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부모님을 신고합니다."

세상만사 지구대 이야기 14.

by 소까니 경찰관

반포지효(反哺之孝), 동온하정(冬溫夏淸) 등 사자성어의 공통점이 무엇일까.


바로 효(孝)를 말하는 것이다.


예부터 우리나라는 '효'를 강조해 왔고, 여전히 암묵적인 룰로도 작용하고 있다. 또 유행어이기도 하다.


"부모님에게 효도해라"


그러나, 요즘 청소년들에게는 '효'가 어떤 의미로 작용하는지 궁금하다. 제 부모를 112에 신고하는 청소년들이 눈에 띄게 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오늘은 청소년들이 제 부모를 112에 신고하는 세태에 대해 말해보고자 한다.




부모가 잘못하면 당연히 자식도 112에 신고해야 하는 것이 맞다. 자식이 정말 패륜의 행동을 저지르고, 형사법적으로 처벌받아야 마땅하다면 이 또한 부모가 자식을 112에 신고할 수 있다.


그런데, 부모가 훈육을 한 것인데 자식이 본인이 잘못한 것은 인정하지 않고 훈육한 부모만 처벌해 달라고 112에 신고하면 경찰은 어떻게 해야 할까.


근무하는 지구대 특성상 아파트 단지가 많고 청소년들의 수가 많아서 청소년 관련 신고가 잦은 편이다. 부모와의 다툼에 관한 신고도 많은데, 크게 세 가지의 사례만 예로 들어보려 한다.


첫 번째. 19세 여자 아이가 부모가 본인을 때린다며 112 신고를 했다.


아빠가 본인의 뒤통수를 한 대 때렸다는 내용인데, 일단 폭행이 진행 중인 상태였기 때문에 이러한 사건들은 빨리 출동을 해야 한다.


출동하면서 신고자와 통화를 했더니 울면서 제대로 말을 하지 못하고 있고, 본인은 제 방으로 들어와 있다고 했다. 신고자와 부모가 분리된 상태이기 때문에 그나마 안전하긴 하지만 신고자가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어 빨리 출동해야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중립기어를 박아야 한다는 느낌이 강하게 작용한다. 대게 폭행이 진행 중이라고 신고를 접수받은 상태(접수자)에서, 실제로 출동하는 경찰관이 다시 신고자에게 전화를 해보고 자세하게 내용을 물어보면 무언가 숨긴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그랬다.


질문과 대답 사이에 생각하는 시간이 자꾸 생겼다. 간극이 있었다. 신고자가 대답을 생각하는 듯 보였다.


현장에 도착했다. 신고자의 엄마로 보이는 여성이 문을 열어줬고, 아빠로 보이는 사람은 소파에 앉아 있었다. 무언가 흥분된 상태가 있었던 것은 맞아 보인다.


조원은 아빠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하고, 나는 신고자인 여자아이에게로 가본다.


신고자인 19세 여자아이의 말은 이렇다. 아빠가 자주 화를 내고 자신을 나무란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고 한다.


'음 그건 그렇고... 오늘의 사건은 어떤 것인지 말을 하지 않네.'


신고자가 다른 이야기만 해서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봤다. 오늘 아빠한테 맞은 부분에 대해서.


"아 맞긴 맞았는데... 사실 아빠 카드를 별도로 용돈으로 쓰고 있는데, 오늘 피부과 가서 시술받느라 좀 돈이 많이 나왔거든요. 그래서 집에 왔는데, 아빠가 바로 혼을 내는 거예요. 그래서 아니, 돈 쓰라고 카드 줘놓고 왜 화를 그렇게 내냐면서 제가 좀 대들긴 했는데, 아빠가 바로 때리시더라고요."


아~ 그럼 그렇지. 다 이유가 있단 말이다. 그래도 곧 있으면 성인이 되는 딸의 뒤통수를 후리는 것은 잘못된 행동이다. 건강한 훈육은 폭력이 포함되선 안 된다. 어찌 됐든 잘못은 하셨지만 도의적으로 보았을 때 딸이 원인제공을 했다.


아빠에게 가보았다. 망연자실한 표정이다. 딸이 모든 내용을 전부 실토했다고 말씀드렸다. 그래도 대답이 없으시다. 적잖이 충격을 받으신 모양이다. 원칙적으로는 가정폭력이기 때문에 처벌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사안이 경미하고 신고자 역시 후회하고 있으며, 우발적인 행동으로 보였다. 이럴 땐 경찰이 조용히 사라져 주는 것이 맞다. 처벌보다도 아빠의 충격이 더욱 클 테니.





두 번째. 이번에는 17세 여자 아이가 신고를 했다. 아빠가 본인을 때린다는 신고다.


요새 가정폭력, 아동학대 등 관계성 범죄에 대한 신고가 접수되면 모두 민감하게 반응한다. 가정 내 문제라는 이유로 그냥 지나쳤다가 자칫 큰 일로 번질 수 있기 때문이다.


얼른 현장에 도착해 보니 위 사례처럼 이미 부모와 딸은 분리된 상태였다. 역시나 딸에게 먼저 가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아빠가 많이 때렸어?"

"네, 어깨를 밀치고 욕도 했어요."

"겉으로는 상처가 안 보이는데, 심하게 밀었어?"

"나가라고 하면서 밀었어요."


음. 다행히 큰 일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이 여자아이도 본인이 스스로 사건의 전말을 솔직히 말해줘야 할 것 같은 강한 느낌이 온다. 언제쯤 실토할 것인가.


한참 여자아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조원이 잠깐 방문을 열고 나와 보라고 한다. 나가봤더니 여자아이의 엄마가 못된 가시나 이야기 듣지 말고 경찰분들은 그냥 돌아가시라고 한다.


무슨 말씀인지는 알겠는데, 예전처럼 그냥 경찰이 돌아갈 수 없다고 정중히 말씀드리고 사건의 전말을 여쭤봤다. 사건은 이랬다.


어제는 여자아이의 생일이었다. 며칠 전부터 본인 생일에 아이패트 신형을 사달라고 말해놨는데 부모님이 사주지 않았다고 한다. 고등학교 1학년이기에 그걸 사주면 분명 공부하는 데 사용하지 않고, 노는 데만 사용할 것 같아서 사주지 않았다고 한다. 당연한 말씀이다.


딸은 엄마가 선물을 사줬으리라 믿고 잔뜩 기대하고 하교를 했는데 집에 아이패드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엄마에게 선물이 어딨냐고 물었다고 한다. 엄마는 이래저래 하니 사줄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딸이 고래고래 소리를 치면서 엄마에게 대들었다고 한다.


이를 듣고 있던 아빠는 딸이 선을 넘는 소리를 하니까 조용히 하라며 훈육을 했다고 한다. 그때는 손찌검이 없었다. 일단락이 된 줄 알았는데 오늘 또 딸이 엄마를 괴롭히니 아빠가 참을 수가 없어서 딸을 밀치면서 그만하라고 말을 했다고 한다. 계속 시끄럽게 할 거면 그냥 나가라고 말하면서.


그랬더니 딸이 112에 신고를 한 것이다. 사건의 전말을 이랬다. 도대체 경찰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를 신고하는 자식들을 혼내야 하는 것인지... 부모에게 참으라고만 해야 하는 것인지... 도통 해결방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세 번째. 가족이 모처럼 외식을 하고 들어 왔는데 아빠가 신고자의 노트북을 부순다고 욕설을 하여 112에 신고를 하였다.


현장에 도착해 보니 신고자와 부모님은 모두 거실에 있었다. 거실에 컴퓨터 책상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문제가 발생한 듯 보였다.


신고자는 남자 고등학생(자퇴)이다. 아빠, 엄마, 본인, 남동생 네 명이서 함께 외식을 하고 들어왔는데, 집에 들어와서 신고자가 곧바로 거실에 있는 컴퓨터를 켜서 게임만 하고 있으니 아빠가 욕설을 하면서 컴퓨터를 강제로 꺼버렸다고 한다.


그리고 곧바로 말다툼이 있었는데, 아빠가 계속 욕을 하면서 노트북을 망치로 부숴버린다고 협박했다고 한다.


아빠에게 바로 이 내용에 대해 물어보았다. 아빠는 모든 게 맞다며 처벌할 거면 처벌하라면서 으르렁이다. 기본적으로 보통성격이 아닌 건 맞는 듯하다.


일단 신체적인 폭행은 없었다. 그런데, 망치를 들어서 무언가 부수려는 행동이 문제인데. 상황에 따라서 이는 신체에 대한 협박으로도 볼 수 있다. 다른 형제의 진술을 추가적으로 들어봐야겠다.


동생에게 전반적인 이야기를 물어봤다.


곧바로 돌아온 대답은 기가 찬다. "그냥 저 새끼(형)를 잡아가야 돼요. 맨날 부모님 돈 뜯어 가고, 학교도 자퇴했어요~"


그렇다. 아빠도 거친 행동에 문제가 있어 보이지만, 아들 역시도 그 아비에 그 자식이다. 보통 성격이 아니기에 자퇴까지 하고, 집에서 게임만 하고 살고 있는 듯하다. 이쯤 되면 내가 오은영 박사님이 돼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모든 신고내용에 금쪽이도 포함돼 있다.


여하튼, 이 집 역시 시간을 좀 더 주기로 하고 일단은 경찰은 철수했다. 다만, 아빠의 거친 언행으로 인해 아들은 반발심이 생길 수 있기에 오늘은 아빠가 다른 데서 주무시도록 하였다.




정말 고민이다. 이런 112 신고를 접수하면 정말 부모들을 곧이곧대로 처벌해야 하는 것일까? 어쩌다 자식들이 부모를 112에 아무렇지 않게 신고하는 지경까지 온 것일까?


효도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다만, 불효는 하지 않아야 하지 않을까?


혹자는 나를 꼰대로 볼 수도 있다. 마음이 열려 있어야 하는 경찰이 오히려 효를 운운하며 가정폭력을 덮으려고 한다고 말이다. 그렇지만 나도 자식을 키우는 입장에서 부모의 마음도 이해가 되고, 아직 젊은 나이기에 자식의 마음도 이해가 간다.


필자의 시선엔 자식들이 효까지는 아니더라도 불효만 저지르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다. 대부분 부모들은 훈육의 정도에 그치기 때문에 이 정도까지의 훈육도 싫다면 자식이 나가서 살아야 한다. 아직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건강한 훈육에는 순응하는 것이 맞다. 다만 전제조건은 위 사례들과 같이 적절한 훈육과 그 경계 수준이어야 한다.


112 신고 이야기에서 효까지 나와버렸다. 그런데 요즘 이런 신고들을 접하면 효가 많이 생각난다.


요즘 시대에 부모님을 112에 신고하는 것과 어렸을 적 '은비까비' 만화에서 보았던 그 옛날 고려장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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