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의 절기란 구약 성경에 나타난 기념일을 뜻한다. 이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위해 레 23장을 살펴보겠다.
Leviticus 23:1-44 개정
1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이것이 나의 절기들이니 너희가 성회로 공포할 여호와의 절기들이니라
안식일
3엿 새 동안은 일 할 것이요 일곱째 날은 쉴 안식일이니 성회의 날이라 너희는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거주하는 각처에서 지킬 여호와의 안식일이니라 4이것이 너희가 그 정한 때에 성회로 공포할 여호와의 절기들이니라
유월절
5첫째 달 열 나흘날 저녁은 여호와의 유월절이요
무교절
6이 달 열 닷샛 날은 여호와의 무교절이니 이레 동안 너희는 무교병을 먹을 것이요 7그 첫날에는 너희가 성회로 모이고 아무 노동도 하지 말찌며 8너희는 이 레동안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 것이요 일곱째 날에도 성회로 모이고 아무 노동도 하지 말찌니라
초실절
9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10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에 들어가서 너희의 곡물을 거둘 때에 너희의 곡물의 첫 이삭 한 단을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11제사장은 너희를 위하여 그 단을 여호와 앞에 기쁘게 받으심이 되도록 흔들되 안식일 이튿날에 흔들 것이며 12너희가 그 단을 흔드는 날에 일 년 되고 흠 없는 숫양을 여호와께 번제로 드리고 13그 소제로는 기름 섞은 고운 가루 십분 이 에바를 여호와께 드려 화제로 삼아 향기로운 냄새가 되게 하고 전제로는 포도주 사분 일 힌을 쓸 것이며 14너희는 너희 하나님께 예물을 가져오는 그날까지 떡이든지 볶은 곡식이든지 생 이삭이든지 먹지 말지니 이는 너희가 거주하는 각처에서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니라
칠칠절=오순절
15안식일 이튿날 곧 너희가 요제로 곡식단을 가져온 날부터 세어서 일곱 안식일의 수효를 채우고 16일곱 안식일 이튿날 까지 합하여 오십 일을 계수하여 새 소제를 여호와께 드리되 17너희의 처소에서 십 분의 이 에바로 만든 떡 두 개를 가져다가 흔들지니 이는 고운 가루에 누룩을 넣어서 구운 것이요 이는 첫 요제로 여호와께 드리는 것이며 18너희는 또 이 떡과 함께 일 년 된 흠 없는 어린양 일곱 마리와 어린 수 소 한 마리와 숫양 두 마리를 드리되 이것들을 그 소제와 그 전제 제물과 함께 여호와께 드려서 번제로 삼을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며 19또 숫염소 하나로 속죄제를 드리며 일 년 된 어린 숫양 두 마리를 화목제 물로 드릴 것이요 20제사장은 그 첫 이삭의 떡과 함께 그 두 마리 어린양을 여호와 앞에 흔들어서 요제를 삼을 것이요 이것들은 여호와께 드리는 성물이니 제사장에게 돌릴 것이며 21이 날에 너희는 너희 중에 성회를 공포하고 어떤 노동도 하지 말지니 이는 너희가 그 거주하는 각처에서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니라
22너희 땅의 곡물을 벨 때에 밭 모퉁이까지 다 베지 말며 떨어진 것을 줍지 말고 그것을 가난한 자와 거류민을 위하여 남겨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나팔절
23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4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일곱째 달 곧 그달 첫날은 너희에게 쉬는 날이 될지니 이는 나팔을 불어 기념할 날이요 성회라
25어떤 노동도 하지 말고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지니라
속죄일
26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7일곱째 달 열흘날은 속죄일이니 너희는 성회를 열고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하며 여호와께 화제를 드리고 28이 날에는 어떤 일도 하지 말 것은 너희를 위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 속죄할 속죄 일이 됨 이니라 29이 날에 스스로 괴롭게 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끊어질 것이라 30이 날에 누구든지 어떤 일이라도 하는 자는 내가 그의 백성 중에서 멸절시키리니 31너희는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거주하는 각처에서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니라 32이는 너희가 쉴 안식일이라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하고 이 달 아흐렛날 저녁 곧 그 저녁부터 이튿날 저녁까지 안식을 지킬지니라
초막절
33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34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일곱째 달 열 닷샛 날은 초막 절이니 여호와를 위하여 이레 동안 지킬 것이라 35 첫날에는 성회로 모일지니 너희는 아무 노동도 하지 말찌며 36이레 동안에 너희는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 것이요 여덟째 날에도 너희는 성회로 모여서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지니 이는 거룩한 대회라 너희는 어떤 노동도 하지 말찌니라
37이것들은 여호와의 절기라 너희는 공포하여 성회를 열고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지니 번제와 소제와 희생제물과 전제를 각각 그날에 드릴지니 38이는 여호와의 안식일 외에 너희의 헌물 외에 너희의 모든 서원 제물 외에 또 너희의 모든 자원 제물 외에 너희가 여호와께 드리는 것이니라
39너희가 토지소산 거두기를 마치거든 일곱째 달 열 닷샛 날부터 이 레 동안 여호와의 절기를 지키되 첫날에도 안식하고 여덟째 날에도 안식할 것이요
40 첫날에는 너희가 아름다운 나무 실과와 종려나무 가지와 무성한 나무 가지와 시내 버들을 취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이레동안 즐거워할 것이라
41너희는 매년 이레 동안 여호와께 이 절기를 지킬지니 너희 대대의 영원한 규례라 너희는 일곱째 달에 이를 지킬지니라
42너희는 이레 동안 초막에 거주하되 이스라엘에서 난 자는 다 초막에 거주할지니 43이는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때에 초막에 거주하게 한 줄을 너희 대대로 알게 함이니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44모세가 이와 같이 여호와의 절기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공포하였더라
레 23장의 핵심은 안식일이다. 절기를 설명하는데 가장 처음 설명하는 것이 안식일이다. 왜일까? 이 모든 절기의 핵심은 다시 안식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안식은 인류 구원의 최종적 목표다. 아비가 유괴당한 자식을 두고 바라는 최종 목표는 아이가 다시 구함(구원)을 받아 아비의 품에서 완전한 안전과 쉼을 누리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안식은 모든 절기의 핵심이다. 그래서 안식일은 한 주를 이루는 핵심이다. 6일의 일과 7일의 안식이 한 주를 이루고 그 7일이 모여 한 달을 이루고 또 한해를 이룬다. 일 년의 모든 시간의 중심은 안식일이다. 안식일은 또한 모든 절기들의 핵심적 날들이 된다. 안식일이 있고 한해에는 절기들이 안식을 이루고 또 구원의 길인 십자가에서의 피와 살에 대해 가르친다. 또한 죄사함과 구원에 대해 가르친다. 그리고 그런 안식일과 절기의 안식의 일 년들을 모아 7번이 되면 안식년이 온다. 그리고 또 7년의 안식년이 7번이 지나면 그 후에는 처음 여호수아 시대의 구원으로 받은 기업과 자유를 회복하는 희년이 찾아온다. 이 7이 7번 반복되는 구조는 일 년 안의 절기에서도 등장하는데 이는 흔히 우리가 오순절이라고 알고 있는 절기에서도 등장한다. 7번의 안식(7)이 지난 후에 오는 오순절 즉 칠(7)칠(7)절이다. 이 모든 것의 단위는 7로서 모두 태초의 7일 째의 안식을 나타내는 상징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모든 절기는 7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7을 목표로 하는 것으로 아비가 유괴된 자식에게 바라는 유일한 소망인 안식을 7을 사용하여 나타낸다.
유월절은 무교절과 구분되지만 둘은 하나의 절기다. 무교절의 첫날이 유월절이다. 유대력 정월(태양력 3~4월 중) 14일은 유월절의 시작이다. 그리고 동시에 무교절의 시작이다. 유월절 없이 무교절은 시작될 수 없다. 또한 유월절의 피와 무교절의 떡은 하나를 이루며 하나다. 유월절 어린양의 살과 무교절의 떡은 극렬히 대조된 것이다. 이는 오직 나의 피와 살만이 일하여야 하고 인간의 그 어떤 것도 무효한 것을 선언하는 동시적 대조의 개념이 작동하는 것이다. 오직 나 예수의 피만이 있고 인간의 날조된 의는 죽어 그 입을 다물어야 하는 것이다. 앞의 것이 유월절이고 뒤의 것이 무교절이다.[^1]
유월절은 안식일 하루 전날이다.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날의 개념은 저녁 6에 시작하여 다음날 저녁 6시 이전이 하루다. 우리의 하루와는 다른 개념이다. 유월절의 시작은 무교절의 시작과 같다. 무교절의 시작인 저녁 6 시부터 다음날 새벽이 오기 전까지의 밤이 유월절 밤이다. 그 밤에 구약의 모세를 통해 유월절의 예식을 전했고 그 예식은 어린양을 저녁에 온 회중이 모여 잡고 먹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피를 문 양 옆의 기둥과 문 위의 상층 가로대에 바른다. 더 쉽게 설명하면 문틀의 사람이 밟거나 넘어가는 아래의 가로대 부분을 제외한 문틀 전체에 피를 바른다. 이는 피를 통과하여 드나듦을 말하는 것이며 이는 거룩한 우리(하나님)가[^2] 있는 곳으로 들어오는 것을 말한다. 결국 우리의 나라에 들어옴을 말한다. 그리고 그 양의 살을 먹는다. 이는 나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 그리고 내가 거룩함으로 아버지께 복종한 모든 공로를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유월절에 나 예수는 유월절 만찬을 제자들과 함께 했다. 유월절은 무교절 첫날이기도 하다. 신약의 복음서에도 제자들과 복음서의 기록자들이 모두 무교절 첫날을 유월절과 동일시 하고 있다. 무교절 첫날에 유월절유월절 저녁에는 이스라엘 모든 회중이 함께 양을 잡고 그 양을 모든 식구가 먹는다. 그리고 그 저녁부터 이스라엘은 무교병을 먹는다. 그 유월절의 절기를 지킨 것이다. 나는 그것을 제자들에게 떡과 포도주로 전했다. 구약의 양을 잡아 그 피와 살을 증거의 예표로 삼았는데 이제 나 예수가 그것을 십자가로 이룰 것이므로 이제 예표가 아니라 기념하라 했다. 기념한다는 것은 일어났던 일을 기념하는 것이다. 독립 기념일은 이미 일어난 독립을 기념하는 것이다. 3.1절을 기념하는 것도 이미 일어난 3.1 운동을 기념하는 것이다. 또한 더 이상 구약의 양을 잡는 일을 반복하지 말라고 한 것이다. 그리고 떡과 포도주로 그것을 기념하라고 한 것이다. 내가 이미 성취한 십자가와 부활에서의 어린양의 유월절은 예표로 삼아 다시 기다리거나 반복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포도주와 빵(납작하게 구워진 발효하지 않은 난)으로 기념하라고 했다. 포도주는 유월절을 상징한다. 그리고 빵 즉 무교병은 무교절을 상징하는 것이다. 유월절 저녁은 이미 무교절의 시작이다. 무교절의 공식적인 절기시작은 15일이다(레 23:6). 그러나 무교병을 먹기 시작하는 것은 14일이다(출 12:18). 유월절도 14일이다. 무교병은 인간적인 모든 것을 제외하는 것이다. 즉 인간의 노력이나 인간의 어떤 것도 배제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구원의 핵심적 개념인 인간의 의가 아닌 오직 나 예수의 의 즉 우리(하나님)의 의로 구원받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사람의 공로로는 구원받을 수 없다. 천하 인간에 인간을 구원할 이름은 나 예수 외에는 없다. 다른 어떤 인간의 공로로도 구원을 얻을 수 없다. 그래서 무교절에는 인간의 공로가 들지 않은 순수한 밀가루로만 만들어진 이스트 없는 빵을 먹은 것이다. 빵에 이스트를 넣어 부풀리는 것은 인간이 작위적으로 밀가루에 무언가 일을 한 것이다. 이스트는 빵 속에서 발효작용을 일으키며 일을 한다. 그래서 밀가루 떡이나 아니면 난이나 또띠아와 같이 부풀지 않은 밀가루 반죽을 빵의 반죽과 같이 부풀게 만든다. 이는 인간의 노력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하나님)에게는 인간의 오염되고 추잡한 의는 소용이 없다. 그런 것은 인간의 죄를 대신할 제물로는 소용이 없다. 오직 흠 없는 순전한 일 년 된 숫양이나 염소와 같이 순전해야 한다. 인간 자신이 아닌 오직 순전한 양을 대신 죽음에 이르는 형벌에 내어 놓음으로만 죄를 용서받는 것이 가능하다. 그래서 무교절과 유월절은 분리할 수 없는 하나의 절기로 붙어있다. 무교절은 오직 어린양으로만 구원받을 수 있음을 7일을[^3] 기림으로써 오직 나 예수의 의를 강조한 것이다. 7일을 기림으로 완전히 인간의 것을 배제해야 함을 나타내는 것이다. 오직 나 예수의 의가 아니면 인간의 구원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인본주의나 기복주의나, 율법주의 이의 연장선상에 있는 신비주의나 지식주의로는 구원받을 수 없다. 그 모든 것은 인간의 의를 기반으로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온주의로도 구원받을 수 없다. 근대와 현대의 이스라엘을 건국한 시온주의는 사실 이스라엘 선민주의의 연장선상의 어리석은 일일 뿐이다. 이미 이스라엘은 구원을 이 땅에 설명하기 위한 몽학선생으로의 도구들인 구약의 절기와 제사와 구약의 모든 제도들을 행함으로 그리고 선지자들을 통해 나 예수가 올 것을 전파함으로 그 사명을 다했다. 그러므로 그들을 통해 지금 해야 할 일은 없다. 초대교회에 이스라엘인 즉 유대인들인 사도들과 성도들을 통해 열방에 복음이 전해지면서 그들의 최종적 사명은 성취되었다. 지금 내가 서술하고 있는 구약의 역사 중 유대인들의 역사 즉 아브라함의 자손들의 역사의 목적은 오직 하나다. 이 땅에 구원을 설명하고 그 구원을 전파하는 것이다. 만약 초대 교회 이후에 유대인들이 해야 할 사명이 있다면 그것은 나 예수를 믿고 전파하는 것이다. 그들의 나라와 영토를 회복함이 그 목적에 있지 않다. 나의 나라는 이 땅에 속한 것이 아니다. 아브라함의 자손들에게 일시적으로 주었던 나라는 완전한 것이 아니었다. 단지 천국의 예표였다. 그러므로 그 천국의 예표의 자손들이었던 자들도 완전하지 못했다. 그들은 그들이 죄로 인한 심판의 길을 걸었고 결국 여러 번의 망국을 겪게 되었다. 그리하고도 회개하지 않고 나 예수를 결국 죽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기들이 스스로 맹세한 대로 나를 죽인 피의 대가들을 받았다. 그리고 마지막이 가까운 지금 사실상 그들은 자신들이 받았던 피의 대가의 벌들에서 벗어났다. 지금은 세계 그 어느 곳에서도 유대인들을 박해하지 않는다. 지금 중동에서 벌어지는 일은 박해가 아니다. 남의 땅을 강제로 점령한 폭도들에 대한 분노일 뿐이다. 유대인들인 한 짓은 그곳에 잘 살고 있던 블레셋의 후손들의 땅을 강제로 강탈한 것이다. 결코 나는 그들에게 그러한 명령을 한 적이 없다. 구약에 여호수아에게 명했던 정복과 현대 이스라엘의 침략행위는 단 하나의 관련이나 유사성도 없다.
유대인들이 해야 할 것은 감사하고 회개하고 나 예수를 믿고 그 흩어져 있는 열방의 모든 곳에서 나를 전파해야 한다. 현재 유대인들의 사명은 모여 자신들의 선민사상을 회복하고 그 선민의 나라를 회복하고 결국 그 선민이 세계를 정복케 할 메시야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나의 뜻은 그들이 열방에 흩어져 나 예수를 전하는 것이다. 마치 예루살렘 교회가 예루살렘에만 모여 있고 세계 선교의 사명을 깨닫지 못할 때 그들을 핍박을 통해 흩어 그 사명을 감당케 한 것과 같다. 그 당시 깨닫지 못한 자들은 나를 죽였다. 그리고 회개한 자들도 깨닫지 못하고 예루살렘에만 머물렀다. 그러나 깨닫게 된 자들은 열방으로 나갔다. 또 나를 핍박하던 큰 자, 사울은 회개하여 나를 전파하는 작고 낮은 자 바울이 되었다. 그는 그렇게 낮아지고 나서야 나의 음성을 들었다. 그래서 그는 깨닫고 열방으로 나갔다. 대형 교회나 거대한 교회 건물을 추구하지 않고 열방에 나아가 나의 제자들을 성령의 능력으로 거듭나게 했으며 그 능력으로 그들도 나아가 열방을 향하게 했다. 오직 능력 즉 성령이 임하는 것은 열방으로 나아가 증인 되기 위함이다.
대형교회의 건물이나 자신들의 권력이나 성도의 수를 자랑하려던 저 감독들의 감독을 자처한 목회자들인 메트로폴리탄들은 자신들의 성공과 부를 위해 권력과 야합하여 지역을 분할하여 자신들의 통치 구역으로 삼았다. 콘스탄틴에 의해 주도되고 어거스틴이 그 사상을 제공한 카톨릭의 시작에 등장한 이것이 지금 서구나 동양권의 교구나 노회나 구역이라는 제도다. 이들은 그래서 대형교회를 만들어 사람들을 자신들에게 모아 자신의 권력을 위해 자신의 욕심을 위해 봉사하게 만든다. 현대의 교회가 대형화를 추구하고 그 속에서 권력을 유지하고 구역이나 노회나 교구를 만들어 자신들의 권력을 계층화하는 데에는 이러한 전승과 영적인 뿌리들이 있다. 현대 교회가 거듭나려면 이러한 알지 못했던 전통의 악습을 버리고 원래 나 예수가 의도했던 교회로 거듭나야 한다. 이에 대해 잘 설명하고 있는 자는 저 미국의 저명한 베스트셀러 작가이며 목회자인 진 에드워즈가 있다.
그러한 카톨릭과 신교와 현대의 교회에는 나 예수가 없고 나 예수의 제자도 없다. 너무 멀리 멀어져 자신들과 나 예수의 교회가 어떠한 차이가 있는지 알 수조차 없다. 그렇다면 선지자와 같은 자들을 통하여 자신들의 모습을 볼 수 있으면 좋을 것이다. 그러한 역할을 현재 감당하고 있는 자가 진 에드워즈다. 그의 저작을 참고하기 바란다. 그가 완벽하고 완전하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를 통해 통찰을 얻기를 원한다.
나 예수는 순전한 누룩 없는 떡이었다. 또한 흠 없는 순전한 어린양이었다. 그러므로 나의 교회도 누룩 없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누룩을 그리고 어거스틴과 헬라의 누룩을 제하라. 누구든 어느 교회든 누룩이 발견되거나 누룩이 들어간 떡을 먹는 자들은 나의 왕국에서 끊어지리라.
유월절 그 저녁에 이스라엘 모든 회중이 모여 양을 잡아야 한다. 이는 모든 이스라엘이 모여 나를 단죄한 것을 예표하는 것이다. 나는 유월절 예식 즉 양을 잡아먹는 의식 이후에 즉 유월절(최후의) 만찬 이후에 그 밤에 잡혔다. 나를 잡은 자들이 나를 정죄하고 죽이는 자리에 이스라엘의 온 회중들이 모였다. 어린 양인 나를 잡은 자들도 그리고 나를 죽여 피를 흘린 자들도 모두 이스라엘 온 회중이었다. 이는 한 구석에서 숨겨져 일어난 일이 아니다. 모두의 앞에서 일어난 일이다. 그러나 나 예수는 그 모든 일의 앞에서 털 깎는 자의 앞에서 잠잠한 양과 같이 잠잠했다. 이를 통해 모든 의를 이루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월절의 양은 온 회중이 모인 곳에서 죽임을 당했다.
유월절 각 집에서는 자신의 집을 위한 양을 잡아야 했다. 그러나 나 예수는 완전한 유월절 숫양으로 모두를 위한 완전한 희생이 홀로 되었다. 그러므로 나는 단번에 모든 사람을 위한 희생을 드렸다.
나는 유월절의 시작인 저녁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키던 유월절의 양을 구워 먹는 예식을 지킨 후 겟세마네로 기도하러 갔다. 그곳에서 나는 내 백성들의 제사장과 통치자들에게 잡혔다. 그리고 그 밤 대제사장의 집에서 심문을 당했다. 그리고 아침이 밝았다. 그날도 저녁부터 시작된 유월절이었다. 이스라엘의 하루는 저녁에 시작하여 다음 날 저녁 전까지다. 하루의 시작은 저녁 6 시고 그 끝도 다음 날 저녁 6 시다. 그러므로 내가 밤에 잡혔고 다음 날 아침이 되었으나 유대인의 달력의 날 개념으로는 여전히 전 날에 시작된 유월절이었다. 그 유월절의 낮에 나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혔다. 밤새 대제사장 가야바의 집에서 심문을 당했다. 헤롯의 집과 대제사장의 집 그리고 산헤드린 공회는 같은 지역에 있었다. 그 지역은 헤로디온이라는 곳으로 타락한 로마의 앞잡이들이 함께 모여 권력과 향락과 퇴패를 누리던 곳이었다. 나를 정죄하는 자리에 대제사장과 산헤드린의 공회원들이 모였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도 모여 모두 함께 나를 정죄했다. 그리고 그 정죄의 거짓 죄목을 가지고 나를 죽이기 위해 새벽 일찍 서둘러 움직였다. 새벽에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에 의해 나는 빌라도에게 끌려가 로마 법정에서 정죄를 당하는 일을 당했다. 그리고 십자가에 달렸으며 오후 세 시쯤 죽었다. 잡힌 날과 내가 죽은 날은 같은 날이었다. 현대의 시간 개념으로는 하루가 지났지만 히브리인들의 시간 개념으로는 하루였다. 바로 유월절이었다. 나는 유월절 하루에 이 모든 일을 당했다. 나는 유월절 저녁 6 시쯤에 유월절 예식의 만찬을 시작하여 그 밤에 잡히고 그 밤새도록 심문을 당하고 날이 밝아 새벽이 되었을 때 급하게 서둘러 유대인들에게 정죄당했다. 나의 백성 이스라엘이 나를 누명 씌웠다. 유월절 낮을 지나 유월절의 끝인 저녁 6시 이전에 죽어 장사 지내어졌다. 유대인들의 하루인 이 유월절 하루 전체를 나는 잠도 잘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죽음의 시간을 보내고 마지막에 나는 모든 것을 이루었다는 말을 하고 죽었다. 그 죽음으로 나는 모든 것을 끝냈다. 과거의 세상도 과거의 죄악도 과거의 아담의 실패도 모두 끝냈다. 모두 폐하여 그것이 더 이상 내가 창조할 새 세상에서는 작동할 수 없게 했다. 이것이 가장 큰 승리요 가장 큰 영광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 하늘의 유월절인 나의 십자가를 앞두고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John 13:30-32 바른
유다가 그 빵 조각을 받고 바로 나갔는데, 밤이었다. 그가 나간 후에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이제 인자가 영광을 받았고, 하나님께서도 그 안에서 영광을 받으셨다. 하나님께서 그 안에서 영광을 받으셨다면, 하나님께서도 자신 안에서 그를 영광스럽게 하시되, 즉시 그를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유월절에 내가 십자가에 죽고 그날 저녁부터는 다른 날이 시작된다. 바로 안식일이었다. 나는 그 안식일 동안 돌무덤 속에 장사되어 있었다. 유월절 오후 3 시에 죽은 후 소수의 사람들이 나를 장례 지냈다. 오후 6시부터 시작되는 다음 날인 안식일을 범할 수 없어 나의 장례는 서둘러서 치러졌다. 안식일 다음날 여인들이 나의 장례를 위한 물건들을 들고 나타나게 된 것은 나의 장례가 급하게 치러져 제대로 모든 것을 챙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안식일에 대한 기록은 없다. 바로 내가 죽어서 무덤에 있었던 그 안식일 말이다. 그날 내가 죽어서 어디에 있었는지 그리고 내가 죽은 후 나의 제자들 특히 나밖에 소망이 없었던 버려졌던 여인들의 마음이 어떠했는지에 대한 기록도 없다. 단지 나의 무덤을 찾아와 던졌던 탄식들인 다음의 말들을 통해 그들의 심정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 어귀에서 그 돌을 굴려 주겠는가?"(막 16:3)
"사람들이 주님을 무덤에서 가져다가 어디에 두었는지 우리가 모르겠습니다." (요 20:3)
"나사렛 사람 예수님에 관한 일들이니, 그분은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행위와 말씀에 권능이 있는 선지자이셨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대제사장들과 지도자들이 그분을 넘겨주어 사형 선고를 받도록 하고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분께서 이스라엘을 구속하실 자라고 소망하였고, 이뿐 아니라 이 일들이 일어난 지 벌써 삼일이 지났습니다. 더욱이 우리 가운데 어떤 여자들은 우리를 놀라게 하였으니, 그 여자들이 새벽에 무덤에 갔었는데, 예수님의 시신을 발견하지 못하고 돌아와서, 그분께서 살아나셨다고 말하는 천사들의 환상을 보았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와 함께 있던 자들 중 어떤 이들이 무덤에 갔는데, 그 여자들이 말한 대로였으나, 그분을 보지는 못하였습니다."(Luke 24:19-24 바른)
나 예수는 안식일에 죽어 무덤에 있었다. 왜였을까? 나는 너희 구원을 위해 일해야 했다. 십자가에 죽은 것은 너희 죄의 벌을 대신 받아 너희 죄의 징벌을 탕감하여 준 것이다. 또 너희를 죄에 대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했다. 그런데 그 일 이후 나는 왜 안식일인데 아무것도 하지 않고 죽어 무덤에 있었을까?
나는 무덤에서 죽어 안식일을 보내야 했다. 안식일은 아무것도 하면 안 되는 날이었다. 안식일을 통해 보여야 하는 것은 이것이었다. 바로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무슨 말인가? 인간들이 안식일에 일하지 않는 것은 태초의 안식에서 그 제도의 근원을 가져온 것이다. 인간은 태초에 우리가 창조한 세상에서 완전한 안식을 누렸다. 그 안식으로의 회복을 상징하는 것이 안식일이다. 그런데 그 안식이 나의 죽음과 무슨 관련이 있는가?
나는 인간을 대신하여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왔다. 인간을 대신하여 이 땅에서 죄를 이기고 인간을 대신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완전한 복종을 하여 완전한 의를 이루었다. 이 모든 것이 인간에게 죄를 이기고 의를 따라 사는 승리를 가져다주었다. 내가 그렇게 인간을 대신하여 그러한 삶을 살고 그 삶의 능력을 인간에게 부어주지 않는다면 인간들은 거듭나 하나님 아들로서의 삶을 살 수 없다.
또한 인간들이 거듭날 수 있는 최고의 길인 죄의 육신이 죽어 죄에 대해 죽고 하나님의 아들로 부활하여 의에 대하여 살아나는 십자가와 부활도 모두 인간을 대신한 것이다. 내가 인간을 대신하여 죽고 내가 인간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아들로 다시 살아났다. 그러므로 안식일에 무덤에 장사되어 죽어있었던 것도 인간을 대신한 것이다. 인간은 죽기 전에는 자신의 참담한 노력을 멈출 수 없다. 인간 스스로의 죄된 노력을 멈추고 인간의 추잡한 욕심을 멈추고 인간 스스로의 참담한 자기 의도 멈추고 쉼을 얻을 수 있는 길은 오직 죽음뿐이다. 나의 죽음은 그러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 죽음으로 안식을 이루었다. 또한 그 죽음으로 첫 세상을 죽였다. 첫 세상과의 모든 연결고리를 끊었다. 그러므로 첫 세상의 안식도 첫 세상의 죽음과 함께 죽었다. 그 감정을 참담함이며 그 감정은 절망이다. 그것을 나의 무덤을 찾아왔던 나의 사도들과 제자들의 짧은 말들을 통해 너희는 느낄 수 있는가?
첫 세상의 실패한 모든 것과 나는 죽음으로 결별했다. 첫 세상에 속한 즉 첫 아담에게 속한 모든 것을 폐했다. 심지어 첫 세상의 실패한 안식과도 결별했다. 첫 아담에게 속한 모든 것은 폐해져야 한다. 인간의 더럽혀진 의도 폐해져야 한다. 그래야 완전한 나 예수의 의로 인간은 새롭게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될 수 있다. 그러므로 나는 유월절의 죽음으로 인간의 멈출 수 없는 관성적 자기 교만의 운동성을 폐했다. 인간의 더럽혀진 의를 폐했다. 그리고 그들을 잠잠케 하여 안식케 하였다. 그리고 인간의 자기 교만의 의가 폐해져 7일 동안 있는 무교절의 절기를 통하여 영원히 인간의 자기 의가 폐해졌음을 선포했다.
이 모든 폐함과 죽음의 권능은 오직 나 예수 안에서만 작동 가능하다.
그러므로 나를 떠난 구약의 유대인 신자들이여 그리고 신약의 무수히 많은 시대의 무수히 많은 모습의 신자들이여 카톨릭이여 개신교회여 그리고 무수히 등장하여 화석화되어버린 수많은 이름의 죽어있는 어제의 옛사람들이여 너희는 너희 어제와 죽어 결별하라. 그리고 오늘도 과거의 그 수많은 다시 살림의 날과 같이 부흥으로 일어나 새 생명으로 타오르라.
[^1]: 무교절은 무교병, 즉 이스트 없이 얇게 눌러 화덕이나 펜에 구운 피자의 도우 같은 빵, 누룩 없는 구운 밀가루 부침(중앙아시아, 인도, 중동의 현대어, 난)의 날이다. 공식적인 무교절은 유월절 바로 다음날이다. 그러나 이 글에서 무교절의 시작이 유월절의 시작과 같다고 한 것은 무교병을 먹는 날이 무교절의 공식적인 시작인 아빕월 15일 부터가 아니기 때문이다. 무교병을 먹는 날은 공식적이 무교절 시작 하루전인 아빕월 14일 저녁 즉 유월절 부터다.
Exodus 12:18 개정
18첫째달 그 달 열 나흗 날 저녁 부터 이십 일 일 저녁 까지 너희는 무교병을 먹을 것이요
[^2]: 우리는 단수와 복수를 초월한 자들이다. 성경에서는 우리를 단수로도 또 복수로도 나타낸다. 또한 우리가 하나라고 표현한 하나님은 한분이시다에서 하나라는 말은 엑하드[[H259]]다. 그 어원이 되는 악하드[[H258]]는 하나가 되게 하다. 한 곳으로 초점을 맞추다. 날카롭다의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엑하드[[H259]]는 하나이지만 집합적 하나를 뜻한다.
그 예로 분명 하나라고 사용되는 단어인데 며칠을 나타낼 때에도 사용된다.
Genesis 27:44 (바른)
네 형의 노여움이 풀리기까지 {며칠} 동안 그와 함께 머물러라.
Genesis 29:20 (바른)
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칠 년 동안 라반을 섬겼으나, 그 여자에 대한 사랑 때문에 칠 년이 그에게는 {며칠과} 같았다.
Daniel 11:20 (바른)
그의 자리에 앉은 사람이 왕국의 영화를 위해 강제로 세금을 징수할 자를 두루 파견하지만, 그는 싸움이나 전쟁 없이 {며칠} 내에 파멸할 것이다.
분명 하나라는 뜻이라면 one day로 번역되어야 하지만 one day라고 하지 않고 a few days라고 번역하고 있다. 이는 엑하드[[H259]]가 집합적 하나의 뜻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단순한 하나를 뜻할 때도 사용된다. 그러나 그 하나가 단순히 숫자 하나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둘이 연합하여 하나가 될 때에도 사용된다.
또 다른 예들은 다음과 같다.
Genesis 2:24 바른
그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될 것이다.
여기서 한 몸이라 할 때 하나가 사용되는데 이 단어도 엑하드[[H259]]다. 그런데 이는 둘인데 하나라 한다. 둘인데 연합되어 하나가 된 것을 말한다. "하나님은 한분이시니"에 사용된 한분 즉 하나는 엑하드[[H259]]다.
Exodus 24:3 바른
모세가 와서 여호와의 모든 말씀과 모든 법도를 백성에게 말하니, 온 백성이 {한} 목소리로 대답하기를 "우리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준행하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여기서도 한 목소리라고 말할 때 엑하드[[H259]]가 사용되었다. 여러 사람의 목소리지만 합심하여 한 소리를 내는 것이다. 여기서도 여럿이지만 하나라고 표현되어진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한분이시라고 할 때에는 삼위일체를 뜻하는 것이다. 이는 연합된 하나다. 그런데 이렇게 설명하면 또 이단이 된다. 왜냐하면 이 하나라는 게 인간들이 하나 될 수 있는 수준이 아니기 때문이다. 육신이 없는 하나님께서 하나 된다는 것은 완전한 하나 됨이 가능하기에 한분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또 한 분을 너무 강조해서 일신론만을 펼치면 이것도 문제가 된다. 그 극단에는 양태론이 존재한다. 한분이신데 이곳저곳에서 그 역할을 달리하여 나타나신다는 것이다. 이도 이단이다. 그러므로 삼위일체는 인간들이 알고 있는 개념으로 표현할 수 없는 신의 영역의 개념이다. 그러나 이렇게 설명을 하는 것은 불필요한 오해를 낳지 않기 위함이다.
[^3]: 무교병을 먹는 것은 14일 저녁부터 21일 저녁까지다. 그런데 그 날수는 8일이다(출 12:8). 그런데 다른 구절에는 무교절은 7일이라 나온다(레 23:6). 이는 무교병 즉 누룩 없는 빵을 넉는 것이 무교절의 하루 전인 유월절부터이기 때문이다. 유월절이 14일 저녁부터이다. 그러므로 실질적인 무교절의 시작은 14일 저녁이고 무교병을 먹는 날의 수도 8일이다. 그러나 공식적인 절기로의 무교절의 칠일은 유월절 다음날에 시작한다. 그 첫날은 성회다. 그리고 그날은 안식일이다. 그리고 또 칠일의 마지막은 성회다. 무교절의 끝날은 안식일이다. 유월절의 다음날도 안식일이며 무교절 끝날도 안식일이다. 이는 유월절이나 무교절을 통한 구원의 핵심적 지향점이 안식에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