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안의 감정을 탐구하는 책
나는 누구인가 혹은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라는 질문은 문학의 오래된 숙제 같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많은 소설들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쓰여지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런데 이 질문의 답을 찾기가 녹록하지 않습니다. 저마다 경험하고 숙고하는 과정에서 깨닫는 것이 모두 답일 수 있으니까요. 그것은 인간 존재의 불완전성과 개별성, 그리고 다양성 때문이지 싶습니다. 백이면 백 모두 다 다르잖아요. 그래서 답을 찾아가는 과정 자체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의 첫걸음은 무엇일까요? 저는 자신 안에 있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살펴보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레이첼 커스크의 소설은 주인공 M의 감정을 충실히 표현한 소설입니다. 작가가 M의 생각과 마음을 제퍼스라는 인물에게 고백하는 형식을 택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 생각됩니다. 마치 고해성사하듯 자산의 마음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소설은 M이 남편 토니의 별채(소설의 제목 두 번째 장소의 다른 표현)에 화가 L을 들이기 위한 과정, 함께한 시간 그리고 별채를 떠난 이야기가 큰 줄기입니다. 작가는 여러 등장인물과 관계에서 발생하는 M의 생각과 욕망, 자유, 외로움, 사랑, 질투 등 다양한 감정을 마치 잠언처럼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런 표현이 눈에 들어옵니다.
“기쁨은 썩어 없어지는 것이라 애초에 조금씩 꺼내 써야 하는 것 같더군요.”
“인간의 감수성은 일종의 천부적 권리이자 창조의 순간에 주어지는 자산이라는 것, 인간은 감수성을 이용해 영혼의 흐름을 통제하도록 타고난다는 것을요. 우리가 삶에서 취한 것만큼 삶에 되돌려주지 않는다면, 곧 이 능력은 둔화하고 말 거예요.”
“어떤 것이 현실이라고 주장하면 그곳에서 진실이 싹트는 것이 아니에요. 진실은 현실이 우리의 해석을 넘어서는 곳에서 싹터요. 진정한 예술은 현실적이지 않은 것을 포착하고자 해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M은 자기 자신의 감정에 매우 충실하고 적극적인 인물입니다. 주어진 상황을 자신의 시각으로 표현하며 행동하지요. 특히, 여성에게 주어진 현실을 사회비판적으로 바라보기도 합니다.
“여성에게 주어진 사전을 이용해 남성의 자유를 해석해 내고, 그중 의아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부분과 우리에게 누릴 자격이 없는 것은 무시해 버리면, 짠! 여자도 남자의 세계에 동참하게 되는 거고요. 이는 남자의 옷을 빌려 입는 행위이고, 때로는 남자를 흉내 내는 행위에 불과해요.”
그리고 자신에게 일어나는 변화를 적극적으로 주도하고(M은 L을 자신이 함께 살고 있는 토니의 별체로 데려온다) 또 그에 따른 감정표현(L이 별체에 머무는 동안 남편 토니와의 삼각관계, L과 함께 온 브렛에 대한 질투, 딸 저스틴에 대한 생각 등)도 거침이 없습니다. 자신만의 느낌을 자신만의 언어로 표현하지요.
이처럼 소설은 주인공 M의 적극적인 상황인식과 자기감정을 충실히 표현함으로써 자존감을 잃은 사람이나 감정표현이 서툰 이에게 용기를 줍니다. ‘이렇게 생각해도 되는구나, 이렇게 말해도 되는구나’ 하고 말이지요. 또한, 자기감정 표현을 명확히 하는 M을 통해 자기인식의 고갱이를 강조합니다. 작가는 소설의 서두에서 이를 밝히고 있습니다. M이 살고 있는 곳인 토니의 습지를 사랑하게 된 이유를 ‘존재의 순간을 공유하는 듯한, 그 순간으로부터 떼어낼 수 없는 듯한 분위기가 있어서’라고 하면서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명확한 것은 ‘내가 여기 있다.’라고 말하는 것에서 알 수 있습니다. 즉, 사랑하는 자기 자신을 명확히 인식하는 것에서부터 사랑은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은 인간 존재에 대한 탐구 소설로 읽힙니다. 자기감정을 이해하고 타인과의 관계에서 존재의미를 되새기게 하기 때문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