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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각각의 계절, 기억의 왈츠, 권여선

by 나즌아빠

젊은 시절의 기억에게 안녕을 전합니다.


‘아직 희망을 버리기엔 이르다. 나는 서두르지도 앞지르지도 않을 것이다.’ (241쪽)


되돌아본 여러분의 인생은 어떤 모습인가요? 고통인가요, 회한인가요, 아니면 잔잔한 미소인가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어느 시점에서는 자신의 생을 돌아볼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럴 때 등장하는 기억은 오늘을 살아가는 힘이 될 수도 있고, 아니면 자신을 갉아먹는 아픔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기쁨만 있는 인생이 어디 있으며, 고통만 있는 인생이 어디 있겠습니까!

십자가형에 처하신 예수님도 어린 시절엔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라는 성경구절을 보면 행복했던 시절이 있었던 건 확실한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과거의 기억은 우리에게 어떤 쓸모가 있는 것일까요?

권여선의 ‘기억의 왈츠’는 과거 기억을 통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희망과 긍정을 말하고 있습니다.

60대의 내가 20대의 나에게 보내는 위로의 글 같고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누이’처럼 편안함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급하게 먹은 고구마가 목을 메이게도 하지만 먹고 나면 포만감을 느끼게 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요? 20대를 회상하면 왜 그랬을까 하고 얼굴 붉힐 때가 있잖아요? 행동에 대해 이유를 설명하지 못할 때도 있고, 긴가민가하는 감정선은 한참 후에나 겨우 실마리를 찾을 때도 있지요. 뒤죽박죽 그런 순간들 말입니다. 이런 기억 속 순간을 작가는 매우 유려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이지요.


혹시라도 누군가 내게 왜 그런 꼴로 사느냐고 물었다면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왜 그런지 이유를 알았다면 나도 그렇게 속수무책이었을 리가 없다. 내 머릿속은 그냥 그러니까 그런 거고, 그런 식이니까 그런 식이라는, 생생한 색채를 잃어버린 덧없는 그림자 같은 기운들로 가득했다. (210쪽)


그리고 20대에 가장 애절한 순간은 아마도 상대에 대한 감정이 무엇인지 알지 못할 때, 그리고 뒤늦게 알게 되는 순간이 아닐까 싶습니다. 후회해도 어쩔 수 없지만 되돌아갈 수만 있다면 꼭 그때일 것 같습니다. 그래서 화자는 그 순간을 생각하면 뼈가 저릴 듯하다고 합니다.


그거 아직 다 안 읽었는데, 다시 돌려줘야 하는 거였느냐고 물었다. 그때 경서가 할 말을 잃은 듯 나를 망연히 바라보던 얼굴을 생각하면 지금도 뼈가 저릴 듯 부끄럽다.(235쪽)


뼈가 저리다는 말... 황지우 시인도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아무도 사랑해 본 적이 없다는 거;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 세상을 지나가면서

내 뼈아픈 후회는 바로 그거다

그 누구를 위해 그 누구를

한 번도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

(황지우, 뼈아픈 후회 中)


그러고 보면 사람들은 많은 순간 후회하며 사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과거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일 것입니다. 작가는 자신의 기억을 따뜻하게 품을 것을 제안하는 것 같습니다. 살아온 날들 하나하나가 결국 현재의 자신을 만든 거니까요!


기억이 나를 타인처럼, 관객처럼 만든 게 아니라 비로소 나를 제자리에 돌려놓았다는 걸 아니까.(242쪽)


자 이제 듣고 싶네요. 당신의 20대는 어떠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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