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숭아는 사랑이다
내 고향은 깡 시골이다
비포장 도로 위에 뿌연 먼지바람을 날리며 흔들흔들 완행버스가 지나가면 우리들 달리기보다 느린 버스를 상대로 달리기 실력을 뽐냈다.
완행버스가 멀어지면 길가옆 복숭아 과수원에 복숭아 서리를 하러 간다. 익지 않은 파란 복숭아솜털이 땀범벅된 얼굴과 목에 달라붙었다.
따갑고 가려워 소리를 지르며 과수원을 뛰어나올 때면 논 일하던 아저씨는
" 익지도 않은 거 먹으면 배 아프다. 한참은 있어야 먹을 수 있겠고만" 소리를 치신다
나는 따끔거림도 가려움도 이겨낼 수 있다. 퍼렇게 안 익은 복숭아도 너무 맛있다. 달콤한 향기는 또 어떤가 코끝을 간지럽히고 구름 위를 둥둥 나는 듯한 느낌.
임신을 하고서는 복숭아가 너무너무 먹고 싶다.
길 건너 큰 마트에서 복숭아를 팔고 있다. 천 원이다.
새벽 3시에 남편은 교차로를 돌리러 가야 한다.
알람이 울리면 용수철처럼 벌떡 튕겨지듯 일어나 컴컴한 골목을 나선다. 발자국 소리가 멀어질 때까지 가만히 듣고만 있는다. 7시 반이면 배포를 마치고 두 번째 출근을 한다. 퇴근 후 세 번째 직장은 식당 물수건 회사다. 거래처 식당들을 돌아다니며 사용한 물수건을 회수해 공장으로 가져다주는 일이다.
밤 12시는 되어야 집에 들어오는 남편. 하루 세 번의 출근을 하며 하루를 쉬지 않는데도 갚아야 할 빚은 줄어들지 않았다.
월급 들은 빚통장으로 입금되었고 한 달 생활비는 몇만 원이 전부였다.
그런데 참 속도 없다.
복숭아는 왜 이렇게도 먹고 싶은 건지. 복숭아 생각하면 눈물이 났다.
오전에 길 건너 마트에 간다. 코 끝을 간지럽히는 이 달콤한 복숭아 향내음. ' 천 원인데 살까? 아니야 아니야 복숭아 향기만으로도 만족해. ' 마트의 주인아저씨가 힐끗 쳐다본다. 야채를 봉지에 소분해 담는 여사님도 힐끗 쳐다본다. 나는 복숭아 매대 앞에서 가만히 서 있는다. 몇 분째 인지 10분이 지났는지 20분이 지났는지 나는 모른다. 매대 앞에서 나의 온 신경을 코로 집중을 하고 그 향기의 아름다움 느끼고 서 있는다. 그러다 눈물이 차오르려고 하면 마트를 나온다. 그렇게 삼일이 지났다.
오늘은 천 원을 주고 복숭아 하나를 샀다.
새벽부터 일 나가는 남편에 미안하다. 그러면서도 기쁘다. 복숭아가 너무도 탐스럽다. 향기는 또 어떻고.
소중한 복숭아가 상처라도 날까 봐 조심히 씻는다.
솜털이 씻겨 나가는 걸 보며 미소가 절로 난다
"큭큭 애들이랑 복숭아 서리 할 때 생각나. 나영이는 두드러기 올라왔었는 데도 나는 멀쩡했었지 " 혼잣말로 소싯적 이야기를 떠들어 댄다.
씻은 복숭아는 텅 빈 냉장고에 소중히 넣어 놓는다.
냉장고 문을 열고 잘 있나 확인도 한다. 마트에 나가지 않아도 된다. 냉장고 문을 열면 복숭아 향내의 달콤함에 하루가 행복했다.
퇴근하고 12시가 넘어 녹초가 되어 들어오는 남편. 3시가 되면 또 용수철처럼 벌떡 일어난다.
" 오빠 이거 들고나가"
"뭐야?"
" 음 복숭아야 빈속에 나가는 게 영 마음에 걸려서. 가면서 깨물어 먹어"
"그래 고마워"
나는 그날도 골목에서 멀어져 가는 발소리를 들으려 했다. 그런데 발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대신 오빠가 복숭아를 깨물어 씹어 먹는 와그작와그작 소리만 아련히 멀어졌다.
너무 먹고 싶어 눈물이 나온다. 그래도 새벽일 나가는 오빠가 먼저 이기에. 나는 괜찮다. 또 마트에 가면 달콤한 향기가 나를 위로해 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