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는 바람에 흔들리며 빛을 반사하는 식물들의 빛깔에 관하여
모든 자연은 그 색감으로 말하는 코드의 알고리즘이 있다. 그 알고리즘은 여러 스펙트럼이 있다. 그러한 것들 중 꽃의 색감은 가장 원색적이고도 가장 화려하다. 그것은 풀의 영광이다. 가장 아름답고 빛나는 순간들의 기록이다.
그런 꽃의 색 대부분은 붉은 계통이다. 피의 색이며 상처의 색이다. 물론 다른 계통의 색도 있지만 그것들도 대부분 인간의 상처가 낼 수 있는 변형의 색이다. 상처가 나면 붉은 피를 흘린다. 그리고 그 피의 색은 붉다. 피처럼 붉은색을 영어로는 크림슨 래드라고 부른다. 그 피는 점점 굳어지며 색이 검붉게 변하기도 한다. 결국 그 피의 딱지는 검은색이 되기도 한다. 또 그 피를 물에 씻으면 색이 옅어진다. 또 힌 천으로 닦으면 피처럼 붉은색에서 연한 핑크까지 다양한 색을 이룬다.
멍이 든 곳은 푸르기도 하며 검기도 하다. 또 나아가며 노란빛을 띠기도 한다. 또 곪아가며 고름이 나오는데 그 고름도 다양한 색을 띤다. 흰빛에서 흰색과 노란색이 섞이기도 한다. 또 붉음이 섞이기도 한다.
피의 색과 상처의 색이 어우러지면 정말 다양한 색감을 만들어낸다. 푸름과 흰 빛 그리고 붉음과 노랑 등 다양한 색의 조화를 만들어낸다. 다양한 꽃들의 색은 이렇다.
이 모든 것은 나무나 풀의 줄기에 달려 그 가지에서 피어난다. 나무에 달려 그 가지의 끝과 같은 손과 발에 상처를 입고 피를 흘린 그것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다. 그것이 꽃이다. 바로 풀의 영광, 식물의 영광인 것이다. 피 흘리신 자리는 하나님의 스티그마이며 수치의 자리다. 창조자가 피조물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자리다. 추잡하고 비루한 사탄의 음모와 머리는 텅 비고 오직 자신들의 추악한 탐욕에 침을 흘리는 이리 같은 인간들의 본능적 모호한 비루함에 의해 하나님이 매를 맞고 피를 흘리셨다. 고통 속에 죽어가신 것이다. 전능한 신이 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로서 신은 더 이상 전능이나 영광 같은 수식어를 버려야 할 수도 있는 비참함에 처해진듯하다.
그러나 십자가의 죽으심은 하나님의 가장 지극한 영광이다. 그 어떤 존재도 미물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버리지 않는다. 자존심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선택할 수 없는 길이다. 창조자가, 전능자가 유한한 피조물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는 것은 그 전능함이 거짓으로 증명되는듯한 끔찍하고 숨기고 싶은 좌절의 순간인 듯도 하다. 그러나 그 수혜를 입은 죄인에게는 가장 아름다운 은혜의 증거가 십자가의 죽으심이다. 십자가는 자신을 사랑한 사랑이 자신을 위해 생명을 내어 놓은 잊을 수 없는 사랑의 이름이다. 지옥의 불길에서 자신을 건져주기 위해 사랑이 내어버린 모든 것의 가치의 희생의 이름이다. 눈물 정도론 도저히 표현할 길 없는 가슴속 감격의 화산이다. 기록할 수 있는 모든 언어를 동원해도 다 표현할 길 없는 아름다움의 언어다. 그것이 십자가이며 그 십자가를 기록한 코드의 알고리즘이 꽃이다. 그리고 그 주검의 다른 알고리즘은 단풍이다. 그 가지의 끝에 달린 다섯 가락이 달린 손과 발의 바닥에서 흘린 피의 스펙트럼이다. 꽃과 단풍, 열매는 가장 아름다운 나무의 세 부분이며 세 시절이며 세 번의 떨어지는 주검이다. 식물에서 아름답게 달렸다, 떨어지는 모든 것들은 그렇게 아름다운 색감을 가진다. 바로 떨어져 썩어지는 주검의 과정을 그리는 주검의 색이며 피의 색이며 주검을 향해 자신을 내어 던져 새로운 생명을 피어내는 희생의 숭고함이다. 그 숭고함의 색이 자연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과 열매와 잎(단풍)의 색이다.
단풍은 가을에 붉게 물들고 노랗고 그 결국엔 희고 주검의 갈빛이고 그리고 썩어 검어지기도 하는 색이다. 가을을 물들이는 가장 아름다운 색의 향연이다. 마지막 주검으로 가는 나목의 흘리는 눈물의 피이며 그 피의 소리며 노래다. 그 마지막 외침이 낙엽이며 낙엽으로 가는 주검의 길이 단풍이다.
단풍은 우리말에서 나무의 종류를 뜻하는 단어이면서 동시에 가을 잎들이 물드는 빛의 스펙트럼이다. 그중 빨강, 주황, 노랑의 스펙트럼이 주를 이루는 것이 단풍이다. 왜 단풍이 든다는 표현이 유독 단풍나무라는 나무에는 이름으로 사용된 건인지? 그 나무에만 그 이름이 붙은 것인지? 가을에 거의 모든 나무는 단풍이 든다. 사계절을 푸른 상록수도 한 계절 가을에는 물들지 않지만 그 잎 갈이를 하는 시점에는 단풍이 진다. 이렇게 모든 나무가 단풍을 가지는데 왜 유독 한 나무에게만 단풍이란 이름을 붙인 것일까? 그것은 가을에 지는 모든 단풍보다 이 나무의 단풍이 가장 아릅답기 때문일까? 산이 붉게 단풍으로 물들 때 그 색은 이 단풍나무가 내는 색으로 인해 그렇게 붉어진다. 다른 나무의 단풍들은 그 색이 연한 노랑에서 진한 붉음까지 다양하다. 그런데 그 어떤 나무보다 많은 붉음을 가을에 이루는 것이 단풍나무다. 유명한 내장산 단풍도 이 단풍나무가 주를 이루어 내는 색이 물드는 것이다. 그래서 단풍은 단풍이 된 것이다. 단풍이 단풍이 된 것은 그렇게 타고났기 때문이다. 그를 만든 분이 그를 단풍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단풍이 단풍인 것은 하늘의 형상을 가진 즉 새의 형상을 가진 자가 땅에서 나무에 달려 피를 흘려 죽었기 때문이다. 아래에 그 짧은 설명이 있다. 다음에 힘이 된다면 더 자세히 적어보겠다. 지금은 힘이 다하여 이렇게 짧은 마디를 내어놓을 수밖에 없다.
단풍도 종류가 많다. 영어로 메이플이라고 부르는 것들도 모두 단풍이다. 단풍국인 캐나다 국기에 그려진 단풍잎을 보면 알 수 있듯 붉은 단풍이 메이플이다. 심지어 우리가 고로쇠 수액을 받아먹는 고로쇠도 단풍나무의 종류 중 하나다. 설탕단풍 즉 슈가메이플이라는 외국 수종은 우리의 고로쇠보다 몇 배 높은 당도를 가지고 있다. 붉음으로 유명한 내장산 단풍은 내장산 단풍이라는 또 다른 수종으로 분류가 된다. 요즘은 봄부터 붉은 적단풍이 많이 보이기도 한다.
단풍나무는 봄에 싹이 날 때 처음 나는 어린싹이 약간의 붉은색을 가진다. 연한 듯하면서도 약간의 짙음을 가진 연둣빛 잎의 싹에 도는 붉음은 그것이 단풍나무의 새순임을 말해주려 새싹의 주변을 맴도는 듯하다. 마치 그 마지막 운명이 붉게 타다 떨어질 것임을 암시하듯 그렇게 핏기가 어려있다. 그러다 이 붉음이 잎이 커지면서 사라져 버린다. 그러나 어떤 나무들은 그 핏기가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기도 한다. 단풍잎은 가지의 가운데와 가지의 끝을 가리지 않고 돋아난다. 물론 나뭇가지의 가운데 있는 잎도 굵은 가지에 난 작은 가지의 끝에 잎의 줄기를 달고 매달려 있다. 그런데 그 숫자가 여름과 가을 동안은 무수히 많아진다.
일반적인 단풍은 그 잎에 다섯 개의 가락이 있다. 그 모양이 특이하다. 사람의 손가락과 같지는 않지만 오리발처럼 물갈퀴를 가진듯한 다섯의 가락이 있다. 마치 새의 발처럼 특히 하늘과 땅과 바다를 동시에 살아가는 조류의 발 모양을 가지고 있다. 오리발인데 다섯의 발가락을 가진 모양이다. 이 발가락은 살아서 활동할 때 계속 푸름을 유지한다. 생명의 초록을 가진다. 여름 동안 열심히 일을 한다. 그 일을 통해 나무의 뿌리와 기둥, 가지를 살찌운다. 그리고 무엇보다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새의 손이며 또 사람처럼 다섯 가락을 가진 손모양으로 생긴 잎은 여름과 가을 무수한 노동을 한다. 그의 일은 태양으로부터 비롯된다. 태양의 빛을 받아들여 그것으로 힘을 삼아 자신을 땅과 하늘의 힘으로 살찌운다. 하늘의 힘을 가지고 땅에서 끌어올린 양분을 새롭게 변화시킨다. 그 변화의 핵심은 빛이다. 빛의 힘으로 땅에서 올라온 것들은 변화를 얻는 것이다. 땅의 것이 하늘의 기운을 받아 새로운 변화를 겪는 것이다. 뿌리를 통해 땅에서 끌어올린 것은 생명이 없는 무기물이지만 빛의 기운을 받으면 생명을 가진 존재에게 생명을 주는 양분으로 변화한다. 그 양분을 통해 식물은 자신의 생명을 키운다. 세포는 빛의 양분으로 힘을 얻어 자신을 자라게 하고 세포를 늘려 자신을 아름답게 단장을 한다. 이런 작용을 빛을 통해서 합성한다 하여 광합성이라 부른다. 바로 빛의 메커니즘인 것이다. 새이며 또 사람의 손발 모양으로 생긴 잎은 이렇게 하늘의 빛을 받는 것이 그 손으로 하는 일인 것이다.
가을이 되어 열매가 다 익고 그 손의 일을 다하면 그 손은 붉음으로 물들어 피꽃을 피운다. 그러다 주검의 갈빛이 되어 나무에 달린 자리에서 내려진다. 그렇게 땅으로 떨어진다. 나무에 달려 피꽃을 피우며 저주를 받고 주검이 되어 나무 십자가에서 내려진 저 먼 그때 야곱의 땅에 있었던 하늘의 사람처럼.
단풍잎 모양의 푸른 잎들이 단풍나무를 뒤덮으면 단풍은 아주 작고 하얀 꽃을 피워낸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꽃으로도 보이지 않을 작은 꽃들이 무수히 피어난다. 내 기억에 있는 단풍나무의 꽃은 그 꽃과 그 안에 있는 수술과 암술을 육안으로 관찰할 수 없을 만큼 작다. 그래서 그냥 흰점들이 여러 개 뭉쳐서 잎들의 사이에 매달려 있는 듯이 보인다. 꽃은 그렇게 작은데 그곳에 맺히는 열매는 결코 작지 않다. 열매의 모양도 특이하다. 마치 천사의 날개처럼 생겼다. 처음에는 연녹색에 흰빛을 머금고 있다가 열매가 익어가면서 그 색이 점점 붉어진다. 가운데에 씨를 품고 있는 씨방이 있는 단단한 씨앗이 두 개가 붙어있다. 그 두 개가 붙은 씨앗에 각각 날개가 달려있다. 그 모양이 딱 우리가 그림에서 보는 천사의 날개처럼 생겼다. 날개가 거꾸로 나무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열매를 품은 날개는 붉어지고 붉어지다, 핏빛을 띠게 되면 열매가 익어서 떨어질 때가 온다. 익어서 떨어질 때는 붉은 피를 흘리다, 주검이 되어 갈빛이 된다. 결국 주검이 되어 땅에 떨어져 영원의 씨앗이 된다. 열매가 떨어질 때가 되면 천사의 두 날개가 가운데서 부러져 버린다. 두 개의 날개가 서로 분리가 되어 부러진 하나의 날개가 되어 각각 땅으로 떨어진다. 그 한 날개로 추락하는 모양이 아름답게 회전을 한다. 그 떨어지는 모양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어 헬리콥터의 로터엔진 위에 달린 회전날개를 만들었다고 한다. 사람들이 흔히들 단풍나무는 종류에 따라 날개가 하나인 것도 있고 두 개인 것도 있다고 하는데 그것은 사람들이 단풍의 열매를 보는 시기가 각자 달라서 그런 것이다. 푸르게 달려서 붉게 익어가는 동안은 날개가 두 개였다가, 익어서 땅에 떨어져 심길 때는 부러져 하나가 되는 것이다. 자신은 부러져 주검을 맞고 그 주검이 심겨 많은 열매를 맺는 새 생명을 탄생시키는 것이다. 자신의 주검을 심어서 부활로 다시 살아난 피의 왕이 그랬던 것처럼 하늘의 사람으로 자신의 날개를 꺾고 그렇게 땅에 심긴다.
가을의 피흘림을 상징하는 단풍나무가 그 잎과 열매의 모양을 하늘의 존재인 새를 본뜬 것은 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잎은 하늘과 땅과 바다를 다니는 새의 모양이다. 그러데 그것이 일반적인 새와는 다르게 사람의 손과 같이 다섯의 가락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열매는 천사의 날개 형상을 하고 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진화론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우연히 된 것이 아니다. 우연히 된 것은 하나도 없다. 피의 붉음과 단풍의 붉음의 스펙트럼은 일치한다. 그것이 우연일 수 있는가? 식물이 그 생명력을 잃어갈 때 보이는 색들이 피의 스펙트럼이다. 그 푸르른 생명의 색을 잃고 그 생명의 색이 옅어지면 그곳에는 죽음의 피 스펙트럼이 물들어온다.
그래서 그 붉음으로 피어나는 단풍은 내 사랑의 이름이며 그의 피 흘리는 떨리는 손이다. 가을이면 나는 피 흘리는 십자가의 그 떨리는 손을 맞이한다. 그를 해마다 다시 보며 또 다시 그 붉음에 감격한다. 그리고 그 목 매이는 붉음에 가슴이 아려온다. 내 어찌 그를 잊겠는가? 그의 사랑 가이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