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내가 되기 위한 루틴의 중요성
자기만의 루틴을 마련한다는 것은
자신의 일상을 지키고
가꾸겠다는 다짐이다.
김교석, “아무튼, 계속”(위고, 2017)
1. 루틴에 대한 오해
직장생활 15년 차를 지나 힘들게 총괄부서의 총괄로 근무할 때 부서장으로부터 자주 들었던 말이 “루틴한 일 말고 창의적인 일을 하라”라는 것이었다. 조직의 리더라면 항상 새로운 아이템, 혁신적인 프로젝트에 목말라 하는 게 어쩌면 당연하다. “루틴”이라는 단어에 거부감이 생긴건 그때부터다. 일반적으로 총괄은 부서장을 보좌하여 일정 조정, 각종 참고자료 보고, 관련부서 추진업무 모니터링 및 회의록 종합 등 부서의 루틴하는 순기업무를 관리하라는 직책인데 그런 사람에게 “루틴하는 업무 말고 창의적인 업무를 하라”라고 하는게 모순처럼 느껴졌다. “옛날에 총괄 안해봤나?”라고 혼자 툴툴거리며 루틴한 업무를 창의적으로 루틴하게 했다. 루틴하는 일을 하는 건 뭔가 판에 박힌 느낌이 들고 발전적이지 않으며 관료주의적인 걸로 생각되었고 뭔가를 할때마다 루틴 안나는 티를 내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오히려 루틴한 티 안내는 법에 대한 루틴이 생겼다.
2. 거룩한 루틴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원두 50개 정도를 글라인딩해서 핸드드립으로 거룩하게 커피를 내린다. 20여년을 변함없이 하는 루틴이다. 원칙적으로 전동 글라인더를 쓰지 않고 수동 글라인더를 쓴다. 전동 글라인더는 양날로 된 칼날이 고속으로 원두를 자르듯 분쇄하는 원리이다. 나는 수동 글라인더 손잡이를 오른쪽으로 돌려 원두를 맷돌과 같은 원리로 수동 글라인더의 평평한 날에 끼어 비틀려 분쇄되는 과정을 상상한다. 분쇄되는 동안 끓인 물은 미리 마실 컵에 담아두어 컵 내부 온도를 올리고 1~2분 있다가 그걸 또다시 드립주전자에 부어 커피 추출을 위한 최적 온도인 90도 온도의 물을 만든다. 이제 마음을 가다듬고 커피를 내릴 차례인데 서버 컵에 커피원두 입자를 통과한 물이 내려오지 않을만큼의 적정량을 원두에 적셔 “커피불림 시간” 40초를 준수하고, 그리고 나서 한잔의 커피를 1분 정도 2번 정도 물을 보충해가며 물줄기를 시계 반대방향으로 돌려 중력의 법칙대로 자연스럽게 추출하면 거룩한 의식이 끝난다. 원두가 맛있으면 100% 맛있고 살짝 원두가 아쉬워도 왠만하면 맛있는 커피가 된다. 매일 해야만 하는 거룩한 루틴이다.
3. 루틴의 힘
내 거룩한 루틴이 무슨 효과와 효능이 있는지 아직 알수 없다. 그것을 또 효과, 효능과 연결시키는 것도 내 인생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그냥 매일 반복하는 습관적인 루틴만으로도 충분히 의미있는 삶이다. 누구나 그런 루틴이 있다. 베토벤도 아침에 일어나면 내려마실 커피 원두부터 손수 세었다고 한다. 칸트도 아침에 하인이 가져오는 차를 시작으로 하루를 열었다. 워런버핏은 출근하는 길에 맥도널드에 들러 현금으로 맥모닝 단품을 계산하고 사무실에 가서 혼자 NBC뉴스를 틀어놓고 신문을 읽으며 냉장고에 있는 코카콜라를 꺼내 식사를 하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루틴은 자신만의 규칙이고 의식이다. 그 습관은 일상의 일부를 편안하게 열거나 닫게 해주고 건강과 삶의 리듬을 균형있게 해준다. 조직에서 순기업무가 중요한 이유는 그 루틴이 조직의 건전성과 안전, 항존하는데 기본적인 것들을 체크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게 없으면 즉흥적인 의사결정이 방향을 잃게 할 수도 있고 장기적 관점에서 조직의 핵심가치를 훼손할 여지도 있다. 위기대응 능력은 평상시 시스템의 루틴한 성과평가를 통해 유지된다. 결국 우리가 루틴하게 하는 일들이 어떻게 보면 본질적인 것들을 유지시키는 활동이며 그것들이 쌓여 역량이 축적되고 결정적 순간에 결정적 힘이 되는 것이다.
4. 루틴의 중요성
더 천천히 재료를 준비하고, 익숙한 순서로 원두를 선별해 장인의 손길로 글라인딩한 원두를 추출하는 아침의 거룩한 의식. 침대 옆 협탁 스탠드 무드등을 켜고 라벤더 오일 원액을 베개 근처에 1~2 방울 뿌린다음 반듯이 천정을 보고 누워 팔뚝이 아무리 아파도 바르게 “앞으로 나란히”자세로 독서하는 저녁 잠들기 직전의 거룩한 의식은 삶을 균형잡히게 해준다. 그 의식을 하지 못하고 하루를 열거나 닫으면 불안하고 당황스럽다. 그 의식을 성공적으로 마무리 하면 그 하루는 완벽해 진다. 그런 루틴이 모여 지금의 내가 되었고 꿈꾸는 내가 되기 위해 오늘도 완전한 하루, 단단한 루틴을 반복한다. 거룩한 루틴은 그래서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