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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3.2.2.3. 죄 값을 대신 치를 호구

by 에스겔

# 01.3.2.2.3.1. 두려운 죗값
너희 인간들의 죄성은 수도 없는 죄를 범하게 하고 그 죄로 너희 자신과 너희 주변 사람들을 살아서도 예비 지옥도에 있게 하고 죽어서는 완전한 지옥도에 떨어지게 한다. 영원히 벌을 받는 영벌에 처하게 된다. 이것은 너희가 저지른 일들에 비해서는 아무것도 아니다. 너희가 너희 인류 공동체 안에서 직간접적으로 협조하여 저지른 악행들은 실로 무섭다.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을 만큼 끔찍한 일들을 저지르고도 너희 인간들은 그 죄의 깊이를 알지 못한다. 너희는 너희의 제국들을 건설하기 위해 너희 형제들과 너희가 정복한 피 정복지의 백성들의 피를 수도 없이 흘렸다. 그렇게 하고도 그 죄를 깨닫지 못하고 그것을 위대한 제국의 역사라 자랑하며 자기 조상들의 역사에 자부심을 느낀다. 누가 너를 죽이고 그것은 불가피한 희생이었다고 한다면 너는 너의 억울한 목숨을 내어놓겠는가? 너의 어미와 여동생을 겁간하는 자들에게 너희의 행위는 불가피한 것이라고 말하겠는가? 너희는 이렇게도 파렴치한 역사관을 가졌는데도 너희의 악함이 어디에 있느냐고 물을 것인가? 너희 인간들의 상태에 대해 전반적인 인류의 죄와 개인의 내면의 죄들을 살펴본 목적은 너희가 자신의 죄와 자신의 상태에 대한 자각이 없음을 깨닫게 하려는 것이다. 앞에 죄에 대한 언급들이 결코 너희의 죄를 다 살펴본 것이 아니다. 너희는 관계로 연결되어 사회 전체의 일원이 되고 그 결과 그 전체의 죄가 연결되어 세상을 이룬다. 사회의 메커니즘이 발생케 하는 그 죄는 실로 무거워서 나도 너희의 죄를 향한 달음질을 말릴 수 없다. 그러니 그 형벌은 어떠하겠는가?

너희의 마음은 스올(무저갱)이며 그 마음의 불길은 지옥화와 같다. 너희 개인의 타락은 그 뿌리의 깊고 깊은 부분까지 미쳐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록 악하다. 그래서 나는 창세기에 너희의 그 타락을 표현하며 어려서부터 그 생각하는 것이 악하다라고 했다. 너희 마음의 부패의 심각도는 너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이다. 착한 선행을 하면서도 남들에게 자신을 내세우고 그것을 통해 다른 이들이 자신을 인정하여 도와주거나 또는 자신의 옳음을 따라 복종하기를 원한다. 착함도 사실 지극히 이기적인 동기에서 시작되는 행위의 하나일 뿐이다. 너희는 너희 내면의 포장지를 뜯지 않아서 너희의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알지 못하기에 정상적인 정신으로 살 수 있는 것이다. 만약 너희가 너희 각자의 마음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그 깊은 내면을 들여다보기 시작하면 너희는 그 시로 지옥에 빠지게 된다. 너희는 너희 마음의 악함을 감당할 수 없어 당장 삶을 포기하거나 그것을 감당하지 못해 정신이상이 될 것이다. 이런 상태로 너희가 저지르는 죄를 생각해 보라.

또한 죄의 기준이 너희에게 있지 않고 바로 나에게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내가 산상수훈에서 너희에게 너희가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같이 완전해져야 한다라고 했다.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낫지 못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도 했다. 그 기준대로라면 너희 중 누구도 지옥을 벗어날 자는 없다. 내가 있는 나라는 나와 같이 거룩한 자만이 있을 수 있다. 내가 있는 곳 즉 나의 통치가 있는 곳에는 나의 통치에 복종하는 자들이 산다. 그런데 나의 법을 무시하고 나의 질서를 어기고 죄를 짓는 자가 어떻게 나의 통치, 즉 나의 나라에 들어올 수 있겠는가? 그는 죄를 범함으로 이미 나의 통치 즉, 나의 나라를 벗어났다. 내가 완전한 것같이 완전한 자만이 들어올 수 있는 곳이 나의 통치다. 그래서 세상에서는 자기 힘으로 나의 통치에 들어올 자가 없다. 낙타가 바늘귀에 들어가는 것보다, 부자가 천국(나의 통치, 하늘의 통치)에 들어가는 것이 어렵다. 그와 같인 죄인이 너희는 나의 통치에 복종할 수 없다. 그러니 나의 나라에는 들어올 수 없다. 만약 너희 중 누구라도 나의 통치에 복종하면 그는 그 즉시 나의 백성이 되고 나의 나라(통치)에 들어오게 된다. 그런데 너희 중 아무도 나의 통치에 복종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근원적으로 너희 안에는 악한 독사 새끼의 본성이 있어 결코 나의 완전한 선을 기뻐하지 않는다. 심지어 반역의 본성을 타고나 복종이라는 개념 자체를 거부한다. 그러니 너희가 어떻게 천국에 들어오겠는가?

나의 완전한 기준으로 너희fmf 판단을 받는다. 그런 재판 아래 너희가 받을 판결은 사형이다. 너희 죄의 형벌은 그 끝이 없고 무겁다. 너희는 이 모든 것을 감당하고도 지옥에 떨어져 영원한 벌에 처해질 것이다.
# 01.3.2.2.3.2. 누더기 선행으로는 값을 수 없는 죗값

너희는 너희의 선행으로도 이 죄의 형벌을 대신할 수 없다. 너희의 선행은 앞에 살펴본 것과 같이 자기 자랑과 이기적 동기에서 발생하는 더러운 누더기에 불과하다. 결코 그것은 너희가 걸칠 수 있는 의의 옷이 되지 못한다. 그런 죄의 누더기 같은 선행으로 너희 죄의 형벌의 값을 지불할 수 있겠는가? 오히려 선행의 동기가 밝혀져 죄가 더해질 뿐이다.

## 01.3.2.2.3.2.1. 선을 행하는 자는 없다.
너희 인간들이 알아야 할 것은 죄인인 상태에서 너희들이 행하는 것은 선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내가 성경에서 말한 것을 너희는 잊었느냐?

시 14:1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시 53:1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그들은 부패하며 가증한 악을 행함이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롬 3:12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요삼 1:11
사랑하는 자여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고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뵈옵지 못하였느니라

죄인인 너희는 선을 행하지도 않는다. 또한 선을 행할 수도 없다. 너희가 선이라고 행하는 것은 더러운 걸레와 같으니 그것은 죄악이지 선이 아니다.

## 01.3.2.2.3.2.2. 선행으로 죄를 값을 수 있다는 속임수
그러니 너희가 선행이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죄 값을 치를 수 있다는 헛된 망상에는 빠지지 말기를 바란다. 사탄과 그 졸개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착각 속에서 살다 결국 지옥에 가도록 종교라는 올무를 파고 기다린다. 그런 자기의 행함을 기반으로 하는 율법적 종교로는 너희는 구원에 이를 수 없다.

만약 누군가 순전한 선행을 행할 수 있다 하더라도 누가 과연 선행으로 죄의 형벌을 대신할 수 있다 하였는가? 그것이 나의 법인가? 성경 어디에 그런 말이 있는가? 그것은 단지 너희 인간들이 생각해 낸 종교의 속임일 뿐이다. 그들은 대부분 선행으로 죄의 벌을 상쇠 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누가 그렇게 한다는 말인가? 죄는 죄대로 벌이 있고 선행은 선행대로 상이 있다. 그것이 성경의 심판이다.

그러니 너희는 너희 죄로 인해 반드시 죽어야 하고 그 후에는 지옥의 형벌이 기다리고 있다. 이를 벗어날 수 있는 인간은 아무도 없다. 왜냐하면 선을 행하는 자는 아무도 없고 모두 치우쳐 죄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스스로 의롭다 하는 자는 내 앞에 나서 보라 과연 내가 빛을 비추어서 네 악행의 근원이 드러나고 네 마음의 포장이 걷어지고 그 중심이 드러나면 네가 견딜 수 있는가 시험하여 보자.

## 01.3.2.2.3.2.3. 결코 가혹하지 않은 기준
이 기준이 너무 가혹한가? 절대 그렇지 않다. 너희는 원래 나의 아들들로 선만을 행하는 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 그런데 너희가 죄인이 되어 이렇게 되어버린 것이다. 만약 너희가 그대로 나의 아들들로 있었다면 너희는 악은 행하지 않고 선을 행하는 것이 즐거웠을 것이다.

이렇게 너희가 죄인이 된 것은 너희 스스로가 악심을 품고 나에게 대항하기 때문이다. 나는 너희에게 요구한 것도 없고 너희를 강제하여 빼앗지도 않는다. 나는 완전한 자라 모든 것이 있다. 나는 원래 너희가 필요한 자가 아니다. 그런데 왜 내가 너희의 것을 빼앗겠는가? 오히려 나는 너희에게 모든 것을 준다. 너희가 사는 세상은 누가 만들어 준 것인가? 너희 모든 것 중 나로 말미 암지 않은 것이 있는가?

이렇게 된 것은 전적으로 너희가 스스로 악함을 품고 나를 대항하고 스스로 자기 주인이 되고 스스로 자랑하며 스스로 자만심을 채우기 원하기 때문이다. 아담의 반역이 그러했다. 그리고 현재 너희가 사는 마음의 중심의 근본 탐욕이 그러하다. 너희는 스스로 눈이 가려져서 스스로의 죄를 가린다. 스스로 속이고 스스로 보지 않는다. 그러니 지금 너희가 인식하고 있는 것이 너희의 상태라고 착각하지 말기 바란다.

너희는 스스로 자랑하며 스스로 자만심을 채우고 스스로 주인이 되기를 원한다. 너희는 지금도 아마 이것이 당연하다고 여길 것이다. 너희 마음의 악이 판단하는 잣대는 항상 너희 악이 기준이다. 자기 것이 아닌데 자기 것으로 삼는 것은 악이다. 자기 자랑이 아닌데 자기 것으로 자랑하는 것은 도적질이다. 나도 너희가 아름답고 나도 너희가 영광스러운 존재가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나는 너희를 나보다 조금 못한 가장 최고의 피조물로 만들었다. 만물 위에서 만물을 다스리는 자로 삼았다. 너희는 최고의 존재로 만들어졌다. 너희가 최고인데 무엇을 상상하고 무엇을 탐하는지 알 수 없다. 너희가 욕심을 부리고 탐심을 향해 달음질하여 얻은 결과가 무엇인가? 너희는 하늘의 존재에서 땅으로 곤두박질쳐졌을 뿐이다. 그것은 너희 반역과 탐욕의 죄로 인한 결과다. 너희는 스스로 하늘에서 내려와 지상의 짐승과 같은 가련한 존재로 떨어져 내렸다. 지금 너희의 모습을 보아라. 과연 너희가 신의 아들들인가? 아니면 너희는 짐승의 수준으로 전락했는가? 너희는 원래 질투할 필요가 없는 능력을 타고난 탁월한 존재들이었는데 이제 너희는 거의 모든 능력을 잃어버리고 그 잃어버린 중에서도 옆의 사람의 조금 나은 점을 보고 질투하는 가련한 존재가 되었다.

너희는 너희가 살고 있는 사회적 시스템에 종속되어 있고 그것을 당연히 여긴다. 그런데 사회 메커니즘은 언제나 너희의 속성을 따라 마귀적이다. 약하고 좀 더 순종적인 자들을 착취하는 도적의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다. 시스템은 항상 자신은 옳고 자신들의 시스템에 순응하는 것이 질서라고 가르친다. 나치즘도 그러했다. 심지어 자기 딸이나 아내를 명예 살인하는 이슬람도 그러하다. 심지어 북한을 움직이는 주체사상도 동일하다. 너희는 이 시대에는 왕정을 부인한다. 왕의 절대권력을 거부한다. 그러나 알고 있는가? 지난 수천 년의 너희 역사에서 왕정은 절대적 선이었으며 그것을 거부하는 것은 반역이요 최고의 사회악으로 그러한 반역을 일으키는 자는 그 사회 메커니즘의 법에 의해 참해졌다. 그 시대 사람들은 언제나 그것이 옳다고 믿었다. 이와 같이 현재 너희는 너희가 살고 있는 시대의 사회 메커니즘이 옳다고 믿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알고 보면 너희 시스템이나 나치의 시스템, 심지어 주체사상을 뿌리로 하는 시스템도 모두 타락한 도적의 본성을 지닌 사악한 것이다. 단지 그것을 아름다운 수식어로 포장하고 공교한 메커니즘으로 세뇌하여 너희를 미혹하였을 뿐이다. 그런데 너희는 그 시스템 안에서 그것을 즐기고 그것이 옳다고 하여 그것을 벗어나려는 자들을 정죄한다. 왕정시스템을 벗어나려는 자들을 반역으로 다스렸듯 현재 너희의 시스템을 벗어나려는 자들을 또 다른 죄목으로 정죄하고 그들의 삶을 판단한다.

너희는 여전히 인류 최고의 호구였던 칼 맠스의 예리한 정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너희는 공평과 정의를 무시하고 여전히 탐욕을 발전이라 포장하여 그것을 최우선 가치로 삼고 있다. 이 시스템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착취를 당하는데도 너희는 더 나은 삶을 추구한다는 명목하에 착취의 상위의 랭크에 오르기 위해 열심을 다한다. 너희가 상위 랭크로 올라간다는 것은 바로 너희가 더 많은 착취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죄라고 너희가 여기던 여기지 않던 그것은 죄다. 그 경쟁이 너무 치열해서 그것에서 도태되면 인간은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끊기도 한다. 그리고 도태되는 인간들은 무능력자로 낙인찍히고 죄인이 된다. 세금을 축내는 밥버러지가 된다. 조금 사회가 여유가 있을 때에는 장애인을 돌보고 약자를 돌보는 척한다. 그러나 어려움이 닥쳐오면 약자들은 언제나 짐덩이가 된다. 사회를 좀먹는 악으로 취급받는다. 그래서 항상 장애인들은 병신이라고 불렸다. 사회적 약자들은 거지새끼라고 불렸다. 인간은 다 다르기 때문에 다 그 능력들이 다르다. 그래서 강한 자들은 약자들을 돌봐야 한다. 그런데 너희는 그러한가? 악한 세상에 태어나 모진 삶을 살아내야 하기에 정신병에 노출되기도 한다. 그러면 너희는 그들은 미친 갱이라 욕하며 온갖 수모를 겪게 했다. 뇌의 일부를 적출하거나 전기로 그 기능을 상실케도 했다. 대부분의 역사에서 정신병을 앓는 자들은 가족에게 버림받아 미친 상태로 거리를 전전하다. 굶어 죽었다. 그들은 광인으로 불렸으며 사회의 누구도 그들을 돌보지 않았다. 가족들도 돌볼 수 없었고 정신이 나간 상태에서 가출을 하면 찾을 수 없어 그냥 포기를 하는 경우들도 많았다. 그 사회적 도태자들의 말로는 거리의 죽음이었다. 마르크스 시대의 아이들은 모진 노동에 죽어갔다. 그런데 200여 년이 지난 시점의 한국에서도 전태일의 동료들은 열악한 환경과 모진 노동에 폐병으로 피를 토하며 죽어갔다. 맠스의 시대에도 전태일의 시대에도 그들의 말을 들어주는 자는 없었다. 지나고 나면 사람들은 그것을 반성하는 척하지만 여전히 자신의 시대에 또 다른 전태일을 만들며 살아간다. 그리고 그것은 당연한 것이라 여긴다. 더 많은 급여를 주는 것 같지만 더 악랄한 착취와 더 모진 노동을 요구한다. 사람들은 더 악랄해진 메커니즘에 속아서 이를 눈치 채지도 못하지만 그들의 마음은 그 착취를 견디지 못하고 자살을 선택한다. 몸과 마음을 착취당한 자들은 소망을 잃고 자신의 삶을 포기 함으로 그곳에서의 탈출을 감행한다. 그래서 대한민국은 자살공화국이며 세계 자살률 1위의 나라다. 수많은 직업병들이 생기고 사람들은 점점 더 많은 의료비를 지출하고 있다. 그래도 시스템은 즐거워한다. 상위 랭크의 의료 직군과 의료 산업군들이 효율적인 착취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월급을 주어도 삶의 모든 부분을 통해 심지어 삶의 부작용으로 오는 질병을 통해서도 착취한다. 착취의 하위 구조는 항상 이렇게 모진 착취에 목숨을 내놓아야 한다. 그런데 여전히 너희는 막스 베버와 같이 말한다. 너희는 노력하지 않아서 그래. 만약 너희가 노력한다면 너희가 그런 처지에 놓이지는 않았을 거야. 약해빠진 젊은 놈들. 나 때는, 우리 때는 너희처럼 나약하지 않았어.

아니다 결코 아니다. 저들이 나약한 것이 아니다. 어린 저들은 너희들에 비해 수십 배 넘는 공부를 해야 한다. 지식의 수명이 짧아져 너희가 학교를 졸업하고 학교에서 배운 지식으로 평생을 먹고살았던 시대와는 완전히 달라졌다. 학교를 졸업하고 돌아서서 취직을 하면 학교에서 배운 지식은 어제의 지식이 된다. 매일 새로운 정보를 업데이트하고 또 새롭게 배우지 않으면 얼마 되지 않아 도태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식의 발전 속도가 너무 빨라져 그것을 따라갈 수 없다. 그래서 선택하는 것이 아랫사람이나 남의 것을 도둑질하는 것이다. 그런 도둑질도 한계가 있다. 지식의 발전 속도가 너무 빠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예 경쟁에 도태되기도 한다. 심지어 회사도 도태되어 회사가 망한다. 그러니 너희 때와 같은 평생직장은 없다. 경쟁은 치열하고 살아남을 확률은 점점 줄어든다. 그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너희와 비교해 수백 배의 노력을 해야 한다. 그래야 살아남는다. 그런데 그 경쟁은 인간이 견디기 어려운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그러니 수많은 정신증과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정신병원에 수감되거나 극도의 우울증과 공황장애, 조울증, 조현병에 시달리는 자들은 살았으나 이미 산 자가 아니다. 자살로 생을 마감한 자들도 물론 그것이 끝이 아니지만 살아 있는 자들도 그 삶은 지옥이다. 경쟁은 치열해지고 있다. 이대로 자본주의가 붕괴한다는 맠스의 예측은 순진한 발생에 불과하다. 지옥은 끝이 없다. 더 악랄한 지옥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결코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성공할 수도 없다. 그리고 프롤레타리아 혁명도 길이 될 수 없다. 프롤레타리아들이 다시 부르주아가 되어 착취를 단행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너희는 악마의 새끼요 독사의 새끼다. 그러니 너희는 너희 본성대로 너희의 악함을 향해 달려가는 가련한 공멸의 존재다.

그런데 너희는 이 시스템에서 여전히 다른 이를 착취하는 것을 당연히 여기며 살고 있다. 자신이 착취당하는 것은 억울하지만 남의 것을 착취하는 것은 즐겁다. 그래서 더 적게 착취당하고 더 많이 착취하는 상위 랭크(Rank, 사람들의 계급)로 진출하기 원한다. 심지어 남의 지식을 도둑질하고 권력과 돈으로 다른 이의 것을 빼앗아 서라로 그렇게 된다. 과연 너희가 이 악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 너희가 싸이코패스보다 나은가? 너희는 사이코패스보다 악하다. 너희는 그것이 너희의 잘못이 아니며 너희는 몰랐다고 핑계한다. 그러나 모르는가? 정말 모르는가? 가난한 자와 약자를 도와야 한다는 너희의 양심의 소리를 너희는 정말 몰랐는가? 많이 가진 자는 다른 이들을 돌보라고 그 많은 것이 주어졌다는 너희 양심의 소리를 너희는 듣지 못했는가? 사회 정의의 소리를 너희는 정말 들은 적이 없는가? 그렇다면 너희는 이 작은 한 부분에조차 핑계할 수 없다.

이런 너희에게 과연 어떤 형벌이 합당한가? 이 한 분야 경제에서 조차 너희는 너희가 사이코패스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가? 너희의 성향을 분석해 보라 과연 저런 엄청난 죄악과 목숨까지 착취하는 악함을 당연시 여기는 너희는 양심이 있는 자들인가? 너희는 과연 싸이코패스가 아닌가? 너희는 저들의 자살과 죽음의 소식을 뉴스에서 접하며 어떤 판단을 내렸는가? 진정 그들의 죽음을 안타까이 여기고 그것에 책임의식을 가진 적이 있는가? 몰랐다고 핑계 할 것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너희는 너희 양심의 소리를 애써 무시했기에 스스로의 탐욕을 사랑했기에 너희 시스템의 착취의 메커니즘을 옹호한 것이다. 그것을 적극적으로 즐기고 그 쾌락에 취해 다른 이의 죽음은 눈에 조차 들어오지 않은 것이다. 바쁘게 죄악을 쫓아가느라 눈을 돌려 보려고도 하지 않은 것이다. 옆에서 사람들이 죽어가고 옆에서 괴로워하는데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면 그래서 그것을 느끼지 못했다면 그것이 싸이코패스가 아니면 무엇인가? 타인의 아픔과 죽음의 고통도 느끼지 못하고 자기 희열을 향해 살인의 길로 달리는 싸이코 패스의 길과 자기 이익과 성공의 쾌락을 위해 타인을 죽이는 시스템에 적극 협조하면서도 살인이라 의식조차 않는 너희의 길은 차이가 있는가? 아니면 더 악한가? 더 악하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악하다. 싸이코패스가 죽일 수 있는 것은 단지 수십수백에 불과하다. 그러나 너희가 저지르는 집단착취와 살해의 시스템은 사회 전체를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 그 수는 수천, 수만, 수십억에 이른다. 집단과 국가와 역사를 관통하며 너희의 죄악은 흐르고 있다.

싸이코패스의 가장 악한 점은 타인의 고통을 고통으로 보지 않는 것이다. 또한 죄을 죄로 여기지 않는 것이다. 느끼지 못한다. 그들은 자기의 죄를 죄로 알지 못한다. 이와 같이 너희도 그러한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삶의 각 부문들을 파고들면 이런 것들이 수도 없이 드러난다. 모든 분야에서 드러나는 너희의 죄악을 하나하나 들추려면 온 세상을 책으로 삼아도 모자랄 것이다. 그런데 너희를 향한 형벌이 너무 과한가? 항상 너희는 그런 태도였다. 가인이 자신의 동생을 돌로 쳐 죽이고도 자신의 형벌이 너무 과하다고 했다. 너희는 처음부터 그랬다. 그런 너희에게 지옥이 과한 형벌인가?

어떤 자들은 이 말이 무슨 말인지 들어보려 하지도 않고 또 빨갱이라며 욕할 것이다. 그들은 독립투사들과 같은 조국의 동포들을 빨갱이로 몰아 죽인 자들의 세뇌를 옳게 여겨 모든 것을 정죄하는 교만에 빠진 지옥의 하수인들이다. 누가 이승만을 기독교인이라 했는가? 나는 그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이승만의 하수인들인 너희들도 나는 도무지 알지 못한다. 빨갱이라는 말을 처음 만들어낸 한경직, 너도 나는 도무지 알지 못한다. 조선의 성자라는 칭호는 너보다 똥통의 구더기에게 더 합당할 것 같다. 너는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의 개가 되었고 해방 후에는 빨갱이 잡는 개가 되었다. '계시록의 붉은 용은 빨갱이요, 빨갱이는 공산주의요, 빨갱이는 사탄과 같이 죽여야 한다'는 네 기록된 설교는 과연 무엇을 위한 말이었는가? 네가 기르던 영락교회 청년회의 서북청년단들은 누구의 개였는가? 그들은 왜 제주에서 죄 없는 자들을 학살했는가? 너는 왜 그것을 합당히 여겨 찬양하는 설교를 기록으로 남겨 설교집으로 발간했는가? 한경직아! 이승만의 명령을 받고 김구를 암살한 서북청년단 소속 기독교인 안두희보다 너는 더 나은가? 너는 왜 군사독재정권을 위해 미국으로 향했는가? 미국이 군사독재정권을 허용하도록 박정희와 그를 따르던 전두환의 무리들을 공산화를 막아 기독교를 수호할 천사로 둔갑시켜 준 너의 목적은 무엇이었는가? 서울의 봄을 죽인 살인자들을 위해 조찬기도회를 연 너는 누구인가? 너는 조선의 성자인가? 아니면 시대의 하수인이었는가? 아니면 너의 거짓 옳음과 거짓 선행으로 세상을 속이고 지배하는 거짓 광명천사인가? 너의 중심동기는 무엇이었는가? 거짓 선지자여, 너의 행위가 너를 증명한다. 이러한데 내가 너를 알겠는가? 나는 너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어리석은 자들아! 태극기 집회를 향해 달리는 기독교인들아 나는 너희의 행위를 용인한 적이 없다. 촛불집회를 향해 달리는 기독교인들이여 너희는 옳은 길을 가고 있는가? 나는 너희의 길을 용인한 적이 없다. 너희는 나의 얼굴을 마주하는가? 나의 임재 가운데서 나의 말을 듣고 너희의 길을 허락받았는가? 너희는 나의 음성을 듣고 따르는 나의 양인가? 아니면 세상과 죄와 사탄의 말을 따르는 이 세상풍조에 속한 사람들인가?

아덴과 예루살렘이 무슨 상관이며 세상 이데올로기와 복음이 무슨 상관인가? 옛적 지혜로왔던 저 터툴리안의 말을 너희는 잊었는가? 어리석은 싸움을 멈추고 지혜롭게 가족을 돌보고 진정 형제들을 돌보고 국가가 이기적인 자들의 손에 의해 어둠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고 탄식하고 울라. 나의 말을 잊었는가? 예루살렘이여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너와 너의 자녀를 위해 울라.



# 01.3.2.2.3.3. 대신 죽을 수 있는 자도 없다
그러니 너희는 어찌해야 하겠는가? 답은 너희 죄를 대신해 죄 값을 치르고 그 죄의 값으로 죽어줄 자를 찾아야 한다. 그런데 너희 각자는 모두 죄인이라 서로를 위해 죽어줄 인간이 없다. 누가 너를 위해 죽어주겠는가? 만약 부모나 사랑이라면 자식과 연인을 위해 죽어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격이 안된다. 부모도 사랑도 자신의 죄를 위해 형벌을 받아 죽어야 한다. 그들은 자기 죗값을 치르기에 급급하여 너를 위해 죽어줄 여력이 없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하는가?
# 01.3.2.2.3.4. 대신 죽기 원하는 자도 없다
또 누가 자신의 죄가 아닌 것을 감당하고 죽어주겠는가? 그것도 끝없이 배신하고 끝없이 고통을 안겨주는 범죄자를 위해 과연 누가 죽겠는가? 용서하고 용서하고 용서하여 이른 번씩 일곱 번을 용서해도 다시 죄를 범하는 죄인을 위해 과연 죽을 가치가 있을까? 제정신인 자라면 결코 이런 죄인을 위해서는 죽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너희가 몰라서 그렇지 너희가 아는 어떤 연쇄살인마와 비교해도 너희 속에 있는 근원적인 죄성은 그 악함의 순도가 결코 낮지 않다. 근원적으로는 같다. 너희 중 누가 싸이코패스 연쇄살인마를 위해 자신을 희생할 것인가? 아무도 없다. 인간이 아닌 피조계의 어떤 존재도 결코 천사라 해도 자신을 희생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럴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과연 너희가 그렇게 악한 존재일까? 너희가 자각하든지 자각하지 못하든지, 너희는 그렇게 악하다. 그것이 진실이고 그것이 사실이다. 앞에 나열한 악함은 그 일부에 불과하지만 그 정도의 악함만 보아도 너희는 구제불능의 연쇄 살인마를 능가하는 죄성을 가진 자들이다. 그래도 인정이 안된다면 앞의 글들을 다시 읽어보라. 그리고 깨닫게 되도록 기도하라. 가장 거룩한 삶을 살았던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인 사도 바울은 자신을 죄인 중의 괴수라고 했다. 죄인 중의 괴수는 죄인 중에 가장 악한 자라는 말이다. 싸이코패스와도 비교할 수 없이 자신이 가장 악하다고 한 것이다. 그가 왜 그런 말을 했겠는가? 과연 일부로 겸손한 척하기 위해 한 거짓 겸양이겠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그는 자신의 실상을 본 것이다. 자신의 탐심과 죄의 동기를 본 것이고 스스로 저주받아 마땅한 독사의 새끼임을 깨달은 것이다. 자기 입에서 나오는 것이 독사의 독임을 안 것이다. 그 심중에는 독사의 알을 품고 있음을 안 것이다. 바울이 그러했다면 너희는 어떻겠는가? 그는 구약의 모든 율법을 어긴 적이 없다. 그리고 수천에 달하는 바리새인 스스로의 부가율법들도 어긴 적이 없다. 바울 그는 과연 인간인가? 어떻게 율법에 흠이 없을 수 있는가? 그는 살면서 거짓말도 한마디 하지 않고 살았다는 말인가? 그렇다. 그뿐 아니라 모든 율법조항과 그것을 지키기 위해 세운 수천의 부가수칙들도 어긴 적이 없는 인간이다. 과연 그가 인간이란 말인가? 그런데 그런 그도 자신이 싸이코패스보다 더하며 죄인 중에서 가장 악한 자라 했다.

그도 그럴진대 너희는 어떠하겠는가? 깨닫게 하는 은혜를 우리에게 구하라. 그래야 자신의 상태를 깨닫고 살길을 찾을 것이 아닌가?

너희는 이 땅에서 너희처럼 악해 지옥이 마땅한 죄인을 위해 죽어줄 자를 찾을 수 없을 것이다. 너희는 이제 어찌해야 할 것인가?

# 01.3.2.2.3.5. 호구를 찾습니다
그렇다면 너희는 어찌해야 하는가? 과연 너희는 너희를 대신할 자를 찾을 수 있을 것인가? 싸이코패스 연쇄살인마보다 더한 죄인을 위해 죽을 호구 같은 존재가 있을 것인가? 그래도 너희는 살아야 하니 너희를 위해 대신 죽을 자를 찾기 바란다. 너희 목숨을 걸고서라도 찾기 바란다. 그래야 살 수 있다. 그래도 없으면 광고라도 내기 바란다.


호~구를 찾습니다!
호~구를 찾습니다!
호~구를 찾습니다!


그렇다. 진정 호구가 아니라면 그런 존재가 있을 것인가? 누가 싸이코패스를 위해 죽을 것인가?

바로 내가 있다. 아무도 구원할 자가 없어, 나는 스스로 구원의 투구를 쓰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진리의 검을 들고 구원의 전신이 되었다. 나는 처음부터 너의 구원을 위한 열정을 가진 자다. 나는 마지막까지 너의 구원을 이룰 자다. 내가 이렇게 스스로 구원자가 되기로 작정한 것은 너희가 나의 자녀이기 때문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너는 내 새끼다. 모든 사람이 네 죄를 비난하고 너에게 돌을 던지더라도 나는 너를 깨끗다 한다. 왜냐하면 너는 나의 새끼이며 너는 나의 생명이기 때문이다. 내 생명을 버려서라도 나는 너를 구할 것이다. 네 부모는 너를 버려도 나는 너를 버리지 않으며 네 사랑이 너를 버릴지라도 나는 너를 사랑할 것이다. 나는 구원이며 나는 너의 뿔이다. 너의 힘이며 너의 방패다. 누가 너를 비난하더라도 그 모든 모욕을 내가 막아서고 온 세상이 너를 비난하고 너의 아픔을 후벼 파더라도 나는 그 모든 비난자들과 싸울 것이다. 그들 중 누구도 나와 싸워이길 자가 없으니 나는 반드시 싸워 이겨 너를 깨끗다 할 것이다. 너의 죄가 늪의 진흙과 같이 검어도 나는 너를 물로 씻어 깨끗다 할 것이다. 너의 죄악으로 포악한 살인의 피를 온몸에 칠하여도 나는 너를 나의 거룩한 피로 씻어 거룩다 할 것이다. 나는 너를 위해 창에 찔리며 죽은 자의 물과 피를 쏟아 너를 씻었다. 그러니 나의 물과 나의 피로 씻음을 받은 너를 누가 죄인이라 할 수 있는가? 나의 물과 나의 피는 거룩하니 나의 죽음으로 나는 너를 거룩케 했다. 내가 너의 편이며 내가 너의 구원인데 누가 너를 대적하여 너의 죄를 정죄하고 너를 지옥으로 끌어내릴 것인가? 내가 네 죄의 형벌을 대신지고 사형을 당할 것인데 누가 너에게 죄의 형별을 내려 사형언도를 할 것인가? 이제 찾아보라 너를 비난하는 눈초리와 그 입술의 독설을 찾아보라. 그 누구도 나를 대적하여 너를 정죄할 자 없다. 어리석은 자들은 정죄하더라도 그들은 그 대가를 지불하고 지옥의 불맛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러니 이제 나의 요람에서 아이처럼 편히 쉬렴. 비루먹은 개처럼 떠돌며 사람들의 돌팔매를 맞던 그 시절은 잊고 이제 사랑스런 웃음에 만족을 가득 품고 잠에 들자, 내 사랑하는 아이야. 다시 태초에 내게 부렸던 어린양을 다시 한번 부려보렴. 나는 네가 참으로 그립구나. 너의 웃음도, 나의 품에 안기어 자던 너의 새근거리던 숨소리도 그립구나. 나의 아이야 다시 에덴을 가자. 이제 네가 파괴한 에덴은 멸망하여 없어지니 나와 함께 새에덴, 하늘의 새예루살렘으로 가자. 새예루살렘에서 영원히 나와 함께 거닐고 나와 함께 뛰어놀자. 나의 사랑스런 아가야.


# 01.3.2.2.3.6. 죽음의 속임과 죽음의 승리

나는 스스로 구원자가 되어 너희를 위한 죄의 값을 지불할 것이다. 죄의 값은 사탄과는 관련이 없다. 오직 죄의 값은 우리 공의의 심판에 대한 형벌을 대신 지는 것이다. 세상 임금과 나의 죽음이 무슨 상관이 있는가?(요 14:30) 그는 불법적으로 너희의 권세를 이용하고 너희를 몰래 조종하여 세상을 통치하고 있지만 그것은 합법이 아니요 불법이다. 단지 세상의 통치 권세를 가진 너희가 사탄과 그 졸개 귀신들에게 속아 그들의 욕심을 행하여 세상을 어지럽히고 있을 뿐이다. 그것은 불법이니 그 죄의 대가를 너희는 치르고 그 결과 죽음과 지옥을 맛보아야 한다. 나는 그 죄의 대가를 대신 치를 것이다. 너희를 대신하여 죗값을 치르고 너희를 정죄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너희를 해방시킬 것이다. 그리고 죄를 행하는 너희 악한 본성도 십자가에 못 박아 같이 죽일 것이다.

나의 죽음은 속임수다. 그 속임은 사탄과 세상에 속한 악인들을 속이는 속임수다. 사탄과 세상에 속한 자들은 내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알고 나에게 억울한 누명의 씌워 죄인으로 죽게 했다. 그들은 나를 거짓증거로 죄인으로 정죄하고 죽임으로 내가 너희를 구원하려는 일에 실패하기를 원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죄의 누명을 뒤집어쓰고 죽게 하여 신으로서 오욕을 뒤집어쓰고 모욕을 당하게 하기 원했다. 사실 나의 구원의 계획은 알려져야 했지만 그것이 성취되기 전에는 명확하게 알려져서는 안 되었다. 마치 암호와 같이 아군에게는 해독될 수 있지만 적군에게는 그 뜻이 숨겨져야 했다. 심지어 핵심적인 구원의 길인 십자가의 죽음은 아군으로 생각되는 인간들에게도 대부분 숨겨져야 했다. 그래야 원수가 너희 인간들을 조종하여 나의 십자가의 길을 방해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구약 성경을 보고 나를 기다린 자들도 나의 십자가의 죽음을 예측하지 못했다. 심지어 나의 제자들도 그것을 예측하지 못했다. 심지어 내가 미리 말했어도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물론 세상과 사탄도 알지 못했다. 그래서 나를 대적하여 나를 죽게 했다.

그런데 그렇게 죽은 나의 죽음은 모든 시간과 모든 피조세계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승리였다. 나는 원수가 실패라고 생각한 그 죽음을 통해 너의 죄에 대한 형벌을 대신 받았다. 그리고 심지어 너의 죄성도 나와 함께 내 육체 안에서 죽여버렸다. 그리고 그 승리를 네 안에 능력으로 부어준다. 성령을 통해 부어진 그 능력은 너를 죄로부터 승리케 한다. 죄를 이기는 너는 더 이상 사탄의 뜻을 따라 살지 않는다. 너의 악한 죄성을 따라 살지 않는다. 너는 태초의 아름다움 대로 나의 완전한 선을 따라 살게 된다. 너의 통치를 받는 피조세계도 더 이상 죄로 물들지 않는다. 이렇게 해야 더 이상 세상은 지옥도가 되지 않을 것이고 너의 삶도 지옥도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너의 미래도 지옥이 되지 않을 것이다. 이미 타락한 다수가 살고 있고 그들이 지옥도로 만드는 세상도 나의 죽음과 같이 죽고 나의 부활과 같이 다시 살아 새롭게 될 것이다. 끝까지 지옥만을 고집하는 악의 화신들, 지옥의 백성들은 그들의 소원대로 지옥으로 격리하고 너는 너의 새롭게 된 본성대로 살도록 새 에덴, 새 예루살렘을 줄 것이다. 그러면 그곳에는 아픔도 눈물도 두려움도 없을 것이다. 네 스스로의 죄악으로 정신줄을 놓을 일도 다른 이의 죄악으로 너의 생이 파괴될 일도 없을 것이다.


# 01.3.2.2.3.7. 십자가의 왕

이를 위해 나는 십자가를 졌다. 그 십자가는 죄를 인한 형벌이며 또한 죄를 죽이는 승리다. 나는 그 형벌을 감당하고 그 죽음으로 나는 죄의 본성 즉 너희 안에 있는 사탄의 본성을 죽였다. 그러나 그 죽음이 일어날 당시에도 그리고 내가 부활한 후에도 그것은 나의 가장 수치스런 흉터(스티그마)가 되었다. 신이 인간과 비굴한 타락한 천사에게 죽임을 당한 것이다. 어떻게 신이 그런 하등 한 존재들에게 살해당할 수 있다는 말인가? 과연 그 신이라는 존재는 신이 맞는가? 그의 죽음으로 그의 모든 계획은 실패하고 그의 죽음으로 그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 증명된 것이 아닌가? 온 세상이 비웃었다. 공중과 땅에 있던 타락한 모든 존재들은 비웃고 비웃었다. 그날의 밤이 지나도록 비웃음으로 웃었으며 그것은 사흘이나 계속되었다.

나의 죽음으로 모든 만물 중 우리의 편에 있던 모든 것들은 탄식했다. 완전한 길을 몰랐던 모든 피조물은 슬픔으로 탄식했다. 우리 중 성부와 성령은 내가 버림받음으로 그들과 단절된 고통에 몸부림쳤다. 나도 모든 피를 흘리며 어릴 적 썼던 나의 고향 아람어 방언으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외쳤다. 그 당시 인간이 되었던 나는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에 본능적으로 어릴 적 부모에게 투정 부리던 말투를 그대로 썼다. 이 말을 들은 인간들은 나를 비웃었다. 비웃으며 말했다. 저가 엘리야를 부르는가? 내가 죽어가는데도 저들은 그저 비웃을 뿐이다. 자신들을 위해 왔는데도 저들은 여전히 비웃는다. 자신들의 죄를 위해 죽는데도 저들은 여전히 비웃는다. 누군가 죽는 순간에도 비웃음을 날리는 저들이 인간인가? 저들은 악마인가? 저 인간이라고 지칭하는 것들은 무엇인가? 머리로는 모든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인간이었던 나의 감정은 요동을 쳤다. 동시에 저들의 광기 어린 모습이 너무 가련했다. 저들은 광인이요 정신병동의 미친 짐승들과 같이 자기 이성을 잃고 날뛰는 불운한 존재일 뿐인 것이다. 모든 것을 알고 있었던 나는 그 마지막 순간들에 나의 아버지 하나님께 말했다. 아버지 저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저들의 죄를 용서해 주세요. 그리고 그 모든 죄는 저에게 지우시고 그 모든 죄의 저주는 지금 저에게 쏟아주세요. 그리고 저들도 저들 스스로를 어찌할 수 없습니다. 이제 제가 저들을 대신하여 죽어 저 죄의 사람을 멸하겠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여 새사람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다시 살아나 저들도 하나님의 아들들로 다시 태어나게 하겠습니다.

그러나 그 사건 이전에도 이후에도 인간들은 그냥 믿기만 하면 되는데 그 쉬운 선택을 거부했다. 끊임없이 자기 악의 길로 달리는 것이 기쁘다고 말하며 나를 비웃는다. 나의 선택은 어리석었고 나의 희생은 헛된 것이라 비웃는다. 내를 잘못된 판단을 하여 가치도 없는 일에 자신을 희생시킨 무뇌자로 여긴다. 아니면 나를 신이 아닌 미친 유대 종교의 이단 광인으로 낙인찍기도 한다. 그 사건은 유대인들에게는 어리석고 헬라인들에게는 미련한 것으로 여겨졌다. 심지어 동양과 아메리카에서는 제국주의의 지배 수단(이데올로기)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그들에게 십자가는 서양 제국주의로 여겨졌다. 이슬람에게는 자기들을 침략하는 야만적 침략자들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그 침략자들이 이름은 십자군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나를 비웃지만 심지어 나의 죽음을 상징하는 그것을 이용했지만 그래도 나는 십자가에 못 박힌 십자가의 왕이다. 바로 십자가에 못 박힌 유대인의 왕이다. 로마인들은 자신들에 대한 반란의 죄목으로 유대인들은 아무것도 아닌 자가 자신이 유대인의 왕이라 주장했다 하여 비웃음의 패로 그것을 사용했지만 그래도 나는 유대인의 왕이다. 바로 유대지파 다윗의 왕위를 이어 나의 백성들을 위한 목자며 그 양들을 지키기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는 참 목자다. 그래서 나는 유대인의 왕이며 나는 십자가의 왕이다.

나를 아는 모든 자들은 십자가를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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