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반 달라지진 않겠지만, 그러함에도 준비가 필요한 일 - 죽음
(시그리드 누네즈의 ‘어떻게 지내요’를 읽고)
( )이란 언제나 딱 그런 느낌이 아니던가. 아무리 뜻밖이라도, 아무리 있을 법하지 않아도, 운명적으로 그렇게 되고 만다는.(239쪽)
먼저, 퀴즈 하나 드립니다. ( ) 안에는 무슨 단어가 들어갈까요? 그전에 살면서 경험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삶, 자연, 나이 듦, 사랑, 부부……. 또 뭐가 있을까요? 이혼, 가정, 이웃, 대화, 관계 그리고 죽음 등 많은 것이 있네요. 시그리드 누네즈의 소설 ‘어떻게 지내요’는 이처럼 사람이 겪는 많은 일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소설입니다. 마치 내 이야기를 하는 것 같고, 인생 선배가 조언을 해주는 것 같습니다. 이미 지나온 것은 손뼉 치며 공감하고, 아직 경험하지 않은 일은 추체험하듯 상상합니다.
소설의 주된 이야기는 죽음에 대한 것입니다. 암에 걸린 화자의 친구가 죽음을 준비하면서 겪는 다양한 에피소드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혹시 여러분은 어떤 죽음을 생각하시나요? 다음은 소설 속 친구가 생각하는 죽음입니다.
가능한 한 세상에 누를 끼치지 않고 내 식대로 죽고 싶었다고. 평온함을 바랐어. 질서 정연함을 바랐고. 어느 멋진 여름밤, 풍광 좋은 마을의 훌륭한 집에서 맞는 아름다운 죽음(211쪽)
세상에 누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는 주위를 살펴야 할 것 같습니다. 나로 인해 상처받은 사람은 없었는지, 자연이나 환경에 해를 입히지는 않았는지, 나의 평안을 위해 타인을 불편하게 하지 않았는지, 되돌아볼 일입니다. 평온하고, 질서 정연하며 어느 멋진 여름밤에 맞이하는 아름다운 죽음은 누구나 꿈꾸는 결말일 것입니다. 시기와 장소를 택하고 고통스럽지 않게 조용히 사라질 수 있다는 것. 이런 죽음을 갈망합니다. 주무시다 돌아가시는 경우가 그렇습니다. 부럽지요. 그런데, 친구는 인생의 마지막 순간, 자신이 생각하는 죽음을 위해 적극적인 죽음을 생각합니다. 윤리적인 문제와 사회적 타당성 등 많은 논란이 있는 죽음이지요. 인간의 자기 결정권을 존중하지만 자신의 죽음까지도 결정할 수 있는 것이 맞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누구에게나 언젠가는 예정된 죽음이지만 막상 몸이 말을 듣지 않고 통증이 시작되면 두려움, 조급함, 분노, 고통, 외로움, 절망감 등이 찾아오겠지요. 그걸 지켜보는 가족이나 친구들도 마찬가지일 것 같습니다. 그러니 ‘고통 없이, 아니면 적어도 극심한 고통으로 몸부림치지 않는 것. 침착하게 약간의 품위를 지키며... 깔끔하고 산뜻’한 죽음을 갈망하는 친구를 이해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위해 자살을 생각하는 것은 선뜻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이해하나 동의하기 어려운 죽음은 역설적으로 삶을 생각하게 합니다. 지나온 날의 후회나 기쁨의 순간을 되새겨보고 타인과의 관계, 사랑에 대해 고민하게 되지요. 성찰의 과정입니다. 그러니 소설은 죽음을 통한 강렬한 삶의 의지를 이야기하지요. 게다가 베냐민의 말을 빌어 작가의 의도를 밝히기도 합니다. 친절하고 깔끔한 작가입니다.
삶의 의미란 글자 그대로, 무엇이 됐든 네가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도록 해주는 것이다. (240쪽)
독자들이 소설로 이끌리는 것은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한기로 떨리는 그들의 삶을 따뜻하게 덥히고 싶은 마음에서라고 베냐민은 말했다. (251쪽)
자 이제 처음 드렸던 질문의 답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정답은 ‘사랑’입니다. 그러나 ‘죽음’을 넣어도, ‘삶’을 넣어도 별 차이는 없을 것 같습니다. 결국 삶, 사랑, 죽음이 같은 것이라 생각됩니다.
죽음을 이처럼 설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어떻게 지내요’는 죽음에 관한 소설 중 단연 뛰어난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