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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아안 Aug 24. 2023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젊은 그대들에게 건네는 말들


  “그를 생각할 때마다 사람은 오래 사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가 문제로 떠오른다”

-법정, 무소유, 범우사​-


  어떻게 살아가느냐의 문제는 평생을 두고 고민하면서 수정해 나가야 하는 숙제다. 그 답을 일반적인 명제로 제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가치관이 다르고 인생관이 다르기 때문에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의 선택은 결국 스스로 결정해야 할 문제다. 누군가 위대한 명문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게시처럼 제시해 준다고 해도 참고만 할 뿐 별 의미 없는 명제가 될 것이다. 사라지는 안개처럼.​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그런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늘 한다. 아무리 고민해도 결국 살던 대로, 하던 대로 할 거면서 고민은 또 고민대로 한다. 고민만 한다. 옛날 초등학교를 같이 다닌 친구들을 회상하면 특징적인 것이 한두 개씩 남아 있다. 아주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 밥 먹고 수다 떨다 보면 어렸을 때 느꼈던 그 친구의 습관, 태도, 생각이 시간과 장소만 옮겨졌을 뿐 그대로 재생되는 것을 볼 수 있다. 특징적으로 남은 몇 안 되는 기억의 흔적들이 내 앞에서 그대로 재생되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웃기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늙어갈 뿐이다. 친구이기 때문에 고쳐 쓸 필요도 없고 고쳐 쓸 생각도 없지만 그동안 부모, 가족, 선생님, 친구들, 회사 동료 및 상사들이 얼마나 고쳐 쓰려고 노력했을까를 생각하면 우스워서 그저 바라볼 뿐이다. 고쳐 쓸 수 없는 게 사람이다.​


  사람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지만 우리는 훈계를 멈추지 않는다. 맘에 안 드는  태도를 대하면 잔소리를 하게 된다. 하고 나서 “쓸데없는 말을 했다"라고 후회하지만 비슷한 상황이 생기면 또 욱하는 마음에 뭔가 조정하려 한다. 회사 상하관계에서도 그렇고 집에서 부모 자식 간에도 마찬가지다. 겉으로는 그 사람을 위해서 변화를 요구하는 듯하지만 사실은 내가 편하고 나를 위해서 그를 조정하려는 것이다. 소용없는 일이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특히나 이기적 유전자를 가진 인간은 누군가를 위해선 절대 변하려 하지 않는다. 그 변화가 누구를 위한 것인지, 무엇을 위한 것인지 직관적으로 알아차리기 때문이다. 생물학적으로 사람은 자기애에 의해 자기를 중심으로 세상을 보려고 하며 세상을 읽는 통찰력은 없을지라도 삶 속에서의 변화가 누구를 위한 변화인지는 직관적으로 알아차리고 오로지 자기를 위해서만 변화를 시도한다. 자기를 위한 변화가 아니라면 오히려 저항한다.​


  필자는 운 좋게 mz 세대와 일한다. 그들 속에 섞여 지내면 그들이 뿜어내는 에너지가 날마다 새로운 열정과 낯선 설렘을 경험하게 한다. 행복한 나날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들에게 아쉬운 점도 참 많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그들의 미래가 걱정돼서 잠도 잘 오지 않는다. 하긴 내 자식도 내 맘대로 못하는데 그들을 내가 어떻게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걱정스럽고 미래가 염려된다. 꼰대 같은 소리지만 그렇다. ​


  회의를 하고 발표자의 브리핑을 들으면 그 사람의 내공을 짐작할 수 있다. 얼마나 관련 분야를 연구했는지, 브리핑을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들여 섬세하게 기획했는지를 판단하는데 5분 이상이 걸리지 않는다. 때론 처음 발언하는 단 한마디만 들어도 그 사람의 성실함을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다. 태도와 표정만 봐도 실력을 눈치챌 수 있다. 오랜 시간 숨길 수 없는 것은 사랑과 재채기와 가난 그리고 실력이다. 그러나 나는 그들에게 노력이나 실력, 자신의 일에 대한 열정, 최선을 강조하고 싶지 않다. 아무리 얘기해도 내 말은 바람처럼 금세 사라져 그들의 마음 근처에도 도달하지 못할 테니까. 나는 그들에게 몇 가지만 흘리듯 조언하고 싶다. 제발 발표할 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하지 말고 자신감을 가지라고. 누군가 얘기할 때 다리를 떨거나 손가락으로 연필 같은 것을 돌리지 말고 가만히 좀 있으라고. 눈알을 불규칙하게 굴리거나 콧소리를 내거나 맘 놓고 하품하지 말라고. 누군가 얘기를 하면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지는 못하더라고 그쪽 방향으로 응시하는 예절은 지켜달라고. 하지만 변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얘기해 주고 싶다. 실력과 열정은 바라지도 않는다. 제발 의젓한 태도와 품위 있는 자세를 갖춘 자기애를 발휘해 달라고.

  아주 우연한 기회에 그들이 살고 있는 집을 방문했다. 여러 사람의 집을 짧은 시간 동안 스치듯 돌아볼 기회가 있었다. 처음엔 놀라웠고 조금 지나선 화가 났는데 나중엔 슬펐다. 얼굴 잘생기고 늘 깔끔한 옷을 입고 나타나 웃는 얼굴로 건강하게 생활하는 친구였는데 그들의 집을 방문해 보니 음식물 쓰레기를 변기에 버리는 습관 때문에 변기가 막혀 아예 사용하지 않고 방치된 모습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침대의 베개와 이불은 3년쯤 빨지 않은 것 같이 짙은 색으로 얼룩져 있었고 방 안엔 먹고 버린 쓰레기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그런데 내가 방문한 10여 개의 방 가운데 8~9개의 방이 모두 비슷한 수준이었다. 돌다 보니 헷갈릴 지경이었다. 그 방이 그 방인 것이다. 왜 그들은 그렇게 살까. 내 아이도 그렇게 살게 될까. 슬픈 일이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되어가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강압적인 교육과 훈육은 사람을 변하는 척하게 할 것이다. 인성이 바뀌어야 한다. 인성의 변화는 당사자가 결심해야 하는 것이다. 누가 누구에게 강압적이거나 주입식으로 교육하고 세뇌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다. 사람은 그렇게 바뀌지 않는다. 그래서 가정교육이 중요하다. 어렸을 때 습관화 시켜줘야 한다. 옳고 그름, 진실과 거짓, 좋은 것과 나쁜 것을 인식할 수 있는 시점부터 더 나은 것을 결정해 행동하게 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성인이 되고 스스로 인식해 상황 판단, 결심, 행동하는 나이가 되면 깨달음이 있어야 변화를 시도할 수 있다. 각성, 깨달음 없는 누군가의 충고, 강요, 질책, 잔소리는 오히려 저항을 불러올 뿐이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타인의 강요와 훈계로 인해 사람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쓸데없는 짓이다. 스스로 깨닫고 변하겠다고 결심해야 변할 수 있다. 결심했다고 그냥 변하는 것도 아니다. 뼈를 깎고 피를 토할 만큼 최선의 노력과 인내가 필요하다. 누군가가 나로 인해 변화되기를 바란다면 그에게 깨달음을 주는 가르침이 있어야 한다. 깨달음을 주는 행동, 솔선수범이 필요하다. 말은 필요 없다. 전혀.​

앞서 인용한 법정 스님의 말씀은 어느 추운  겨울 강원도 암자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수연 스님과 단둘이 수행할 때, 법정이 병환으로 아파 며칠을 의식 없이 힘들어하는 것을 간호해 주고 구례 산길 왕복 80리의 눈밭을 밥도 못 먹고 하루 종일 걸어가 약을 구해 온 “수연 스님”을 보고 눈물 쏟은 과거를 회상하며 “무소유”라는 책에 쓴 글이다.

그 책에 의하면 수연 스님은 절대 화내지 않고 늘 자비로운 태도로  타인을 위해 헌신하는 구도자의 삶을 살았다고 한다. 법정보다 앞서 영면했고 법정은 그를 생각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묵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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