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살아있다.

with 비에도 지지 않고

by sunshine


살아오면서 죽음 충동을 느껴본 적이 있는지 묻고 싶다. 정신분석학자 지그문 프로이트는 1,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죽음 본능에 대해 사유하게 된다. 인간의 극단적이고 파괴적인 본능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결국은 죽음 본능이라는 개념을 발표했다. 프로이트는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비유기체적인 상태로 회귀하고자 하는 현상이 있으며, 경제학적으로는 갈등과 긴장을 줄여 ‘없음’으로 만들고자 하는 성향이 있다고 자신의 사유과정을 발표했다. 생리학적으로 인간은 삶의 충동은 결합을 하려 하고, 죽음의 충동은 떨어트리고 분리시키려 한다는 것이다.


나는 청소년기에 수녀가 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자주 했다. 종교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폭력과 비난이 난무하는 가정환경과 미래에 대한 비전 없이 생명을 유지하는 정도의 삶에서 탈출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상징적으로 수녀가 된다는 것은 속세, 그러니까 집을 떠나 신성한 교회, 즉 강력한 보호자가 있는 안전한 곳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나는 잦은 천둥과 번개, 비가 몰아치는 곳, 언제나 위험이 가득해 나를 보호해주지 못하는 곳에서 살아남아 자기 보존을 해야 했기에 공격적일 수밖에 없었다. 욕구좌절에 대한 반응으로 나는 까칠하고 대차게 할 말을 하던 아이였다. 비가 오는 날이 있으면 맑은 날도 있고 겨울이 있으면 봄이 있을 것이라는 진리를 이해하고 깨닫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였기에 불행하다 느끼는 날들이었다. 그래고 살아있으니 기쁘다, 좋다 말하는 날이 왔다. 시간을 견디는 것이 자기 돌봄의 방법 준 하나라는 것은 이런 과정을 경험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30대의 삶은 잘 참아준 것에 대한 보상과 같았다. 원가족에서 분리되어 내 가족을 꾸리고 경제적 안정 안에서 정서적 안정감이 찾아왔다. 나는 이런 일상이 지속될 줄 알았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모두가 알 것이다. 갑자기 신체적 병을 얻음과 동시에 남편의 파산은 중년의 나를 더 깊은 수렁으로 내몰았다. 꽃을 피우기도 전에 시드는 것처럼 위기의 순간은 한동안 지속되었다. 그때 경험한 것이 죽음 충동이다. 끝날 것 같지만 끝나지 않는 불안한 일상을 겉으로는 담담하게 버티는 것처럼 보였지만, 내면은 삶의 충동보다 죽음의 충동으로 내몰리고 있었던 것이다. 실수로 일으킨 교통사고가 실수가 아닐 수 있음을 깨닫는 순간 숨이 멎는 것과 같은 충격을 받았었다.


집으로 귀가하는 길에 나는 신호등에 정차하고 있는 앞의 자동차에 충돌했다. 운전 경력으로 사고의 유무를 예측할 수는 없지만, 20대부터 운전에서는 무사고였고 방어적이었던 나는 처음으로 크게 사고를 냈다. 그것도 일방적으로 말이다. 놀라운 것은 사고를 낸 후에 나는 너무나도 침착했으며 두려움과 불안보다는 오히려 후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마치 사고를 예측했던 것처럼 침착하게 사고 처리를 했다. 그러면서 내가 정말 많이 힘들어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족앞에서는 불안과 두려움을 내색하지 않으려 애썼지만, 위기를 모면할 수 있을 지의 걱정과 배우자에 대한 불신, 자녀의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잠을 이루기 어려웠던 시기였다.

미야자와 겐지의 ‘비에도 지지 않고’는 죽음 본능에 지지 않고 살아낸 나의 삶이 어떠했는 지를 바라보는 기분이 드는 그림책이다. 많은 그림책 중 가장 좋아하는 책이다. 앞으로의 나의 삶이 어떠하기를 원하는지 내 마음을 잘 알아준다.


비에도 지지 않고

바람에도 지지 않고

눈보라에도

여름의 더위에도 지지 않는


-중략-


모든 일에 내 잇속을 따지지 않고

사람들을 잘 보고 듣고 알고

그래서 잊지 않고

들판 소나무 숲 그늘 아래

작은 집에 살고

동쪽에 아픈 아이가 있다면

가서 돌보아 주고

서쪽에 지친 어머니가 있다면

가서 볏짐을 날라 주고

남쪽에 죽어가는 사람이 있다면

가서 두려움을 달래주고

북쪽에 다툼이나 소송이 있다면

의미 없는 일이니 그만두라 말하고


-중략-

스크린샷 2024-10-14 134020.png 비에도 지지 않고/언제나 북스

100여 년 전에 살았던 이웃나라 시인에게 위로를 많이 받았다. 이 책은 시그림책이라고 해야 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미야자와 겐지의 유작이었던 ‘비에도 지지 않고’는 한국에서 외국에서 다양한 그림과 조화를 이룬 여러 모습의 그림책으로 만날 수 있다. 작가가 자신의 삶에서 얻은 통찰을 그려낸 시이기에 그렇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고유성과 보편성은 백지 한 장 차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미야자와 겐지'의 글에서 나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지금 나는 비에도 지지 않고 바람에도 지지 않고 눈보라에도 지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 사람들이 나를 부르면 달려가 두려움과 불안을 달래주며 비가 오지 않으면 밭으로 달려가 물을 주고, 비가 오면 우산을 준비한다. 바람이 불면 서로 붙들어주고 눈이 오면 함께 바라보면서 나의 동산을 돌보고 있다. 앞으로 얼마의 삶의 여정이 얼마나 남았는지 모르겠지만,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계획하지 않는다. 이미 살았던 사람의 이야기로 위로받고, 흉내 내어 보기도 하며 그렇게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평생 소박하게 살았다는 미야자와 겐지처럼 내가 꿈꾸는 삶은 소박하고 평범한 일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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