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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스겔 Jul 20. 2024

3.9. 복음과 대적-2


3.9.2. 고린도에서

3.9.2.1. 마케도니아에서 그리스로


바울이 마케도니아 지역을 거쳐 현재의 그리스 지역인 아가이아(Achaia) 속주로 들어섰다. 바울이 마케도니아 지역에서 지나온 도시들은 네아폴리스(네압볼리)와 필리피(빌립보), 암피폴리스(암비볼리), 아폴로니아(아볼로니아), 데살로니카, 베뢰아였다.[1] 바울은 마케도니아 지역에서도 박해를 받았으며 마지막 베뢰아에서도 박해 중에 (디움, Dium 항구에서) 배를 타고 현재 그리스에 속한 지역인 아가이아 속주로 갔다. 이렇게 배를 타고 항해해서 아테네로 들어간 이유가 있다. 바울과 실라의 몸 상태가 육로 여행을 감당할 수 없는 상태였다. 빌립보 감옥에 투옥되기 전 채찍에 맞은 상처들이 아물지를 않았다. 현재의 채찍이 아니다 당시의 채찍으로 살점이 파이고 살이 뜯겨져 나간 상황임을 기억해야 한다. 그 상처가 아문 것도 아니고 겨우 피 떡이 굳어져 상처의 지혈을 간신히 하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감옥에서 나왔을 때 간수가 음식을 먼저 준 것이 아니라 그들의 몸의 피를 닦았다는 것을 보면 이들의 상태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이 간다. 감옥에서 나오자마자 도보로 현대의 군장보다 무거운 짐을 메고 행군을 통해 전도여행을 시도한다면 그 첫날부터 상처들이 터져 출혈로 인해 둘은 죽음에 이르렀을 것이다. 그래서 상처를 치료하면서 움직이지 않고 이동할 수 있는 항해를 선택하여 그리스의 아테네로 들어갔다.


3.9.2.2. 아테네


아가이아 속주에서 처음 방문한 곳은 아테네(아덴)이었다. 아테네에서의 바울의 설교가 사도행전에 기록되어 있다. 아테네에서의 바울의 설교는 그가 헬라 철학과 헬라 종교에 대해서도 박식한 자임을 증명해 주며 그가 헬라 수사학에 대해서도 정통했음을 알 수 있다. 그가 로마의 직할도시였던 다소 출신의 배경을 가지고 있어 라틴어와 헬라어 그리고 히브리어에 능통했다. 선교할 때 유대인의 회당에서 히브리어로 복음을 전하고 헬라어로 그리스인(헬라인)들에게도 복음을 전했으며 로마의 직할도시들에서도 라틴어로 복음을 전했음을 알 수 있다. 나중에 로마로 압송되었을 때 황제 앞에서 그가 복음을 전한 언어는 라틴어였다. 바울은 예수님을 박해하고 교회를 잔멸 할 때까지도 알지 못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중동과 소아시아, 유럽 선교에 쓰시려고 미리 준비하셨다. 우리도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방황할 수 있지만 사도 바울의 탈선과는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도 하나님은 모든 것을 경영하시어 자신의 길로 바울을 부르셨다. 그리고 그를 세계선교의 첨병이며 기수로 쓰셨다. 그를 통해 복음은 확장되었으며 예수님의 피는 그가 가는 행로를 혈관으로 하여 모든 열방으로 나아갔다. 그러니 우리가 누군가를 현재의 모습으로 판단하는 것은 옳지 않을 수도 있다. 그것은 그의 육만을 보고 판단한 것이다. 그가 하나님(영) 안에서 어떠한 자가 될 것인지는 오직 하나님만이 아시는 것이다.


3.9.2.3. 고린도로


아테네에 복음을 전하고 바울은 고린도로 향했다. 채찍에 맞은 몸이 조금 회복되었지만 그 몸으로 육로로 고린도에서 아테네로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일행들의 짐은 생필품과 자기 개인적인 짐과 특히 양식이 그 무게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초대 교회의 성도들이 대부분 가난한 자들로 바울 일행의 선교에 내어놓을 수 있는 것이 자신들의 양식의 일부를 나누어주는 것이었다. 사실 자신들이 먹을 것도 대부분 부족했다. 그런데 자신들이 굶을 수 있어도 자신들의 양식 일부를 나누어주었다. 양식도 없었던 자들에게 사용하기 편한 은전이나 금화가 있을 리 만무했다. 그래서 그들의 선교헌금이라는 것이 감자나 밀 등 식료품이었다. 선교헌금을 돈으로 내면 좋지만 그들의 형편이 그렇지를 못했다. 그래서 바울 일행은 굶지 않기 위해서는 성도들이 주는 양식을 직접 배낭에 넣어지고 다녀야 했다. 무겁지만 양식이 있으면 다행이었다. 그나마 그 양식이 떨어지면 굶어야 했다. 그러니 아무리 무거워도 그 짐을 메고 다녀야 했다. 그래서 바울이 자신의 선교 여행을 묘사하면서 추위와 강도의 위험과 굶주림에 대해 많이 언급했다. 아직도 상처에 딱지가 남은 몸으로 아테네에서 걸어서 고린도로 갔을 바울 일행들의 모습을 생각하면 현대 군인들의 행군은 가벼운 산보 정도라 할 수 있다. 보통 출발지에서 매는 짐의 양은 자신이 맬 수 있는 최대량이었고 하루 이틀이 지나 식료품을 먹고 나면 무게가 줄어들었다. 무게가 줄어들면 한편으로는 가벼워 좋았지만 그 무게가 줄어들면 자신들이 굶을 날이 가까이 오는 것이었다. 아테네에서 서쪽으로 87km 떨어진 고린도로 가는 길은 실제로는 더 먼 거리였다. 지도상의 길보다 실제 도로는 훨씬 굴곡이 많았다. 좌우와 상하로 굴곡이 있으니 실제로는 삼분의 일 정도의 거리가 추가되었다. 특히 오르막이 심할 때의 힘겨움은 평지 길을 걷는 것에 비해 시간과 체력의 소비가 너무 심했다. 그래서 여러 상황을 고려하면 바울의 여행은 최소 10~15일 이상이 걸렸을 것으로 예상된다. 밤에는 노숙을 하며 자신의 특기를 발휘해 텐트를 쳤다. 현대처럼 안락한 캠핑이 아닌 비박 형태였다. 침랑도 따로 없었으며 자신들이 입고 있는 유대인의 겉옷이 침랑을 대신했다. 그렇게 노숙과 굶기를 거듭하며 바울 일행은 고린도에 도착했다. 그 거지 같은 행렬의 목적은 오직 하나였다. 바울 자신이 죽인 예수님을 전하는 것이고 자신이 죽인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의 사명을 대신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 바로 앞에서 돌에 맞아 죽은 스데반의 핏값을 기억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성령님께서 심령에 함께 하셔서 끊임없이 몰아붙이셨다. 결코 거부할 수 없는 하나님의 마음이 부어져 영혼을 향한 열정이 타올랐다. 죄인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다, 그 따르던 귀신들과 함께 지옥으로 떨어질 영혼들이 바로 자신의 옛 모습임을 바울의 심령은 알고 있었다. 그냥 두면 자신과 같이 자기 열심 속에 살다가 지옥의 불길에 떨어져 죽어질 불나방임을 알았다. 그래서 그냥 둘 수가 없었다. 그들을 볼 때마다 자신의 과거가 떠오르고 과거의 자신과 같이 불행과 초조함 속에 우울의 밤을 보낼 그들의 심령이 상기가 되었다. 그래서 몸이 부서질 것 같아도 움직였다. 그리고 그 고통의 발걸음을 내딛으며 한편으로는 마음이 편해졌다. 예수님을 죽인 죄인, 성도들을 잔멸 한 악인, 그리고 스데반을 죽인 살인자의 죗값을 조금이나마 갚는 것 같았다. 그렇게 바울 일행은 고린도에 다다랐다.


3.9.2.4. 고린도의 위치


그들이 도착한 고린도는 아테네와 마찬가지로 해안에 위치한 도시였다. 아테네는 조금 더 내륙에 위치해 항구를 향해 도시가 뻗어나갔다면 고린도는 항구 자체였다. 물론 도시자체를 항구라고 하기에는 고린도의 규모가 크다. 에게해와 이오니아 해의 양쪽에 각각 항구를 끼고 있는 고린도는 이오니아 해(Ionian sea)와 에게해를 잇는 중요한 교역항이었다. 고린도를 통하지 않으면 현대의 그리스에 해당하는 땅을 돌아서 지중해의 먼 길을 돌아가야 했다. 그런데 고린도만(The gulf of Corinth)을 통해 비교적 안정된 해로를 따라 육지인 고린도(Corinth)만 통과하면 바로 에게해로 들어서게 된다. 먼 거리와, 암초와 풍랑 등 그리스 외해 항해의 여러 위험을 피할 수 있는 안전 면에서 비교할 수 없는 장점을 가진 항로였다. 기원전 7세기부터 운하를 건설하려 하였으나 여러 이유로 건설되지 못했다. 현대에는 19세기말에 건설된 고린도 운하가 있어 배들이 이 운하를 통해 지름길로 두 바다 사이를 이동한다. 고대에는 운하는 없었으나 기록에 의하면 고린도에서 짐과 배를 들어서 이동하여 이오니아해와 에게해 사이를 이동했었다. 배가 조금 더 크면 들어서 배를 옮길 수 없으니 짧은 고린도의 육로를 통해 화물만을 이동하여 반대편 바다의 다른 배에 선적하여 이동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디올꼬스’(Diolkos)라는 포장된 돌길이 이 이동에 사용되었다. 그 시대에 수레와 지렛대를 이용하여 이러한 이동을 하였다니 놀라울 뿐이다. 

이러한 지리적 위치로 인해 고린도는 그리스의 서쪽 이탈리아(로마)와 그리스의 동쪽 소아시아를 잇는 중요한 교역 도시였다. 그리스 외해의 암초지대를 피하는 지름길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

또한 고린도는 펠로폰네소스 반도와 그리스 본토를 잇는 곳에 위치해 있었다. 육로로도 해로로도 이러한 연결지점에 위치해 교역의 중심이 되었다.


3.9.2.5. 텐트 메이커(Tent-maker)


바울이 고린도에 도착했을 때 바울은 자신과 같은 직업을 가진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를 만났다. 바울의 여행에는 항상 굶주림이 따라다녔다. 그래서 직업을 가져야 했다. 그런데 바울의 선교는 한 교회에 소속된 현대 목회자들이 하는 방식이 아니었다. 바울은 순회전도자였다. 또한 순회목회자였다. 가는 지역마다 복음을 전하고 그 지역의 평신도가 그 교회의 지도자가 되도록 세웠다. 그것도 교회 지도자를 바울이 임명하기보다 성령님께서 그 에클레시아 안에서 역사하시어 세우셨다. 바울은 교회의 조직을 만들기도 전에 핍박으로 쫓겨나는 경우들이 많았다. 핍박 후에 바울은 다시 복음을 전하기 위해 떠났다. 그리고 그 지역들을 다시 돌아보기도 하고 서신을 보내 권면하기도 했다. 바울은 한 곳에 정착할 수 없었다. 늘 정해지지 않은 지역들을 떠돌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동하며 가질 수 있는 직업을 선택했다. 그것이 바로 텐트를 만들고 설치하는 일이었다. 텐트를 만드는 것은 먼저 도구가 상당히 간편한 편이었다. 톱과 망치, 가위, 칼 정도만 있으면 가능한 일이다. 안되면 뒤가 뭉퉁한 도끼 하나만 있어도 망치와 톱과 가위, 칼을 대신할 수 있었다. 그것도 없으면 오직 작은 칼 하나만 있어도 가능했다. 조리를 해야 했기에 그 정도 칼은 항상 가지고 다녔다. 그리고 재료도 현지에서 조달이 가능했다. 필요한 천과 뼈대가 되는 나무와 줄이나 못만 조금 있으면 만들 수 있었다. 또 바울이 직업으로 삼지 않더라도 가장 많이 하는 일이 텐트 치는 일이었다. 자신의 조상들도 유목민으로 그런 삶을 살았다. 그리고 자신은 노숙을 밥 먹듯 하니 하루에 한 번 꼴로 텐트를 쳐야 했다. 그러니 텐트에 관한 한 전문가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자기 전문 기술이 되었다. 그러니 직업으로 텐트 만드는 자가 되는 것이 가장 쉬웠다. 또 이동이 잦은 바울의 특수상황을 고려해 체류 기간 안에 작업을 마칠 수 있었다.  재료만 있으면 보통 1~2 시간에서 반나절이면 작업이 가능했다. 이로 인해 현대의 자비량 선교사를 텐트 메이커(Tent-maker)라 부른다. 바로 텐트 만드는 사람을 의미한다. 이는 바울의 사역을 모티브로 하여 나온 단어다. 1세기 교회의 선교는 현대와는 상황이 많이 다름을 알 수 있다. 교회에서 파송하였음에도 워낙 교회들이 가난하다 보니 선교비조차 충분히 보내지 못해 스스로 자비량 선교사와 같이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이 모든 어려움은 바울 속에서 타오르던 하나님의 불꽃을 꺼트릴 수 없었다.

사도행전 18장에 등장하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유대인이었는데 복음을 받아들인 그리스도인들로 바울과 동행하며 선교의 길에 동참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원래 터키 중 북부와 터키 동부와 코카서스 산맥과 흑해에 걸쳐있던 폰투스 출신이었다. 이들은 로마가 있던 이탈리아에 거주하고 있었는데 유대인들을 박해하는 글라디우스 황제의 칙령으로 인해 이탈리아를 떠나 현재의 그리스지역의 일부인 아가이아에 와있었다. 글라디우스 황제의 핍박은 그리스도님으로 인해 유대인들 사이에서 믿는 자와 기존 유대인들 사이의 다툼으로 인한 소란 때문일 가능성이 있었다. 글라디우스 당시 사람인 수에토니우스의 말에 그 당시의 유대인들의 추방이 선동자 그리스도라는 인물로 인한 소란 때문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학자들 사이에서는 이 그리스도라는 사람이 예수님인지 아니면 다른 인물인지 결론이 나지 않았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바울을 만나기 전에 이미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은 자들이었다. 그러므로 로마에서 있었던 유대인끼리의 내분도 사실 예수 그리스도님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전승에 따르면 아굴라는 유대인 노예였으나 후에 로마에서 자유민이 되었다. 후에 로마의 시민권을 가진 브리스가 가문에 속한 유대인 여자 브리스가와 만나 결혼했다. 브리스가의 애칭이 브리스길라다. 노예와 귀족 가문 여인의 사랑은 아마 그리스도 예수님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수도 있다. 이처럼 예수님 안에 들어오면 모든 경계와 세상의 차별은 무너진다. 브리스가는 유대인의 추방령이 내려졌을 때에 아마 자신의 가문의 힘과 로마 시민권의 힘으로 추방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노예 출신의 유대인 남편 아굴라로 인해 그와 함께 추방길에 올라 고린도에 온 것으로 보인다. 사랑은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모든 역경을 이기게 한다. 이 귀족 여인의 사랑은 예수님 안에 들어온 노예도 남편으로 섬기고 존중하게 했고 또한 남편의 도피의 길에도 동행하여 고단한 삶을 견디게 했다. 그 사랑은 모든 담을 허무시는 그리스도님의 사랑으로부터 부어진 것이다. 이들은 도피의 길에 자신들의 삶을 지키기 위해 텐트를 치는 것을 생업으로 삼았다. 브리스가는 유력 가문 출신으로 돈과 연줄이 있었고 아굴라는 텐트를 만들고 설치하는 기술이 있었다. 둘은 서로의 돈과 기술을 합하여 사업을 했는데 그 지점이 로마와 고린도, 에베소에 있었을 것이라 한다. 로마, 고린도, 에베소의 위치상 고린도가 로마와 에베소를 잇는 교역로의 중심 도시였으므로 고린도를 선택하여 머물렀을 것으로 추정이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큰 시장이었던 로마에서 에베소보다는 절반정도 가깝다는 이유도 있었다. 브리스가와 아굴라가 로마를 떠났으나 로마에 있는 자신들의 사업체를 버린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사업체를 관리하는 대리인이 지점장이 되었고 그로부터 보고를 받고 그에 대한 피드백을 주기에는 고린도가 훨씬 유리했을 것이다. 로마에서 추방된 유대인들이던 브리스가와 아굴라가 고린도에 있었던 것이 이와 같은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이들은 후에 바울의 서신서들에서 그 이름이 발견되는데 로마와 에베소와 고린도다. 이들은 가는 곳마다 자신들의 집을 교회의 모임 장소로 내놓았다. 신약 성경에 누구의 집에 있는 교회들 중에 이들의 집에 있는 교회들도 있었다는 것이다. 


3.9.2.6. 모든 담을 허무는 사랑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의 사랑은 모든 한계를 초월한 사랑이다. 한 사람은 귀족이고 한 사람은 노예 출신이다. 둘은 맺어질 수 없는 신분이다. 둘이 처음 만났을 때 아굴라가 여전히 노예였는지 해방된 후였는지는 알 수 없다. 해방된 노예라 하더라도 평민과는 겨우 사랑을 할 수 있으나 노예였던 과거의 신분은 꼬리표가 되어 따라다닌다. 하물며 평민이 아닌 귀족 여인이 노예 출신의 남편을 선택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혹 귀족 출신의 남성이 노예나 노예 출신의 여인을 노리개로 삼을 수도 있다. 또는 첩으로 삼을 수는 있다. 그러나 정실로는 받아들일 수 없다. 또한 그 자녀들도 아버지의 귀족가문 신분을 정상적으로 상속할 수가 없다. 그들은 서자, 서녀가 되어 적서의 차별을 받게 된다. 그런데 여인이 남편을 선택하는 것은 더 심각한 문제일 수 있다. 여인의 지위는 남편에 의해 결정이 된다. 자신이 아무리 귀족이라도 노예를 선택하여 아내가 된다면 자신의 신분을 노예로 전락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나라마다 조금씩 법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최소한 자녀들은 노예에서 벗어날 수 없다. 또한 해방된 노예라 하더라도 과거의 노예였던 낙인은 지워지지 않는다. 노예는 사람이 아닌 짐승이요 가축이요, 단지 재산일 뿐이다. 로마의 노예 주인들은 노예를 매질하고 악어에게 산채로 던지기도 했다. 사람이라고 인식이 되면 그렇게 할 수가 없을 것이다. 이런 노예의 아내가 되는 것은 자신도 노예 취급을 받는 것을 감수하겠다는 각오가 없으면 안 되는 것이다. 해방노예라 하더라도 이미 인간이 아닌 취급을 받던 짐승 출신이라는 낙인은 지워지지 않는다. 사회의 가장 낮은 평민에게 조차 무시받는 처지다. 노예에서는 벗어났지만 사회에서 가장 낮고 낮은 자리에서 천시받아야 하는 것은 벗어나기 어렵다. 억울한 일을 당해도 참아야 한다. 만약 대항했다가는 천한 노예 출신이 평민에게 모욕을 주었다 하여 매질을 당할 수도 있다. 로마도 철저한 신분제 사회였음을 우리는 염두에 두어야 한다. 중세의 유대인들이 받은 차별을 떠올려 보자. 유대인들의 아내들은 외간남자들에게 강간을 당하여도 항변 한번 하지 못했다. 재산을 약탈당해도 법이 보호해 주지 못했다. 목숨이라도 붙어살아있다면 다행이라 생각하고 다른 지역으로 피신하여야 했다. 심지어 조선의 백정들은 노예가 아니었음에도 평민들에게 말을 걸 수조차 없었다. 아내와 딸이 강간을 당해도 억울함을 풀 수 없음은 물론이요, 억울하다고 법에 호소하는 순간 양민을 능멸했다 하여 법으로 도리어 처벌을 받았다. 그리고 지역에서 고립되고 그 능멸의 대가로 지역주민들에게 맞아 죽을 수도 있다. 그런데 노비는 이런 백정과도 비교할 수 없는 천한 신분이다. 그러니 노예에서 해방되었다 하여 모든 것이 끝이 아닌 것이다. 로마의 해방 노예들도 조선의 백정이나 중세의 유대인과 그 취급받음이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노예 출신의 아내가 되겠다고 결심한 이 여인 브리스가는 도대체 남편을 얼마나 사랑했기에 이와 같은 선택을 한 것일까?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처음 만난 고린도에 보내는 서신에 바울은 다음과 같은 말을 기록했다.


고후 5:14 바른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신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한 사람이 모든 이들을 대신하여 죽었으므로 모든 이들이 죽은 것이다.


그리스도 예수님의 사랑은 비단 영혼을 향한 사랑에만 부어지는 것이 아니다. 아내와 남편의 사랑에도 부어지고 연인의 사랑에도 부어진다. 그래서 자신을 내어주어 목숨을 내어놓는 사랑을 가능하게 한다. 누군가 사랑한다는 것은 마땅히 이러해야 하지 않겠는가? 자신의 삶의 안녕과 부요함을 따라 사랑하는 사랑이 사랑이겠는가? 아니면 철저한 비즈니스적 야합이겠는가? 그것은 짐승들의 부끄러운 야외의 교합행위보다 더 부끄러운 것이 아니겠는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고 거듭난 자들은 세상에 속하지 않았으며 하나님의 심령을 가지며 그리스도 예수님의 심령을 가진다. 친구를 위해 자기 목숨을 내어놓으며, 사랑하는 이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한다. 결코 자신이 받을 유익을 계산하지 않고 상대를 헌신적으로 사랑한다. 그래서 고린도에서는 그리스도님 안에서의 사랑의 속성에 대해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긴다.


고전 13:4-7 바른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는 자가 되지 않으며, 사랑은 자랑하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으며, 무례히 행하지 않으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으며, 성내지 않으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으며, 불의를 기뻐하지 않으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딘다.


이러한 그리스도 예수님의 사랑이 강권하는 자는 누군가 사랑하는 이가 있어 하나님이 그것을 허락하시면 국경과 나이와 신분을 초월하여 자신을 드린다.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참고, 모든 것을 믿어주고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함께 견딘다. 이 사랑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이요. 그 사랑을 받은 우리도 감격하여 예수님을 그렇게 사랑한다. 또한 예수님이 맡기신 형제들을 그렇게 사랑한다. 그러한데 하물며 그중 가장 특별한 단 하나인 나와 한 몸인 배필을 그렇게 사랑하지 않겠는가?


누군가 이런 사랑을 만나고 싶다면 먼저 자신이 이런 사랑이 돼라. 짐승에서 벗어나 먼저 사람이 돼라. 사람의 아들, 아담의 후손이 돼라. 진정한 사람인 두 번째 아담의 후손이 돼라. 그러면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이 강권하시는 사랑의 원자폭탄이 되리라. 그러면 상대가 어떤 대상이든 모든 것을 걸고 사랑하리라.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상대의 출신과 과거가 어떠하든 모든 것의 모든 것으로 가장 고귀하게 여기며, 모든 것의 모든 것으로 사랑하리라. 목숨도 아끼지 않으며 세상의 비방도 감내하며 온전히 사랑하여 죽기까지 사랑하리라.


나는 아직도 이해할 수 없다. 그리스도 안의 이런 멋진 삶이 있는데 어떻게 세상에서 짐승과 같이 비굴하며 추악한 삶을 선택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 나는 사랑에조차 추잡해지는 그런 사랑을 단 한 순간도 할 수 없다. 계산적이며 자기중심적인 사랑을 단 한 순간도 숨 막혀 견딜 수가 없다. 나는 단 한순간도 그런 미칠 것 같은 상태로는 눈을 뜨고 살 수가 없다. 나는 그런 것만 내 인생에 있다면 아무 주저함 없이 그 순간 목숨을 끊을 것이다. 그것을 깨달은 스물 두 해의 어느 날 나는 조물자를 향해 그런 선언을 하고 자살을 앞두고 그분을 찾았다. 그리고 온 우주보다 크신 그 광명이신 사랑을 만난 이후로 나는 사랑으로 가득 차 부족함이 없는 만족으로 살았다. 나는 모든 사랑으로 사랑했으며 모든 것으로 사랑을 선택했다. 그 사랑으로 완전히 나를 만족시킬 수 없는 삶은 결코 선택할 수도 없었다. 먼저 나를 사랑하신 그리스도 예수님의 십자가를 사랑했으며 그로 인해 나는 내 삶의 모든 고난에도 하나님께 불평할 수 없었다. 아니 불평이 아니라 그 순간에 감사가 넘쳤으며 모든 것을 믿고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인내했다. 또한 어떤 자라도 그들의 악독함이 나를 해치고 내 삶을 죽음으로 내몰아도 내 중심으로 사랑했다. 그가 지옥에 떨어질 것이 보이고 지금 그의 생명이 끊어져 죽을 것이 보이면 나의 생명을 드려 그를 대신해 달라는 기도가 나왔다. 나의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상대의 악행이나 그 악행에 대한 좋지 않은 감정을 표현한 적은 있으나 그것이 나의 마음을 점령하여 단 한시를 머문 적이 없다. 내가 예수님의 복음을 위해 나를 변명하려는 스스로의 결심이 없으면 그런 불평조차도 말로 나오지를 않았다. 내 마음의 치유를 위해 사람에게나 하나님께 의도적으로 하소연을 하였지만 결코 상대를 용납하지 못하거나 이해하지 못한 적은 없다. 이 모든 것은 내가 만난 그분이 하나님이시며 그분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도 그 사랑에 감격하여 사랑의 영이신 성령님으로 산다. 나는 오늘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지만 고요히 사랑받으며, 그리고 조용히 사랑한다. 나는 사랑받은 존재다. 그리고 사랑하는 존재다.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이라면 브리스길라와 같이 산다. 그리고 바울과 같이 산다. 짐승이 아닌 사람이라면 당연히 사는 삶이다. 독사의 새끼가 아닌 하나님의 아들들은 당연히 그러한 삶을 산다. 그러니 그런 증거의 사랑을 가진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가는 곳에는 생명의 공동체가 탄생할 수밖에 없었다. 진정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주께서 함께 하시어 자신을 나타내시고 주님이 함께 하심으로 그 삶에 생명이 흐를 수밖에 없다. 그런 사랑에 강권함을 받는 자들은 눈물의 골짜기로 많은 샘의 곳이 되게 하는 기적이 흐를 수밖에 없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의 집에 있는 교회들은 눈물의 골짜기에 있는 샘들이었다. 


나는 오늘도 사랑을 갈망한다. 나는 오늘도 기도한다.

“저를 사랑해 주세요. 세상에 저를 사랑할 자 하나 없습니다. 아버지 저를 사랑해 주세요. 온 세상이 시기하도록, 온 세상이 다 알도록 저를 사랑해 주세요. 저를 사랑할 자, 온 세상을 찾아도 없습니다. 저를 사랑할 자, 오직 주님(예수님)밖에 없습니다.”


나는 주님이 없을 때에는 비루먹은[2] 개였다. 나는 아비도 있고 어미도 있고 친구도 있었지만 그들은 나를 사랑할 힘이 없는 존재들이었다. 나도 그들도 모두 사랑에서 난 존재들이 아닌 비루(悲淚)한 어둠에서 난 존재들이라 그러했다. 그래서 나는 세상에 외톨이와 같이 버려진 외로운 한숨을 숨기며 사는 개였다. 나도 알고 나를 보는 세상도 한눈에 그것을 알아보았다. 그래서 동네 꼬마들도 내게 돌을 던졌다. 나는 달아나 동네 뒷켠의 야산이나 인적이 드문 숲의 가려진 가시덤불에서 지친 숨을 몰아 쉬어야 했다. 나는 늘 사랑에 배고팠고 그 사랑이 없어 눈물 흘렸으며 사랑받지 못해 겉과 속이 모두 황폐해졌다. 그래서 누구나 나의 엉킨 털과 비루먹은 피부를 보고 나를 피했다. 육으로는 표시가 나지 않지만 모든 이의 영혼이 그러하다. 그래서 서로서로 정말 사랑하고 품을 수 없다. 모두 비루(悲淚)한 어둠에서 난 존재들이라 그러하다. 그러한 개들은 모두 버려진 개들이요. 황폐한 어둠을 떠돌다, 지옥의 불길에 태워질 가련한 존재들이다. 


그러나 나는 이제는 주인 있는 개다. 아무리 작고 볼품이 없어도 주인이 사랑하는 개다. 이제는 동네 꼬마들의 돌을 피해 달아나지 않아도 된다. 혹 돌이 날아와도 나는 주인의 품에 숨는다. 나의 주인은 지존자이며 그의 은밀한 품으로 나는 피하여 안식을 얻는다. 나의 주인은 전능자다. 그의 날개 그늘은 모든 세상의 따가운 공격을 피할 유일한 곳이다. 혹 세상이 나의 육신의 생명을 빼앗을 수는 있지만 나에게서 주인의 사랑을 빼앗을 수는 없다. 나는 육신에 있으나 육신을 벗으나 주인의 사랑 안에 영원히 살아 사랑으로 충만하다. 나는 사랑받는 자다. 나는 죽어도 영으로 영원히 사랑하시는 자의 완전한 품에 안긴 자다. 살아서도 그러하고 죽어서도 그러하다. 그래서 나의 사랑의 생명을 그 누구도 빼앗을 수 없고 도적질 할 수 없다. 나의 사랑은 완전한 하늘의 보좌에 있기 때문이다. 그분의 안에 나는 영원히 거한다. 나는 그분 안에 안전히 숨겨진 자다. 나는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요, 전능자의 그늘에 피한 자다. 그래서 비록 볼품없는 개지만 나는 어느 곳에서나 당당하게 주인의 옆에 선다. 이제 두려움은 나의 몫이 아니다. 사랑이 모든 두려움을 내어 쫓았다.

비루한 어둠에 속한 세상이 나를 미워하고 곡해하고 모함하고 죽이려 해도 나는 기뻐한다. 그 모든 것은 내가 나의 주인에게 사랑받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은 어둠에 속하여 빛이신 나의 주인을 본능적으로 대적한다. 나의 주인이신 예수님께서 직접 육신으로 오셨는데도 그들은 미워하고 대적하여 죽였다. 그래서 나의 주인이신 예수님께서는 ‘너는 스승이 아니요, 제자이니 나보다 더한 핍박은 받지 않을 것이다.’라고 위로하신다. ‘최소한 나보다는 덜 핍박받을 것이다’라며 위로하신다. 그러나 세상이 미워함은 내가 나의 주인의 빛에 거함이니 나는 이로써 더 기뻐하고 기뻐한다. 세상은 내가 어둠에 속한 자가 아님을 본능적으로 안다. 그래서 나는 세상이 나를 미워함을 이상히 여기지 않는다.

나는 사랑받는 존재요, 전능자의 사랑으로 가득한 존재다. 나는 지존자의 은밀한 사랑이다. 나는 오늘도 사랑받는 자다. 그리고 그 사랑으로 충만하여 사랑하는 자다. 나를 사랑하시는 분을 사랑하며 나의 사랑하시는 분이 사랑하시는 자들을 사랑한다. 나는 오늘도 비루먹은 개보다도 못한 나를 위해 생명을 버리신 그분의 사랑으로 감격하며 배부르며 흘러넘치도록 가득 찬다. 


3.9.2.7. 말씀에 붙잡혀


바울은 안식일마다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 복음을 전했다. 그 대상은 유대인들과 헬라인들이었다. 그는 말씀에 사로잡혔으며 말씀의 영이신 성령님께 붙잡혔다. 그래서 그는 온전히 복음에만 전념했다. 헬라인들은 구약성경을 잘 모르지만 유대인들은 달랐다. 물론 헬라인들 중 유대교로 개종한 자들은 구약성경을 믿었다. 그러므로 유대교의 회당에서 바울은 구약성경을 통해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효과적으로 증거 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구약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증거조차 거부했다. 그리고 대적하고 모독했다. 바울은 그들의 악한 태도에 대해 자신의 옷의 먼지를 털며[3] 그들에게 선언했다. 


"너희의 피가 너희의 머리로 돌아갈 것이며 나는 깨끗하니, 이제부터 나는 이방인들에게 갈 것이다." (행 18:6 바른)


그러나 바울의 마음에는 인간적인 두려움이 일었다. 그래도 성령께서 고린도 성에 하나님의 백성이 많다고 말씀하시며 담대히 복음을 전하라 하셨다. 바울은 그 음성에 순종했고 1년 6개월 동안 그곳에서 복음을 전했다. 그러나 갈리오 총독이 현재 그리스 지역인 아카이아의 총독이 되었을 때 유대인들은 한꺼번에 폭도들로 변하여 바울을 잡아 재판정으로 갔다. 그러나 갈리오는 그 폭동이 유대인들의 율법과 종교 용어와 관련한 것임을 파악하고 자신은 관여치 않기로 했다. 심지어 회당장 소스데네가 재판정 앞에서 매질을 당했지만 보고도 상관하지 않았다. 그래서 바울은 풀려났다. 성령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담대히 복음을 전했고 결국 성령님께서 보호하셨다.


모든 피조물들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기를 기다린다. 독사의 새끼들이 되어버린 인간 아래서 죄악과 도적질과 멸망을 당하는 처지가 된 피조물들이 그 어둠의 질서인 적자생존의 약육강식을 벋어나 참사랑의 나라를 고대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사자가 어린양과 뛰어놀고 하이에나와 누가 함께 달리는 세상을 꿈꾸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태초의 영원한 낙원으로의 복귀를 기다린다. 인간도 그 하나님을 좇는 선한 양심을 그것을 바란다. 그러나 세상에 속하여 세상의 음성을 듣고 세상의 말을 하는 자들의 인간 내면의 어두움은 그것을 거부한다. 독사의 새끼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거부한다. 목자의 양이 아니기에 목자의 음성을 듣지 않는다. 그들은 목자에게 속한 하나님의 아들들을 대적한다. 바로 인자들의 나라, 하나님의 나라를 대적한다. 모든 성경의 글들에는 독사의 새끼들이 하나님의 아들들을 대적하는 장면들이 나온다. 독사의 새끼들이라 칭함을 받은 자들은 비신앙인이 아니었다. 심지어 유대인 중의 유대인들인 바리새인과 그중 가장 뛰어난 율법의 준행자들인 서기관들이 그런 평가를 세례 요한과 예수님께 받았다. 이런 자들은 거짓신앙인들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이 아닌 인간의 거짓신앙은 항상 복음을 대적한다. 그리고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기독교 역사의 교회사에 기록된 주류의 신앙인들은 거의 모두 거짓신앙인이었다. 1세기의 교회에서와 같이 거짓신앙은 대세를 장악하고 권력을 가졌으며 그를 통해 항상 참신앙인들을 박해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였으며 초대교회의 성도들을 박해했다. 희석된 복음에 속은 가련한 거짓신앙인들은 참 복음과 하나님의 아들들을 대적하다. 결국 지옥에서 눈을 뜨게 된다. 마음속의 모든 밑바닥까지 생명으로 거듭나지 못했다면 나는 가짜다. 그러니 진짜가 되기를 구하라. 모든 것을 팔아 보화가 숨겨진 밭을 사라. 그렇게 구하고 두드리고 말세의 믿음으로 끝까지 기도하지 않으면 그리고 영들을 분별하지 않으면 우리는 거짓신앙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이다.




         

[1] 이 지역들은 현재는 모두 그리스에 속해 있는 지역들이다. 당시의 그리스의 영역과 현재 영역은 차이가 있다. 또한 현재 마케도니아는 현재 그리스 땅인 베뢰아와 데살로니카 북쪽, 그리고 서에는 알바니아 동에는 불가리아, 북에는 코소보와 세르비아로 둘러싸인 국가다. 당시의 영토와 차이가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알렉산더에 의해 확장되었던 제국과는 너무도 큰 차이가 있다. 그래서 성경을 읽을 때는 당시의 지도와 현대의 지도를 비교하여 보는 것이 필요하다.


[2] 비루먹다는 벼룩이 물어 피부병이 있다에서 출발한 단어다. 피부병이 있고 떨이 엉키고 빠지는 상태에 있는 것을 비루먹다라고 표현한다. 순우리말이다. 한자인 비루(悲淚)하다는 그 처지가 하찮고 불쌍하고 가련함을 뜻하는 단어다. 둘은 뜻의 차이가 분명하다.


[3] 이 행동은 상대와의 모든 관계를 단절하는 것이고 그들에게 내리는 저주와 자신은 관계가 없음을 선포하는 행동이다. 그들에게 속한 모든 더러운 것 중 먼지 한 톨이라도 묻히지 않겠다는 표현이다. 유대인들의 이와 유사한 행동으로는 발의 먼지를 털어버리는 것이 있다. 또한 이방인들의 마을에 들어갔다 나올 때도 그들의 더러운 것을 결코 자신에게 묻히지도 않고 그것을 가지고 유대인의 마을에 들어가지 않겠다는 뜻으로 발의 먼지를 털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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