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회장 출마 그리고 후원금

by 황훈영
13 학생회장 출마.jpg 나는 아빠에게 생애 처음으로 정치 후원금을 받았다.


나는 상고를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다 늦깎이 대학생이 되었다.

친구들보다 3년이나 늦은 출발이었기 때문에 한시도 허투루 보낼 수가 없었다.

나는 아빠에게 두 가지를 약속하고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했다.

하나는 절대 학생운동(데모)에는 참여하지 않겠다는 것이었고,

나머지 하나는 대학졸업 전에 외무고시에 합격하겠다고 약속했다.


1980년대 후반 대학 교정은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었다.

군사독재의 잔재가 여전히 사회를 불안과 공포로 몰아넣고 있었다.

교내에서는 하루도 빠짐없이 집회가 열렸고,

학생들은 거의 매일 거리로 나가 전경들과 대치했고,

시위를 주동한 학생들은 백골단의 곤봉을 피해 쫒기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나는 아빠와의 약속 때문에 학내의 이런 소란을 애써 외면하고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정문 앞 게시판에 붙은 포스터에 시선이 꽂혔다.

‘야학교사’를 모집한다는 일종의 구인 광고였다.

이 구인광고는 내 마음 속에 숨죽이고 있었던 정의감을 끌어내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나는 1학년 여름방학이 시작되면서부터 검정고시 야학에서 국어를 가르쳤다.

학교에 가지 못하고 어린 나이에 공장에 다녔던 아이들, 가사도우미를 하던 언니,

구두닦이 보조로 일하던 아이까지

야학에 오는 친구들은 모두가 고단한 삶을 살고 있었다.


야학교사들과 학생들은 1년 동안 정말 식구처럼 지냈다.

검정고시 합격증이 그들의 삶을 크게 바꿔줄 것 같지는 않았지만,

고달픈 삶이 조금이라도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를 지켜주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나 나의 이런 기대감은 변명과 동정으로 포장된 껍데기였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무력감에 은둔자가 되어 방황하는 날이 계속되었다.

방황은 오래가지 않았다.

나는 야학을 나와 찾아간 곳이 법정대 지하에 있는 학생회실이었다.

내가 현재 몸담고 있는 곳에서 그 무력감을 떨치고 새로운 길을 찾고 싶었다.


대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부터 본격적으로 학생회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거의 매일 집회와 가두 시위를 나갔고, 밤에는 학회 활동으로 정신없이 보냈다.

이렇게 나는 아빠와의 약속을 무참히 깨뜨렸다.

서울지역 대학생 연합집회가 있던 날에는 집에 갇히기도 했다.

아빠는 나를 방안에 가둔 뒤 거실에 앉아서 나를 수시로 감시했다.

그때도 내 방의 창문을 타고 도망쳐 거리로 나섰다.


3학년 학기 초, 정치외교학과 학생회장으로 단독 출마하게 되었다.

학내에선 노동운동 출신이 학생회장으로 나왔다는 등 괴소문이 돌았다.

직장을 다니다 늦깎이 대학생이 된 나의 이력이 소문의 근거가 되었던 게다.


나는 아빠에게 한 대 얻어맞을 각오를 한 뒤, 학생회장에 출마하게 되었다고 털어놨다.

그 순간 “당장 자퇴하라”는 불호령이 떨어질 줄 알았다.

한참 동안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호통 대신 깊은 한숨 소리가 새어 나왔다.


“누가 그 황소고집을 꺾겠냐? 너무 나서서 앞장서지는 말고 중간만 해라”

아빠는 속이 시꺼멓게 타들어가면서도 내게 이렇게 응원을 보내주었다.

그 자리에서 만원짜리 열 장을 꺼내서 내 손에 쥐어주었다.

아빠가 주는 후원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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