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에 대한 색다른 사유
욘 포세의 ‘저 사람은 알레스’는 형식적인 면에서 독특합니다.
첫 문장은 ‘나는 방의 그곳 의자에 누워있는 싱네를 본다,’이고 마지막 문장은 ‘나는 싱네가 말하는 걸 듣는다’로 처음과 끝에만 ‘나’가 등장합니다. 수미 쌍관식으로 ‘나’라는 화자가 긴 호흡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구조입니다. 게다가 소설은 한 문장처럼 마침표 없이 쉼표로 이어져 있습니다. 마침표가 없으니 무언가가 연속되고 이어진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 한 가지는 짧은 문장을 반복하거나 등장인물의 이름과 인칭대명사를 교차 반복적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읽다 보면 운율이 생겨 쉬이 읽히기도 하지만 등장인물이 누구인지 헷갈릴 때도 있습니다. 잘 읽히지만 집중해서 읽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이런 문장들입니다.
그는 생각한다, 걷는 것으로 충분해, 그는 걷기를 좋아한다, 그는 생각한다, 그는 생각한다, 때로 나가는 걸 참을 필요도 있다, 하지만 밖에 있으면 좋다, 그는 그게 좋다, 그는 걷는 게 좋다, 걷게 되면, 제대로 걷기 시작하면, 제대로 발걸음을 옮기게 되면, 그러면 좋아진다, 그는 생각한다, 그러면 마치 평소 삶을 가득 채우고 있는 무거운 것이 조금 더 가벼워지는 것 같다, (28쪽)
갈게, 어슬레가 말한다
그리고 그는 서 있다
여기는 추워, 가자, 우리 방으로 가, 난로에 불이 멋지게 타고 있어, 싱네가 말한다
그리고 그녀는 가볍게 그의 손을 잡는다, 그리고 그녀는 바로 다시 손을 놓고 방으로 들어간다, 그녀는 거기 의자에 누워 있는 자신을, 방으로 들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본다, 그리고 들어오는 그를 본다, 그리고 그녀는 바로 그의 뒤에 알레스도 들어오는 것을 본다, 그녀도 방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난로로 가는 자신을, 장작을 집는 자신을 본다, 그리고 허리를 굽히는 자신을 본다, 그리고 그는 그녀를, 그녀가 허리를 굽히고 난로 앞에 서 있는 모습을 본다, 그리고 그녀는 장작을 불 속에 비스듬히 집어넣는다, 그리고 그 순간, 그는 알레스가 장작을 난로에 집어넣는 모습을 본다, 싱네가 아니다, 알레스다, 그의 고조할머니, 지금 그녀는 난로 앞에 서서 장작을 비스듬히 집어넣는다, (52쪽)
작가는 왜 이런 형식을 취했을까요? 소설의 내용을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소설의 중심인물은 싱네와 남편 어슬레 그리고 또 다른 어슬레(남편 어슬레의 할아버지의 형으로 이름이 같습니다.)입니다. 할아버지 어슬레는 7살 때 익사하고 남편 어슬레는 보트를 타고 피오르드 바다에 나갔다가 사라집니다. 아마도 할아버지 어슬레처럼 죽음과 연관이 있을 것 같습니다. 소설은 싱네와 남편 어슬레의 대화와 행동을 통해 감정과 회상, 느낌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할아버지 어슬레의 이야기를 교차시키면서 데자뷔가 일어납니다. 마치 어제의 일이 오늘의 일처럼 느껴지고 반복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게다가 소설 제목의 알레스는 남편 어슬레에게는 고조할머니, 익사한 어슬레에게는 증조할머니입니다. 즉, 두 어슬레를 연결하고 있는 분이지요. 이처럼 죽음을 두고 반복과 연결의 교차편집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무의미하게 합니다. 삶의 윤회, 혹은 연속성을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이제야 소설 형식의 독특함이 이해가 됩니다. 마침표가 없고, 단어와 표현이 반복되는 문장은 소설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죽음은 삶의 끝이 아니며 어딘가에서 기억되고 반복되는 것임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2023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욘 포세는 독특한 표현방식으로 실험적인 글을 쓰는 것으로 유명하며 일상적 언어와 쉬운 문장의 반복적 사용이 특징이지만 글의 내용은 삶과 죽음, 인간의 본성을 성찰하는 것으로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소설 ‘저 사람은 알레스’ 또한 죽음과 삶, 그리고 이에 따른 불안을 매우 색다른 방식으로 표현하고 사유하게 한다는 점에서 흥미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