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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스겔 Apr 27. 2024

01.3.2.3.8. 율법의 종- 모세의 연대기 4


01.3.2.3.8.8.2.1.1. 세뇌: 종교와 이념

    01.3.2.3.8.8.2.1.1.1. 종교

        01.3.2.3.8.8.2.1.1.1.1. 종교가 사람을 착취하는 5 단계

            01.3.2.3.8.8.2.1.1.1.1.1. 1단계: 귀신을 신으로 믿도록 속이는 단계

            01.3.2.3.8.8.2.1.1.1.1.2. 2단계: 귀신이 복과 저주를 내린다고 속이는 단계


            01.3.2.3.8.8.2.1.1.1.1.3. 3단계: 복을 받기 위한 법과 저주를 막기 위한 금지법  


01.3.2.3.8.8.2.1.1.1.1.3. 3단계: 복을 받기 위한 법과 저주를 막기 위한 금지법  

  
인간을 착취하고 이용하고 결국에는 죽이는 사탄은 인간을 원하는 대로 조종하기 위해 인간에게 자신에 대한 두려움을 심어준다. 그 수단은 복과 저주다. 사탄은 인간을 원하는 대로 조종하기 위해서 복을 받기 위한 행동의 규범을 만들어 지키도록 강제한다. 그것을 보통 율법이라 한다.  
  
율법은 복을 얻기 위한 법과 저주를 피하기 위한 금지법으로 나뉜다. 실행을 장려하는 율법은 보통 귀신들을 잘 섬기라는 것들과 그 귀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행동을 하라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그리고 금지법은 어기면 저주를 받은 법들이 대부분이다. 누구나 강조하는 문장은 긍정형보다 부정의 부정을 쓴다. '이 귀신을 무시하지 마라. 무시하면 그냥 두지 않는다. 비명횡사하거나 자손들이 저주를 받는다.'와 같은 형식들이다. 실천을 강조하는 긍정형의 율법과 저주를 강조하는 금지법 모두 강제성을 가진다. 그 모든 것에 즉각적인 복과 저주가 따라온다. 그렇게 해야만 인간을 적절히 통제할 수 있다. 인간은 이렇게 자신의 의지가 강제당하고 억압당해서 꼭두각시와 같이 살아가는데도 그것이 자신의 의지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 종교를 선택하고 그 종교에서 주는 복을 얻기 위해서 스스로가 그것을 열심히 실천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자체가 이미 사탄에게 세뇌를 당한 상태다. 이와 같이 세뇌당한 인간은 율법을 통해 철저히 사탄이 지시하는 길을 가게 된다.  
  

01.3.2.3.8.8.2.1.1.1.1.3.1. 복을 받기 위한 법  
  

율법은 인간에게 선행을 행하도록 하지만 그것도 인간을 범죄로 이끈다. 사실 귀신의 율법 안에서 도덕률은 미끼일 뿐이다. 도덕률을 사악한 귀신의 의도에 버무림으로 그 귀신의 의도를 담은 율법 전체가 옳은 것처럼 보이게 된다. 그렇게 하여 종교에서 주는 거짓율법을 인간은 도덕률과 같이 여겨 옳다는 신념을 가지게 된다. 그렇게 세뇌당한 인간은 종교의 율법을 도덕률보다 더 상위에 놓기도 한다. 결국 인간은 자신의 양심을 지키는 것과 같이 종교의 거짓 율법을 지키게 된다. 인간은 거짓 율법에 대한 신념을 가지고 때로는 자신의 목숨을 내놓기도 한다.  


01.3.2.3.8.8.2.1.1.1.1.3.1.1. 목숨을 요구하는 헌신법  


대표적인 예가 이슬람의 지하드(아랍 고군분투)다. 지하드는 성전(聖戰, 종교적 이념에 의해 수행하는 전쟁)을 포함하는 알라를 위한 거룩한 투쟁이다. 이슬람의 낮시간의 금식을 지키는 절기인 라마단도 영적인 지하드에 포함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실상 종교와 관련한 전쟁을 직접적으로 지칭한다. 이슬람교도들은 자신들의 종교를 전파하기 위해 전쟁을 벌인다. 아직 이슬람을 믿지 않는 자들을 개종시키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정복전쟁이라 생각을 한다. 과거 그들이 스텝 지역의 강성한 유목민이었을 때는 중동과 북아프리카 그리고 중앙아시아와 동남아시아 등 다양한 지역들을 정벌하여 자신들의 종교로 강제 개종을 시켰다. 그것이 정당하다는 것이다. 강제 개종을 하지 않는 자들도 최소한 자신들의 율법을 지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목을 베어 죽인다. 이러한 성전을 수행하다가 죽는 자들은 천국에 들어가는 복을 얻는다. 천국에는 술과 여자가 끝없이 나오고 쾌락의 복락을 누릴 수 있다. 딱 유목민들에게 맞는 천국이다. 언제든 이웃의 여자를 보고 마음에 들면 그 남자들을 죽이고 여자와 가축들을 차지하던 그 습관 그대로 그들에게 알라가 쾌락의 선물을 주는 곳이다. 이를 위해 이슬람교도들은 타인의 나라를 약탈하고 그들의 것을 빼앗고 자신들의 종교를 강제로 믿게 한다. 이들의 정복전에서 피지배민족들에게 선택의 자유란 없다. 거부를 표할 경우 목을 베어버린다.  
  
현대에는 이제 이슬람 국가들이 후진국들이라 약소국들이다. 자신들이 선진국들에 의해 억압을 당한다 생각한다. 자신들의 억울함을 푸는 수단으로 테러를 자행하는데 이도 지하드라 생각을 한다. 참 편한 사고방식이다. 자신들이 강할 때는 마음대로 쳐들어가 정복하고 죽이고 자신들의 종교를 강제로 받아들이게 하고 거부하면 죽인다. 그러나 자신들이 약해져 다른 민족들이 자신들에게 약간의 피해라도 입히면 정상적인 전쟁도 아닌 민간인들을 이유도 없이 죽이는 테러를 자행한다. 자신들은 빼앗고 강간하고 죽여도 되고 타자들은 자신들에게 조금의 손해도 끼쳐서는 안 된다는 주의다. 그 정도가 아니라 자신들보다 강하여 정복당하지 않는 민족이 있다는 자체를 못 견디는 종교다. 종교란 거의 대부분 이런 잔인한 얼굴을 하고 있다.  
  
이렇게 자신도 전쟁에서 죽고 타인도 죽이는 끔찍한 짓을 벌이면서도 귀신들의 종교는 그것을 포장하여 미화를 한다. 그것을 성전이라 하며 그 성전을 통해 복을 얻는다고 속인다. 이것이 종교의 실상이다. 사실 종교는 귀신들이 인간들을 잘 속여 착취하는 기막힌 수단에 불과하다. 그러면서도 복을 준다고 속여 자신들을 따르게 한다.  
  

01.3.2.3.8.8.2.1.1.1.1.3.1.2. 자기 교만과 귀신들의 배만 불리는 선행  

  
또 율법에 적힌 도덕률을 성실히 이행하더라도 인간은 결국 원수의 일에 성실히 협조하는 것이 된다. 보통 이런 예를 들어 설명을 많이 하는데 해적선에 탄 해적이 착하고 성실하면 죄가 된다는 것이다. 해적선에서 성실하면 해적질을 하는데 도움을 주는 것이 된다. 갑판에서 일하는 해적이 청소를 열심히 하고 갑판 위에 있는 물건들을 잘 정리하여 사람들이 다니기 편하게 하고 비 오는 날에도 발이 미끌리지 않도록 갑판에 기름기와 이물질을 잘 제거하면 이는 해적들이 해적질하는데 편리하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다. 만약 주방장이 음식을 맛있게 만들고 사람들에게 고른 영양이 공급되게 하면 그도 해적질에 도움을 주는 것이 된다. 해적들이 건강하여져 더 많은 해적질을 하도록 힘을 보태는 것이 되는 것이다. 문제의 근원은 인간에 도적의 세상에 살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도적 귀신들이 만든 종교를 섬기며 그곳에서 도덕률을 지킨다면 도적에게 도움을 주는 성실한 도적의 종이 되는 것이다.  
  
인간은 귀신들의 율법 안에 있는 도덕률을 지켜 자신의 의를 쌓으면 쌓을수록 죄가 커진다. 인간은 그것을 자기의로 자기 자부심으로 삼기 때문이다. 인간은 그 결과로 자기 스스로 의롭게 여기는 자기 교만에 빠지게 한다. 이 교만이야 말로 최고의 죄악인데 인간은 그 죄악에 빠지는 자신에 대해 파악하지도 못하고 자신은 최고의 율법준행자라는 자부심에 빠져든다. 그 자부심이야 말로 최고의 교만이며 죄악이다.  


01.3.2.3.8.8.2.1.1.1.1.3.1.3. 도적률로 포장한 탐욕  

  
또 모든 귀신의 율법준행의 목적은 인간의 탐욕을 향한다. 탐욕을 부어주는 복을 얻기 위해 인간은 율법을 열심으로 지킨다. 율법이 말하는 도덕률은 수단일 뿐이다. 도덕조차 탐욕의 수단으로 삼는 인간은 도덕적 인간이 아니라 진정 속까지 타락한 괴물로 변한다. 인간은 자신의 이익이라는 복을 위해 무엇이든 하는 괴물이다. 자신의 이익으로 얻으려는 것은 자기 힘이다. 그리고 그렇게 얻은 힘을 권력으로 삼아 모든 세상을 다스리는 자가 되려 한다. 인간의 탐욕은 어제나 자기 스스로 세상 최고의 통치자가 되려는 것을 향한다. 단 한 번도 세상의 영웅이라는 악마 같은 죄인들이 이를 벗어난 적이 없다.  
  
시저도 그러했고 칭기즈칸도 그러했고 알렉산더도 그러했다. 이들의 탐욕은 수많은 엄마와 딸을 강간하고 그들의 재산을 빼앗고 그들의 아비와 아들을 죽였다. 이들의 탐욕은 도적질 하고 빼앗고 죽이는 마귀의 탐욕이다. 그들의 배경에 있는 세상의 영이 추구하는 것이다. 결국 육체가 된 인간과 그에 붙어 있는 집단인 세상과 그것의 영적 지배자인 사탄의 욕구가 드러난다. 그런데 그것이 영웅의 역사로 포장된다. 그들이 그런 살육과 강탈을 이어갈 때 그들에게는 분명한 동기부여가 있다. 세상 동기부여의 수단은 탐욕이다. 그들이 문화를 발전시켰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자기 자랑과 백성들을 잘 속이기 위한 도구일 뿐이었다. 결국 자기 탐욕을 위한 것이었다. 백성들을 돌보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 탐욕을 위한 약탈전의 준비일 뿐이었다. 그들이 종교를 장려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인간들을 세뇌하여 자신의  탐욕을 위해 이용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었다.  
  
이들은 이 모든 것을 도덕률을 버무린 종교적 율법이나 신념으로 포장을 한다. 그렇게 해서 자신들의 탐욕을 정당화한다.  
  
이것이 종교와 사상(이념)들이 인간을 탐욕의 종으로 만드는 길이다.    


01.3.2.3.8.8.2.1.1.1.1.3.1. 저주를 막기 위한 금지법  

  
종교의 율법에는 행동을 장려하는 법도 많지만 행동을 금하는 금지법들이 더 강력한 조항이 되는 경우가 많다. 중세 카톨릭을 예로 들면 신부와 수녀는 모두 성적 욕구를 금지당했다. 이렇게 금지하는 것은 더 강한 종교나 사상에 대한 충성을 요구한다. 자신의 가장 소중한 어떤 것을 금지당하면서도 종교에 대한 헌신을 드리는 것은 인간의 아주 강력한 의지가 동반된다. 그런 헌신을 드리는 자들은 모든 자신의 의지를 종교에 헌신한다. 이런 전적 의지를 귀신들이 요구하는 목적이 있다.  
  
그런 자들을 통해 귀신들은 자신들의 뜻을 마음껏 펼친다. 그런 자들은 귀신들에게 철저한 복종을 하고 귀신들의 뜻이 땅에 이루어지도록 염원하고 기도하기 때문이다. 귀신들은 그런 자들에게 자신들의 뜻을 율법을 통해 주입한다. 그 율법을 충실히 지키고 금지법들을 통한 말도 안 되는 헌신도 받아들이는 맹목적인 추종자를 양성한다. 그 후에는 그들에게 자신들의 뜻을 직접 말하기 시작한다. 그런 자들은 신접하게 되며 귀신들의 뜻을 직접 듣고 실행하게 된다. 고대의 대부분의 사회에서는 그런 일들이 일어났다. 그리스의 델포이 신전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너희들은 기록을 통해 들었을 것이다. 그 신탁을 들은 자들이 그 신탁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라고 염원한다면 그 인간들의 의지를 통해 세상에 신탁이 이루어진다. 귀신들이 원하는 것은 이것이다. 귀신들의 뜻이 인간의 의지를 통해 실행되기를 원하는 것이다. 사실 귀신들의 뜻을 실행하는 원천적인 권세는 인간에게 있는데 인간을 속여 인간의 의지를 사용하면서도 인간에게는 그것이 귀신들의 능력이라 속이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귀신들의 뜻을 마음껏 펼치려면 금지법의 무지막지한 조항들 조차 헌신적으로 지키는 인간들의 완전히 복종된 의지가 필요한 것이다.  
  

01.3.2.3.8.8.2.1.1.1.1.4. 4단계: 죄책감과 지옥에 대한 두려움으로 속이는 단계  

 
귀신들은 인간들을 율법을 통해 더 깊은 속박으로 몰아넣는다. 타락한 인간은 복을 위한 도구인 도덕조차 지킬 수 없다. 귀신들은 이를 통해 인간들이 죄책감과 두려움을 느끼게 한다. 율법을 어긴 인간은 지옥으로 떨어진다고 가르친다. 그래서 인간은 늘 지옥에 대한 두려움에 시달리게 된다. 인간은 결국 더 열심히 율법을 지키려 한다. 그 열심은 결국 귀신들을 향한다. 귀신들을 더 철저히 섬기고 귀신들에게 희생을 바친다. 어떤 종교에서는 자식을 희생의 제물로 바치는 경우까지 있다. 이러한 단계에서 죄책감과 지옥에 대한 두려움은 그 핵심적 능력을 나타낸다. 인간이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는 여력을 빼앗고 인간의 모든 생각과 의지가 귀신들의 뜻을 좇도록 만든다. 그렇게 하여 인간을 통해 세상에 귀신들의 뜻만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단계까지 나아가게 한다. 이것이 종교가 인간을 헌신케 하는 이유다. 자신의 것이 아닌 세상을 도둑질한 귀신들은 그 세상을 자신들의 뜻대로 통치하기 위해서도 원래 주인인 인간이 필요하다. 인간 스스로 속아서 귀신들이 원하는 대로 세상을 통치해 주어야 한다. 그 핵심적인 도구가 종교이며 종교가 인간의 의지를 속여 속박하는 데 사용하는 가장 극악한 수단이 죄책감과 두려움이다.  
  
율법이 철저히 지켜지면 지켜질수록 인간은 자신들의 모든 분야를 귀신들에게 지배당하게 된다. 율법은 귀신들이 원하는 목적을 세상에 이루어지게 한다. 율법은 도덕률 같으나 실은 인간의 탐욕(사실 귀신들의 탐욕)을 세상에 이루는 도구가 된다. 율법을 준행하는 자들의 중심에서 사악한 탐욕이 자리 잡고 있다. 율법의 준행목적은 탐욕(복)이다. 이 율법이 철저히 준행되면 준행될수록 세상은 원수들이 원하는 대로 더 사악해지고 결국 공멸을 향해 달려간다. 결국 귀신들이 세상에 이루고자 하는 목적을 향해 달린다. 귀신들의 목적은 단 하나다. 자신들이 신이 되는 놀이를 즐기면서 우리(하나님)에게 괴로움을 더하는 것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인간들을 속이고 착취하며 인간들이 스스로 우리에게 반기를 들고 자멸하도록 한다. 인간들의 자멸을 보는 것은 우리의 가장 큰 고통이다. 한 영혼은 천하보다 귀하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가치에 한 영혼은 모든 세상을 주고서도 살 수 없는 귀한 존재다. 원래 만유의 통치자로 만들었으니 객관적인 가치도 한 인간이 천하보다 귀하다. 그런데 인간은 무엇보다 우리(하나님)의 자식이다. 자식보다 중한 것이 무엇이겠는가? 그 자식이 스스로 반역의 길에 올라 지옥의 죽음을 향해 스스로 자멸해 가는데 그보다 더한 고통이 어디에 있겠는가? 원수는 그것을 즐긴다. 빼앗고 죽이면서 쾌감을 느낀다. 우리의 자식을 잡아먹으면서 쾌감을 느낀다. 그들에게 사기를 치면서 쾌감을 느낀다. 그리고 그것을 우리가 보도록 하여 쾌감을 느낀다. 그런 그들이 악마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그래서 그들에게 부여된 가치는 악의 화신인 악마들인 것이다.  
  
악마들은 이 모든 변태적 쾌락을 위해 철저히 계획을 세우고 인간들을 속여 인간들이 스스로 자멸하도록 사회의 체계들을 만들어 간다. 모든 사회망과 시스템의 목적을 자신들의 변태적 쾌락을 위해 설계한다. 세상의 체계는 모두 인간들의 공멸을 위한 시스템이다.  
  

01.3.2.3.8.8.2.1.1.1.1.5. 5단계: 샤먼과 권력자에 대한 두려움과 복종  

  
이 모든 체계의 설계자는 귀신들이다. 그러나 이 모든 체계의 실행자는 인간이다. 인간의 동의와 실행이 없이는 귀신들의 설계는 현실이 될 수 없다. 인간이 귀신들의 설계를 따라가는 이유는 귀신들의 설계가 치밀하고 인간의 탐욕을 잘 파악하여 인간을 교활하게 유혹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이 귀신들의 설계를 실행시키는 근원적인 이유는 자신들의 탐욕 때문이다. 인간들의 탐욕은 귀신들의 탐욕을 능가한다. 사실 인간들은 귀신들이 하는 대로 모든 타자를 속여 이용하는데 능숙하다. 귀신들은 자기 자신은 속이지 않는데 인간은 자신조차 속인다. 스스로 자신은 도덕률을 지키는 성인군자라 생각하지만 그 도덕률은 실상 자신의 사악한 욕심을 이루기 위한 수단일 뿐인 것이다. 그의 행동으로 보이는 그의 동기는 말과는 다르게 사악한 탐욕이다. 모든 것을 도적질 하고 빼앗고 멸망시키는 인류는 자기 자신의 정신조차 도적질 하여 마취시켜 자신을 정당화한다. 그래서 사악한 공멸의 길을 가면서도 자신은 공명정대한 정도를 걷고 있다고 믿는다. 이것이 가장 심각한 인간의 사악이요 악마를 능가하는 악의 길이다.  
  
이 중심에는 이념이나 종교가 있는데 종교나 이념은 항상 그 사회적 율법을 가지며 그 율법을 따라 지배구조가 결정된다. 지배구조의 상층에 있는 지배계급들은 항상 자신들의 종교나 이념에서 보장하는 특권을 누리며 살아가게 된다. 지배구조의 상층에 존재하는 자들의 권력은 항상 사회적 종교나 이념에 의해 정당성을 가지게 된다. 그것을 대부분은 법으로 제도화하여 법에 강제성을 부여하고 그 법의 질서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군대를 소유한다.  공권력을 소유하며 치안을 위한 경찰병력을 소유한다. 대부분의 법률들은 그 제도가 정비되어 가도 언제나 법을 만드는 입법자들인 상위랭커들에게 유리하게 흘러간다. 그래서 항상 먹이사슬의 하위랭커들은 항상 착취를 당하나 그것이 법에게 옳다는 평가를 받는다. 심지어 자신들이 믿는 이념이나 종교도 그것을 끝없이 세뇌하므로 피착취자들이 그렇게 착취당하고 빼앗기고 결국은 죽을 때까지 그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당연시 여긴다. 항상 모든 이익은 계층의 최상위에 모이게 되어있고 인간들은 구더기와 같이 더러운 욕심을 가지고 똥탑의 최상위층을 향해 기어오른다. 그것이 귀신들이 만들어 놓은 인간 세상의 모습이다. 그 모습 자체가 지옥도다. 원수들이 거하는 어둠이 이곳이고 이곳이 세상이며 그 세상에 존재하는 악한 인간들이 육체다. 그리고 그 육체들을 속여 지배하는 거짓신들이 귀신들이며 그 귀신들 중에 대표 격인 것이 사탄이다. 사탄도 별것 아니다. 원래 권세 상으로는 인간의 종일뿐이다. 그런데 이들의 거짓은 효력이 대단하여 인간들에게 우리(하나님)의 반대편 진영에서 우리(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는 신과 같이 자신들을 포장하여 놓았다. 그런데 그들의 실상은 단지 허수아비일 뿐이다. 두려움은 주지만 사실 살아있는 능력은 없다. 살아있는 권세는 인간에게 있는데 귀신들은 단지 인간들을 잘 조종할 뿐이다. 이러한 거짓 세상의 모든 지배구조는 종교의 샤먼이나 이념을 설파하는 정치가들에 의해 지배를 받는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대중들을 잘 속여 자신들의 권력을 위한 도구로 삼는 것이다. 언제나 지배자와 지배이념, 그리고 그 뒤에서 속이는 귀신들은 한통속이 되어 인류에게 사기를 쳐왔다. 그러나 인류는 눈이 어두워지고 그 세월이 오래되어 이제는 자신들이 착취를 당하는 세상에 사는 지도 알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약육강식이나 적자생존, 또는 무한경쟁이 자연의 법이라고 까지 여기게 되었다. 자연의 법은 상생과 사랑이며 무한희생이다. 자신의 모든 것으로 생산을 하여 다시 자연에 돌려주고 다른 것들을 먹이고 그 몸이 죽어지면 다시 다른 것들의 거름이 되어 봉사하고 사랑하는 것이 자연이다. 그런데 어떻게 적자생존이 법이며 그 적자생존의 먹이 사슬 위의 최상위 포식자 즉 착취자가 정당한 착취의 권리를 가질 수 있다는 말인가? 너희는 정신을 차리기 바란다.  
  
귀신들을 섬기는 율법을 따라 인간은 사회를 구성하게 되는데 현대까지 그 흔적이 가장 많이 남아있는 것이 인도의 카스트제도다. 그 사회는 합법적인 착취와 도적질이 율법화된 사회다. 합법적으로 불평등과 착취가 가능하게 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인간의 영혼을 도적질 하여 지옥으로 떨어 뜨린다. 카스트제도는 브라만이라는 신정일치의 지배자 집단을 최상위에 두고 그 이하에 그들의 착취를 돕는 계급들을 순서대로 나열한다. 그리고 이 제도의 모든 것은 절대 다수인 최하위층의 착취를 목적으로 한다. 최하위층은 그 직업과 삶의 전반을 종교의 율법을 따라 통제를 당한다. 자신들이 그런 신분으로 세상에 태어난 것은 모두 자신들이 전생에 지은 업 때문이며 그런 고통과 억압과 착취를 당하는 것은 마땅한 벌이다.  
  
최하위층은 불가촉천민이며 여자이며 아이들이다. 가장 힘없고 착취하기 쉬운 대상들이다.  
  
여자들은 자신들이 남자를 선택할 권리도 없다. 단지 자신의 집안과 자신의 신분에 맞는 남자가 주어지면 얼굴도 보지 못한 남자를 따라가야 한다. 여자는 가장 쉬운 성적 착취의 수단이며 지참금을 준비해야 하는 금전적 착취 수단이다. 부유한 집안에서는 자기 집안의 부가 유출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딸에게 작은 지참금을 주어 출가외인으로 만든다. 가난한 집안에서는 그 지참금을 마련하기도 어렵다. 그런 가난한 계층에서는 남자가 신부의 지참금을 통해 경제적인 이익을 취한다. 어떤 경우라도 힘이 없는 약한 여자를 통해 착취를 한다. 여자는 사랑하지도 않는 남자를 만나 첫날밤 자신의 아름다운 순결을 희생당한다. 사실 이것은 합법을 가장한 강간이다. 여자가 자신의 몸을 내어주는 것은 가장 신뢰하고 사랑하는 남자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는 것인데 이것마저도 여자가 선택할 권리가 없다. 여자는 사회적 약자이기에 그런 취급을 당하는 것이다. 여자가 강간을 당한다면 그 여자는 그런 행실을 보였기에 남자가 강간을 한 것이 된다. 사회 전체가 여자를 인격적 대상으로 보지 않고 착취와 성적 도구로 보는 문화가 가득하기 때문에 인도에서는 집단 윤간 사건들이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이 모든 것의 배경이 되는 것이 인도의 종교며 종교에서 제시하는 율법으로 인해 생겨난 사회제도 때문이다. 인도의 인간들은 그런 종교적 사상에 의해 세뇌당하여 자신들이 저지르는 악행이 얼마나 무서운 죄인지도 모른다.  
  
불가촉천민은 그 삶이 정해져 있다.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할 수도 없다. 가장 돈이 되지 않는 일을 해야 한다. 그 대가로 주어지는 것도 너무 보잘것없다. 그래도 그들은 불만을 가져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들이 그렇게 사는 것은 그들의 종교의 업 사상에 의해 자신들의 벌을 받는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전생에 악을 행하여 이런 하위 계층으로 태어나 그 전생의 악업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그들이 아무리 불평등하고 불공정한 일을 당해도 그들은 억울해해서는 안된다. 그들은 전생의 악업에 대한 당연한 보응을 받고 있을 뿐이다. 그들은 가장 더러운 존재들로 상위 랭커들은 그들과 접촉하는 것조차 피해야 한다. 그들은 멸시를 받으며 그들은 저주받은 존재들이며 범죄를 저지른 적이 없지만 종교적 거짓 억압을 위해 전생의 범죄로 억울하게 누명 씌워진다.  
  
심지어 여성들은 다른 계층의 남성들에 의해 쉽게 강간을 당하거나 성추행을 당한다. 그래도 항변할 길이 없다. 그만큼 낮고 누추한 신분인 것이다. 그런 일을 당하며 그런 수치스러운 일을 겪어도 자신들은 전생의 악업으로 인해 그런 일을 감당해야 한다. 그런 모든 일들을 업으로 치부하고 겸손히 그것을 받아들이고 모든 착취에 순응해야 다음 생에서라도 좋은 존재들로 태어날 수 있다고 속인다.  
  
이런 악랄하고도 더럽고 추한 인도의 인간들은 자신들의 악행을 카스트라는 제도를 통해 모두 합리화한다. 그 모든 사회의 시스템과 체계는 종교와 그들이 가진 신념 즉 세계관을 통해 정당화된다. 그래서 자신들의 처참한 사회가 얼마나 악한지 스스로 알지 못한다. 심지어 인도의 인간들은 자신들이 자신들의 종교와 이념의 삶 속에서 자신들이 옳은 길을 가고 있다고 믿는다. 그 가운데서도 자기 교만과 자기의에 도취된 수많은 인간들이 있다.  
  
과연 이런 미친 사회는 인도에만 존재하는가? 아니다. 인류가 타락한 이후로 인간들이 사는 모든 세상은 이런 체계 속에 있었다. 단지 그 각각의 체계들 속에 있는 각자들은 자신들의 종교와 이념에 세뇌되어 그것이 정당하다고 속임을 받고 있어 자신들의 세상이 얼마나 미쳐 돌아가고 있는지 알지 못할 뿐이다.  
  
70년대 전태일의 세상에서 전태일이 불쌍히 여겼던 공장의 여직공들은 그 삶이 고통스럽고 힘들었다. 그러나 그 시대의 사고와 세계관에서 그들이 그렇게 사는 것은 당연했다. 가족을 위해, 국가를 위해 그들은 당연히 희생되어야 했다. 그 시대에는 그런 삶들이 전태일의 주변에서 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에 가득했다. 그랬던 이유는 소위 "잘살아보세"라는 슬로건으로 대표되는 국가 발전이었다. 더 나은 삶을 위해 현재의 삶을 희생당했던 그들은 지옥 같은 현실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들의 몸과 마음은 그것이 당연하지 않다고 전존재를 다해 말하고 있었다. 그들의 몸은 마르고 병들어 갔으며 기침과 피를 토하는 폐병으로 그 모든 것이 부당하다고 온몸으로 말하고 있었다. 그들의 마음은 기쁨이 없으며 소망 없는 끝없이 요구되는 인내가 그들의 마음을 더 깊은 우울과 절망으로 내몰고 있었다. 폐병이 들어 피를 토하게 되면 공장에서도 버림받고 그 모든 치료비용은 개인이 부담했다. 번 것보다 더 많은 치료 비용으로 인해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죽어갔다. 이후에 그 시대를 돌아보면 그것이 무지막지한 착취와 폭력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경제발전과 개인의 미래의 번영이라는 목표를 가졌던 그 시대의 슬로건들 앞에 그 모든 악행들은 정당화되었다. 심지어 국가의 권력 까지도 그 모든 악행을 정당화하며 절대적 권력으로 그들을 핍박했다. 그들이 병들어 죽어가도록 방치했다. 그 어떤 보상도 받지 못하게 했다. 언제나 종교나 사상을 통해 인간의 욕심과 귀신들이 주인이 된 세상에서는 이렇듯 인간은 세뇌를 당해 아무것도 모른 체 악행에 악행을 덧대어 주검의 세상을 만들어갔다.  

  
01.3.2.3.8.8.2.1.1.1.2. 거짓복음과 종교의 착취 5 단계  


사실 기독교 안에 있는 거짓복음도 이런 동일한 특성을 가지고 인간을 사로잡는다. 기독교 안의 율법주의와 인본주의와 기복주의와 신비주의 같은 거짓 신앙들도 동일한 5단계를 통해 인간의 영혼을 사로잡아 지옥으로 보낸다. 사실 거짓 귀신들이 자기들을 신이라 속여 새로운 종교를 만드는 것의 폐해보다 더 무서운 것은 기독교라는 이름을 가지고 정통적인 교리를 유지하지만 그 속에는 거짓신앙으로 가득 찬 죽은 정통주의다. 그 대표적인 것이 중세의 카톨릭이다. 그리고 개신교회 내에서도 언제나 살아있는 생명은 시간이 지나면 죽어 화석이 되어간다. 그렇게 화석화된 신앙은 항상 죽은 정통주의였다. 그 죽은 정통주의 안에는 언제나 거짓 귀신들의 영이 또아리를 튼 거짓 신앙들이 가득했다. 자신들의 세대에는 세뇌를 당하여 알지 못하지만 시간이 지나 후대에 보면 그 시대의 종교가 얼마나 타락하고 어리석은 모습들을 가졌는지 알 수 있게 된다.  
  
중세 카톨릭은 사실 기독교와 같은 일신교가 아닌 다신교였다. 마리아를 신으로 섬기며 수많은 성인들을 숭배하는 다신교였다. 카톨릭의 이름으로 세상의 권력을 탐하고 그 권력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착취했다. 그 시대에 농부들은 농노로 전락했으며 너무 악랄한 착취를 당한 나머지 자식들을 먹일 양식이 없었다. 아이들은 태어나 1~2년 안에 영양실조로 죽어갔으며 먹을 양식이 없던 자들은 자식을 잡아먹기도 했다. 자신의 자식을 스스로 잡아먹을 수 없으면 자기 자식을 팔아 다른 사람의 아이를 사 먹었다. 핸젤과 그레텔이나 빨간 망토의 식인 이야기는 그 시대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 동화다. 영주들은 착취를 일삼으면서도 그 모든 악행을 교회의 용인으로 정당화했다. 교회는 영주들이 착취하는 것에서도 십 분의 일을 받았으며 착취를 당하여 먹을 것이 없던 농노들에게서조차 10분의 일을 받았다. 그 착취한 부로 성당을 지었고 성당 안을 아름답게 치장했다. 우리는 어리석게도 중세 유럽의 예술품이나 건축물을 보고 그 아름다움을 찬양하는데 그 시대 모든 아름다운 것들은 힘이 없고 가난했던 자들의 피와 땀을 짜내어 만든 악행의 표징일 뿐이다. 세상의 가장 아름다운 것은 세상의 가장 추한 악행의 결과물이라는 아이러니가 여기에 있다. 유럽의 귀족문화와 그들의 귀족스러운 생활과 그들의 예술품과 음악이 부럽다면 모두 그들의 악랄한 종교와 착취도 기쁘게 받아들이기 바란다.  
  
귀족들이 백성들을 착취하고 빼앗고 죽이고 있을 때 교회는 그 귀족들을 축복해 주었다. 그들은 많은 헌금으로 특히 기본헌금인 십일조로 교회에 돈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교회는 착취당하는 백성들에게는 무슨 말을 했을 것 같은가? 그들은 자신들이 착취당하는 것이 아니기에 백성들에게 그냥 그것을 신의 뜻으로 받아들이라고 했다. 그 착취를 이 땅에서의 고난이라 포장을 했다. 그리고 귀족들에게 반기를 들어서도 안된다고 했다. 세상의 질서에 있는 주인들에게도 무조건 충성해야 나중에 죽어서라도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설파했다. 만약 반기를 든다면 주인들에게 충성이라는 계명을 어기게 되고 그 결과 죽은 이후에도 현생의 지옥보다 더한 지옥에 떨어진다고 협박했다. 그래야 귀족들이 백성들을 착취한 돈의 십 분의 일이 자신들에게 계속 들어올 것이기 때문이었다. 거기다 더 해서 굶어 죽어가는 백성들에게도 십일조를 걷고 헌금을 받았다. 악마와 같은 귀족들보다 교회가 더 사악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이렇게 직접적으로 잔인한 얼굴을 드러내지 않더라도 종교는 귀신과 귀신의 거짓 율법을 섬기지 않으면 지옥으로 떨어진다고 협박하여 그 잔악함으로 백성을 잡아먹는다. 사실 타락한 기독교인 죽은 정통주의는 기독교가 아니다. 율법주의와 기복주의 그리고 인본주의 그리고 신비주의는 귀신들의 처소는 되지만 결코 기독교는 아니다. 조지폭스가 말한 대로 뾰족 지붕 아래에는 나, 그리스도가 없다. 신앙고백자들에게 내적인 빛인 내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의 마음은 귀신의 집이요, 그들의 공동체는 귀신들의 처소다. 그들은 자칭 유대인들과 같이 사탄의 회다.  
  
중세인들은 세뇌되어 자신들의 종교와 율법이 진실한 진리를 가진 기독교라 믿었다. 그렇다면 너희 세대의 종교와 이념에 세뇌된 너희는 기독교도인가? 아니면 조지 폭스가 말한 신앙고백자들인가? 너희는 회심한 그리스도인인가? 아니면 요한 웨슬리가 말한 회심하지 못한 그리스도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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