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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시댁에 올 때는 빈손으로 오는 거 아니다.

살림하는 꼬락서니 하고는

by 고트

지난 주말 어머님이 말씀하셨다

" 가정교육을 못 받았어도. 이 정도 일 줄은 몰랐다."

"네? 어떤 걸 말씀하시는지.."

" 어른 계시는 시댁에 오면서 왜 빈손이니? 작은 선물이라도

사가야 한다는 교육도 못 받은 거야?"

" 죄송합니다 어머니 다음엔 조심할게요"

"아들 퇴근해서 바로 여기로 오면 되는데 너는 왜 번번이 기다렸다 같이 오는 거니? 너는 아들 출근 하면 바로 와라."


오늘은 서둘러야 한다. 몇 푼 안 되는 생활비 중에서 만원을 들고 버스를 기다린다. 무엇을 사가야 눈치 있는 며느리가 될지 도통 모르겠다. 아현역 앞 시장통을 세 바퀴째 돌고 있었다.

눈치 빠른 수박 노점상 아저씨가 불러 세웠다

"새댁 얼마 있어?"

"네? 저요? 만원 이요"

" 이렇게 더운데 시장통을 몇 바퀴나 돌 거야? 이거 만원에 가져가. "

하시며 내 배보다 더 큰 수박을 내어 주셨다. 너무 감사했다.

그런데 너무 컸다. 너무 무거웠다. 반대편 끝까지 들고 가야 한다.

배도 무겁고, 수박도 무겁다. 어지럽고 눈앞에서 노랗게 어른거리는 이 형체는 무엇인가. 걸을 수가 없다.

순간 주저앉으며 수박을 깨뜨리고 말았다. 철렁 가슴이 내려앉았다. 오늘도 나는 수박 하나 못 들고 오는 가정교육 못 받은 며느리가 되는 날이었다. 반토막 난 수박에서 수박물이 흘러나왔다. 서둘러야 했다. 이게 얼마 짜린데.


다행히 별말씀 없으셨다. 깨진 수박 한번, 헝클어진 머리카락과 땀범벅 된 얼굴 한번. 지난주 보다 더 커진 배 한번 쳐다보시고 한숨 한 번으로 넘어가 주셨다.


저녁식사 후 세상 달콤한 수박이 내어졌다. 들고 오면서 수박아저씨를 원망했던 게 미안해질 지경이었다.

아버님이 물으셨다

" 웬 수박이야? 어디서 났어?"

"며느리가 사 왔습디다"

"살림하는 꼬락서니 하고는.. 너네들이 이런 거 사들고 다닐 형편이냐? 넌 살림을 무슨 정신으로 하는 거냐. 쯧쯧쯧쯧" 아버님은 나를 한번 노려보시곤 수박조각을 던지듯 내려놓고 들어가셨다.

' 아 다행이다. 다음 주에는 그냥 와도 되는 거잖아. 괜찮아'

무안해져 빨개진 얼굴이었지만 나는 속으로 잘 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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