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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스겔 May 04. 2024

01.3.2.3.8. 율법의 종- 모세의 연대기 5

사상(이념, 이데올로기), 이집트에서의 속임

01.3.2.3.8.8.2.1.1.2. 사상(이념, 이데올로기)


01.3.2.3.8.8.2.1.1.2.1. 영=생각

종교의 이름이 아닌 사상이나 이데올로기란 이름으로 접근해도 그 근원은 귀신들이다. 사람들은 귀신이나 거짓신의 이름으로 자신의 머릿속에 귀신들이 접근하면 종교의 귀신들인지 안다. 그리고 그냥 아이디어처럼 떠오르면 그것은 그냥 자신의 생각이나 인간들의 이념으로 안다. 그런데 재미있지 않은가? 아이디어(Idea)는 이데아다. 그리고 사상(이데올로기, Ideology)은 생각(Idea)으로 들어오는 우상(Idol) 즉 귀신(deo, deus)들의 종교(logy)다. 귀신은 기본적으로 영이기 때문에 실체가 없다. 육신을 입은 우리가 가장 쉽게 영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생각이다. 생각은 만질 수 없다. 생각과 마음은 만질 수는 없지만 그 존재가 분명히 있다. 사실 영은 이런 생각과 마음이라 할 수 있다. 단지 육체가 없다고 생각하면 된다.


01.3.2.3.8.8.2.1.1.2.2. 생각으로 드나듦(영감)의 이유

인간의 생각 속에 드나들지만 귀신들이 신이라 자신을 속일 때는 인간도 그것이 영적인 실체임을 안다. 그러나 생각으로 속이고 드나들면 인간은 그것을 눈치채지 못한다. 그래서 사람에게 들어가거나 나올 때는 생각의 형태로 드나든다. 영은 육체가 없는 생각과 마음이다. 실체가 없으니 그 드나듦을 속이면 얼마든지 속일 수 있다. 대부분 그 생각들이 자신의 생각이라 착각을 하고 그대로 따르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왜 귀신들은 자신들의 정체를 숨기고 인간들에게 생각으로 드나들까?

귀신들은 자신들이 신과 같이 숭배받기를 원하는데 자신들의 존재 자체가 드러나지 않는다면 숭배받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귀신들은 왜 자기 존재를 숨기고 인간에게 몰래 스며들까?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귀신들이 자신들을 신이라 속였을 때 그들은 거짓신으로서 인간에게 숭배를 받는다. 종교의 메커니즘을 통해 인간들을 지배하고 그 인간들에게 거짓신으로 나타나 직접적인 교통을 하며 영감을 붓는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지옥도로 세상을 만들어 나간다. 결국 세상 전체가 지옥의 불에 떨어지게 만든다. 그런데 그렇게 자신이 신이라 하여 인간들을 지배하다가 귀신들은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되기도 한다. 인간 중에 우리를 만나 자신이 누구인지 자각하는 자가 나오면 귀신들은 그와 그의 세상에서 쫓겨나게 된다. 우리를 만난 자는 우리의 능력을 덧입고 만유의 통치자의 권세를 회복하게 된다. 그러면 사탄과 그 졸개들은 상대가 되지 않는다. 타락한 천사들은 단지 아담의 종이었을 뿐이다. 그러니 주인(사람, 히 아담)이 자신의 존재를 자각하기 시작하면 속여서 주인행세를 하던 종은 봉변을 당할 수밖에 없다. 그런 시절에는 자신의 존재를 숨겨야 했다. 숨기지 않으면 언제나 귀신들은 퇴마를 당하고 쫓겨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들 자신의 생각이나 마음인 것처럼 속여 인간들에게 접근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시절에 등장하는 것이 인간의 사상과 이념들이다.


01.3.2.3.8.8.2.1.1.2.3. 우상과 이념의 계절


인간이 처음 귀신들에게 속아 귀신들을 신으로 섬긴 것이 성경에 언급된 것은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의 시대였다. 그 이전엔 사람들이 귀신들을 신으로 섬긴 적이 없다. 바벨의 도시와 탑을 건설했던 시대만 해도 인간들은 우리가 창조주며 우리가 온 세상을 홍수로 심판했음을 기억했다. 그들에게 귀신들은 자신들을 타락시킨 타락한 천사임이 명확하게 인식이 되었다. 바벨의 시대를 살았던 노아의 후손은 벨렉이었다. 벨렉의 이름 자체가 분리, 또는 나뉨이라는 뜻이다. 바벨에서 언어가 혼잡케 되고 민족들이 나뉘게 되었기 때문이다. 벨렉의 아버지 에벨은 벨렉을 낳을 당시 바벨의 혼잡이 있어 그 때문에 첫아들의 이름을 벨렉이라 지었다. 언어의 혼잡은 앞에서 설명한 대로 저주지만 공멸을 방지하는 방화벽이기도 했다.

벨렉은 삼십 세에 르우를 낳았고, 르우를 낳은 후 이백구 년을 살면서 자녀를 낳았다. 르우는 삼십이 세에 스룩을 낳았고, 스룩을 낳은 후 이백칠 년을 살면서 자녀를 낳았다. 스룩은 삼십 세에 나홀을 낳았고, 나홀을 낳은 후 이백 년을 살면서 자녀를 낳았다. 나홀은 이십구 세에 데라를 낳았고, 데라를 낳은 후 백십구 년을 살면서 자녀를 낳았다. 데라는 칠십 년을 살고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다.(창세기 11:18-26 바른)

벨렉의 시대 이후에 언어가 갈라지면서 사람들은 각기 자신의 종족들로 나뉘게 되었다. 언어가 달라 서로 소통이 되지 않으면서 정보의 공유에도 문제가 생겼다. 창조주와 인간, 그리고 타락한 천사들에 대한 정보도 점점 잊혀져 갔다. 벨렉이 태어났을 때 바벨의 사건들이 있었고 그 후 벨렉이 르우를 낳기까지 삼십 년, 르우가 스룩을 낳기까지 삼십 년, 스룩이 나홀을 낳기까지 삼십 년, 그리고 나홀이 데라를 낳기까지 이십구 년이 걸렸다. 모두 119 년의 시간이 걸렸다. 그런데 이 시기가 되었을 때 인간들은 벌써 나에 대해 잊었다. 자신들이 누구인지조차 잊었다. 만물의 통치자였던 자신들의 모습(형상)을 잊었다. 자신들을 속였던 타락한 천사 사탄의 존재조차 잊었다. 홍수 후 그렇게 시간이 많이 흐른 것도 아니었다. 또 아담의 창조에서도 그렇게 많은 시간이 흐른 것도 아니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셈의 계보는 이렇다. 셈이 백세 때, 곧 홍수 후 이년에 아르박삿을 낳았고, 아르박삿을 낳은 후 오백 년을 살면서 자녀를 낳았다. 아르박삿은 삼십오 세에 셀라를 낳았고, 셀라를 낳은 후 사백삼 년을 살면서 자녀를 낳았다. 셀라는 삼십 세에 에벨을 낳았고 에벨을 낳은 후 사백삼 년을 살면서 자녀를 낳았다.(Genesis 11:10-15 바른)

이 기록에서 너희가 확인할 수 있듯이 노아 홍수 후 97 년 만에 바벨의 사건이 일어났다. 그리고 바벨의 사건이 일어난 지 119 년 만에 우상을 만들던 데라의 시대가 도래했다. 이 시대에는 아직 노아도 살아있었을 시기였다. 물론 바벨의 사건 때에 태어난 벨렉도 살아있었으며 벨렉의 아버지 에벨도 살아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도, 인간 자신도, 사탄도 잊을 수 있었을까? 그 이유는 인간들이 타락한 이후로 인간들은 우리를 마음에 두기 싫어했기 때문이다. 인간들은 우리에 대한 것에 반항심을 가졌고 그것을 이유로 바벨의 말도 안 되는 사건을 일으키기도 했다. 언어의 혼잡은 인간들의 망각에 가속도 역할을 했다. 노아가 말을 해주고 싶어도 수많은 언어 종족 중 히브리어를 쓰는 작은 무리에게 밖에 말이 전달되지 못했다. 노아 신앙의 직계 후손인 데라조차 우상을 만들어 팔았으니 다른 무리들은 오죽했겠는가? 인간들은 지극히 의도적으로 자신들의 최선을 다하여 우리를 기억에서 지우기 원했다. 마치 반항하는 질풍노도의 소년이 부모의 존재를 거부하며 집을 나가 부모의 고향을 거부하듯 인간은 우리와 심지어 자기 자신의 존재의 기억조차 거부했다.

타락한 천사들 중 사탄은 공중에서 말했다.

"이제 모두 내려가볼까?"

타락한 천사들의 무리들은 모두 함께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중 엘나탄이라는 타락 천사는 말했다.

"우리의 시절이 오는가? 드디어 신노릇을 해볼 수 있는 건가?"

옆에 있던 히필이라는 타락 천사는 신이 나서 덜어져 내렸고 인간들을 선택하기 시작했다.

"자 미혹시켜 보자구~ 인간들은 이제 자신들이 신의 아들이라는 엄청난 사실조차 망각했다네."

엘나탄은 벅찬 가슴으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그래 저들이 다시 자각하기 전에 빨리"

엘나탄은 광명으로 자신을 둘렀다. 그리고 빛나는 두 개의 날개를 가진 신의 형상으로 인간에게 접근했다. 자신을 지혜의 신으로 속이며 자신이 살아온 천년 이상의 지식을 뽐내었다. 그[^1]에게 속은 인간은 그를 '이슈타르(아스다롯)'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지혜를 가지며 전쟁의 신이기도 했고 풍요와 다산의 신으로도 자신을 속였다. 후에는 그 이름을 변형시키기도 하고 지역을 옮기기도 했다. 지역에 따라 성별도 달라졌다. 아슈타르는 남성신이었고 다른 지역에서는 여성신이었다. 벨릴리라 하여 바벨론의 신 벨의 아내로 칭해지기도 했고 가나안에서는 아스다롯이라 불리기도 했다. 동일한 형태로 이집트에서는 이시스라 불리기도 했다. 이런 것이 가능했던 것은 인간들이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신화를 편집한 탓도 있었다. 자신들이 원하는 신의 형태를 끌어들여 자신들의 신으로 삼고 자신들의 탐욕을 이루어줄 신으로 삼는 것이 인간들의 습관이었다. 인간들은 본능적으로 신적인 존재를 찾았지만 그들이 원하는 신은 자신들의 탐욕을 이루어줄 탐욕의 신이었다. 거기에 부합해서 인간들을 이용한 것이 귀신들이었다.

타락 천사 사탄과 그의 동료들은 인간들에게 여러 신의 이름으로 다가갔다. 특히 사탄은 자신을 각 지역의 주신으로 나타내 속이기 원했다. 우리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변태적 반역의 탐욕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거짓으로라도 우리의 자리를 탐하기 원했다. 그래서 거짓 신의 자리라도 가장 높은 자리를 가지려 노력했다. 그런데 사탄은 한낱 천사에 불과하다. 우리와 같이 여러 지역에서 동시에 역사할 수가 없다. 그래서 대역들을 내세우기도 했다. 그 대역이 되는 귀신들도 대역이 되는 것을 기뻐했다. 사탄이 그렇듯 이들 타락한 천사들도 우리(하나님)의 자리를 꾸며 연기하는 사탄의 대역이라도 되어 왕인척 연기를 해보는 수준으로도 기뻐했다. 이런 귀신들은 명확하게 알고 있다. 결코 자신들은 우리와 같이 될 수 없음을 안다. 그런데 이런 변태적인 탐욕을 가진 존재들은 이룰 수 없는 것에 더 큰 집착을 느낀다. 그래서 속여서 하는 연기로라도 우리(하나님)와 비슷해지기를 원한다. 이들의 광대짓을 누구든지 알게 된다면 그 우스꽝스러움과 변태적 집착으로 인해 비웃음을 짓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아담[^2])은 그들이 우상들에게 기도했을 때 기도응답이 되는 것을 경험했다. 그것이 자신들의 염원의 의지에 의해 지상에 실현된 기적임도 알지 못하고 우상들이 그것을 자신들에게 실현시킨 줄로만 알았다. 그래서 그 기도를 이루기 위해 더 열심히 기도를 했다. 그렇게 더 열심히 자신의 의지를 드리면 자신의 의지에 의해 더 많은 기적들이 지상에서 실현되었다. 이로 인해 더 많은 귀신들의 악이 땅에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또 그 응답을 받기 위해 귀신들이 원하는 대로 따랐다. 그래서 그런 귀신들의 율법을 만들어 지켰다. 귀신들은 성경과 비슷한 것을 만들어 우리(하나님)의 흉내를 내는 것도 기뻐했다. 그래서 성경과 비슷한 종교의 경전을 만들었다. 그것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의 삶의 세세한 부분들까지 침범해 들어갔다. 사탄과 엘나탄, 그리고 그의 동료들은 이런 일에도 열심을 내어 종교들 마다 자신들의 경전을 만들어갔다.

엘나탄은 자신이 속인 자들을 통해 신상을 만들었다. 자신은 영적인 존재들이므로 인간들에게 보이려면 자신들이 인간의 육안으로 보이도록 기적을 일으켜야 했다. 이는 에너지가 많이 소모가 된다. 귀신들은 아무 인간에게나 보이게 나타날 수도 없다. 자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자에게만 인간의 눈에 보이도록 나타날 수 있었다. 이런 과정들은 수고가 많이 필요했다. 그리고 에너지에 한계를 가진 자신의 힘으로는 24시간 인간에게 보이도록 인간에게 확신을 심어 자신을 유지하기도 힘들었다. 그래서 자신을 보이는 형태의 아바타 인형으로 만들었다. 그것이 신을 조각한 신상이었다. 인간들도 그 우상을 좋아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귀신들을 신이라고 부르며 섬기는 것보다, 눈에 보이는 우상을 보며 신이라 섬기는 것이 쉬웠다. 인간도 눈에 보이지 않는 귀신을 자신의 눈에 보이는 형태로 보려면 결국 자신의 영적, 육체적 능력이 많이 소진이 된다. 그러니 영매들이나 샤먼들이라도 계속 귀신과 접신을 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눈에 보이는 귀신들의 우상이다. 수많은 귀신들은 자신들을 나타내는 수많은 우상들을 만들었다. 귀신과 종교와 종교의 율법, 그리고 종교의 우상과 그것을 섬기는 인간들의 삶의 체계들, 이 모든 것은 종교의 메커니즘을 통해 가능하게 만들어진다.

그 종교의 메커니즘 속에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도 있었다. 그는 갈데아 우르에서 우상을 만들어 파는 장사꾼이었다. 그는 믿음의 조상의 아버지였고 처음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가나안으로 나선 자였으나 그 처음은 우상을 조각하고 빚어서 만들어 파는 우상 장수였다.

이렇게 우상의 계절이 다가왔다. 우리는 이 귀신들의 속임수를 꺾을 방어책을 일으켰다. 바로 우상장수의 아들 아브라함의 믿음이었다. 아브라함의 후손들은 우리를 만나 우리를 아는 자들이 많았다. 그런 자들이 세상에 나타나면 귀신들의 속임수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믿음의 사람들이 나타나면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들로 자신들의 임무를 수행했다. 그들은 믿음으로 귀신들의 흉궤를 드러내기도 하고 믿음으로 귀신들을 섬기는 우상숭배자들의 군대를 무찌르기도 했다. 믿음으로 귀신을 축사하고 그들에게 매여있는 자들을 해방시켰다. 우리를 만나 우리를 믿고 독사의 새끼에서 우리의 아들들로 변화된 자들을 통해 우리(하나님)는 전능한 능력을 땅에 쏟아부어졌다. 그런 시대에는 두려움이 없던 모든 자들도 우리(하나님)를 두려워했다. 그렇게 귀신들의 종교와 속임수는 무너져 내렸다.

그런 시대에는 귀신들도 자신들의 전략에 수정을 가했다. 신과 신의 형태의 격돌로는 귀신들은 결코 우리를 이길 수 없다. 자신들은 타락한 천사들인데 신인척 거짓 속임을 했느니 그 전쟁에서 귀신들이 승리할 확률은 0%다. 그래서 선택한 전략이 귀신들 자신들의 존재를 숨기는 것이었다. 존재를 숨기고 인간들에게 생각이나 감정의 형태로 드나들면서 인간들을 조종하기 시작했다.

작게는 한 개인을 탐욕과 죄악으로 물들게 했다. 그렇게 하여 귀신들의 생각을 인간이 자신의 소원인 것처럼 느끼게 하여 귀신들의 뜻을 한 인간을 통하여 이루어갔다.

크게는 그러한 귀신들의 생각과 마음을 사상의 체계로 만들어 많은 인간들을 포섭하고 가르쳤다. 잘 미혹될 수 있도록 아름다운 도덕률과 귀신의 속임과 탐욕을 적절하게 배합하는 레시피로 이념을 만들어 갔다. 그렇게 이념의 계절이 도래했다.

이념의 계절에는 생명을 가진 기독교에 대한 직접적인 전쟁 즉 신과 신의 이름으로의 격돌은 최대한 자제를 한다. 귀신들 자신의 존재를 숨기고 생각과 마음을 모아 이념의 형태로 인간들에게 다가간다. 그리고 생명을 가진 기독교와는 싸우지 않는다. 오히려 세상의 권력과 돈과 명예를 주어 그 능력을 잃어버리도록 변질시킨다.

아주 심각한 경우에는 인간들에게 전체적인 무신론을 심는다. 신과 신의 영역에서의 전쟁 자체를 완전히 회피한다. 그리고 무신론의 상태에서 사상과 이념에게 노출을 당하게 만들어 자신들만이 인간을 조종하려 한다. 우리(하나님)를 믿는 것, 자체가 어리석어 보이도록 모든 인간들을 무신론자로 만든 세상을 기획하고 세상에 그 무신론을 설파한 것도 영적인 존재인 귀신들이다. 처음에는 미신을 타파하고 종교 자체를 미신으로 치부하고 귀신이나 신적인 존재나 그들에 의한 어떤 기도의 응답들도 모두 미신으로 치부해 버린다. 그리고 가만히 인간의 생각에 영적인 존재인 자신들이 생각과 마음의 형태로 드나들며 사상과 이념을 형성해 인간들을 지배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인간들에게 점이나 복술 또는 타로점과 운세로 다시 자신들의 존재는 암암리에 인정하도록 한다. 그러나 우리(하나님)를 믿는 신앙은 여전히 무지몽매한 미신으로 치부하게 만든다. 이것이 이념의 계절에 귀신들이 사용하는 전략이다.

그러나 귀신들도 귀신들에게 속한 세상의 육체들도 그 육체들이 만든 세상도 모두 두려워 떠는 때가 있다. 다음 성경 구절들은 너희에게 그때가 언제인지 가르쳐주고 있다.


Psalms 14:1-7 바른


1[지휘자를 따라 부르는 다윗의 시]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속에 말하기를 "하나님은 없다." 하는구나. 그들은 부패하고 행실이 역겨우며 선을 행하는 사람이 없다.


2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들을 살피시며, 명철하여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 있는가 보시니, 3모두 치우쳤으며 한결같이 타락하여 선을 행하는 사람이 없으니, 하나도 없구나. 4악을 행하는 모든 자는 무지하지 않으냐? 떡 먹듯이 내 백성을 먹으면서 여호와를 부르지 아니한다.

5그들이 거기서 두려워하고 두려워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의인의 세대에 계시기 때문이다.


6너희는 가난한 사람의 계획을 부끄럽게 하나, 오직 여호와께서는 그의 피난처가 되신다. 7참으로 이스라엘의 구원이 시온에서 나올 것이다. 여호와께서 그 백성의 포로 된 것을 돌이키실 때에, 야곱이 기뻐하고, 이스라엘이 즐거워할 것이다.


Psalms 53:1-6 바른


1[지휘자를 따라 마할랏에 맞춘 다윗의 마스길]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말하기를 "하나님이 없다." 한다. 그들은 부패하고, 역겨운 악을 행하니, 선을 행하는 사람이 없다. 2하나님께서 지각 있는 사람과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 있는가 보려고 하늘에서 사람들을 내려다보시니, 3그들 모두가 빗나가 함께 부패했으며, 선을 행하는 사람이 없으니, 하나도 없다. 4악을 행하는 사람이 어찌하여 깨닫지 못하느냐? 그들이 떡 먹듯이 내 백성을 먹으면서 하나님을 부르지 아니하는구나.


5두려워할 것이 없는 곳에서도 그들이 두려워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너를 향하여 진을 친 자의 뼈를 흩으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거절하셨으므로 네가 그들에게 수치를 주었다. 6시온에서 이스라엘의 구원자를 주실 자가 누구인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포로 된 것에서 돌이키실 때 야곱이 기뻐하고, 이스라엘이 즐거워할 것이다.



Isaiah 59:1-21 바른


1보아라,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시는 것도 아니며, 그분의 귀가 어두워서 듣지 못하시는 것도 아니다. 2오직 너희의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았고, 너희의 죄가 그분의 얼굴을 가려 너희에게서 그분이 듣지 않으시는 것이니, 3이는 너희 손이 피로, 너희 손가락이 죄악으로 더러워졌으며, 너희 입술은 거짓을 말하고 너희 혀는 악독을 내뱉기 때문이다. 4정의에 따라 소송하는 자가 없고 진실하게 판결하는 자도 없으며, 그들은 헛된 것을 의지하고 거짓을 말하며, 악을 잉태하고 죄악을 낳으며 5독사의 알들을 품고 거미줄을 치니, 그 알을 먹는 자가 죽을 것이며 그 알이 밟혀터지면 독사가 나올 것이다. 6그들의 짠 것으로는 옷을 만들 수 없고 그들이 만든 것으로는 자기를 덮을 수 없다. 그들의 행위는 죄악의 행위이고, 그들의 손에는 포악한 행동이 있다. 7그들의 발은 악을 위해 달려가고 무죄한 피를 흘리기에 신속하며, 그들의 생각은 악한 생각이고 황폐와 파멸이 그들의 길에 있다. 8그들은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고 그들이 가는 길에는 공의가 없으며, 그들 스스로 길을 굽게 만들므로 그 길로 걷는 모든 사람은 평강을 알지 못한다. 9그러므로 공의가 우리에게서 멀고, 의가 우리에게 미치지 못하니, 우리가 빛을 바라나 어둠뿐이며, 광명을 바라나 어둠 속을 걸을 뿐이다. 10우리는 맹인같이 담을 더듬고, 눈 없는 자처럼 더듬으며, 우리가 대낮에도 황혼 때같이 넘어지며, 원기왕성한 사람들 가운데 있으나 죽은 사람과 같다. 11우리가 모두 곰처럼 부르짖고, 비둘기처럼 슬피 울며, 정의를 바라나 정의가 없고, 구원을 바라나 우리에게서 구원이 멀다. 12우리의 반역이 주님 앞에 심히 많고 우리의 죄가 우리를 고발하니, 이는 우리의 반역이 우리와 함께 있으며 우리가 우리의 죄악을 알기 때문이다. 13우리가 반역하여 여호와를 부인하고, 우리 하나님을 따르는 데서 돌이켜 압제와 반역을 말하며, 거짓말을 마음에 잉태하고 낳으니, 14공의가 뒤로 밀려나고 정의가 멀리 섰으니, 진실이 광장에 넘어졌고 정직이 들어서지 못하기 때문이다. 15진실이 없어지니, 악에서 떠난 자가 약탈을 당한다. 여호와께서 보시고 공의가 없으므로 기뻐하지 아니하셨다.

16그분께서 사람이 없는 것을 보시고, 중재자가 없는 것에 놀라셔서 자기 팔로 스스로 구원하시며, 자신의 의를 스스로 의지하시고, 17의를 갑옷으로 입으시며, 구원의 투구를 머리에 쓰시고, 복수의 옷을 속옷으로 입으시며, 열심을 겉옷으로 두르셨다. 18그들의 행위대로 그분께서 갚으실 것이니, 그분의 적들에게는 분노하시고 원수들에게는 보복하시며 섬들에게도 보복으로 갚으실 것이다. 19그들이 서쪽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두려워하며, 해 뜨는 쪽에서 그분의 영광을 두려워할 것이니, 이는 여호와의 바람으로 급히 흐르는 강물처럼 여호와께서 오실 것이기 때문이다. 20"구속자가 시온에 오시며, 야곱 자손 중에 반역으로부터 돌이킨 자들에게 오실 것이다." 여호와의 말씀이다. 21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이것이 내가 그들과 맺은 나의 언약이니, 곧 네 위에 있는 나의 영과 네 입에 내가 둔 나의 말이 이제부터 영원히 네 입과 네 자손의 입과 또 그 자손의 입에서 떠나지 아니할 것이다." 하셨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



01.3.2.3.8.8.2.1.1.2.4. 속임의 길=영감


영적인 실체(육체가 없는 생각과 마음)가 드나들면서 생각을 불어넣는데 그것을 사람들은 영감이라 부른다. 글이나 음악, 예술작품들의 탄생에는 보통 이런 식으로 세상에 구현되어 나타나는 메커니즘이 있다. 문명은 인간의 생각과 그 생각에 영향을 주는 세상의 풍조로 구성이 되는데 그 풍조는 주로 영들이 만든다. 보이지 않는 영들이 인간들에게 생각과 마음을 부어 인간들이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게 한다. 태초에는 우리가 영감을 주는 역할을 했고 인간이 타락한 이후로는 악한 귀신들이 인간들에게 영감을 주는 역할을 했다. 악한 귀신들은 처음부터 도적질 하는 자였다. 아담의 권세를 도적질 하고 심지어 우리(하나님)의 자리까지도 탐하였다. 그러나 사실 우리의 자리는 귀신들이 도적질 하려는 시도조차 할 수 없는 자리다. 피조물과 조물주는 완전히 다른 존재다. 스스로 생겨날 수도 없는 피조물이 자신을 만든 창조의 능력을 가진 신과 싸움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이다. 아니 싸움이 아니라 그 신의 명령을 거역한다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단지 숨어서 빌빌대며 인간들의 생각에 자신들의 욕심을 불어넣는 정도를 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런데 어리석은 인간들이 그들이 불어넣는 욕심의 영감에 자신들의 권세를 가지고 놀아날 뿐이다. 사실 귀신들은 인간들보다 권세가 없는 종이호랑이일 뿐이다. 이 귀신들은 도적들이므로 귀신들의 생각을 부음 받은 세상은 약탈과 도적질의 메커니즘으로 움직인다. 그래서 항상 세상은 도적질과 갈취가 끊임없이 일어난다. 다양한 사상과 정치체계가 있어도 그 속에서 행해지는 모든 것은 착취일 뿐이다. 왜냐하면 그 근본 되는 영감이 도적놈의 영감이기 때문이다. 도적놈의 영감이 주어지는 형태가 때로는 사상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종교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일반적인 사람들에게는 탐욕으로 주어진다. 귀신들은 고대에는 주로 종교의 형태로 인간들에게 다가갔다. 그 이유는 악한 귀신들은 나와 같이 신으로 추앙받고 싶어 하는 욕심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신들도 신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인간들에게 접근하여 나와 같이 숭배를 받으려 했다. 이처럼 종교는 그냥 종이호랑이 귀신들의 조악하고 조잡한 모조품이다. 그리고 사상이나 이념의 대부분은 귀신들이 인간들에게 불어넣은 조잡한 속임수일 뿐이다.


01.3.2.3.8.8.2.1.1.2.5. 속임의 목적


그 종교를 이용하는 인간이 있고 그 종교에 깃드는 귀신들이 있다. 종교와 귀신들이 사람들을 조종하고 지배하는 방식은 속임이다. 원래 모든 만물을 만들고 모든 것을 운행하는 것은 나의 능력에서 나온다. 그런데 귀신들과 종교는 그것을 자신들이 한다고 속인다. 그 목적은 인간을 착취하고 인간을 조종하여 인간의 권한을 이용해 세상을 자신들이 원하는 지옥도로 만드는 것이다. 권력과 힘과 지식을 가진 자들이 약자들을 착취하여 그 생명과 정신의 밑 바닥까지 말라버리게 만든다. 서로서로 죽이고 죽이는 살육전을 육신과 정신을 통해 끝없이 하게 한다. 그것이 무한경쟁이라는 이름으로 미화되곤 하는데 그 자체가 지옥도에서나 쓰는 용어인 것을 인간들은 잊은 듯하다. 그리고 귀신들은 그 지경에 있는 인간들을 보아야 하는 우리(하나님, 엘로힘)의 심령에 고통을 주기 원한다. 귀신들은 우리가 인간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안다. 그래서 인간들이 고통당하는 모습을 보아야 하는 우리의 심정이 어떠할지 잘 안다. 귀신들은 수천 년 동안 우리가 인간에게 어떻게 대하는지 보았기에 우리의 마음을 잘 안다. 그런데 이놈 귀신들은 우리의 마음의 고통을 즐긴다. 인간의 고통도 즐긴다.


01.3.2.3.8.8.2.1.1.2.6. 심판을 연기하는 이유


이런 싸이코패스적 도적놈들을 바로 심판하고 싶지만 귀신들이 내려가 있는 세상과 그 세상에서 귀신에게 속한 사람들도 함께 심판을 받게 되기에 나는 끝까지 참고 인내한다. 이놈 귀신들은 나의 자식들인 인간을 인질로 잡고 있다. 인간들의 악함을 생각한다면 인간들도 심판의 불길로 던져버리면 되지만 너희 인간은 나의 자식들이다. 나는 자식인 너희가 어디에 있든지 너희를 포기하지 않는다. 너희가 악한 귀신놈들에게 잡혀있고 심지어 자발적으로 그놈들의 일에 협조까지 하고 있지만 나는 너희를 포기하지 않는다. 너희가 취해있는 마약 성분을 이기고 너희가 정신을 차릴 수 있을 때까지 지속적으로 너희를 돕는다. 마약에 취해 있는 너에게라도 인격적인 설득을 계속한다. 나는 네가 살기를 원한다.


01.3.2.3.8.9. 이집트에서의 속임


나일강의 풍요를 통해서도 귀신들은 사람을 속인다.

나일강의 풍요는 내가 시기를 따라 강의 상류에 풍부한 비를 주기 때문에 그 물들이 한꺼번에 모여 생겨난 것이다. 그리고 그 물들이 하류에서 범람을 하는데 나는 그 하류를 모래사막으로 만들었다. 이는 범람의 범위를 조절하기 위함이었다. 너희는 홍수의 위험을 알 것이다. 홍수가 나면 강의 범람으로 모든 것이 물에 잠기고 때로는 물의 거센 힘에 모든 것이 쓸려 내려가버린다. 그래서 다른 모든 문명들에서 홍수는 재난이며 어찌 되었던 막아내어야 하는 재앙이다. 그래서 강의 양쪽에 재방을 쌓아서 홍수를 막아내는 것이 치수의 기본이요, 그 치수가 되어야 백성들이 평안히 농사짓고 살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이집트의 나일강 하류를 제외하고 다른 지역들에서는 홍수는 치명적인 재난이지 결코 축복이 아니다. 그런데 나는 자연적 토목공학을 사용하여 나일을 홍수로 축복을 받는 땅이 되게 했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한 것은 그 땅이 사막이었기 때문이다.  비가 와서 물길이 생기면 원래 사막의 모래는 너무 가볍기 때문에 물에 쉽게 떠내려 간다. 그 모레들은 바다로 유입이 된다. 그래서 나일강의 하구와 맞닿은 해변은 모레해변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모레가 점점 밀려 내려가 강의 하구의 땅이 조금씩 확장이 되어간다. 나일강하구의 땅은 그 모양이 부채꼴인데 강이 실어 나른 모레가 펴져나가고 확장이 되어 그런 모양이 되었다. 강의 끝에서 모레를 바다 쪽으로 밀어내면 그 퍼지는 모양이 부채꼴이다. 그곳은 짠물이 들어오고 나가는 곳으로 낮은 수심의 긴 대륙붕을 형성하게 된다. 그 대륙붕으로 인해 강의 유속은 느려진다. 바다로 강물이 퍼져나갈 때 수심이 얕으면 물의 유속이 느려질 수밖에 없다. 유속이 느려지므로 상류에서 떠내려온 영양분들이 강바닥에 쌓인다. 느려진 유속으로 인해 나일강은 유량이 늘어나면 더 쉽게 범람한다. 하구에서 물을 효율적으로 배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범람한 강의 줄기는 물이 줄어들면서 물에 의해 파여진 강줄기들이 수도 없이 형성이 된다. 그러면 평소에 이 강줄기들은 나일강 하구 부채꼴 안에 골고루 물을 공급하는 관계시설의 역할을 한다. 또 강이 범람할 때도 강의 지류가 퍼진 넓은 지역에 골고루 퇴적물들을 공급해 준다. 이 모든 것은 내가 자연의 법칙을 통해 오래전부터 계획하여 만든 것이다.

강이 흘러간 곳은 모레가 파여 주변지역보다 낮아진다. 홍수의 범위가 크기에 쓸려나가는 모레의 양도 많고 쓸려나가 다른 곳보다 낮아지는 지역도 넓다. 만약 재방이 없다면 큰 홍수가 날 때에는 나일강 하구 전체가 물에 잠겨 쓸려 내려갈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나일강 하구에 천역적인 재방역할을 할 수 있는 단단한 지형을 땅속에 두었다. 나일강이 범람하여 모레를 쓸어가더라도 그 범위가 더 넓어지지 못하도록 천연 재방을 쌓아두었다. 그래서 나일은 범람하면 일정한 넓이로 범람하고 그 범람한 지역에는 상류의 기름진 옥토가 퇴적되게 했다. 그래서 나일강 하구의 부채꼴 모양의 지역은 항상 풍성한 결실을 거둘 수 있는 천연의 곡창지대가 되었다.

그런데 귀신들과 종교는 그것이 자신들의 것이라 속여 자신들이 그 모든 것의 주인이라 인간들을 속인다. 원래 자신들의 것은 없기 때문에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속임수뿐인 것이다. 그런 속임수를 행하던 세상의 신들이 많이 있다. 지금은 그들 중 모세의 시대 이집트에 있었던 귀신들과 그들을 따르던 종교메커니즘과 세상, 그리고 그 안에 있었던 백성들의 구습 즉, 악한 죄성에 대해 다룰 것이다. 그리고 내가 그것을 어떻게 처리하여 내 백성들을 그 악과 멸망에서 구하는지 보여줄 것이다. 


01.3.2.3.8.10. 이집트에서 건져 가나안으로 구원


여기 이집트에서도 여전히 사탄(귀신)과 세상(타락한 인간과 그들이 다르스는 타락한 피조계)과 육신(인간)은 우리(하나님)와 우리의 백성들을 대적한다. 그래서 나는 사탄과 세상과 육신을 멸하고 내 백성들을 구원할 것이다. 그 구원의 길을 보일 것이다.


사탄을 멸함

나는 모세의 시대에 사탄과 그 귀신들의 일을 멸했다. 나는 이집트의 귀신들을 멸하는 12 가지 재앙으로 이집트에 임했다. 그 결과 이집트의 귀신들은 멸함을 받았다.


세상을 멸함

나는 모세의 시대의 세상과 세상의 인간 왕 바로를 홍해 바다에 수장시켜 멸했다. 그렇게 하여 더 이상 내 백성들을 세상이 괴롭힐 수 없게 하였다. 동시에 내 백성들은 육체의 죽음을 보지 않고도 육체가 죽어야만 통과할 수 있는 세상에서의 죽음을 통과하게 했다. 그것이 홍해 사건이다.


육체를 멸함

나는 광야의 40년을 통해 세상과 사탄의 탐욕에 젖어있던 내 백성 안의 육체를 멸했다. 내 백성을 자신들의 악함과 죄악으로부터 구원했다. 그 악함과 죄악에 물든 세상에 속한 육체를 멸하여 내 백성이 거듭나 나의 나라(가나안)에 들어올 수 있는 구원의 길을 제시했다. 그들은 나에게로 와야 내가 보호를 받을 수 있다. 그들이 나에게로 오지 않는다면 여전히 그들은 도적질 하고 빼앗고 멸망시키는 자, 사탄에게 속하여 고통을 거듭하게 된다.

나는 먼저 시내산에서 내 백성이 되려는 자들에게 내 백성의 기준을 보였다. 그 기준을 만족해야 내 백성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바로 나의 나라, 나의 통치에 들어올 수 있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기준이 10 계명이었다. 그런데 이집트의 탐욕과 죄악에 물들어 살던 내 백성들은 자신들의 탐욕을 버릴 마음이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광야에서 죽었다. 그들의 탐욕과 죄악도 죽었다. 만약 그들이 나를 따르기 원했다면 나는 그들이 자신의 죄악과 탐욕을 이기는 구원의 능력을 값없이 베풀었을 것이다. 나는 나 자신을 십자가에 달아 인간을 구원할 합법적인 길을 얻은 존재다. 그런 내가 무엇인들 구원받기 원하는 인간을 위해 아까워 내놓지 않을 수 있겠는가?

너희는 모세 시대의 이스라엘과 같이 가데스 바네아에서 불신앙을 보이고 광야에서 모두 엎드러져 죽을 자들이 아니다. 공멸의 세상 것을 사랑하여 자신을 죽음으로 내모는 어리석은 불나방들이 아니다. 깨닫고 돌이켜 값없이 주는 나의 생명의 물을 마시고 너희 안에 솟아나는 거룩한 성령의 능력으로 돌이켜 회개하여 살 자들이다. 나의 이름, 예수는 구원이다.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다.

모세 시대의 광야의 죽음은 회개치 않은 자들이 자신의 육체의 탐욕을 가지고는 나의 나라에 들어올 수 없음을 보인 것이다. 그들의 죽음과 결국은 나의 마음의 고통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기록함은 너희에게 더 나은 길을 선물하기 위해서다. 너희는 그들을 교훈 삼아 살기 바란다.

나는 이제 모세의 시대에 일어난 사건들을 통해 너희에게 나의 구원을 설명할 것이다. 나는 너희를 구원하기 원하며 원수에게서 건져, 내가 너희의 안전한 보호자가 되기를 자청한다. 나의 완전한 품으로 와 안식과 평안을 누리기 바란다. 죽음의 길에서 돌이켜 살아주기를 바란다. 세상과 사탄과 육신의 마약에서 깨어나 다시 한번 일어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기 바란다. 봄의 아름다운 복사꽃처럼 너에게 꽃이 피어나기 바란다.

깨닫지 못하는 너희로 인해 그리고 너희의 지옥과 같은 고통으로 인해 나는, 나의 마음은 오늘도 지옥이다. 어리석은 아이들아, 지혜자가 되어라. 지혜를 얻어 깨닫고 살아주기 바란다. 불치병에 걸린 네가 살 수 있는 길이 있는데 그것에 대해 생명을 걸고 알아보려 하지 않는 이유를 나는 알 수가 없구나. 무반응과 무감각으로 빠져버린 마약의 부작용의 존재들아! 그래도 감긴 눈꺼풀을 떠 보고 다시 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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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천사와 같은 영적인 존재들은 성별을 언급할 필요가 없다. 성별은 육체를 가진 존재들의 성별을 나눌 때 사용하는 것이다. 육체를 가진 존재는 자식을 낳아야 하므로 성별이 존재한다. 성경에는 굳이 언급하여야 하면 남성으로 언급하였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여기서도 영적 존재인 타락한 천사에 대해 그라는 표현을 했다.

[^2]: 히브리어 아담이라는 단어는 처음 창조된 인류의 조상의 이름 즉 아담을 뜻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동시에 일반적인 사람을 나타내는 단어다. 또한 인류전체를 지칭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히브리어에서도 이런 용법으로 쓰인 단어는 아담이 거의 유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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