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한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과 같이 인식론에 관심을 기울였던 학자들도 있었다. 그들의 이론은 데카르트나 칸트에게 이어져 새롭게 연구되었고 인간 정신세계에 대한 다양한 통찰들을 제공해 준다. 독일을 중심으로 일어났던 절대정신, 시대정신, 국가정신 등에 대한 사상들도 결국 인간의 정신과 또는 그것과 동일한 용어라고 헤겔을 비롯한 여러 철학자들이 인식했던 영이라는 표현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가이스트(Geist= spirit)에 관한 사상들이었다. 이것도 결국 정신에 관한 탐구였다. 절대정신(absoluter Geist)은 인식론의 관념론적 측면을 강조한 인간 정신들의 집합체가 신적인 절대적 정신과 연결되어 집단적 정신과 시대적 정신, 그리고 국가적 정신을 아우르는 집합적 지성 또는 정신이 되는 것을 뜻한다. 이것은 과거의 영이라는 개념과 혼, 육 모두 통합하며 또한 그것이 과거에 절대적으로 완전한 분리를 이루고 있던 신적 영까지 통합한 개념이라는 것이 특이하다. 또한 이러한 사상들은 융에 의해 집단적 무의식이라는 개념으로 일부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또한 이것이 사회학자인 프랑스의 부르디외에 의해서는 아비투스라고 해서 집단적 무의식보다는 집단적 습관을 의미하는 것으로 변형되어 수용되기도 했다.
정신은 정신일뿐이다. 또한 그 안에 영과 혼이 분리되어 존재하거나 따로 정신적 기관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히브리적 영혼의 개념과 같이 인간은 통합된 하나의 영혼으로 이루어진 정신을 가지고 있다.
근대에 이르러 심리학은 대상이 되는 객체보다 정신세계 자체에 대한 탐구로 방향이 전환되었다. 이는 현대 세계관의 변화에 기인한 것이다. 세계관을 변화시킨 과정은 다음과 같다.
처음에는 고대에 완전히 분리되어 그 개념을 거룩으로 표현한 신적 영을 절대정신(absoluter Geist) 안에 포함시켜 더 이상 분리되어 거룩하지 않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신적 영이라는 개념 자체를 삭제하고 인간의 집단적 무의식이나 집단적 습관을 의미하는 집단적 정신으로만 보았다. 그렇게 함으로 결국 인간은 그 세계관 안에서 인간 자신들의 정신 외에는 다른 것이 존재하지 않음을 천명했다. 결국 정신이 지향했던 객체였던 신적 절대 거룩의 영은 삭제를 한 것이다. 그리고 그 절대적 신의 영을 대신하여 인간 스스로가 추구하는 이상을 향한 슈퍼에고를 등장시켰다. 결국 슈퍼에고가 신의 자리를 대체하게 한 것이다. 그 추구하는 객체가 절대적 이상이지만 그것이 더 이상은 신적 존재가 아닌 인간 스스로가 염원하는 이상 또는 이데올로기가 된 것이다.
사실 이러한 변질에는 그것을 기획한 또 다른 가이스트(Geist)들 즉 영들 또는 정신들이 있었다. 그들은 인간과 다르게 육체를 가지지 않은 영들 즉 정신의 무리들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은 신적 영의 지위를 탐하는 자들로서 신적 절대 영의 지위를 삭제함으로 그 자리에 이데올로기나 사상이라는 또 다른 영적인 지성인 자신들을 인간들이 인식할 수 없는 순간에 인간 안에 심었다. 그리고 그것이 더 이상은 인간의 정신 외에 다른 것이 아니라고 속여 자신들이 인간 정신 밖에서 인간의 정신을 지배하는 권력자가 아니라고 속이고 있다. 인간들은 그 이데올로기나 사상에 의해 지배되고 조종당하면서도 더 이상 자신들을 지배하는 영적인 존재는 없다고 믿고 있다. 심지어 고대에 이데아나 로고스의 개념에서 이성적이고 신적이었던 개념을 의도적으로 삭제하여 숨기고 있다. 과거에 이데아나 로고스는 신적 이성을 가진 인격적 존재였으나 현대에 이러한 철학적 사상을 가르칠 때에는 그러한 점을 언급하지 않거나 또는 그 자체를 숨기고 있다. 사실 많은 학자들이 고대에 이데아나 로고스가 신적 지성을 지닌 인격적 존재였다는 사실도 알지 못하고 자신의 글을 집필하거나 학생들에게 강의를 하고 있다. 그리고 데몬이라고 불리던 당대에는 현대의 귀신이라는 개념과 일치하던 영들이 인간과 이데아나 로고스를 연결하는 중간책이었다는 것도 알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에게 아주 잘 알려진 델포이 신전의 신탁이라는 것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한 영들과 소통하는 영매들을 통해 예언을 받고 그것에 따라 중대사를 결정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개념은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그리고 신 플라톤주의, 스토아, 스콜라 철학 모두에 공통으로 해당되는 개념들이었다.
계몽주의 이후에 고대 희랍으로의 회귀를 추구했던 자들은 의도적으로 이에 대한 언급을 회피했다. 이것은 오랜 세월에 걸쳐 서서히 진행되었고 그 결과 거의 완전한 신적 인격적 절대 지성의 개념의 삭제가 이루어졌다. 그리고 그 자리를 가만히 들어온 데몬(demon, diamonm)들 즉 가이스트(geist, spirit)들이 차지했다. 그들은 이데올로기나 사상으로 자신들을 포장하여 인간의 정신을 지배하고 있다.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적당한 단어가 바로 시대정신이다. 그 시대를 지배하고 있는 사상이나 정신으로 다른 표현으로 하면 세계관 또는 세계정신이라 할 수 있다. 또 그것은 집단적으로 그리고 개별적으로도 인간을 향한 그 지배를 지속하고 있다. 단지 자신들이 인격이라는 사실은 철저히 숨기고서 그러나 그 단어 이데올로기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것은 이데아다. 최고 신의 자리에 있던 이데아에서 그대로 파생되어진 이데아(Idea) +올로지(Ology)인 것이다. 그 이름과 정체를 숨기고 그 이전의 신적 절대 영의 자리에서 철저히 숨어서 군림하고 있다. 아이디어는 그 단어 자체가 이데아(Idea)다. 동일한 철자를 라틴어 식으로 읽으면 이데아고 영어식으로 읽으면 아이디어인 것이다. 혁명과 진보를 뜻하는 Revolution과 Evolution 안에도 그 어근을 추적하면 고대 신전과 관련되어진 어근이 추적된다. 그 어근이 되는 Volute는 그리스 로마 신전에 있던 기둥의 태풍을 상징하는 회오리 문양에서 기인했으며 그것은 자신들의 것을 새로 세우기 위해 세상을 태풍과 같이 쓸어버리고 다 무너트린 다는 것을 상징한다. 새로운 질서를 세우기 위해 기존의 모든 것을 무너뜨리고 부정하는 것이 르네상스 이후 현대의 역사다. 우리는 그것을 문명화 또는 계몽이라 불렀다. 그러나 그것은 진정한 빛을 인류에게 가져오지 못했다. 단지 고대 희랍이나 로마시대와 같이 동일한 체제 안에서 지배를 받는데 이제는 그 이름이 지배 이데아에서 지배 이데올로기가 되었을 뿐이다. 그리고 속이기 위해 더 이상 그 지배하는 Idea계의 가이스트(Geist)들 즉 스피릿(Spirit)들은 자신들의 인격성을 철저히 숨기고 인간들에게 자신들 즉 Idea를 불어넣어 속는 줄도 모르고 속게 하며 지배당하는 줄도 모르고 지배당하게 한다. 이러한 설명들은 헤겔의 시대에서는 쉽게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독일의 뿌리가 된 프로이센이라는 나라에 살았던 헤겔의 시대는 이러한 세계관의 혁명과 진보가 이루어지는 과도기였고 헤겔 자신도 절대정신이나 시대정신, 국가정신을 기술하면서 이 글을 쓰고 있는 작가의 기술들과 유사한 정신적 기전들을 기술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을 탈신화화라고 철학자들과 신학자들은 명명했다. 이 과정은 르네상스 이후에도 수백 년에 걸쳐 서서히 진행되었다. 이과정을 통해 완성된 탈신화한 사상들은 채 100년을 겨우 넘긴 신생 이데올로기들이다. 즉 인간들이 이러한 탈신화라고 착각하고 받아들인 새로운 지배 이데올로기는 100년도 되지 않은 사상이라는 것이다. 인류의 대부분의 역사에는 헤겔이나 플라톤 공자나 노자가 신봉했던 세계관이 사람들의 정신세계에 대한 기본 사상이었다는 것이다. 그들 모두는 유신론자들이었다. 동양의 탈신화적 세계관은 서양보다 더 짧다. 서양의 사상을 받아들이고 계몽주의 두 아들인 사회주의(공산주의)와 민주주의(자본주의)가 이르렀을 때서야 동양은 이러한 탈신화화가 이루어졌던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는 우리 시대의 소피스트들의 주장에 대해 의문을 품을 필요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시대의 정신이 지배 이데올로기가 되어 우리를 지배하고 있음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왕조가 있고 유학이 있었던 시절 유학의 이념이 지배 이데올로기가 된 것과 같은 것이다. 그 시절에는 천명을 받들고 그 천명 즉 하늘 상제의 뜻에 의해 세워진 천상 황제의 아들 천자를 섬기며 목숨을 걸고 충성을 다하는 것이 지배 이데올로기였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그 누구도 그러한 것을 신봉하지 않는다. 우리 시대의 자유와 평등을 신봉한다. 우리는 단지 그 시대의 정신이라는 지배 이데올로기에 의해 세뇌되어 그 세뇌된 것이 옳다고 믿는 가련한 인생일 뿐일 수도 있다.
물론 이러한 내용들은 독자들이 스스로 관찰하고 스스로 공부해서 받아들일 수 있으면 수용을 하고 받아들일 수 없으면 거부할 수도 있다. 단지 지금 기술하고 있는 내용은 글을 쓰는 작가가 관찰하고 얻은 내용들을 기술하고 있을 뿐이다. 무엇보다 작가가 이러한 결론을 도출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방대한 지식의 데이터들을 조사했음을 염두에 두었으면 한다. 또한 이러한 영역들도 인간의 정신을 상담하고 치유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기에 그 내용을 제시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