 없다...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에 저는 과거를 되짚어봤습니다.


어릴 땐 참 되고 싶었던 것이 많았습니다. 대통령, 개그맨, 가수 등등...

그중에서 가장 길게 꿈을 쥐어 잡고 있던 게 래퍼였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가사에 담아 자신 있게 세상에 내놓는 그 모습... 반했었습니다.

래퍼가 되고 싶다고는 했지만 정말 꿈으로 자리 잡은 건 쇼미더머니 6의 흥행이었을 겁니다.

거기에 출연한 몇몇 래퍼들의 진솔한 모습들을 보고, 저도 저렇게 되고 싶다... 관중들 앞에서 내 이야기를 마음껏 뽐내고 싶다... 생각했었습니다.


그렇게 가사를 공책에 써보기도 하고, 직접 불러보기도 하면서 재밌어했던 게 생각이 났습니다.

실제로 쇼미더머니 프로그램에 몇 번 지원해보기도 했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죠.

이전에는 실패해도 곧잘 추스려서 다시 꿈을 위해 달리기도 했는데...

나이를 먹다 보니 참 허황된 꿈이었다는 생각도 들고, 미련했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치만 그때 친구들 앞에서 내가 만든 곡을 불러보기도 하면서 오디션 지원 결과에 같이 가슴 졸이면서 기다렸던 그때의 제 마음은 진심이었겠죠. 무뎌진 기억이지만, 행복했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는 꿈의 색깔이 하늘색이었겠죠. 무작정 위만 보고 달려갔으니...

가끔 땅을 볼 때도 있었지만 시선을 위를 향하려 애썼습니다.


그렇게 웃으면서, 진심으로 행복해하면서 빠르지는 않지만 열심히 달려가던 제 어린 시절을 먼발치에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볼 때마다 항상 심하게 넘어지고 일어서질 못하는 결말이었지만, 묵묵히 응원했습니다.

그러다가, 제 꿈의 색깔을 찾아 마음속으로 대답했습니다.


내 꿈의 색은 세피아... 그렇게 결론짓게 된 것입니다.

sepia sky.jpg

세피아

쉽게 말하면 갈색이고, 좀 있어 보이게 말하자면 빛바랜 색

요즘은 세피아 톤으로 사진을 찍으려면 카메라 모드를 바꾸면 되지만 옛날엔 흑백 사진을 인화기에 넣고 인화하면 저런 갈색의 아련한 사진이 나온다고 알고 있습니다.


유치원에 다닐 땐 부모님이 어렸을 때를 생각하면 항상 풍경은 흑백으로 상상했습니다.

옛날 학교에 등교해 난로에 도시락 올려놓는 모습을 상상해도 컬러로는 생각 못했습니다.

옛날의 풍경을 본 게 TV 속 흑백 자료로 밖에 없었기 때문에 옛날 세상은 다채로운 색을 가졌다곤 생각을 못했나 봅니다. 50년 전에도 하늘은 푸르고 땅은 노란색이었을 텐데 흑백이라니 참으로 어린 생각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 하늘색이었던 제 옛 꿈도 이젠 흑백으로 보입니다.

그때의 웃음도, 옆에 있던 친구들도... 그 무엇도 제게 남아있지 않아서일까요?

그런 제 생각을 고치려 '옛날이더라도 색은 있었지...' 하면서 인화기에 그 꿈을 집어넣어봅니다.

어딘가 익숙한 분위기의 갈색 꿈이 뽑혀 나옵니다. 묵묵히 꿈을 바라보다 셔츠 주머니에 집어넣습니다.


제 꿈은 세피아입니다. 다른 꿈을 찾기 전까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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