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행위가 주는 즐거움과 성장
에리히프롬의 “사랑의 기술”을 세번째 읽는다. 스무살 넘어서 읽었고, 서른 중반에 읽었던 것 같고, 이제 마흔 넘어 읽는다. 세번이나 읽는 이유는 일단 기억이 잘 안나고, 에리히프롬이 말하는 삶에 대한 지혜가 그립기 때문이다. 그의 글을 읽으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기분이 좋아진다. 지금은 마음이 편안해지고 기분 좋게 살고 싶은 때이다.
“인간을 인간으로서 생각하고 인간과 세계의 관계를 인간적 관계로 생각하라. 그러면 당신은 사랑은 사랑으로만, 신뢰는 신뢰로만 교환하게 될 것이다. 예술을 감상하려 한다면 당신은 예술적 훈련을 받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다른 사람들에 대한 영향력을 갖고 싶다면, 당신은 실제로 다른 사람을 격려하고 발전시키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당신의 인간과 자연에 대한 모든 관계는 당신의 의지의 대상에 대응하는, 당신의 현실적이고 개별적인 생명의 분명한 표현이 되어야 한다. 만일 당신의 사랑이 사랑을 일으키지 못한다면, 만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의 생명의 표현에 의해서 당신 자신을 사랑받는 자로 만들지 못한다면 당신의 사랑은 무능한 사랑이고 불행이 아닐 수 없다”
[에리히프롬 저, 황문수 역, 사랑의 기술,
문예출판사 p.43.]
이 얼마나 마음 편하고 기분 좋아지는 이야기들인가? 여러분도 그에게서 좋은 에너지와 풍성한 마음의 양식을 얻기 바란다.
“사랑의 기술”을 제외하고 살아가면서 알게되는 어떤 ‘기술’, ‘방법’, ‘노하우’에 대한 책에 거부감이 있다. 연애의 기술, 성장하는 방법, 수익을 내는 노하우 등 경험적 이론들에 대한 책이 서점에 넘쳐난다. 그런 책들이 필요한 이유는 사회적 관계와 시스템이 매뉴얼화되는 추세와 연관이 있다. 시의 적절함과 꼼꼼한 완벽성이 더 좋은 조직으로, 더 유능한 사람으로 보여지는 지표라고 인식하는 것이다. 공항, 항만, 터미널, 백화점, 지하철, 가스, 전력 등 국가기반산업의 공공서비스 관련 직종은 이해가 된다. 하지만 살아가는 것, 경험해서 적응하고 숙달하면 되는 것들을 너무 기술, 방법, 노하우, 매뉴얼 등을 제시하고 선행 학습을 유도하는 것이 과연 모두에게 좋을까? 자연스럽게 시간들여 느끼고 배우면 되는 것 아닌가? 의문이다.
그런데 고민되는 분야가 있다. ‘독서의 기술’이다. 학창시절에 ‘독서의 기술’에 관한 책을 읽고 많은 도움을 받았다. 요약하면 제목을 보고, 맨 뒤로 가서 저자의 맺음말, 에필로그를 보며 결론을 대략 확인한 다음, 머리말을 통해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자가 이 책을 썼는지’ 살펴본 후, 차례(순서)로 넘어가서 어떤 식으로 논지를 풀어가는지 검토하고 서문부터 본론 순으로 읽어가라는 내용이었다. 그 책을 통해 책 읽는 순서, 목적, 의도, 논리성 등을 추출해 내는 방법을 배웠던 것 같다. 지금은 모든 책을 꼭 그렇게 읽지는 않는다. 책마다 읽는 방법이 다르고 순서가 다르다. 책의 목적과 형식, 장르에 따라 다르게 읽는 게 지금은 당연하게 되었고 그것은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걸음마를 배울때 “걷는 법”에 대한 책을 읽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넘어져 가며 알아 내듯이.
지금와서 생각하면 결론적으로는 ‘독서의 기술’은 별로 필요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안 읽는 것보다 나았겠지만 안읽었다고 크게 달라졌을 것 같지도 않다. 중요한 것은 ‘읽기’를 좋아하고 경험을 늘려 스스로 체계화 시키는 과정과 다양하게 읽는 기쁨을 반복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꼭 책을 읽는 것만 중요하다는 생각도 별로 들지 않는다. 살아가면서 읽어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
“읽는다”는 말은 여러가지 상황에서 표현된다. 가장 빈도가 많은 것은 “책(글)을 읽는다는 말이다. 상대방의 의중을 파악할때 “마음을 읽는다”고 표현 한다. 상황을 판단할 때는 “판세를 읽는다”고 한다. 어떤 행동이나 움직임을 보고 우리는 그 “행동의 의미를 읽는다”고 말하기도 한다.
읽는다는 것의 특징은 가만히 바라보는 행위를 수반한다. 또 가만히 느끼는 것도 포함될 수 있다. 그리고 곰곰히 생각하는 것. 읽은 것을 마음에 새기는 것. 이러한 과정이 넓은 의미의 “읽는”행위이다. 그래서 잘 읽는 사람을 자세히 보면 대부분 차분하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침착하며 뭔가를 섬세하게 바라보고 귀 기울이는 태도를 견지한다. 잘 읽어내는 사람이 사는데 유리한 것은 부연할 필요가 없다. 잘 읽어내는 사람이 삶을 즐기고, 효율적으로 일하며, 위험을 회피하고, 더 안전하고 건강한 생활에 지혜롭다. 여러분도 더 넓고 깊고 많이 읽는 것이 얼마나 삶을 풍요롭고 품격있는 것으로 안내하는지 자연스럽게 알아가기 바란다. 부디 읽어가는 즐거움으로 삶이 더 확장되고 각자가 정의한 행복함에 이르게 되기를 소망한다. 읽는 기술, 살아가는 기술의 필요성이 아니라 읽고 살아가는 그 자체에서 삶의 의미와 가치를 찾고 그것에 삶의 본질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가는 지성인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자는
아무것도 사랑하지 못한다.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자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다.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는 자는
무가치하다.
그러나 이해하는 자는 또한 사랑하고
주목하고 파악한다.
한 사물에 대한 고유한 지식이
많으면 많을수록
사랑은 더욱 더 위대하다.
모든 열매가 동시에 익는다고 상상하는 자는 포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파라켈수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