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3.2.3.14. 사무엘의 연대기 3

by 에스겔

01.3.2.3.14.2. 사무엘

01.3.2.3.14.2.1. 모더니즘적 역사해석




사사기와 룻기 그리고 사무엘서를 보면서 발전하는 형태라고 보는 것은 모더니즘적 해석의 습관이다. 모더니즘은 서양이 제국주의와 산업혁명을 통해 막대한 부를 누리면서 역사는 언제나 긍정적이고 발전적인 형태로 흘러간다는 것을 기저에 두고 있는 사상이다. 이에 따르면 역사는 언제나 발전한다. 과거보다 현대는 기술적으로 학문적으로 도덕적으로 더 이상적인 형태로 나아가고 있다. 사사의 제도보다 왕정이 더 발전된 형태라는 것은 사실상 어리석은 인간들의 역사 관점일 뿐이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열왕기가 사사기보다 뛰어나다는 증거는 성경 어디에도 없다. 사사기와 열왕기 전체를 통틀어 가장 우리(하나님)에게 순전했던 자는 사무엘이다. 열왕들 중 가장 순전했던 다윗조차 밧세바를 범하고 밧세바의 남편 우리야를 죽이는 죄를 저질렀다. 그것도 단지 밧세바와 간음을 한, 한 번의 범죄가 아니라 상당히 긴 기간 동안 간음을 했고 그 기간 동안에 우리야를 죽이기 위해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대로 우리야를 죽였다. 전투의 선봉에 세우고 그를 버려두고 나옴으로 적들에 의해 전사하도록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를 꾸미기 위해서는 군 내부의 조직이 동원되어야 한다. 음모에 적극 가담한 자들과 알지 못하고 명령 체계에 의해 간접 가담하는 자들이 있다. 이 계획을 위해 한 두 사람이 희생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야와 함께 한 선봉의 무리가 죽어 희생되는 일이다. 사무엘은 자신의 아들들이 이속을 위해 사사의 직분을 이용한 것 외에는 흠이 성경에 기록되지 않았다. 사무엘이 다윗보다 뛰어남은 다윗을 세운 자가 사무엘임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사무엘은 사사의 시대에 속한 인물이었고 다윗은 열왕들의 시대에 속한 인물이다. 그러므로 사사의 제도보다 왕의 제도가 더 발전된 형태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세속의 관점을 성경에 미련하게 도입하는 실수다.

이러한 어리석은 관점으로 기술된 사무엘서 개론들이 대부분이기에 이를 깨트리지 않고 사무엘서를 본다면 많은 해석 오류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성경을 읽을 때에 다윗의 시대로 나아가기 위한 단계들로 사무엘과 사울의 시대를 이해해서는 안 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왕의 제도는 우리가 원한 정치제도가 아니다.





01.3.2.3.14.2.2. 마지막 그리고 완전한




사사기의 주제는 인간의 전적부패다. 그렇다 하여 사사 시대가 이스라엘 역사 중 가장 실패한 시대라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판단이다. 이 말을 먼저 길게 하고 있는 이유는 사무엘서에 등장하는 엘리와 그 아들들의 타락이나 사무엘의 아들들의 타락, 사울의 타락을 해석하는데 선입견을 없애려는 의도다. 사무엘이나 사울이 다윗으로 가기 위한 과도기라고 생각하는 실수를 배제하려는 의도다. 물론 결과론적으로 다윗이 세워졌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대로 다윗이 가장 위대하고 온전한 자라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우리가 의도한 것은 다윗 혈통의 왕국이 아니다. 레위인들이 가르치는 율법을 듣고 백성 각자가 우리를 따르고 성전에서 섬기는 제사장들이 우리의 음성을 듣고 백성이 우리와 화목한 관계 유지하는 것이다. 사사나 선지자나 왕은 백성이 타락하여 우리의 보호가 걷혔을 때 특별히 필요한 자들이다. 원수들의 압제가 있을 때에 그 원수들에게서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해 필요한 존재들이다. 여호수아 시대 이후에 백성들이 우리에게 순종하고 각 지파와 가족별로 자신들이 우리(하나님)와 함께 하면 그곳에 평안(안식)이 있어 군사적 지도자가 필요하지 않다. 문제는 백성들의 타락이다. 리더의 형태나 정치의 형태가 문제가 아니다. 진정한 문제는 백성들의 본성이 타락한 독사의 새끼들이라는 것이다. 타락한 인간 본성의 문제를 직시하지 않고 정치 제도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자체가 오류다. 과거 이스라엘이 그렇게 생각하여 왕을 구하였다. 그리고 현대의 너희도 그러한 생각으로 왕정이 발전된 형태라 생각한다. 그렇게 어리석은 선입견을 가지고 사무엘서를 읽는 다면 너희는 성경에서 우리(하나님)가 의도하는 진리를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사무엘서를 통해 전달하려는 것은 정치제도의 발전이나 위대한 영웅의 등장이 아니다. 재미있는 전쟁사나 전략적 승리를 통한 위대한 착취 제국 성립이 아니다. 또한 유대 제국주의 세계 확산 판타지도 아니다. 앞의 어리석음을 교훈 삼아 현재적 축복을 가져오는 수단을 찾으라는 것도 아니다. 현대의 너희가 개독교라는 종교를 통해 구하려는 복은 성경과는 상관이 없다. 너희가 무당(목사, 기도원 원장, 능력자)을 세우고 푸닥거리를 하여 너희 복을 비는 행위는 이방인들의 어리석은 종교일 뿐 나를 섬기는 것과는 상관도 없다.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그 복으로 인하여 저주를 받을 것이다. 너희가 구하는 그 복의 악업이 관영하여 너희는 심판의 물결이 넘치는 결말을 볼 것이다. 모든 역사의 거짓교회들이 그러한 길을 갔다. 너희가 읽고 있는 역사의 기록들에 그것이 남았다. 교회가 진정 무서워해야 할 것은 핍박의 칼날이 아니다. 권력과 부와 쾌락의 회유다. 사탄은 박멸할 수 없으면 회유를 선택하여 타락시킨다. 그 길의 역사가 복음의 서진이다. 너희 역사 해석은 오류 투성이다. 타락한 거짓교회는 참 믿는 자들을 핍박하고 죽인다. 구약의 모든 선지자들과 신약의 나 예수와 나를 따르는 역사의 모든 제자들이 그렇게 핍박을 받고 순교하였다. 나 예수가 주려는 것은 이 땅 평안과 부와 권력, 쾌락이 아니다. 그것들은 너희를 유혹하여 지옥의 불길로 향하게 하는 넓은 컨베이어 벨트일 뿐이다. 평안과 축복을 외치는 수많은 자들이 겉에는 양의 옷을 입고 있으나 그 속은 이리다. 너희는 그것을 통하여 지옥의 아가리로 떨어지는 대다수 인류의 행렬에 합류할 뿐이다. 그곳에 구원은 없다. 나 예수의 이름을 부르고 삼위일체의 신을 찾아도 그곳에 있는 것은 사탄의 왕좌이며 너희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거짓 도적들 뿐이다. 전정한 목자는 양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지 않는다. 진정한 목자는 자신의 살과 피를 양을 위해 내어 놓는다. 우리가 사무엘서를 통해 전달하려는 것은 구원이다. 구원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을 전하는 것이다. 원수의 마약에 자신을 파는 어리석은 자들의 말로와 참으로 우리(하나님)를 찾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핍박과 승리의 대비를 통해 무엇을 선택하여야 하는지 보여주기를 원한다. 나 예수가 너희에게 주려는 것은 금생의 쾌락이 아니다. 그러한 종교를 찾는다면 수많은 사탄을 따르는 세상의 종교로 가라. 쾌락과 함께 구원을 준다는 발복의 종교로 가라. 나 예수의 길은 그것과는 거리가 먼 핍박과 고난의 길이다. 세상이 미워하여 돌을 던지고 십자가에 매달아 죽이는 길이다. 세상이 볼 때에 이 길은 실패의 길이다.



유대의 산헤드린 회원이며 위대한 율법학자로 일컬어지던 사울(큰 자)이라는 자를 아는가? 그는 나 예수를 핍박하던 자였으나 다메섹 도상에서 눈이 열려 빛을 보았다. 그의 유명한 고백이 있다.



마지막으로 나의 형제들아, 주님 안에서 기뻐하여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되풀이해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롭지 않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다. 개들을 주의하고, 악행 하는 자들을 주의하며, 거짓 할례자들을 주의하여라. 이는 하나님의 영으로 봉사하고 그리스도 예수님을 자랑하며 육신을 신뢰하지 않는 우리가 참 할례자들이기 때문이다. 비록 나도 육신을 신뢰할 것이 있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어떤 이가 육신을 신뢰할 만하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더욱 그러하다.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았고, 이스라엘 족속이고, 베냐민 지파이고, 히브리인 가운데 히브리인이고,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고,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였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이다. 그러나 내게 유익하던 것은 무엇이든지 그리스도를 위하여 해로 여기며,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다. 내가 그분을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기는 것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분 안에서 발견되려는 것이다.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 곧 믿음에 근거하여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이다. 나는 그리스도와 그분의 부활의 능력과 그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을 알고자 하여 그분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고자 한다. 내가 이미 붙잡았다거나 이미 온전해진 것이 아니므로 오직 내가 그리스도께 붙잡혔기 때문에 나 또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간다. 형제들아, 나는 나 자신이 잡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한 가지, 곧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붙잡고자 하여,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위로부터 부르신 부르심의 상을 위하여 푯대를 향하여 달려간다.(빌 3:1-14 바른)



그러나 바울(작은 자)의 이러한 고백을 향해 세상은 독설을 내뱉었다.



"바울아, 네가 미쳤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하였다."(행 26:24 바른)



그러므로 성경을 읽으며 그러한 것을 구하는 자들은 회개하라. 그러한 자들의 눈치를 보며 세상 복을 구하고 그들에게 복채를 받으려는 어리석은 자들은 다 회개하라. 그들에게 "평안, 평안, 여호와께로부터 복, 여호와께로부터 복"이라 외치는 자들아 회개하라. 그렇지 않으면 내 입의 칼로 너희를 멸할 것이다.



사무엘은 마지막 사사였다. 그는 마지막이었으며 사사들 중 가장 완전한 자였다.



왕의 제도는 사사 제도보다 훨씬 문제가 많았다. 왕이 없을 때에는 이스라엘이 타락하여 이방 족속의 압제를 당하면 그 시대의 리더를 세워 백성을 구원할 수 있었다. 그런데 왕이 있으면 왕 외에 또 다른 리더를 세우는 것을 왕이 허용하지 않았다. 반역으로 몰아 역모로 처벌을 했다.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사울과 다윗이다. 사울은 이미 우리가 폐했는데도 자신의 왕위를 내려놓지 않았다. 오히려 다음 왕인 다윗을 질투하여 그를 죽이려 했다.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사울이 사사가 아닌 왕이었기 때문이다. 사사나 선지자나 제사장은 그 개인의 권력에 한계가 있었다. 또한 상비군을 두지 않았기 때문에 백성들이 따르지 않으면 백성들을 강제할 수 있는 수단이 없었다. 그래서 사사나 선지자나 제사장이 타락하여 그 역할을 하지 못할 때에는 폐하기 쉬웠다. 우리가 그의 폐역을 인하여 그를 버렸다고 선언하고 백성이 등을 돌리면 그는 힘을 잃는다. 그런데 왕은 다르다. 우리가 버렸다고 선언하고 백성이 등을 돌려도 자신이 이루어 놓은 권력을 동원해 자신의 폐위를 거부한다. 원래 왕이라는 제도는 세상의 약탈자들이 강한 힘으로 약탈을 지속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그러니 백성들이 거부해도 역모로 몰아 진압할 수 있는 힘을 언제나 가지고 있다. 이것이 왕권정치의 폐해다. 물론 다윗과 같이 순전한 왕이 나오면 왕 하나로 인하여 백성들 전체가 구원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사사나 선지자나 제사장이 그러한 역할을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사사기의 기록을 보라. 그리고 모세와 여호수아 시대의 기록을 보라. 저들의 구원역사를 보라. 과연 왕이 있다 하여 어떠한 이점이 있는가? 어둠의 세상 모든 것은 착취를 위한 이데올로기에 종속되어 존재한다. 그러므로 세상의 가장 지혜로운 제도나 사상은 모두 착취를 위한 가장 강력한 수단이다. 현대의 상황을 보면 고도로 발전한 세뇌에 의한 착취를 볼 수 있다. 억압으로는 한계가 있으니 세뇌를 시켜 스스로 미쳐서 따르도록 한다. 그런데 그 세뇌의 작동이 너무 은밀하고 정교하여 거의 아무도 그것을 눈치채지 못한다.



사무엘은 자신의 권력으로 강제 집권한 자가 아닌 우리의 신뢰와 백성의 신뢰를 통해 이스라엘을 통치한 마지막 사사였다. 우리(하나님)의 신뢰와 능력으로 세워진 자가 아니라면 백성들 위에 세워지면 안 된다. 심지어 백성들의 인기를 얻은 왕이라도 그것은 동일하다. 그래서 왕이 제도적으로 있으면 압제가 지속되고 패역한 왕에 의해 우리의 뜻이 굴절된다. 왜냐하면 왕이나 어떤 인간이라도 단지 전적 타락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상의 어떠한 제도도 인간에게 유토피아를 가져오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인간이 자신들의 문제를 깨닫도록 성경을 통해 인간의 전적 부패의 모습을 반복하여 보여준다. 사실 성경이 아니라도 세상 모든 곳에는 인간의 전적부패가 만연하여 누구나 그것을 알 수 있다. 단지 인간이 자기 스스로의 이익을 위해 그 진실을 외면하고 합리화 할 뿐이다.

이글도 사무엘을 영웅으로 만들기 위해 쓰는 것이 아니다. 단지 인간의 전적 부패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시대에 우리를 따르며 백성을 돌보았던 목자가 있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나 예수의 예표이며 나 예수는 사무엘보다 완전한 목자이다. 또한 너희가 나 예수와 함께 죽어 다시 산다면 너희는 사무엘보다 더 온전한 목자가 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전적부패의 늪에서 허덕이지 말고 나아와 거듭나 완전한 목자가 되고 영원한 사랑의 원자탄이 돼라.





01.3.2.3.14.3. 사무엘서





사무엘의 삶은 아름답다. 그 이유는 그가 우리와 함께 했기 때문이다. 성경은 이 내용에 대해 반대적 방식으로 기술하고 있다. 그가 우리와 함께 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와 함께 했다고 한다. 그 글을 읽어보자.

19사무엘이 성장해 갔으며,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하셔서 그의 모든 말 중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셨으니,

20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 온 이스라엘이 사무엘은 여호와의 선지자로 세우심 받은 것을 알게 되었다.

21여호와께서 실로에 다시 나타나셨는데,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여호와의 말씀으로 사무엘에게 자신을 나타내셨다.

4:1 사무엘의 말이 온 이스라엘에 전파되니라.(삼상 3:19-4:1a)

동일한 뜻도 그 표현하는 방식에 따라 많은 부분이 달라진다. 심지어 위의 글은 내러티브의 산문이지만 이 산문 속에도 시와 같은 구조와 운율을 가질 수 있다면 이는 기적이다. 그런데 성경 속에는 이러한 기적들이 일상으로 나타난다.



01.3.2.3.14.3.1. 사무엘서의 아름다움


사무엘상 1장의 구조를 살펴보자.

# A 아들이 없는 한나
#### B 한나의 태를 닫으심
####### C 한나의 슬픔
########### D 한나의 먹고 일어남
############## E 엘리의 안일한 태도(성막 문 기둥 옆 의자)
################## F 한나의 건절한 간구
##################### G 엘리의 오판
##################### g 한나의 오판 정정
################## f 엘리의 안일한 간구
############### e 한나의 간절한 태도
############ d 한나의 일어나 먹음
####### c 한나의 슬픔 사라짐
#### b 한나의 태를 여심
# a 여호와께 드릴 아들이 있는 한나

상하가 서로 대칭을 이루고 그 내용은 서로 대조를 이룬다. 그런데 이 글을 그냥 읽어보면 너무 자연스럽고 매끄럽다.

사무엘상 1장
1:1 에브라임 산지 라마다임소빔에 에브라임 사람 엘가나라 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여로함의 아들이요 엘리후의 손자요 도후의 증손이요 숩의 현손이더라

1:2 그에게 두 아내가 있었으니 한 사람의 이름은 한나요 한 사람의 이름은 브닌나라 브닌나에게는 자식이 있고 한나에게는 자식이 없었더라

1:3 이 사람이 매년 자기 성읍에서 나와서 실로에 올라가서 만군의 여호와께 예배하며 제사를 드렸는데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여호와의 제사장으로 거기에 있었더라

1:4 엘가나가 제사를 드리는 날에는 제물의 분깃을 그의 아내 브닌나와 그의 모든 자녀에게 주고

1:5 한나에게는 갑절을 주니 이는 그를 사랑함이라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니

1:6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므로 그의 적수인 브닌나가 그를 심히 격분하게 하여 괴롭게 하더라

1:7 매년 한나가 여호와의 집에 올라갈 때마다 남편이 그같이 하매 브닌나가 그를 격분시키므로 그가 울고 먹지 아니하니

1:8 그의 남편 엘가나가 그에게 이르되 한나여 어찌하여 울며 어찌하여 먹지 아니하며 어찌하여 그대의 마음이 슬프냐 내가 그대에게 열 아들보다 낫지 아니하냐 하니라

1:9 그들이 실로에서 먹고 마신 후에 한나가 일어나니 그때에 제사장 엘리는 여호와의 전 문설주 곁 의자에 앉아 있었더라

1:10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1:11 서원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1:12 그가 여호와 앞에 오래 기도하는 동안에 엘리가 그의 입을 주목한즉

1:13 한나가 속으로 말하매 입술만 움직이고 음성은 들리지 아니하므로 엘리는 그가 취한 줄로 생각한지라

1:14 엘리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언제까지 취하여 있겠느냐 포도주를 끊으라 하니

1:15 한나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 주여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니요 여호와 앞에 내 심정을 통한 것뿐이오니

1:16 당신의 여종을 악한 여자로 여기지 마옵소서 내가 지금까지 말한 것은 나의 원통함과 격분됨이 많기 때문이니이다 하는지라

1:17 엘리가 대답하여 이르되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네가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

1:18 이르되 당신의 여종이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하고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근심 빛이 없더라

1:19 그들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여호와 앞에 경배하고 돌아가 라마의 자기 집에 이르니라 엘가나가 그의 아내 한나와 동침하매 여호와께서 그를 생각하신지라

1:20 한나가 임신하고 때가 이르매 아들을 낳아 사무엘이라 이름하였으니 이는 내가 여호와께 그를 구하였다 함이더라

1:21 그 사람 엘가나와 그의 온 집이 여호와께 매년제와 서원제를 드리러 올라갈 때에

1:22 오직 한나는 올라가지 아니하고 그의 남편에게 이르되 아이를 젖 떼거든 내가 그를 데리고 가서 여호와 앞에 뵙게 하고 거기에 영원히 있게 하리이다 하니

1:23 그의 남편 엘가나가 그에게 이르되 그대의 소견에 좋은 대로 하여 그를 젖 떼기까지 기다리라 오직 여호와께서 그의 말씀대로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하니라 이에 그 여자가 그의 아들을 양육하며 그가 젖 떼기까지 기다리다가

1:24 젖을 뗀 후에 그를 데리고 올라갈새 수소 세 마리와 밀가루 한 에바와 포도주 한 가죽부대를 가지고 실로 여호와의 집에 나아갔는데 아이가 어리더라

1:25 그들이 수소를 잡고 아이를 데리고 엘리에게 가서

1:26 한나가 이르되 내 주여 당신의 사심으로 맹세하나이다 나는 여기서 내 주 당신 곁에 서서 여호와께 기도하던 여자라

1:27 이 아이를 위하여 내가 기도하였더니 내가 구하여 기도한 바를 여호와께서 내게 허락하신지라

1:28 그러므로 나도 그를 여호와께 드리되 그의 평생을 여호와께 드리나이다 하고 그가 거기서 여호와께 경배하니라




위의 글을 읽고 이러한 구조가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일반적인 인간에게 알려주고 나서 그 구조를 살펴보라고 해도 발견할 수 없는 경우들이 많다. 훈련을 거쳐야 겨우 발견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구조를 글을 쓰는 자가 생각하여 만들어낼 수 있겠는가? 이러한 글들은 인간이 쓸 수 없는 글이다. 성경에는 이러한 구조가 끝도 없이 다양한 형태로 펼쳐진다.





1장의 구조가 이러하다는 것을 분석하면 다음과 같다.

삼상 1:1-28


# A 아들이 없는 한나
## A-1. 남편: 엘가나
1:1 에브라임 산지의 라마다임 소빔에 한 사람이 살고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엘가나로서 여로함의 아들이고, 엘리후의 손자이며 도후의 증손이고 숩의 현손으로 에브라임 사람이었다.

## A-2. 아내: 아들이 없는 한나
1:2 엘가나에게는 두 아내가 있었는데, 한 아내의 이름은 한나이고 다른 한 아내의 이름은 브닌나였으며, 브닌나에게는 자식들이 있었으나 한나에게는 자식이 없었다.

## A-3. 실로
### A-3.1. 여호와께 경배하는 엘가나(실로)
1:3a 이 사람이 해마다 자기 성읍에서 실로로 올라가 만군의 여호와께 경배하고 제사를 드렸는데,

### A-3.2 여호와를 멸시하는 엘리의 두 아들(실로)
1:3b 그곳에는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여호와의 제사장으로 있었다.
1:4 엘가나가 제사를 드리는 날에는 자기 아내 브닌나와 그 여자의 모든 자녀들에게 몫을 나누어 주되,
1:5 한나에게는 두 배의 몫을 주었는데, 이는 그가 한나를 사랑했기 때문이었다.


## B 한나의 태를 닫으심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그 여자의 태를 닫으셨다.
### C 한나의 슬픔
1:6 여호와께서 그 여자의 태를 닫으셨기 때문에 그 여자의 대적이 그 여자를 몹시 괴롭히고 업신여겼다.
1:7 그리하여 매년 한나가 여호와의 집에 올라갈 때마다 브닌나가 그 여자를 괴롭혔으므로, 그 여자가 울면서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1:8 그 여자의 남편 엘가나가 그 여자에게 말하기를 "한나여, 왜 울고 있소? 왜 아무것도 먹지 않소? 왜 당신의 마음이 슬프오? 내가 당신에게 열 아들보다 낫지 않소?"라고 하였다.

#### D 한나의 먹고 일어남
1:9 그들이 실로에서 먹고 마신 후 한나가 일어났는데,

##### E 엘리의 안일한 태도(성막 문 기둥 옆 의자)
그때 제사장 엘리는 여호와의 성전 문 기둥 옆 의자에 앉아 있었다.

###### F 한나의 건절한 간구
1:10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 여호와께 기도하면서 슬피 울며,
1:11 서원하여 말씀드리기를 "만군의 여호와시여, 만일 주께서 주님의 여종의 고통을 참으로 살펴보시고 저를 기억하시며 주님의 여종을 잊지 않으셔서 제게 아들을 주신다면, 제가 그를 평생 여호와께 드리고 그의 머리에 삭도를 대지 않겠습니다."라고 하였다.

###### --G 엘리의 오판
1:12 한나가 여호와 앞에서 오래 기도하고 있는 동안 엘리는 그 여자의 입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1:13 한나가 마음속으로 말하며 입술만 움직이고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으므로 엘리는 그 여자가 술에 취한 것으로 생각했다.
1:14 엘리가 그 여자에게 말하기를 "당신은 어느 때까지 취해 있겠소? 포도주를 끊으시오." 하니,

###### --g 한나의 오판 정정
1:15 한나가 대답하여 말하였다. "아닙니다, 내 주여. 저는 마음이 괴로운 여자입니다. 제가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니라 제 마음을 여호와 앞에 쏟아 놓은 것이니,

1:16 당신의 여종을 불량한 여자로 여기지 마십시오. 제가 근심과 괴로움이 많아 지금까지 말씀드렸던 것입니다."

###### f 엘리의 안일한 간구
1:17 그러자 엘리가 대답하여 말하기를 "평안히 가시오.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당신이 간구한 기도를 들어주시기를 바라오." 하니,
##### e 한나의 간절한 태도
1:18 한나가 말하기를 "이 여종이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합니다." 하고,

#### d 한나의 일어나 먹음
자기 길로 가서 먹었고,

### c 한나의 슬픔 사라짐
다시는 얼굴에 슬픈 기색이 없었다.



## b 한나의 태를 여심
1:19 그들이 아침 일찍 일어나 여호와 앞에 경배하고 라마에 있는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엘가나가 자기 아내 한나와 동침하니 여호와께서 그 여자를 기억하셨다.

1:20 한나가 임신하고 때가 되어 아들을 낳아 이름을 사무엘이라 불렀으니, 이는 '내가 여호와께 그를 구했다.'라고 말하였기 때문이다.

1:21 남편 엘가나와 그의 모든 가족들이 매년제와 서원제를 여호와께 드리기 위해 올라갔으나,

1:22 한나는 올라가지 않고 자기 남편에게 말하기를 "아이가 젖을 떼면 내가 그를 데리고 가서 여호와 앞에 보일 것이니, 그가 영원히 거기에 살게 할 것입니다." 하였다.

1:23 그 여자의 남편 엘가나가 그 여자에게 말하기를 "당신이 좋은 대로 하여 아이가 젖을 뗄 때까지 집에 머무르시오. 오직 여호와께서 그 말씀을 이루어 주시기를 원하오."라고 하였으므로, 그 여자는 집에 머물면서 젖을 뗄 때까지 자기 아들에게 젖을 먹였다.

# a 여호와께 드릴 아들이 있는 한나
1:24 그 아이가 젖을 떼었을 때, 그 여자는 아이와 함께 수소 세 마리, 밀가루 한 에바, 포도주 한 가죽 부대를 가지고 실로에 있는 여호와의 집으로 올라갔는데, 그 아이는 어렸다.

1:25 그들이 수소를 잡고, 아이를 데리고 엘리에게 가서,

1:26 한나가 말하기를 "내 주여, 내 주님의 살아 계심으로 맹세합니다. 저는 여기 당신 곁에 서서 여호와께 기도하던 여자입니다.

1:27 이 아이를 낳게 해 달라고 제가 기도했더니 여호와께서 제가 간구한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1:28 그러므로 저도 이 아이를 여호와께 드리니, 이 아이가 평생 동안 여호와께 드려진 자가 될 것입니다." 하므로 그 아이가 그곳에서 여호와께 경배했다.




사무엘상 3장을 살펴보면 또 다른 형태의 구조가 나타난다.


사무엘상 3:1-21 바른

# 사무엘:여호와님 섬김
1소년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겼는데,

# A 엘리 시대:음성, 비전 희귀
그 당시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고 환상도 자주 나타나지 않았다.

# B 엘리: 자기 자리에 누음
2b그가 자기 자리에 누웠고, (원어 어순대로)
# C 엘리: 눈 어두움
## 어두워지기 시작
2a엘리의 눈이 어두워지기 시작하여 잘 보지 못하던 어느 날

# c 사무엘: 등불 켜짐
3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않았으며

# b 사무엘: 성막에 누음
사무엘은 하나님의 궤가 있는 여호와의 성전에 누워 있었다.

# a 사무엘 시대: 음성, 비전으로 자신을 사무엘에게 나타내심
## 여호와께서 부르심(음성, 비전)
### 1. 첫 번째
#### 부르심
4여호와께서 사무엘을 부르시므로 그가 말하기를 "제가 여기 있습니다." 하고,
#### 엘리에게-무지
5엘리에게 달려가 말하기를 "제사장께서 저를 부르셔서 제가 여기 왔습니다." 하니, 엘리가 말하기를 "내가 부르지 않았으니
#### 엘리의 말-돌아가 누워
돌아가 누워라." 하였으므로, 사무엘이 가서 누웠다.
### 2. 두 번째
#### 부르심
6여호와께서 사무엘을 다시 부르시므로
#### 엘리에게-무지
사무엘이 일어나 엘리에게 가서 말하기를 "제사장께서 부르셔서 제가 왔습니다." 하니, 엘리가 말하기를 "내 아들아, 내가 부르지 않았으니
#### 엘리의 말-돌아가 누워
돌아가 누워라." 하였다.

#### 사무엘 아직 음성 알지 못함
7그 때는 사무엘이 아직 여호와를 알지 못했고, 여호와의 말씀도 그에게 아직 나타나기 전이었다.

### 3. 세 번째
#### 부르심
8여호와께서 다시 세 번째 사무엘을 부르시므로
#### 엘리에게-깨달음
그가 일어나 엘리에게 가서 말하기를 "제사장께서 부르셔서 제가 왔습니다." 하니, 엘리가 여호와께서 그 소년을 부르고 계심을 깨닫고,
#### 엘리의 말-여호와님께 답하라
9사무엘에게 말하기를 "가서 누워라. 만일 그분께서 너를 부르시거든 '여호와시여, 말씀하소서. 주님의 종이 듣고 있습니다.'라고 말하여라." 하므로, 사무엘이 가서 자기 자리에 누웠다.
### 4. 네 번째
#### 부르심
10그 후 여호와께서 오셔서 서시고 "사무엘아, 사무엘아." 하고 부르시므로
#### 여호와께
사무엘이 대답하기를 "말씀하소서. 주님의 종이 듣고 있습니다." 하니,
#### 여호와님의 말씀
11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말씀하셨다. "보아라,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한 가지 일을 하려고 하는데, 누구든지 그것을 듣는 자는 그의 두 귀가 울릴 것이니,
##### 내용: 엘리 집 심판
12내가 엘리의 집에 대하여 말한 모든 것을 그날 엘리에게 처음부터 끝까지 시행하겠다.

13그가 아는 죄악 때문에 그의 집을 영원히 심판하겠다고 내가 그에게 선포했으니, 이는 그의 아들들이 스스로 저주받을 짓을 했으나 그가 책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4그러므로 내가 엘리의 집에 맹세하니, 엘리 집의 죄악은 제물이나 예물로도 영원히 속죄받지 못할 것이다."


15사무엘이 아침까지 누워 있다가 여호와의 집 문을 열었으나 그 환상을 엘리에게 보고하기를 두려워하였다.

## 엘리의 부름
### 5. 다섯 번째 부름
#### 부름
16엘리가 사무엘을 불러 말하기를 "내 아들 사무엘아." 하니,
#### 엘리에게
그가 대답하기를 "제가 여기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 엘리의 말-예언 내용?
17엘리가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네게 말씀하신 그 말씀이 무엇이냐? 내게 숨기지 마라. 만일에 여호와께서 너에게 말씀하신 모든 것 가운데 어느 것이라도 나에게 숨긴다면, 하나님께서 네게 벌을 내리시고 또 내리시기를 바란다." 하였다.
#### 사무엘의 답
18사무엘이 그에게 모든 말을 다 하고 아무것도 그에게 숨기지 않으니,
#### 엘리의 반응-될 대로 돼라
엘리가 말하기를 "그분은 여호와이시니 그분의 보시기에 선한 대로 행하실 것이다."라고 하였다.

## 사무엘- 선지자
(모든 말 땅에 떨어지지 않아 온 이스라엘 그를 선지자로 알게)
19사무엘이 성장해 갔으며,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하셔서 그의 모든 말 중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셨으니,

20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 온 이스라엘이 사무엘은 여호와의 선지자로 세우심 받은 것을 알게 되었다.

## 사무엘 시대- 여호와께서 다시 나타나심-말씀으로 자신을 사무엘에게
21여호와께서 실로에 다시 나타나셨는데,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여호와의 말씀으로 사무엘에게 자신을 나타내셨다.

4:1 사무엘의 말이 온 이스라엘에 전파되니라



이를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사무엘상 3:1-21 바른

사무엘:여호와님 섬김


# A 엘리 시대:음성, 비전 희귀

### B 엘리: 자기 자리에 누음(원어 어순대로)
##### C 엘리: 눈 어두움

##### c 사무엘: 등불 켜짐
### b 사무엘: 성막에 누음
# a 사무엘 시대: 음성, 비전으로 자신을 사무엘에게 나타내심

1. 여호와께서 부르심(음성, 비전)
1.1. 첫 번째
부르심
엘리에게-무지

엘리의 말-돌아가 누워

1.2. 두 번째
부르심
엘리에게-무지
엘리의 말-돌아가 누워


2. 사무엘 아직 음성 알지 못함

2.1. 세 번째
부르심
엘리에게-깨달음
엘리의 말-여호와님께 답하라

2.2. 네 번째
부르심
여호와께
여호와님의 말씀
내용: 엘리 집 심판


3. 엘리의 부름
3.1. 다섯 번째 부름
부름
엘리에게
엘리의 말-예언 내용?
사무엘의 답
엘리의 반응-될 대로 돼라

4. 사무엘- 선지자(모든 말 땅에 떨어지지 않아 온 이스라엘 그를 선지자로 알게)

5. 사무엘 시대- 여호와께서 다시 나타나심-말씀으로 자신을 사무엘에게



# A 엘리 시대:음성, 비전 희귀

### B 엘리: 자기 자리에 누음(원어 어순대로)
##### C 엘리: 눈 어두움

##### c 사무엘: 등불 켜짐
### b 사무엘: 성막에 누음
# a 사무엘 시대: 음성, 비전으로 자신을 사무엘에게 나타내심


상하 대칭 구조가 기본이다. 이 구조의 마지막 "# a 사무엘 시대: 음성, 비전으로 자신을 사무엘에게 나타내심" 아래에 1-5번까지의 소항목들이 붙어있다. 사실 이 1-5번까지의 항목들의 내용이 위의 대칭 구조보다 길이가 길다. 하지만 길이가 긴 1-5번까지의 항목들이 상하 대칭 구조의 마지막 "# a 사무엘 시대: 음성, 비전으로 자신을 사무엘에게 나타내심" 아래에 붙어있는 독특한 구조다. 이 상하 대칭 대조 구조를 통해 말하려는 것은 구조의 형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음성과 비전으로 엘리의 시대에는 나타나지 않던 우리(하나님)가 사무엘의 시대에는 음성과 비전으로 사무엘에게 우리 자신을 나타냈다는 것이다. 이로서 우리가 이스라엘에 돌아와 왕이 됨으로 이스라엘은 구원과 평강을 누린다. 또한 "# a 사무엘 시대: 음성, 비전으로 자신을 사무엘에게 나타내심" 아래에 긴 1-5번 항목들이 붙음으로 대칭 구조 중 "# a 사무엘 시대: 음성, 비전으로 자신을 사무엘에게 나타내심"가 가장 길다. 그러므로 이를 통해서도 이 구조의 핵심이 "# a 사무엘 시대: 음성, 비전으로 자신을 사무엘에게 나타내심"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부분의 핵심 내용은 앞에 설명한 대로 우리가 사무엘을 통하여 이스라엘에 돌아옴으로 이스라엘은 구원과 평강을 누린다는 것이다. 구조를 분석하기 어려운 자들도 글을 읽으며 구조의 설계에 의해 자연히 구조의 핵심을 파악하게 된다. 또한 구조를 파악할 수 있는 두뇌가 뛰어난 자들은 구조의 분석을 통해 놀라운 핵심과 그 핵심으로 이끄는 글의 신비를 보게 된다.


이러한 기적적 구조를 가지고 글을 우리가 설계하여 쓰는 이유는 한 가지다. 바로 너희 구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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