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흐리면 전화하는 여인

세상만사 지구대 이야기 28.

by 소까니 경찰관

자꾸만 지구대 일반회선으로 직접 전화하는 여인이 있다.


전화는 늘 발신번호표시제한으로 걸려온다.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이제는 반갑다. 그 의문의 여인이 건강히 살아 있는 것이니까.




경찰에게 장난전화를 하면 거짓신고로 처벌을 받는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 공무집행방해죄로 강하게 처벌되기도 한다. 국가에 대한 범죄이기 때문에 선처도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장난전화는 조심해야 한다.


우리 지구대는 꽤 큰 편이라서 회전율(?)이 빠른 편이다. 직원도 많아서 다른 직원이 신고를 오래 뛰고 있어도 큰 문제없이 빈자리를 채울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인력이나 장비의 어려움 없이 강하게 법적 조치를 취할 수가 있다.


거짓신고에서도 마찬가지다. 다른 소규모 지구대에서는 다른 신고를 나가야 하기 때문에 거짓신고임을 인지해도 굳이 처벌까지 가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단순히 경고만 하고 끝이 난다. 재량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어쩔 수 없는 재량에 속한다.


우리 지구대에 가장 많이 접수되는 거짓신고는 풍속업소 단속이다. 특히 미성년자 음주 신고나 도박 신고가 이에 해당한다. 경쟁업체에서 신고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경찰 시스템은 이 사람이 얼마나 신고를 했는지, 어떤 내용으로 신고를 했는지, 어떻게 종결이 됐는지 모두가 공유할 수 있다. 그래서 출동 전 신고이력을 인지하고 가는데, 위와 같은 신고들은 대부분 정형적이다.


이전에 신고했던 내용을 주소만 바꿔서 신고한다. 그리고 경찰이 다시 한번 전화를 하면 받지 않는다. 심지어 공중전화로 전화하는 경우도 있다.


증거도 없는 신고가 쌓이다 보면 이 사람을 결국 추적한다. 그리고 거짓신고로 처벌한다. 나중에 후회해도 소용이 없다.




그렇다고 모든 장난전화를 거짓신고로 처벌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경찰이 알아서 상대방의 사정을 인식하고, 재량 것 대처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몇 년째 112 전화 신고도 아니고, 일반회선으로 지구대에 직접 전화하는 의문의 여인이 있다. 특히 발신번호표시제한으로 전화를 건다. 전화를 받기 전 발신번호표시제한이라는 글자가 뜨는 순간, '아 그 사람이다'라는 생각이 번쩍 든다.


시간도 가리지 않는다. 아침이고, 낮이고, 밤이고, 새벽이고, 갑자기 전화가 오기 때문에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그래도 목소리는 여전하다. 알 수 없는 말을 반복한다. 마치 나에게 주문을 거는 것 같다. 처음에는 조금 세뇌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지만 이제는 잘 맞받아 칠 수 있다.


최근에는 새벽 1시에 전화가 왔다.


졸린 시간이었다. 눈도 많이 오고 신고도 없는 편이었다. 나른하게 앉아 있는데 조용한 지구대에 전화가 울렸다. 번호를 확인하니 '발신번호표시제한'.


'에헤이~ 아줌마. 이러시면 안 되지. 이렇게 늦은 시간에 전화하는 건 아니지.'라고 생각했지만 몸은 곧바로 수화기를 들었다.


내가 먼저 말을 하기 전까지 의문의 여인은 절대 말을 하지 않는다.


"여보세요? 지구대예요. 말씀하세요."


곧바로 세뇌가 시작된다.


"오뇽뇽뇽뇽뇽. 붕냥뇽. 낑냥뇽. 뚜루루루루루루."


대충 이런 식으로 끊임없이 말을 하는 편이다. 그날도 그랬다. 옆 자리에 앉아있던 선배는 팔짱을 낀 채 눈을 감고 조용히 앉아 있었다. 마치 네가 알아서 처리하라는 식으로.


'그래... 제가 처리하긴 할 건데, 오늘은 그냥 당하지 않겠다.' 나는 그 여인에게 대항했다.


"오로롤롤롤롤바이. 뚜루루루루루루루루삐삐."


나와 여인은 서로에게 의문의 주문을 외웠다. 여인이 멈추면 나도 멈췄다. 여인이 다시 시작하면 나도 다시 주문을 외웠다. 계속했다.




한참 동안 아무 의미 없는 시간을 소비했다.


그러자 자는척하던 선배는 "크흠!" 소리를 냈다. 뭐 하냐, 적당히 해라, 정도로 느껴졌다. 그런데 나는 벌써 전화를 끊고 싶지 않았다.


여인의 주문에 대항하다 보니 묘한 동질감도 느꼈다. '이런 느낌으로 계속 주문을 외우는 것인가?, 나의 이런 반응을 원했던 것인가?'


한참을 서로에게 주문을 외우다 보니 통화내역은 4분을 넘어서고 있었다. 일반회선으로도 신고가 접수되니까 그만해야 할 것 같았다.


조용히 말을 걸었다.


"선생님, 오늘은 그만합시다. 신고 접수 해야 하니까 이제 끊을게요. 다음에 또 이야기해요."


그 와중에도 여인은 나에게 주문을 외운다.


"오 뇽뇽뇽뇽. 우루루루루루루. 리리리리리리리리."


정신없이 소리를 내는 것 같으면서도 정성이 있다. 대충 힘없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혀에 힘을 주고 일정한 속도로 이야기를 한다. 중독이 됐지만 오늘은 더 이상 안 된다.


뚝.


전화를 끊어버렸다. 난 내심 또 전화가 오길 바랐다. 그런데 역시 이 여인은 쿨하다. 아마 목소리 톤으로 보면 50대 이상 아주머니일 것 같은데, 전화를 끊어버리면 그날은 전화를 하지 않는다.


다만, 이 여인이 전화를 하고 나면 날씨가 흐려진다. 그날도 새벽 4시가 넘어가자 눈이 엄청 쏟아지기 시작했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대설이 내린다는 일기예보가 있었지만, 모처럼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정신이 이상한 여자일 것이다. 불쌍하기도 하지. 어쩌다 그렇게 됐을까.


다른 직원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난 연민의 감정도 있고, 즐거움도 있다. 이상한 소리를 내도 분명 정성이 있다. 정신은 이상한데 어쩜 정성스럽게 이상한 소리를 내는 것이지. 좋은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러다 정신이 나갔을 것이다.


비록 지금은 정신이 나갔지만, 본판은 똑똑해서 발신번호표시제한으로 전화를 걸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상한 정신은 날씨가 나빠지기 전에 더 악화되는 것이 분명하다.


이 의문의 여인은 지구대로 계속해서 전화를 할 것이다. 물론 귀찮기도 하겠지만 막상 전화가 오지 않으면 생사가 걱정될 것 같기도 하다. 날씨가 흐리면 전화를 하는 여인, 과연 정체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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