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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작별하지 않는다

by 나즌아빠

연결된 근원적 사랑, 고통을 견디는 힘

(한강,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고)


내 기척에 엄마가 돌아보고는 가만히 웃으며 내 뺨을 손바닥으로 쓸었어. 뒷머리도. 어깨도. 등도 이어서 쓰다듬었어. 뻐근한 사랑이 살갗을 타고 스며들었던 걸 기억해. 골수에 사무치고 심장이 오그라드는... 그때 알았어. 사랑이 얼마나 무서운 고통인지 (311쪽)


사람이 살면서 좀체 경험할 수 없는 일들이 있습니다. 동물이나 식물의 일이 그렇고, 사람의 일 중에서도 서로 다른 위치에 있는 경우가 그렇습니다. 남자와 여자의 일이나, 아이와 어른의 일,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일 등 말이지요. 직접 경험하기 어려운 다른 세계의 일은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이해하거나 공감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세상 모든 일을 경험할 수 없고 자신의 일도 감당하기도 힘든데 나와 다른 세상의 일을 노력하면서까지 볼 필요가 있을까요? 이 질문은 인간 존재에 대한 질문이며 인간은 어떤 식으로든 세상과 연결되어 있다는 자각으로 이어집니다. 자연이든 타인이든 고립되어 존재하는 인간은 없기 때문이지요. 그렇다면 이제 중요한 것은 삶의 태도입니다. 상대를 이해하고 공감하기 위해 상대방 ‘되어보기’가 필요합니다.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는 ‘되어보기’의 소설입니다. 제주 4·3사건이 모티브인 소설은 국가폭력을 경험한 사람에게 위로를 건네며, 경험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묵직하고 아픈 질문을 던집니다. 이유 없이 학살당한 사람을 왜 살리지 못했는지? 살아남은 자들의 고통을 이해하는지?라고 묻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독자를 ‘되어보기’로 인도하고 있습니다. 화자인 경하가 친구 인선을 이해하기 위해, 그리고 인선의 어머니가 겪었던 학살의 고통에 공감하기 위해 취하는 행동에서 그 마음이 전해집니다. 윤동주의 시 ‘병원’에서도 읽히는 맥락입니다.


- 초를 들지 않은 손으로 바랜 벽지를 쓸어나가 인선의 얼굴이 있던 자리에 얹어본다. (287쪽)

- 나는 손을 뻗어 뼈들의 사진 위에 얹었다. (301쪽)

- 나는 그 여자의 건강이, 아니 내 건강도 속히 회복되기를 바라며 그가 누웠던 자리에 누워 본다. (윤동주, 병원)


그렇다면 궁금해집니다. 악몽에 시달리는 사람의 고통을 이해하고 공감하려는 ‘되어보기’는 어디에서 생기는 마음일까요?


작가가 인도하는 데로 따라가 다다른 곳은 사람에 대한 사랑입니다. 그리고 그 근원은 개별 자아를 세상과 연결해 준 모성 같은 사랑이 아닐까 싶습니다. 다음 두 문장이 메타포처럼 읽힙니다.


- 겨울이 되면서는 흉내 내듯 책상 아래 모로 누워 무릎을 구부려 보기도 했어 이상한 건, 그러고 있으면 어느 순간 방의 온도가 달라지는 것처럼 느껴졌던 거야. 겨울 볕이 깊게 들거나 온돌 바닥이 데워져서 퍼지는 온기와는 달랐어. 따스한 기체의 덩어리 같은 게 방을 채우는 게 느껴졌어. 솜이나 깃털, 아기들 살을 만지고 나면 손에 부드러움이 남잖아. 그 감각을 압착해서 증류하면 번질 것 같은...(212쪽)

- 피를 많이 흘렸으니까 그걸 마셔야 동생이 살 거란 생각에. 얼마 전 앞니가 빠지고 새 이가 조금 돋은 자리에 꼭 맞게 집게손가락이 들어갔대. 그 속으로 피가 흘러들어 가는 게 좋았대. 한순간 동생이 아기처럼 손가락을 빨았는데. 숨을 못 쉴 만큼 행복했대. (251쪽)


국가 지도자가 계엄이라는 폭압정치를 획책하고 국민에게 총부리를 겨누는 지금의 비현실적 상황에서 이 소설은 국가폭력이 가져온 고통을 느끼고 회복의 힘을 갖는 계기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일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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