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일생은 일상으로 구성된다. 하루하루가 소중한 일상이 되면 그 삶이 소중해지는 건 자연스러운 이치이지 않을까. 사람의 일생은 반복과 회귀가 불가능하다. 태어남과 동시에 우리는 모두 오로지 죽음을 향해 가게 되어 있다. 길고 짧음의 차이만 있을 뿐 죽음을 향한 방향성은 모든 인간이 동일하다. 우리는 모두 죽음을 향해 나아가고 있고 죽음으로 향해 가는 삶은 매일의 일상으로 구성된다.
자주 접하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아주 가끔 도저히 이해 안 되는 일탈행동, 패륜 사건들이 있다. 그들이 왜 그런 결정과 행동을 했는지 이해하려고 노력해 봤다. 이해하기 힘들다. 어렸을 때 부친께서 법무부 교정국에 근무하셨으므로 지방 소도시에 소재한 교도소 아파트 관사에 살았었다. 아침이 되면 파란색 죄수복을 입은 사람들이 관사 주변을 서성거리며 청소를 했다. 그들은 번호로 된 명찰을 오른쪽 가슴에 하고 있었다. 대부분은 하얀색 명찰에 번호가 쓰여 있었지만 일부는 빨간색으로 된 명찰을 하고 있었고 그 사람들 주변에는 1~2명의 교도관들이 잡담을 하며 감시를 병행했다. 나는 파란색 옷을 입은 사람들이 교도소 안에서 얼마나 살아야 하는지 늘 궁금했다. 가끔 착하게 생긴 사람을 가까이에서 보게 되면 물어보고도 싶었다. 한 번도 묻지는 못했다. 그들이 집에 못 가고 자유롭게 일상을 누리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막연하게 뭔가를 생각했다. 행복은 모르겠고, ‘저기에 들어갈만한 일은 하지 말아야겠다’라는, 뭐 이런 생각이었을 것이다.
소중한 물건을 갖거나 감동을 주는 책을 만나면 늘 곁에 두고 싶다. 곁에 두고 보며 자주 만지고 오감으로 느껴 좋은 기운을 얻고 싶은 것이다. 사람에 치이고 일에 지치면 위로와 힘을 주는 책을 곁에 두고 아껴 읽고 싶다. 나에게 소중한 것들을 반복해서 만지고, 바라보고, 생각하는 행위가 일상의 많은 부분을 차지할 때 행복감을 느끼게 된다. 그런 것들이 루틴이 되면 삶의 안정성이 높아지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더 밀도 높은 일상이 된다. 소중한 시간이 숙성이 되면 소중한 일상이 되고, 소중한 삶이 되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일본인 항공기 승무원 미즈키아키고가 쓴 “퍼스트 클래스 승객은 펜을 빌리지 않는다”라는 책을 보면 입국서류를 작성할 때 퍼스트 클래스 탑승객들은 승무원에게 펜을 빌리는 일이 없다고 한다. 메모하는 것이 습관이 된 그들은 공통적으로 펜을 휴대하는 특징이 있기 때문이다. 일상 속에서 떠오르는 생각, 아이디어를 기록을 통해 저장하는 것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다. 비행기에서 퍼스트 클래스는 전체 좌석의 약 3% 정도로 한정되며, 압도적으로 고액을 지불한다. 그곳에 탑승하는 사람 전부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대부분은 비슷한 이유로 퍼스트 클래스를 이용한다고 한다. 그들이 큰돈을 들여 사고 싶은 것은 더 좋은 메뉴의 식사나 쾌적한 좌석, 조용한 분위기가 아니다. 모두에게 객관적으로 동일하게 부여되는 ‘시간’이라는 것을 차별적으로 사용하고 싶은 욕구가 그러한 결정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비행기 안에서 여행하는 시간을 소중한 일상으로 만들고 싶은 욕구와 가치관이 차이를 만든 것이다. 똑같은 장소와 시간에서 모두가 같은 일상을 보내지는 않는다. 소중한 일상은 선택과 결심, 의지에 의해서 구별된다.
일상의 루틴은 매우 중요하다. 건강과 심리적 안정성, 균형 잡힌 사고를 통한 항상성 유지에 필수적인 조건이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의 루틴을 통해 되어가는 존재로서 (나름대로) 완전한 인간을 지향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일상’은 내가 정의하지 않으면 의미가 되지 못한다. 나름의 논리와 원칙을 가지고 스스로가 정의하는 일상이 나름의 의미를 갖는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암막 커튼을 열어 햇볕을 쬐고, 클래식 음악을 켜고, 양치를 하며 커피원두 50개를 헤아리고, 시리에게 날씨를 물어보면서 커피를 내리는 일, 커피를 마시면서 아침일기를 쓰는 일, 이러한 루틴이 그 무엇보다 소중하게 여겨지기를 바란다.
소중한 일상은 내 시간과 습관과 생각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이 창조한다. 내 일상을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입장이라면, 시간이 없다면, 심리적으로 여유가 없다면, 아프다면, 간섭이 심하다면… 핑곗거리를 찾지 말고 다시 생각해 보기 바란다. 과연 내 일상보다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 내 존재의 소중함 만큼 일상이 소중한 것 아닌가?
행복을 미루는 것, 하고 싶은 것을 유보하는 것, 지루함을 견뎌내는 것, 허무하다고 읊조리는 것을 거부하자. 소중한 일상을 위해 이어온 루틴을 포기하지 말자. 소중한 일상의 가치를 폄훼하지 말자. 내일 내 삶이 끝날 수도 있다고 가정하고 지금 해야 할 일을 결정하자. 하고 싶은 일을 결심하자. 그래도 지금 그 (멍청한 ) 보고서를 쓰고 있을 것인가? 그래도 그렇게 남 눈치보면서 시간 죽이며 비실거리고 있을 것인가? 그렇다고 대답하면 당신은 이미 틀려먹었다. 아니다. 당신이 유일무이한 만큼 당신의 일상은 소중하다. 매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