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그때로 돌아가면 나는 이 직업을 택할 것이다

직업선택에 대한 고민상담

by 차아안


”아빠, 아빠가 나라면 어떤 직업을 가지기 위해 노력할 것 같아? “ 올해 대학에 들어가는 딸의 질문이다. “아빠가 말이야, 할 말이 무지 많은데 한 여덟 시간 정도를 계속 얘기할 수 있다면 아빠가 ‘네 지금 시절로 돌아간다면 결심했을 얘기’를 꼼꼼하게 논증할 텐데… 아쉬워”라는 말을 했다. 그것에 대한 이야기이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행복하지는 않다. 뭔가 큰 결심을 하고 시작한 일도 아니다. 학교에 다니다가 ‘그렇게 하게 된’ 일을 20년 넘게 직업으로 해오고 있는 것이다. 기간 동안 우여곡절도 있었고 일부 성취도 있었고 회한이 남기도 하지만 후회는 없다. 그렇게 살아온 것에 후회는 없다는 말이다. 국가 공무원으로 인생의 전반전을 마쳐가는 시점에서 스스로를 평가하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만약(이라는 것이 아무 의미 없지만) 내가 딸의 나이로 돌아갈 수 있다면 아마도 “축구” 관련된 일을 하기 위해 노력을 집중하였을 것이다.


지금 내가 하는 어떤 활동보다 동호회에서 축구하는 일이 가장 설레고 즐겁다. 설레고 즐거운 이유는 어느 정도 그 일을 잘하고 재미있기 때문이다. 축구를 하는 시간이 기다려지고 축구를 하는 과정이 즐거우며 골을 넣거나 기가 막힌 패스를 하면 짜릿한 쾌감이 느껴진다. 그래서 설레고 즐겁다.


물론 축구를 하고 나면 온몸이 아프다. 격렬한 활동과 전력질주의 후유증으로 집에 오면 반나절은 기어 다녀야 할 정도이다. 그날 밤 잠자리에서는 끙끙 앓는 소리가 저절로 나오고 너무나 몸이 아파 안절부절못한 채 잠 못 드는 날이 많다. 다음 날 출근해 계단을 오르내릴 땐 아이가 걸음마를 하듯 조심조심 발걸음을 딛어야 하고 묵직한 근육통 때문에 똑바로 걷지도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고통을 감수한다. 기꺼이. 왜냐하면 그 일이 설레고 즐겁기 때문이다. 살짝 미친 것이다.


나만 그런 건 아니다. 자세히 보면 주변에 미친 사람 투성이다. 철인 3종 경기에 미친 사람, 마라톤에 미친 사람, 암벽등반에 미친 사람, 등산에 미친 사람, 테니스에 미친 사람. 그런 사람들이 있다.


다시 돌아가서 직업을 결심할 수 있다면 설레고 재미있는 일에 도전할 것이다. 그런데 거기에 조건이 있다. 세 가지 정도를 생각해 본다.


첫째, 그 일 자체가 좋고 설레며 행복해야 한다는 점이다. 축구하는 과정이 좋고 설레기 때문에 나는 주기적으로 그라운드에 선다. 경기하기 전날부터 설레고 경기장에 도착하면서 설레고 축구화 끈을 묶으면서 설레고 하프라인에 설 때 그 설렘은 최고조에 이른다. 두 번째 조건은 그 일을 어느 정도 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팀에서 내가 맡은 포지션을 가장 잘 소화해 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들기까지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다. 많은 선배, 고수들의 잔소리와 핀잔을 들어가며 실력을 쌓았다. 영국이나 스페인의 축구리그 경기를 보면 내 포지션에 있는 세계적인 선수들은 어떤 움직임을 하는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몰입해서 보게 되었다. 같은 날 조기축구를 하는 세 팀의 모든 선수들 중에 내가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선수가 되었다고 자인하기까지 피나는 노력을 했다. 몰입하고 최선을 다해 노력하여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르러서야 그 일이 설레고 재미있어진다. 세 번 째는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일이라는 인식을 갖게 되어야 한다. ‘어차피 평생 할 축구’라는 인식을 하게 된 순간부터 매 경기마다 성장하는 자신을 꿈꾸게 된다. 오늘 경기의 승패, 컨디션, 행운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 오로지 나의 성장과 발전, 완성되어 가는 내 모습만 관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로지 “축구를 한다”는 사실이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된다. 그것으로 된 것이다. 그것이 스스로를 행복으로 이끈다.


여덟 시간 정도 얘기할 기회가 있었으면 딸에게 아래와 같이 말했을 것이다. “아빠가 그때로 돌아가면, 아마도 축구선수가 되었거나, 누군가에게 축구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었거나 축구를 연구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했을 것 같아”라고 선언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일이 가장 재미있고, 설레며 어느 정도 잘하고, 그 나름대로 의미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에”라고 부연했을 것이다.


<에필로그>

거창하게 여덟 시간도 필요 없을 듯하다. 8분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이 글을 읽는데 8분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그런데 8분 만에 이해할 수 있다고 해도 납득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여덟 시간은 붙잡고 얘기해야 그게 좀 먹혔을 것이다. 진심을 얘기할 때는 양념으로 시간도 필요하다. 짧게 얘기해서 되는 일이 별로 없다. 노파심이겠지. 그래서 어른들은 말이 많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기록으로 남기는 흔적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