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는 바람에 흔들리며 빛을 반사하는 식물들의 빛깔에 관하여
이효석의〈 낙엽을 태우며〉라는 수필이 있다. 교과서에도 실린 적이 있었는가 보다. 그러나 내가 배운 교과서에는 그 글이 실리 지를 않았다. 고등학교 때 그중 일부를 누군가 적어 주었다. 앞부분만 보면 산문채 시로 볼 수도 있었다.
그 글을 적어 준 친구는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모임을 같이 하던 친구 중 하나였다.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영화를 고등학교 때 보고 나서 고등학교 동창 몇 이서 만든 모임이었다. 어느 공휴일 학교가 쉬는데 자발적으로 학교에 나와 공부를 하자며 모인 범생이들끼리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영화를 본 감격에 즉흥적으로 만든 모임이었다. 죽은 시인의 사회에 대해 말하던 중 친구들은 바로 가방을 싸서 학교에서 뛰쳐나왔다. 누가 누구랄 것도 없이 학교 뒷산으로 올라갔다. 그 산길을 따라 걸으며 산을 등산해 산을 아예 넘어 버렸다. 그 사춘기의 열기가 그 정도로는 사그라들지 않았다. 그 길은 해운대로 이어져 있었다. 사실 걸어서 해운대까지 가려면 3 시간은 걸어야 했다. 그래도 그 길을 가본 적 없는 아이들은 이미 산을 넘어와 피곤한 다리와 오후 중턱 시간을 고려하지도 않고 해운대로 가자고 했다. 그 길 위에서 말이 없이 걷기도 했고 또 작은 마디 말로 수만 마디의 말을 하기도 했다. 말은 많았으나 단 한 마디의 말보다 더 작은 의미가 들기도 했다. 그렇게 함께 걷던 아이들은 해운대에는 못 다다랐지만 다음 날부터 하나로 뭉쳤다. 그리고 범생이들답게 노트 한 권을 만들어 그곳에 고민과 철학 그리고 문학을 나누기 시작했다.
그러다 한 아이가 이효석의 〈낙엽을 태우며〉의 앞부분 뒤에 각자 자신의 글을 적어오자고 제안했다.
낙엽을 태우며
이효석
가을이 깊어지면, 나는 거의 매일같이 뜰의 낙엽을
긁어 모으지 않으면 안 된다.
날마다 하는 일이언만, 낙엽은 어느새 날아 떨어져서,
또 다시 쌓이는 것이다.
나무는 그 마지막 생의 순간에
그렇게 자신을 불태운다.
그 붉게 물든 떨리는 손으로 피를 흘린다.
그리고 그 자신의 흘린 피로 대지를 적신다.
그 피의 흔적 주검의 갈 빛을 모아
나는 오늘도 불사른다.
그 고난은 불타는 피 아픔 올리브산 피 고통
그를 태워 하늘에 향기를 올린다.
나무는 그 흘린 피와 같이 붉고
그 상처로 곪은 노란 빛깔의 열매를 맺는다.
그 안 그 씨는 부활의 씨앗이다.
나무는 그렇게 나목으로 주검을 맞는다.
그리고 봄의 부활,
나목 그는 푸름으로 살아 생명의 잎을 돋운다.
그가 붉게 피를 흘려 낳은 그 씨들도
그 부활의 생명으로 움튼다.
자연의 색감을 관조하다, 나는 그 빛들에 의미가 들어있음을 알게 되었다. 자연을 창조한 의도가 모든 생태와 색감 안에 숨겨진 비밀의 언어가 되어 흐른다. 그래서 그 안에는 거대하고도 세세한 통일성이 있다.
직감은 순간의 빛에 대한 인식이다. 관찰은 흘러 변하는 빛에 대한 오랜 관조다. 심장은 빛의 물결을 따라 물들어 뛰는 선율의 멜로디다. 머리는 흐르는 빛의 코드들을 해석하는 생각의 로직이다.
그 데이터를 쌓고 쌓으면 알고리즘이 보인다. 그 알고리즘들은 다시 글로 만들면 문학이다. 색으로 만들면 미술이다. 소리로 만들면 음악이다.
그래서 미술작품들을 보면 그린 작가의 마음과 생각을 읽을 수 있다. 한 목사님의 동생이 그린 그림을 보고 "이 분은 우울증이 아주 심하고 자살도 여러 번 생각하신 것 같네요"라고 했는데 그 목사님 말씀이 자기 동생이 그렇다고 했다. 그때는 내가 미술심리를 배우지도 않았을 때였다.
음악은 작곡자의 심상을 해석한 연주자의 심상이 만나 온몸을 따라 스며드는 한 줄기 세밀하고 잔잔하며 때로는 광포한 빛이다. 들으면 작곡자가 누구인지 누가 연주했는지 알 수 있다. 그래서 가장 이성적인 기질인 것 같은 내가 연주는 가장 감성적인 것에 빠져든다. 가장 순수하고 정갈하며 자기감정에 진솔한 마음이 어느 테크닉도 이를 수 없는 보다 뛰어난 명품 악기가 된다. 그런 마음은 처음에는 서툴러도 그 마음을 담아내고 담아내다 그것이 경지에 이르면 중후하고 깊은 소리의 빛을 만들어낸다. 그 빛의 파장은 듣는 사람 몸으로 스며들어 심장의 멜로디에 불을 붙인다.
그리고 그 빛들의 끝 그곳을 향해 가면 그 끝 가장 지고한 곳엔 빛들의 아버지가 계신다. 희미하게 알아 어릴 때부터 찾아 헤매던 그 빛을 나는 스물 두해 그 가을에 만났다. 그처럼 따사롭고 밝고 포근한 그 어떤 것도 세상엔 없다. 그 외에 다른 어떤 곳에서도 그런 경이와 아름다움과 사랑을 만나지 못했다. 그 안에서 시간을 잊은 채 나는 하염없는 눈물을 흘렸다. 그 빛들의 원초의 말, 그 가장 높은 곳에 존재하는 그리고 가장 가까이 내 내면 깊은 유전자에 각인된 그 소리를 만나기 전엔 나에게 만족이란 없었다. 모든 것의 모든 것. 저 로마에서 마지막 불사름을 당한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 가죽 수선공이 텐트를 치며 전했던, 가장 아름다운 원초의 말, 그분을 만난 것이다. 그 소리를 따라 광야의 길을 걷고 수많은 눈물의 골짜기를 만나며 보았던 세상은 참 아름다웠으나 추악했으며 행복이 가득했으나 슬픔의 늪이었다. 인생은 그 소리가 주는 쉼의 안식이 없이는 결코 걸어낼 수 없는 가득한 고난의 눈물이었다. 죽음의 골짜기를 많은 샘의 곳이 되게 하는 베들레헴 출신 목동의 목자장이 없이는 그의 지팡이가 없이는 결코 인생이라는 골짜기는 견딜 수 없는 주검의 곳이다. 그분이 나를 간난 쟁이 안듯 안고 걸어오신 그 길을 뒤돌아보며 그 빛은 따사롭고 황홀하며 모든 눈물을 씻을 빛이었음을 떠올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