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는 바람에 흔들리며 빛을 반사하는 식물들의 빛깔에 관하여
어릴 때부터 식물들이 좋았다. 보고 있으면 시간가는 줄 몰랐다. 식물을 관찰하고 그것을 연구하려는 궁금증은 아니었다. 그 색감이 주는 안정감과 그 색감이 마음으로 와 닿았다. 그래서 계속 보게 되고 보다 보니 관찰하게 되었다
아카시아를 예로 들어보겠다. 똑같은 아카시아도 봄에 나는 새싹은 앙증맞고 귀여웠다. 그 잎이 처음에는 작은 완두콩처럼 양옆으로 벌어지기 시작하며 그 눈망울을 틔운다. 그 처음은 너무나도 작다. 가까이서 눈을 들이대면 그 보이는 축소판으로 접어진 아카시아 새 가지와 그 잎들이 그 속에 있다. 그 색은 연하다가 진해진다. 아카시아는 다른 것들의 싹에 비해 그 색이 좀 짙다. 보통의 새싹들은 연한 연두 빛이 대부분이고 그것에 파스텔 톤의 연한 노랑이 섞이는 경우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아카시아는 다른 새싹들과는 다르게 그 잎이 더 푸르다. 그 푸른빛이 뭔가 어중간하면서도 처음에는 새싹이라 새싹 특유의 싱그러운 생명력이 도는 초록이다. 아마 그것이 나무에서 올라와서 그런가 보다. 땅에서 새로 줄기가 나오는 것들은 대부분이 연하다. 풀들의 싹은 대부분 연한 색을 가지고 있다. 나무의 새싹도 연한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진한 것들이 더러 있다. 아카시아는 그 처음부터 조금 진한편이다. 아카시아는 그 축소판의 가지와 잎들이 부채꼴로 펴지면서 자란다. 그렇게 해서 올해의 잎과 가지가 함께 나는 것 같다. 그 색은 소나무의 색보다 조금 더 흐리고 또 연하다. 그 푸름은 그렇게 또렷하지를 못하다. 그렇다고 그렇게 생명력이 넘치는 푸른빛도 아니다. 싱그러움은 처음 새싹일 때만 보이고 그 이후에는 그것이 흐려진다. 지금 이것은 내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목적도 없이 바라보았던 것을 기억으로 떠올리며 적는 것이다. 요즘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틀린 것도 있을 것이다. 아카시아 새싹을 마지막으로 본 것이 몇 십 년은 된 것 같다. 그래도 이해해주기 바란다. 뭐 성경 속의 진리를 연구하는 것도 아니고 식물학 도감을 쓰려는 것도 아니다. 그냥 내가 느끼는 식물의 색감을 기록하고 식물을 보는 내 마음의 감동을 기록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그 잎 자체가 주는 색감은 지치지 않는 밝음 즉 생명이다. 어떤 거친 곳에서도 비가 오래 오지 않아도 끝까지 살아줄 것 같은 그런 시들지만 죽지는 않을 것 같은 그런 약하면서도 질긴 생명의 색이다. 그리고 그런 생명이 가을이 되면 노랑으로 바뀐다. 은행잎에 비해 연한 노랑이다. 그렇다고 그 노랑이 강한 감동을 주는 특별함이 있는 노랑도 아니다. 아카시아 잎 자체가 크지는 않지만 그 수가 많다. 그 많은 수로 인해 나무 전체가 노랑으로 물이 든다. 연한 노랑이다. 그리고 그 노랑이 땅에 떨어져도 다른 낙엽들처럼 땅을 뒤덮지도 못한다. 크기가 너무 작아서 바람에 날려 여기저기로 흩어질 뿐이다. 그래도 그 연함으로 특별한 감동을 주지는 못하지만 특별한 관심도 끌지 못하지만 자신의 소임을 다하고 땅에 떨어진다. 어느 이름 없던 예수쟁이의 순교가 그러할까?
아카시아에서 그나마 봐줄만한 아름다움은 꽃이다. 아카시아 꽃은 이미 그 향기로 주변을 새끈하게 만든다. 마치 우유 빛 얼굴에 붉은 빛이 도는 갈색 머리 아가씨가 연둣빛 모자를 쓰고 총각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향기다. 아카시아 꽃이 작아도 딱 그렇게 생겼다. 달콤한 우윳빛깔이다. 그 우윳빛 얼굴처럼 생긴 갸름한 꽃 위에 꽃받침이 있는데 그 색은 연두색이다. 그리고 그 연두색과 우윳빛이 만나는 부분은 붉은 빛이 강한 갈색이다. 꽃도 잎처럼 그렇게 작지만 수는 또 엄청나다. 한 송이에 수십 개의 꽃이 달린다. 한 나무에는 수천 수만의 꽃이 달린다. 그것이 늘어져서 마음을 설레게 하면 온 주변이 달큰해진다. 작고 이름 없는 어느 하나님의 작은 종들의 합창과도 같이 그 향기는 온 주변을 감동시킨다. 아마 천국에서 많은 물소리를 내는 그 성도들을 멀리서 보면 아카시아 꽃같지 않을까? 흰 세마포를 입은 수많은 그 작은 인영들이 모여 있는 것이 그렇게 보이지 않을까?
이름 없이 미개척의 땅에서도 사막의 경계에서도 그 생명을 유지하고 땅을 새롭게 일구어 생명이 살 수 있는 땅으로 만드는 그런 죽지 않는 영생의 생명력을 가진 성경 속 싯딤나무처럼. 어디서나 볼 수 있기에 그럼에도 질기고 가볍기에 성막의 재료가 되는 그런 흔한 이름 없는 순교자들의 향기가 아닐까? 그 향기를 맡으신 주님은 그 향에 이끌리어 그들에게 다가오시지 않을까? 저 릭 조이너의 글 속에 예수님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영광을 누렸던 안젤로처럼 그런 꽃들이 그리고 그렇게 힘도 없이 이름도 없이 떨어지는 수많은 옅은 노랑의 심지어 붉은 핏기조차 갖지 못하고 골아서 떨어지는 그런 낙엽들이 아카시아는 아닐까? 아카시아는 아마 에클레시아에서 가장 작고 볼 품 없지만 주님의 마음을 아리게 했던 이름 없는 순교자들의 이름은 아니었을까? 그 떨어지는 잎을 보면 저 데이비드 브레이너드가 그려진다. 그렇게 젊은 나이에 이름도 없이 연한 노란 빛으로 곯아서 떨어진 그가 그려진다. 백인들의 금과 광물에 대한 탐욕에 터전을 잃고 생명도 잃는 인디언들을 위해 노숙을 밥 먹듯 하며 외진 곳에서 추위와 외로움을 견디다 시들어간, 순교자지만 순교의 피는 없었던 그가 아카시아 낙엽 중 하나는 아니었을까? 그의 이름은 주님의 마음에 피멍울로 남아 있지 않을까? 그 이름의 향기는 주님을 사랑에 취해 달큰한 행복에 젖게 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 이름은 주님이 결코 잊어버릴 수 없는 죽어 떠나간 님의 이름이 아닐까? 그래서 그 죽어서 만난 자를 다시는 잃고 싶지 않아 가장 가까이에서 품고 결코 놓아주지 않을 사랑의 이름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