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단지 아이들의 행동이 이상하고 그 아이가 이상하다고 문제아라고 판단해 버린다. 그런데 그런 게 아니다. 단지 그 아이들은 마음이 아플 뿐이다. 심지어 수학강사를 반복적으로 거부하고 쫓아내는 중 2 여학생반 아이들도 그 구성원들이 그런 마음의 아픔이 많은 아이들이어서 그렇다. 그런 아이들은 정말 무서운 선생이 오면 꼼짝을 못 한다. 내가 한번 시험 삼아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니 가장 반항적인 아이가 손을 떨더니 몸까지 두려워 떨었다. 그 아이들의 반항은 단지 내가 아프다는 고통의 비명일 뿐인 것이다. 그 마음의 아픔이 아이들의 인생을 앗아가기도 하고 그 인생을 나락의 구렁텅이로 빠트리기도 한다. 그나마 그렇게 소리라도 지르고 아프다고 표시라도 낼 수 있으면 다행이다. 대부분은 아프다고 소리치기는커녕 아프다는 시늉도 못한다. 오죽하면 지식에 화풀이를 하고 그 화풀이도 아주 소극적으로 한다. 그냥 ‘아 이거 틀린 것 같아요. 이거 아니에요’라고 시원하고 크게 말하지도 못한다. 자신감 없는 목소리로 단지 잘 모르겠어요. 아닌 것 같아요. 지식은 자신을 거부하고 버리지 않지만 가르치는 선생이 자신을 버릴까 봐 두려운 것이다. 그래서 그 선생이 주는 따뜻한 말 한마디를 듣기 위해 왕따가 되는 것도 감수하고 선생의 앞에 앉아있지만 그 선생이 자기를 버릴까 봐 선생에게도 아닌 그 선생이 가르치는 지식에 조차 함부로 큰 소리를 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 아이들을 보면 마음이 아려 온다. 그렇다고 그 어머니를 닦달할 수도 없다. 그 어머니도 마음이 아픈 환자라 아이에게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런 분들에게는 상담과 정신과 약물치료가 절실하다. 그래도 그 어머니는 훌륭한 분이셨다. 처음 전화통화를 하는 선생이 이런 말들을 하자 자신이 정말 그렇다면서 선생님이 얘기하신 대로 제 잘못입니다 하고 흐느껴 우셨다. 딸을 정말 걱정하고 계셨다. 자신의 상태를 인정하셨다. 이런 분들은 상담과 치료를 통한 회복이 빠른 편이다. 가장 심각한 경우는 절대 자신의 상태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구제할 방법이 없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주변에 법적인 심각한 피해를 입히는 경우가 아니면 강제로 치료할 명분이 주어지지 않는다. 또 심각한 피해를 끼치고 있어도 가족들이라 그냥 창피해서 쉬쉬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나 스스로가 ‘나는 아무 문제가 없다. 나를 정신병자 취급하냐’고 하면 가족들은 가족이라 그냥 피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다. 강제 입원의 조건은 심각한 범죄를 저지르거나 또는 동일한 주소지 내에 2명 이상의 직계가족이 동의를 하고 정신과 전문의를 진단이 필요하다. 이러한 조건이 되지 않아 고통받는 가족들도 많다. 스스로가 스스로를 치료하고자 아니하면 도와줄 방법은 사실 없다. 병원에 입원을 시켜도 그 치료가 더딜 수밖에 없다.
아이들을 가르치려면 상담이 필수다. 상담을 알지 못하면 아픈 아이들을 회복시켜서 사회의 온전한 구성원으로 제 몫을 다 할 수 있는 어른이 되게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선생이라면 최소한 아이를 학원비 가져오는 돈으로 또는 학교 월급을 받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돌봐야 하는 짐으로 보는 게 아니라 하나의 인격체로 그리고 나에게 맡겨진 소중한 생명으로 보아야 한다. 자식을 돌보는 사명감을 가지고 아이들을 양육해야 할 것이다. 상담을 통해 많은 아이들이 회복되는 것을 보았다. 우울증과 경계선 인격장애, 자기애성 인격장애(나르시시즘), 조현병 등 다양한 아픔을 겪는 아이들을 만나고 상담했다. 그 회복의 과정은 지난하고 긴 과정이 될 수도 있다. 그 전문적인 치료의 과정들을 선생이 다 감당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최소한 아이들이 그 치료의 험난한 태풍 속을 뚫고 가는 동안 선생은 그들의 든든한 위로자가 되고 친구가 되어 줄 수는 있을 것이다. 병원과 상담센터로 안내하는 안내자가 될 수는 있을 것이다. 아니면 나처럼 수학강사로 시작했다가 상담을 공부해서 상담자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버림받은 자들을 위한 포옹이라는 이 책을 쓰고 싶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