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들에 관하여 5

지나는 바람에 흔들리며 빛을 반사하는 식물들의 빛깔에 관하여

by 에스겔

어려서 산 적 있는 마을에는 ‹승무›라는 시를 지은 시인 조지훈의 생가가 있었다. 그곳 종택 한켠에 세를 들어 몇 년을 살았다. 도시에서 생활하다 고향에 돌아와 결혼하고 농사를 처음 지으셨던 부모님이 농사를 망쳐 빚을 지고 그 집 사랑채 옆에 세를 사셨다. 몇 년 후 고추가 유명했던 그 지역에 병해가 발생했다.


고추는 노랗고 작은 동전 모양 씨앗에서 연두 빛 싹을 틔운다. 두 개의 뾰족한 잎이 나오고 그것이 점점 두꺼워지고 옆으로 넓어져가며 나뭇잎과 같은 모양이 형성이 된다. 잎이 자라 가며 줄기도 굵어져 간다. 그렇게 자라던 줄기가 둘로 갈라지고 또 그 갈라진 줄기가 또 둘로 갈라지고 그렇게 자라다 갈라지는 Y자 줄기 가운데에 꽃을 피운다. 흰 꽃은 꽃잎이 모두 하나로 붙어있다. 호박꽃이나 나팔꽃이 그런 것처럼 꽃잎이 모두 연결되어 원통형을 이루고 그 끝은 벌어진다. 작은 흰 꽃 안에 연한 참외 빛 수술이 있다. 벌들이 이 작은 꽃을 방문하고 나면 그곳에 작은 열매가 맺힌다. 그것이 고추다. 처음에는 열매가 흰 꽃의 속 씨방에서 자라나며 그 흰 꽃잎 사이로 나온다. 그리고 결국 꽃잎은 떨어진다. 시들어 가며 떨어지는 작은 꽃잎은 갈 빛으로 물들고 떨어지면 너무 작아서 금세 사라져 버린다. 연하고 작은 열매는 색도 옅고 비리비리하다. 그러다 점점 열매가 자라 가며 색이 짙어진다. 그리고 그 특유의 에나멜 광택이 나타난다. 누가 왁스칠을 하지 않았는데도 광택이 왁스를 칠한 어떤 것보다 뛰어나다. 진하고 푸른 초록 광택의 열매가 자란다. 그리고 그 열매가 익어 가면 점점 선홍색 살아있는 핏빛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그 붉음이 푸름을 이기고 붉게 익어간다. 그렇게 붉게 익은 열매는 수확을 하고 태양 빛에 말리게 되는데 그 색은 진한 반투명한 에나멜 광택이 있는 핏빛으로 변한다. 그 핏빛 속으로 노란 동전 모양의 씨앗들이 비친다.


자연에서 그 열매가 완숙이 되어 진한 선홍색 핏빛을 띄면 열매는 떨어진다. 그리고 그 안에 노란 작은 동전 모양의 씨앗들이 다시 싹을 틔운다. 우리나라에서는 열매가 떨어져도 거기서 다시 열매를 맺을 때까지 씨앗이 자라지 못한다. 가을에 싹이 나도 겨울이 되면 다 얼어 죽는다. 고추는 중앙아메리카가 원산지로 멕시코에서 처음 재배되었다. 열대지역이다. 그러니 자연적으로 발아된 씨앗이 다시 다음세대를 위한 열매를 맺고 씨앗을 생산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우리나라처럼 겨울이 있는 곳에서는 고추를 수확하여 그 씨앗을 사람이 보관하고 다음 해 봄에 새로 심어주어야 한다. 고추 열매는 씨앗을 키우기 위해 열매 자신을 보호하는데 그 보호하는 방법이 캡사이신이라는 매운 물질이다. 그 매운맛으로 인해 해충들이 잘 달려들지 못한다. 그런데 그 해충 방지용 물질을 우리 인간들이 즐겨 먹고 그 매운맛을 얻기 위해 고추를 재배하는 것은 아이러니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병이 들면 그 열매가 그렇게 익어가지를 못하고 희거나 검게 되어 썩는다. 그렇게 되면 열매는 견디지 못하고 땅에 떨어진다. 그곳에는 씨앗이 없다.


그 해 전국적으로 병해가 심했다. 그런데 기적같이 우리 부모님이 경작하시던 밭은 병해를 피해 갔다. 병해로 수확량이 많이 줄었던 그 해 고추 값은 폭등했다. 부모님은 큰돈을 버셨다. 몇 년 모은 돈과 그 해 크게 번 돈을 모아서 새로운 집과 밭을 마련해 윗마을로 이사를 했다. 그 집 바로 옆에 교회가 이사를 왔다. 그 지역에 있던 유일한 교회였는데 나는 그곳에 다니게 되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도 전에 살았던 조지훈 생가 마당과 그 집에 있던 툇마루가 생각이 난다. 그곳에서 조지훈을 본 기억은 없다. 찾아보니 내가 그곳에 살았던 때(70년대 말)에 조지훈(1920~1968)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집은 태어나고 성장한 곳이고 장성한 후에는 고향 영양을 떠나 서울에서 생활했을 것 같다. 그 집에서 우리 가족 외에 내가 본 사람은 마루에 항상 앉아있던 할머니 한 분이었다. 머리가 입고 있는 한복의 색처럼 하얗게 바랜 할머니였다. 지금 나의 짐작에 그 당시 할머니의 연배를 생각하면 아마 조지훈의 어머니였던 것 같다. 그때는 어린 나이라 조지훈이라는 시인을 알지도 못했다. 단지 그 집이 조 씨들의 집이었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그리고 옅은 파스텔 톤 황토가 다져진 그 집의 마당이 있었다. 오래된 한옥과 마당의 색과 비슷한 황토와 흰 회벽이 어울려 파스텔 톤을 이루고 오래되어 그보다 진한 검은빛이 도는 한옥의 목재들이 있었다. 커서 다시 가보니 조지훈의 생가 옆에는 조지훈 문학관이 세워져 있었다. 지금 있는 지훈문학관은 그 시절 있던 집과는 다르다. 아마 문학관을 만들면서 새로 지은 것 같다. 집의 형태는 ㅁ자로 옛 집 형태들 그대로인데 집은 새로 지어진 다른 집이다. 옛집들이 오래되었지만 훨씬 운치가 있다.


그곳 앞에는 갈대가 피어있는 시내가 흐른다. 그리고 시내의 아래로 조금 가면 느티나무들이 있었다. 어릴 적 기억에 그 느티나무 군락들은 엄청나게 큰 나무들이었다. 그 느티나무 군락들 사이로 시내가 흐른다. 느티나무와 시내 사이에는 작은 돌들이 있었고 시내 바닥에도 크고 작은 돌들이 놓여있었다. 그 돌들에는 이끼가 자라고 있었고 이끼의 초록과 그리고 바위에 스며든 초록이 검은 돌에 스며 나왔다. 여름 느티나무는 왕성한 잎을 돋아 올렸고 그 잎은 햇볕을 막아주며 그 햇볕으로 인해 밝은 연 초록빛을 투과했다. 느티나무는 한 그루만으로도 햇빛을 차단하고 그늘을 만들기에 충분하다. 시골에 가면 사람들이 나무그늘아래 평상을 두고 쉬는데 그 그늘을 만들어 주는 집체보다 크고 둥근 형태를 가진 나무가 느티나무다. 한 그루만 해도 그런데 그 나무가 군락을 이루면 그 숲에는 햇볕이 직접 투과되기 어렵다. 느티나무 잎으로 가려져서 그 잎들을 통해 투과된 연한 녹색이 하늘을 가득 채운다. 그 나무들 아래는 시원하고 상쾌한 바람이 부는 그늘이 생긴다. 그 그늘의 색은 검은 것이 아니라 초록이다. 그 초록이 숲을 가득 채우게 된다.


나무의 아래에는 연한 초록의 풀들이 자라났는데 그 풀잎들의 끝은 연두로 물들어 있었다. 풀들은 그늘에 있기 때문에 크게 자라지 못하고 잔디와 같이 적당한 크기로 자란다. 그 색도 햇빛을 많이 보지 못해 연했다. 그 초록의 풀들이 융단처럼 시냇가 공터에 깔려 있었다. 가운데는 햇빛이 많이 차단되어 풀의 길이가 짧았다. 그리고 느티나무 숲의 가장자리는 햇빛이 많이 비쳐 풀의 키가 컸다. 그 느티나무 숲은 초록 그늘에 초록 융단이 깔린 온통 초록의 생명으로 가득 찬 곳이었다.


그 초록이 물에 닿아 물을 신비로운 색으로 빛나게 한다. 물속에 자라는 물이끼의 빛도 푸른 초록이지만 햇볕을 투과해서 비친 물은 그 자체로 황홀한 초록을 만들었다. 흐르는 시내지만 갑자기 폭이 넓어지고 깊어진 곳에서 물은 천천히 흐른다. 그곳 폭이 넓어 큰 연못이라도 이루면 물은 연못을 채우고 다시 연못에서 넘쳐 나와 천천히 흐른다. 연못처럼 그곳에서 물은 작은 호수처럼 모였다. 흐르는 물은 잔잔했다. 그리고 고요했다. 그곳의 물은 그런 느낌이었다. 흐르지만 아주 천천히 흐르고 너무 맑아서 아래까지 보였다. 바닥에 있는 돌들은 적당하게 검고 붉으며 또 황토색이 섞여 있었다. 그런 돌에 초록 이끼가 얇게 끼여 있었다. 햇빛이 느티나무 잎에 적절하게 차단되어 이끼가 많이 자라지는 못했다. 그래서 적당하게 돌의 색을 보여주면서 돌은 이끼의 진초록으로 덮여있었다. 그러면서 숲이 물들이는 초록에 물들어 있는 물은 어린아이의 눈에 신비하면서 깊고 깊은 생명이 흐르는 것처럼 보였다. 그 깊이가 그렇게 깊지는 않았지만 넓은 그곳의 물은 천천히 흘렀다.


어른이 되어 20년 만에 고향을 찾았을 때 모든 풍경은 어릴 때에 비해 많이 축소되어 있었다. 그래서 어릴 적에 호수처럼 보이던 그곳이 그렇게 크지 않음을 짐작하게 되었다. 시간이 부족해서 그곳 느티나무 숲에 내려 들어가 보지는 못했다. 주곡리 안에 있는 주실마을의 지훈문학관과 가곡리의 고향 학교, 살았던 집, 그리고 집 옆의 교회에만 들렀다. 그렇기 때문에 전체의 고향 풍경의 크기가 축소된 비율로 그 호수 같던 시내의 크기도 축소시켜 짐작해 보았다. 어릴 적 느낌보다 3~5배 축소를 시켜야 어른이 보는 풍경과 같았다. 그 호수 같던 시내는 그렇게 넓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 물이 그렇게 천천히 흘렀던 이유를 다시 생각해야 했다. 고향의 시내는 큰 하천이 아니었다. 어릴 적 그렇게 넓어 보였고 그곳에서 수영을 하며 썰매를 탔던 그곳은 단지 작은 시내에 불과했다. 도랑은 아니지만 그 도랑들이 모여 흐르는 그냥 산골의 시내였던 것이다. 골짜기나 계곡에 흐르는 큰 물들과도 비슷한 수준이었다. 그 정도 수준의 시내는 물의 깊이가 조금 깊어지거나 그 넓이가 10~20m 정도로 넓어지기만 해도 물이 느리게 흐른다. 고향의 시내는 장마철이 아니면 그 폭이 그렇게 넓지는 않았다. 5m 내외였다. 그런데 느티나무 숲의 폭은 어릴 적 본 느낌보다는 훨씬 좁았을 것이다. 넓어도 10m 정도였을 것이다. 그 정도로는 그렇게 느린 유속이 설명되지 않는다. 느린 유속의 원인에는 깊이의 차이도 있었다. 고향의 시내는 평균적으로 어른들 무릎 정도 오는 깊이였다. 그런데 그 숲 속의 물은 깊이가 어른들 허리 아래까지는 올 수 있는 깊이였다. 평균적인 깊이의 2배는 되었다. 좀 더 넓은 폭과 깊이로 그렇게 느리게 흐를 것이다.


나도 이렇게 따지고 질문하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스스로 하고 또 그 답에 대한 평가를 내리고 다시 그 피드백을 원래의 답에 적용하는 사고를 하고 있는 내가 때로는 피곤하다. 그런데 이렇게 하고 싶지 않아도 자동으로 그렇게 된다. 보통사람의 사고는 감정이나 이성의 영역 중 한 곳에 편중되어 있는데 나는 그것이 감정과 이성 둘 다에 극도로 높은 비중으로 뻗어있다. 그리고 그것을 표현하는 것은 또 극도로 자제를 한다. 오직 속에서만 이런 것들이 돌아가고 있다. 그러니 에너지 소모가 엄청나고 실제로 표현을 잘 안 하니 결과물도 별로 없다. 비효율의 극치다. 보통 이런 사람들은 30이 넘지 못해 요절을 한다. 역사를 살펴보니 이런 사람들은 대부분 그랬다. 그 비효율적 에너지 소모를 몸이 견디지 못하고 병들어 요절을 하는 것이다. 지금 살아있는 것은 기적이다. 나에게 기도하는 사람들이 이 비슷한 감동을 여러 번 말했었다. 30을 넘기지 못하고 죽었어야 했는데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 살아있다고 했다. 한의사들 중에서도 몸의 상태를 아는 사람이 비슷한 말을 해주었다. 그 한의사는 나에게 의지가 엄청나게 강해서 죽지 않고 살아있다고 했다. 심지어 자신의 병원까지 직접 오지 말라고 했다. 전화하면 약을 보내던 처방을 보내던 한다고 했다. 오다가 엎어져 죽는다고 했다. 이 상태에는 약도 그 어떤 치료도 소용이 없다고 했다. 누워 쓰러져 죽지 않고 걸어 다니는 것은 의지가 너무 강해서 그렇다고 했다. 심지어 다른 분은 사람을 만나 말하거나 대화를 나누는 것도 자제하라고 했다. 그것도 에너지 소모가 된다고 했다. 그 정도 에너지도 아껴야 한다고 했다. 그런 내가 이 글을 쓰고 타이핑을 하는 것은 생명을 걸고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시니 순종한다. 이러다 죽어도 순교다. 예수님을 직접 볼 기회가 생기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것을 하나님은 허락하지 아니하신다. 이렇게라도 살아서 사명을 감당케 하신다. 그리고 움직이라고 하실 때 잠시 하늘의 힘을 불어넣어 주신다. 그리고 그 일이 끝나면 또 누워있어야 한다. 혹시 몸이 좀 좋아져도 오래가지 못한다. 원래 가지고 있는 극심한 에너지 소모 패턴이 다시 몸의 에너지를 고갈시킨다. 특히 감정적으로 잘 발달되어있으니 그 에너지 소모는 더 극심해진다. 단지 머리 쓰는 것만으로는 에너지의 소모가 그렇게 극심하지 않다. 마음을 쓰는 것은 금방 사람을 소진되게 한다. 누군가는 이것을 저주라고 하고 누군가는 천재성이라고 부러워한다. 그런데 둘 다 모르고 하는 소리다. 그냥 하나님께서 타고나게 하신 것이다. 어떤 이는 천천히 에너지를 소모하고 천천히 일반적인 생을 살다 가는 것이고 어떤 이는 폭발적으로 에너지를 소모하고 짧은 생을 살다 가는 것이다. 폭발적 에너지를 발산하면 다른 이들보다 짧은 기간에 많은 일을 할 수 있으니 일반적인 사람들보다 뛰어난 업적을 남기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결국 인생은 공평하다. 그만큼 빨리 세상을 떠나야 한다. 그것은 천재라고 하여 부러워할 것도 또 일찍 죽는다고 하여 저주도 아니다. 그냥 다를 뿐이다.


단지 젊어서 죽어야 할 시점에 죽지 않고 살아 있고 그래서 일반적인 경우가 아닌 사람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특별한 은혜를 부으셔서 이 땅에 잡아두고 계신 것이다. 상급도 그 어떤 것도 필요 없이 천국 끝자락에서라도 하나님과 함께 하기를 원하는데 그런 사람을 부러 세상에 오래 두시는 것이다. 뭐든 하라시면 그 살려주신 십자가의 은혜에 감격해 그대로 따르니 부리시기 편하신가 보다. 사실 내가 스스로 생각해 보면 불순종 불충성 말도 못 한다. 어느 맨발 노인의 고백처럼… 나는 그가 영상에서 그런 말을 했을 때 그 말을 듣고 한 없이 통곡하여 울었다. 나도 그와 같은 심정이었다. 사실 그의 영상을 보기 전에는 내가 하나님께 무슨 충성을 하는지 알지도 못했다. 이런 몸으로 하나님이 좋아서 하루에 두 시간 이상 찬양을 하고 기도하고 예배를 드렸다. 그 외의 시간에도 힘이 생기면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도 모르고 성경을 연구하곤 했다. 혼자서건 누가 있건 상관이 없었다. 그래도 누가 ‘당신은 기도를 적게 한다.’라고 하면 나는 기도를 적게 한다고 생각을 했다. 반박할 생각도 나지 않았다. 나는 그냥 하나님이 좋아서 한 것이고 항상 내가 하는 것은 부족했다. 하나님께서 베푸신 말로 할 수 없는 은혜에 내가 하는 것이라고는 항상 초라했다. 작았다. 무엇을 드려도 작았다. 옆에 있는 사람들이 인간이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냐고 해도 그냥 그들은 진정 내가 얼마나 하나님 앞에 부족하게 사는지 몰라서 저런 소리한다고 생각을 했다. 그런데 그 맨발의 노인의 영상을 만나고 나서야 나를 객관적으로 관찰할 수 있게 되었다. 누가 그 맨발의 노인이 불순종 불충성 했다고 하겠는가? 수많은 땅을 가난한 자들에게 내어주고 자신은 자신의 이름으로 된 거처 하나도 없이 맨발로 여름과 겨울을 걸으며 광인의 소리로 하나님의 전언을 전한 그를. 그래도 그의 고백은 “불충성 불순종 말로 못합니다.”였다. 누가 알겠는가? 그 은혜에 보답하는 것은 인간의 육체를 입은 수준의 일로는 골백번 죽어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그래도 이 곤한 몸을 이끌고 가는 것이 곤하다. 언제나 어느 날 불러 주실지가 소원이다.


어릴 적에 느티나무 숲에 교회 소풍을 갔었다. 시골 작은 교회 몇몇 아이들과 찬송가를 불렀다. 교회 선생님들을 따라 불렀는데 어린 초등학교 저학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때 노래의 소리가 이제 늙어 가는 이 나이에도 기억이 난다. 어린 나의 목소리와 옆에 있던 아이들의 소리가 생각이 난다. 어른들의 찬송을 아이가 불렀는데도 그 압도적인 아름다움 아래 불렀던 그 찬송을 평생 잊을 수가 없다.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

저 산에 부는 바람과 잔잔한 시냇물

그 소리 가운데 주 음성 들리니

주 하나님의 큰 뜻을 나 알듯 하도다


찬양을 부르며 바라본 그곳의 풍경은 압도적이었다. 숨이 막힌다는 표현으로는 다할 수 없는 그 근원의 색감으로부터 올라온 황홀함이 나를 잊게 하고 나의 의식조차 잊게 하는 나의 존재 모든 것을 삼키는 그런 느낌이었다. 그 푸름은 모든 곳에 있었다. 특히 그 물을 통해 드러난 빛깔은 나의 뇌리에 새겨져 평생 지워지지 않는다. 그곳에 불었던 바람의 느낌이나 물과 돌들을 잊을 수가 없다. 그것은 생명의 색이었다. 그 생명은 모든 것을 압도한다. 푸름의 신비로 모든 것을 삼킨다. 아이들의 노랫소리도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노래의 소리에도 그 초록이 물들어온다. 바람에도 그 색감이 물들어 흐른다. 하나님을 더 이상 말로 설명할 필요가 없다. 그곳에는 하나님의 창조의 신비와 그 완전한 힘의 빛이 흐른다. 고요하고 잠잠한 연못같이 둥근 시내에 잔잔하게 흐르는 신비한 초록의 색감이 그 맑고 투명함으로 하나님의 신비를 드러낸다. 하나님의 창조의 신성이 그곳에 흐른다. 그곳에서는 육안으로 하나님의 신비를 본다. 그것을 본 자 그 누구도 ‘하나님이 계시는가?’ 반문을 할 수 없다. 그는 그곳에서 하나님의 존재의 생명 그 자체를 보게 된다.


하나님의 창조를 만난 곳

그 창조 속에 숨겨진 신비의 생명을, 그 빛을 만난 곳.

그 이름은 생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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