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차아안 Jun 13. 2022

읽고 들으며 생각해야 할 것들

  하와가 아담에게 “사과를 먹자”라고 했을 때 아담은 “안된다”라고 한다. 하나님이 “먹지 말라”라고 했다는 게 이유다. 그런데 아담도 ‘왜 먹으면 안 되는지’에 대해선 모른다. 뱀은 알고 있다. 뱀은 왜 하와에게 얘기한 걸까? 바로 아담에게 가서 얘기하면 될 것을 어째서 하와를 통해 아담에게 말하게 했을까? 뱀은 아담이 “사과를 먹으라”는 얘기를 듣고 먹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았다. 그래서 하와에게 얘기한 것이다. 아담 몰래 은밀하게. 하와는 궁금한 것은 못 참는 성격이다. 그 점도 뱀은 잘 알고 있다. 하와는 사과를 먹고 싶다. 왜 먹으면 안 되는지 이유도 모르는 사과를 볼 때마다 먹고 싶었다. 먹음직스럽고 맛있어 보인다. 마침 뱀이 “먹어도 된다”라고 한다. 아담은 “먹으면 안 된다”라고 할 게 뻔하지만 뱀의 말에 용기를 내본다. 하나님이 “먹으면 안 된다”라고 했지만 “먹으면 어떻게 된다”라는 말도 없었다. 뱀은 “아마 더 지혜로워질 거”라고 말한다. 뱀은 아담과 하와의 성격을 알고 있다. 뱀은 자신이 사랑하는 하와의 말을 듣지 않을 수 없는 아담에게 접근해 하와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전한다. 하와는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은 뭐든(아는 즉시) 얘기해야만 직성이 풀리므로 아담에게 “사과를 먹자”라고 한다. 아담은 처음엔 이런저런 변명을 해보지만 결국 먹게 된다. 뱀이 생각한 대로 된다. 뱀은 모든 것을 사전에 파악하고 주도면밀하게 기획하여 행동하는 지혜를 가졌다.

처음엔 먹으면 안된다고 하지만 결국 사과를 먹는다. 뱀은 그걸 안다.

  성서에 쓰인 말들이 모두 액면 그대로 사실일까? 거룩한 말씀, 생명의 비밀이 숨김없이 쓰여 있다면 그리고 그것을 누구나 볼 수 있다면 과연 유태인들이 순진하게 액면 그대로 진리의 전부를 거기에 기록했을까? 뭔가 비밀이 있지 않을까? 전 세계 부의 막대한 양을 가진 그들이 모두에게 공개한 성서의 내용은 과연 무엇을 의도한 걸까? 그것을 읽고 자신들이 원하는 바대로 노력하고 행동할 순진한 어린양을 상상하며 쓰지 않았을까? 그 내용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과연 지혜로운 걸까?

 

  대화할 때, 책을 읽을 때 그 내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만 하는 사람은 성장하지 못한다. 그 이면의 숨은 의도, 목적하는 바를 읽을 수 있어야 한다. 다양한 각도에서 입체적으로 사고하며 읽는 습관이 필요하다. ‘왜 그런 말을 하는지, 그 말의 배경은 무엇이고 결국에 목적하는 것은 무엇인지’를 알아내야 한다. 사람은 이기적으로 살아가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다. 전략적으로 사고하고 전술적으로 행동한다. 오직 타인을 위해 존재하는 자는 없다.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을 얘기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도 부모의 처지나 인품에 따라 다르다. 결국 혼자 왔다 가는 게 삶이다. 모두 스스로를 위해 살아간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따라서 우리가 어떤 텍스트를 대하고 대화를 할 때 모든 순간 전략적으로 사고하고 지혜롭게 행동할 필요가 있다. 성서에서 “뱀”을 통해 시험하고 지혜를 전달하게 한 것도 어떤 의도가 있지 않을까? 혐오스러운 뱀에게서 지혜를 배운다는 것이 역설적이지 않은가? 지혜로운 사람은 이면을 꿰뚫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과 본질을 구분하여 통찰한다. 보이는 게 다가 아니고 그들의 그 말 그대로가 진실이 아니다.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무엇을 목적하는 지 알아야 한다.

 

  독서할 때, 누군가와 대화할 때, 계약이나 협상을 할 때, 강의를 들을 때, 다큐멘터리나 영화를 볼 때, 음악을 들을 때, 사랑하는 사람의 속삭임을 들을 때 그 말들은 과연 사실일까? 그 말이 기만인지, 거짓인지, 전제인지, 왜곡인지 인과관계와 내용의 일관성과 진실성, 맥락 등을 면밀하게 분석하여 제대로 판단해야 한다. 그래서 나를 향한 진심과 전략적 목적을 명확하게 구분하여 쉽게 이용당하지 말고 스스로를 온전히 보호하며 지혜롭게 처신해야 한다. 우리에게 우호적이고 친근하게 다가오는 것일수록 겉으로 보이는 것의 반대일 수 있고, 합리적인 사고를 못하도록 막는 장애물 일 수도 있고, 나를 해치고자 하는 여건 조성일 수도 있다. 보통 사람은 꼼꼼하고 야무지게 따져보지 않는다. 생각하기를 싫어하고 두려워하고 되도록 생각을 안 하려고 관습을 따른다. 액면 그대로 읽고, 이해하고, 생각하는 척하다가 대충 해치운다. 그게 습관이 되면 전략적 설계자의 타깃이 되고 그가 기획한 대로 어리석게 행동하여 후회한다. 아담과 하와가 그렇게 당했다. 전략적 설계자가 그린 그림대로 당했다. 역사를 보면 그렇게 당하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그런 과정을 사람들은 계속 반복한다. 생각하기 싫기 때문이다.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하고, 보이는 그대로 해석한다. 전략적 의도를 통찰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대응할 수 없는 것이다.  

전략적 의도를 통찰하지 못하는 사람은 대응할 수 없다.


  뱀이 보기에 아담과 하와는 쉬운 상대였다. 성서를 끝까지 읽어 보면 뱀은 승승장구하다가 나중에 쉽지 않은 상대를 만난다. 나사렛이라는 시골마을에 사는 ‘예수’라는 사람인데, 사막에서 40일 동안 금식 수련하는 걸 보고 허점이 보일 때(배고파할 때) 덤볐다가 허무하게 진다. 뱀 입장에선 오랜만에 고수를 만난 것이다. 그 뒤로 3년 동안 뱀은 계속해서 예수에게 복수하려고 다양한 전략전술을 시도한다. 하지만 결국 이기지 못하고 진다. 처음엔 직접 나섰다 박살 나고 이후엔 아담과 하와에게 했던 것처럼 ‘유다’라는 제자를 투입해 본다. 여의치 않자 ‘본디오 빌라도’라는 재판관도 시켜보고, 예수 주변 사람들을 이간질도 시켜봤지만 다 실패한다. 설계자가 기획한 대로 관습적인 것, 피상적인 것에 현혹되지 않고, 보이는 것을 액면 그대로 믿지 않기 때문에 전략이 먹혀들지 않는 것이다. 그는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했다. 이면의 진실을 파악하고 본질이 뭔지 고민하며 용감하게 적의 전략적 사고와 전술적 행동에 맞섰기 때문에 무엇으로도 이길 수 없었던 것이다.

그는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했다.


  예수처럼 입체적으로 사고하는 것이 습관이 되길 바란다. 매사에 읽고 들을 때 생각하기를 두려워하지 말기 바란다. 그래서 상대가 어떤 거짓과 술수와 기만으로 유인해도 쉽게 속지 않고 의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통찰력과 내공을 겸비하기 바란다. 그 사람이 이긴다. 결국.

작가의 이전글 할머니의 밥상머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