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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구르브 연락 없다

by 나즌아빠

세상을 보는 세 가지 시선: 풍자, 해학 그리고 3인칭 시점

(에두아르도 멘도사의 ‘구르브 연락 없다’를 읽고)

여러분은 세상이 복잡하다고 생각하신 적이 있나요? 아니면 답답하다고 말한 적은 없나요?

보통 상식의 틀에서 벗어난 일이 발생하거나 내 생각과는 다르게 물건이나 사람이 움직일 때도 답답함을 느끼곤 하지요. 아마도 기계를 작동할 때나 사람과의 관계에서 이런 경험이 있을 것 같습니다. 자 그러면 이럴 땐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소설 ‘구르브 연락 없다’는 해답을 알려줍니다. 풍자, 해학 그리고 제3자의 위치에 서 보는 겁니다. 현실의 부조리함이나 위선, 해결되지 않는 문제는 마치 내일이 아닌 것처럼 멀찍이 떨어져서 생각해 보는 겁니다. 외계인의 시각으로 말이지요. 그러면 신기하게도 우연히 혹은 필연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뼈 있는 웃음은 문제를 명징하게 하니 해법도 잘 찾을 수 있게 하지요.

구르브는 외계인입니다. 그리고 소설의 화자는 구르브와 함께 지구를 탐사하기 위해 온 동료 외계인입니다. 소설은 구르브와 연락이 끊긴 동료 외계인이 구르브를 찾아 스페인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겪는 이야기입니다. 좌충우돌 동료 외계인의 서투름과 인간적(?)인 모습, 그리고 그의 생각은 스페인의 부조리함을 역설적으로 드러내기도 합니다. 문장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분수대의 물을 분석할 기회가 주어졌는데, 주요 성분은 수소와 산소, 나머지 대부분은 똥이다. (11쪽)

가난한 자들의 인성 지수는 이른바 부자들보다 조금 덜 열등하고, 중류층보다는 훨씬 덜 열등한 것으로 나와 있다. (21쪽)

내가 보는 부자와 빈자의 기본적인 차이점은 이런 것 같다. 부자들은 그들이 가는 곳에서 그들이 원하는 것을 아무리 많이 손에 넣거나 아무리 많이 소비해도 돈을 내지 않는 반면, 빈자들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까지 돈을 낸다. (27쪽)

나는 가판대를 찾는다. 플레이보이 달력을 재킷 속에 감추고 부리나케 뛰어서 집으로 돌아온다. (57쪽)

내가 볼 때 지구인들은 단순한 산술적 계산에 치중할 뿐 장기적인 안목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잘못을 자각하면 고치는 일은 아무것도 아닌데도 자기 잘못을 시정하려는 자는 거의 없다. (62쪽)

백인들은 흑인들을 존중하지 않는데, 그것은 아마도 백인들의 집단적인 잠재의식 속의 먼 옛날, 그러니까 흑인이 지배층이고 백인이 피지배층이었던 시대의 아픈 기억 때문일 것이다. (87쪽)

에두아르도 멘도사의 ‘구르브 연락 없다’는 쉬이 읽히며 재미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웃음입니다. 웃음은 힘이 있고 웃는 순간 답답함은 이미 절반 이상 풀어지니까요. 세상 알고 보면 별거 없더라는 깨달음, 소설을 읽으면서 슬며시 웃고 나면 세상이 약간은 가벼워 보입니다. 그래서 살만하다는 생각도 납니다. 그래서일까요. 구르브와 동료 외계인은 지구에 남습니다.

답답한 세상, 자신의 나약함에 대한 자각 속에서도 살고 싶다는 생각, 이 책의 미덕입니다.

지구에 정착하면 어떨까. 음식을 먹으면 먹을수록, 생각을 하면 할수록, 골치가 아프면 아프도록 지구에 남고 싶어진다. (10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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