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기록으로 남기는 흔적에 대하여

by 차아안


사실은 그 자체로 존재하고 살아남는 게 아니다. 기록하는 사람이 선택한 사실만 살아남아 후세 사람들에게 전해진다.

-유시민, “역사의 역사” 중


기록으로 남겨지지 않으면 잊히기 쉽다. 내 할머니는 1년 전에 영면하셨다. 활자화된 그분에 대한 기록은 거의 없다. 며칠 전, 매일 갖고 다니던 가방에서 할머니의 사망확인서를 발견하고 몇 초간 쓸모를 고민하다가 결국 세절했다. 이제 그분의 흔적은 사진으로 몇 장, 기억으로 한 줌이 겨우 남았을 뿐이다. 기록이 없으면 시간의 흐름에 따라 희미해지다가 결국은 소멸된다. 흙으로 돌아가는 우리의 육신처럼. 흔적과 기억의 흩어짐을 붙잡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잠시 고민해 본다.


한강의 책 “작별하지 않는다”에는 치매를 앓는 엄마의 이야기가 나온다.


“하지만 내가 까서 준 귤을 받아 들면, 평생 새겨진 습관대로 반으로 갈라 큰 쪽을 나에게 건네며 가만히 웃었어. 그럴 때면 심장이 벌어지는 것 같았던 기억이 나. 아이를 낳아 기르면 이런 감정을 느끼게 되는 걸까 생각했던 것도”


그녀가 기록하는 ‘엄마’는 그러한 어머니를 가진 모두에게 저마다의 의미를 남긴다. 그녀의 기록은 모두에게 흔적이 된다. 그 기록은 의미가 된다.


공간을 채우는 산소처럼 수많은 기록들에서 흔적과 의미를 찾아내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그만큼 투영하는 시선을 갖기 어려운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다. 선택적으로 흔적과 의미를 남기는 기록을 할 수 없는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다. 기록하는 능력을 상실한 것은 아닌가 생각되는 세상을 유영하고 있다.


보는 것에 익숙해지고 읽는 것이 점점 불편해지는 삶에서 기록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성가신 일인지 알아간다. 정보를 메모하고 필요한 것들을 적어두는 것을 넘어서 자기의 이야기를 써보고 떠오르는 생각을 정리하는 일은 마음을 먹어야 되는 일이다.


일기를 쓰고, 독서 메모를 남기는 것. 간단한 편지를 쓰거나 주장을 담은 에세이를 쓰는 것, 그것들이 이 세상에 살다 간 우리의 흔적이 될 것이다. 그 흔적의 가치와 쓸모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선명해지거나 투명해질 것이지만 기록으로 남겨놓지 않으면 존재를 증명할 방법이 없다. 물론 기록으로 남긴 흔적이 의미를 다하면 그 마저도 결국 소멸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면서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어떤 사건을, 어떤 순간을 선택하여 스스로를 표현하고 기록하는 행위는 쓸모를 떠나서 뭔가 숭고한 의미를 갖지 않을까. 자꾸 기록하다 보면 뭔가 먹먹하고 찡한 의미를 흔적으로 남기는 행운이 생기지 않을까.

keyword
작가의 이전글그들의 루틴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