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과 자신감으로 충만한 삶을 위하여
정신없는 사람들이 많다. 나도 그중 하나다. 유독 5월에 정신이 없다. 5월에는 왜 기념일이 많을까?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어린이날이 있고 어버이날도 있다. 둘 중 하나만 있다가 다음 달에 있어도 될 듯한데, 같은 달에 둘 다 있다. 스승의 날이 있고 부부의 날도 있다. 노동자의 날, 성년의 날, 바다의 날에 다가 부처님까지 오신다. 5월은 기념일 아닌 날을 찾기가 더 힘들다. 정신없다.
아이러니하게도 기념일이 많은 5월에 더 우울하다. 주변에 그런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우울함은 표정으로 드러나지만 다른 여러 가지 정황으로 추측할 수 있다. 그 사람이 요즘 잘 보이지 않으면 우울한 경우가 많다. 자꾸 휴가를 가거나 병원에 가서 아픈 곳을 찾거나 여행을 가거나 출장을 자주 가면 대부분 우울한 것이다. 또 대화를 해보면 바로 알 수 있다. 한마디 건네면 열 마디 이상 하는 사람은 우울하다. 내가 그거 물어본 거 아닌데 자꾸 산으로 간다. 그 사람은 혼자 있을 때 마음속으로 산에 여러 번 다녀온 것이다. 우연히 말을 건넸는데 마침 말할 대상이 생겨서 말하는 것이다. 그러니 자꾸 산으로 가는 사람은 그대로 내버려 둬야 한다. 그래야 잘 내려올 수 있다.
5월은 웬만하면 날씨가 좋다. 아침저녁으로 시원하고 낮에는 따뜻하다. 하늘은 파랗고 나무는 샛노랗게 찬란하다. 그러니 젊은 혈기로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가뜩이나 정신없는데 그 와중에 결혼하는 날까지 잡는다. 벌써 청첩장이 3개나 밀려 있다. 아이러니하게 날씨가 맑고 하늘이 파랗고 나무들이 싱싱하고 마음 설레는 젊은이들의 고지서가 쌓일 때 더 우울해진다. 나는 이 좋은 날에 그냥 여기 있으니 생각이 많아지고 기분이 다운되며 말 수가 준다. 아직 안 끝났다. 5월 15일까지는 산불조심 강조기간이고, 가정의 달이면서 동시에 생명존중 강화의 달이다. 그러고 보니 5월에 태어난 사람도 엄청 많다.
이쯤 되면 명확해진다. 우울한 사람을 정신없게 해서 이 위기를 넘어가게 하려는 누군가의 의도. 부디 모두가 잘 넘어가기 바란다. 누구에게도 상처받지 않고 날씨만큼 찬란한 5월을 잘 지나가기 바란다. 침잠한 눈으로 마음속의 어지러운 것들로 인해 상상의 산으로 자꾸 올라가든, 실제 푸르른 나뭇잎으로 풍성한 산으로 올라가든 떠나기를 바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에서 사람을 상대하고 부여된 과업을 해내야 하는 사람들을 위해 몇 가지 제안한다.
정신없이 살다가도 가끔 “중단하는 능력”을 발휘하기 바란다. “하버드 마지막 강의”에서 제임스 라이언이 말한 것처럼 “잠시만요, 뭐라고요?”라는 질문을 자신에게, 그리고 대상에게 하기 바란다. 정신없이 지나가게 스스로를 내버려 두지 말고 뭔가 ‘아니다 싶으면’ 중단하고 질문하기 바란다. 우리가 우울하고 허무하며 한없이 답답한 이유는 이해하지 못해서다. 어려워 이해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이해하지 않고 넘어가기 때문에 허무한 것이다. 적응과 익숙함의 문제이지 어려워 못하는 것은 없다. 그러므로 “잠깐만요, 뭐라고요”라는 질문은 중요하다. 이것이 이해의 시작이며 핵심이기 때문이다. 이해하면 충만하고 보람 있게 삶을 디자인할 수 있다. 삶이 별거 아님을 알게 되고 그러면 공허하지 않다.
자존감과 자신감으로 온전히 존재하는 자가 되라고 말하고 싶다. 17세기 프랑스의 천재 수학자 파스칼은 “불행의 원인은 늘 자신에게 있다”라고 했다. 그런데 우리는 불행한 순간에 “나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항상 너 때문이고 그것 때문이라고 변명한다. 그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고 오해할까 봐 두렵고, 그래서 평판이 나빠질까 봐 두렵고, 의도치 않게 상황이 바뀌어서 불행해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돌아보면 그런 이유들이 무슨 의미가 있던가. 내가 쫄보였던 것이다. 남들은 신경하나 안 쓰는데 나만 쩔쩔 맨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걱정하고 쩔쩔맸던 게 분하고 서러운데 그걸 또 반복하는 게 인간이다. 생각보다 사람들은 남 인생에 별로 관심 없다. 어떤 경우에는 자기 인생에도 관심이 없다. 닥치는 대로 사는 사람이 많고 과잉 활동과 과잉 긍정으로 일상을 반복하며 시계 추처럼 의미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사색하는 삶을 살라고 말하고 싶다. 그래야 스스로를 돌보며 존중할 수 있고 자신의 가치를 명확하게 느낄 수 있다. 그럴 때 자신감으로 삶이 충만할 수 있다. 그런 사람만이 친절할 수 있으며 누군가를 도울 수 있고 더불어 행복할 수 있는 것이다. 자신감으로 충만한 삶, 자존감으로 온전히 존재하는 삶이 되시기를.
“정신의 부재 상태, 천박성은 자극에 저항하지 못하는 것, 자극에 대해 아니라고 대꾸하지 못하는 것에 그 원인이 있다. 즉각 반응하는 것, 모든 충동을 그대로 따르는 것은 이미 일종의 병이며 몰락이며 탈진이다”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