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서평-반의반의 반(백온유)을 읽고

by 나즌아빠

타인의 마음을 반의반의 반이라도 헤아린다면...


수십 년 간 감춰 둔 할머니의 오천만 원이 사라집니다. 그 돈의 반만 있었더라도 할머니의 딸은 감옥에 가지 않았을 것이고, 반의반의 반만 있었어도 할머니의 딸의 딸은 대학생활이 힘들지 않았을 것입니다. 원망과 서운함이 깃든 돈을 누군가가 가져간 것입니다.
백온유의 소설 '반의반의 반'은 사라진 돈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가장 필요한 때에 쓰려고 감춰 둔 할머니의 돈이 사라졌다는 변고를 듣고 할머니집에 세 모녀가 모입니다. 엄마와 손녀는 할머니에게 돈이 있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지요. 할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시고, 엄마는 이혼하였으니 그 돈이면 세 모녀가 어렵게 살지 않아도 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각자의 회한과 함께 말입니다.

잃어버린 돈을 찾기 위해 손녀는 할머니가 사는 아파트 CCTV를 살펴봅니다. 그리고 유력한 용의자로 할머니를 돌보는 요양보호사를 지목합니다. 경찰에 신고하지만 정황만 있지 물증이 없으니 범인으로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그럼 돈은 어디로 갔을까요? 범인은 밝혀지지 않습니다. 실은 누가 범인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사라진 돈이 어떻게 쓰였을지 살펴볼 필요는 있을 것 같습니다. 소설 속 인물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돈의 주인인 할머니는 딸이 재혼하면 주려했습니다. 그러나 딸은 재혼하지 않았고 결국 자신이 노후를 보낼 실버타운 입소 보증금으로 사용하려 합니다. 할머니의 딸은 자신의 간통죄 합의금으로 사용될 수 있었던, 그래서 8개월의 감옥생활을 하지 않아도 되는 돈이었고, 손녀에게는 대학 등록금, 유학자금 혹은 원룸 전세 자금으로 좀 더 행복해질 수 있었던 돈이었습니다. 모두 자신을 위한 쓰임입니다. 그러니 돈이 사라진 불행 앞에 세 모녀는 서로에 대한 더 큰 원망을 쌓게 됩니다.

어머니에게 모성이라는 게 있을까. 그것은 자신이 짐작하는 것보다 더 얄팍한 감정임이 분명하다고 윤미는 생각했다. 모성이라는 단어를 떠올리자 윤미는 오십이 넘는 세월 동안 자신이 그것을 기대할 수 없었다는 사실을 천천히 깨달았다. 살뜰한 보살핌을 갈망했다가도 어머니라는 사람과 함께하기 위해서는 어쩐지 이 정도의 허전함은 감수해야 할 것 같았고, 인색한 사랑에 서운해하는 것도 부질없는 일로 느껴졌다. (29쪽)


할머니에게도 딸과 손녀에게 받은 상처가 있습니다. 자신이 병원에 있을 때 딸과 손녀에게 당부한 식물이 말라죽게 된 것을 보고 실망합니다. 이로 인해 자신이 가꿔오던 대부분의 것을 놓아버리게 되니까요. 그러니 자신을 인정해 주고 필요를 충족해 주는 요양보호사의 말과 행동에 가족보다 더한 친밀감을 느끼게 된 것일 겁니다. 나아가 자신의 돈을 가져갔다면 그 이유도 옹호하려고 하는 마음을 갖습니다. 이를 작가는 순도 높은 모성이라고 말합니다.

영실은 그 아이의 마음을 헤아리려 노력했다. 왜인지 그 애가 자신을 여기에 붙들어두려고 그런 것만 같았다. 지금으로서는 그것이 유력했다. 실버타운에 가지 말라고 그렇게 나를 말리더니, 바보 같은 것.
수경은 영실을 순도 높은 모성에 이르게 했다. (40쪽)

결국 소설은 잃어버린 돈을 누가 가져갔는가 보다는 누구에게 가는 것이 맞는지에 대한 질문으로 읽힙니다. 답은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는 사람, 그 사람에게 향하는 것 같습니다.
안도현의 시 '너에게 묻는다'가 생각나는 소설이네요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