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eon Nov 27. 2024

내 인생의 피크 시절. 20살.

난 무슨 생각으로 20이라는 숫자를 기억하는가.

생년월일이 빠른 생이라서 나는 항상 친구들과 나이 경쟁을 했다.

20대에 나는 내 친구들과 빠른 생일에 대해서 갑론을박을 하며 내가 더 나이가 많아 네가 더 어려 이런 소리를 하면서 서로 말도 안 되는 나이경쟁심 나이부심을 했던 기억이다.


남자친구도 떠나갔고, 친구들도 다 군대를 갔다.

홀로 남은 20대의 나,

첫 직장은 거의 없다고 셈 치고 다음 직장을 구하기 시작했다.


직장을 구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서울처럼 학벌을 크게 따지는 시절이 아니었던 점이 다행이다.

이때 나는 대학을 가지 못했으니 말이다.

물론 지금은 아니다. 늦지만 공부를 했고 대학도 물론 마무리하고 지금은 더 공부하고 싶은 것을 위해 대학원을 알아보고 있다.


이때는 그런 생각도 없었다.

마냥 20대였고 마냥 놀고 돈을 버는 것, 어른이 빨리 되는 것에만 집중했다.

배움이라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것인지 포기했었고 생각지 않았던 시절이다.


무거는 이야기는 지금 할 때가 아니다.

난 이제부터 20살이다.

첫 직장은 망할 놈의 이유로 그만뒀지만 두 번째 직장은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이 많다.

여기저기 광고를 뒤졌고 이력서를 넣었다. 면접도 꽤 많이 봤다.

최종 합격 통보를 통신사에서 받았다. 그때 당시에는 파워콤이라고 해도 되겠다.

c/s 센터의 상담원으로 일하게 되었다.

고객응대를 하는 상담 센터였다. 해피콜을 돌리고 고객의 불만을 접수하는 역할을 배정받았다.


전화가 걸려온다. 매일매일 전각 9시가 되면 시스템이 오픈된다.

그때는 ms dos 시절이었다.

386 컴퓨터를 썼다고 하면 알까? 아무튼 몸통이 거대한 모니터의 그 뚱뚱이 컴퓨터.. 그때는 거의 다 그 컴퓨터였다. 지금처럼 날씬하고 에지 있는 모니터나 본체는 상상할 수 없었다.


아침부터 전화가 걸려온다는 것은 c/s 센터에 좋은 일은 아니다.

왜? 거의 불만 접수가 많다.

항상 우리는 상냥해야 한다.

젠쟝.... 나는 상냥하지 않지만 억지웃음을 지으며 "네 고객님 000 상담사 000입니다 이하 멘트"를 해야 한다., 상담이 마무리되고 나면 고객들은 점수를 준다.

그 점수가 인사에 반영이 된다.

그런 곳에 나는 취직을 했고 그곳에서 근무를 하게 되었다.

거기서 알게 된 동생이 지금까지 가장 친한 남동생으로 지내고 있다.

그 친구는 참 능력이 많은 친구이다. 마술도 잘하고 강의도 잘한다. 어리지만 참으로 영리하고 귀여운 동생이다. 상담센터에서도 나는 나 혼자였다.


여자드링 많은 c/s 센터에서 나에게 따가운 눈치리들만 가득이다.

왜인지는 아직도 모르지만. 난 항상 거기서도 남자아이들과 어울렸고 , 여자아이들은 나를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하고 생각했다.

그곳에서 일을 하면서 가장 가슴이 아팠던 기억은 하나 있다.


[나에게 일어난 일]

열심히 상담 전화를 받고 나서 그달의 친절 사원을 뽑는 날이었다.

내 팀의 팀장은 나보다 나이가 조금 더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팀장에게 뇌물이라던지 밥을 샀다던지 하는 그런 아양 떠는 행동을 한 적도 할 생각도 해본 적이 없다.

그래서일까? 다른 여자아이들은 쉬는 시간이면 쪼르르 그 팀장에게 다가가서 서로 아양떨기 바쁘다,.

나는 그런 것이 역겨웠다.

그래서 나는 그냥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듣거나 남자아이들과 어울려서 수다를 떨었다.

갑자기 팀장이 나를 부른다.

"네? 무슨 일이세요?"라고 물었다.

"넌 내가 싫니?"라고 묻는다.

"네? 제가 그럴 리가 있을까요?"라고 말했다.

"아니. 넌 나한테 한 번도 오지도 않고, 뭐 밥을 먹자거나 뭐 아무것도 없이 항상 너 혼자 잘났네?"라고 쏘아붙인다. 너무 어이가 없다.

"아니, 제가 굳이 이야기를 할 것이 있을까요???" 

당당히 말했다. 큰소리로 나에게 무안을 준다.

"야. 얘가 나한테 뭐라는지 알아? 내가 말하는 거 다 또박 또박 받아치네? 야 진짜 얘 골 때리네"라고 말이다.

이게 무슨 일이지? 순간 얼굴이 화끈거리고 너무 화가 났다.

주먹이 날아갈 뻔했지만 꾹 참는다. 여기는 학교도 아니고 사회이니까...

저 사람은 나보다 나이도 많으니 존중해줘야 한다. 난 그렇게 배웠고 그래서 참았다.


그날. 나는 완전히 고립되어 왕따가 되었고 그 상태로 나는 몇 달을 버텼다.

그때, 나에게 센터의 장이 부른다.

난 센터장을 만날 기회가 없다. 하지만 나를 알고 있는 듯하다.

"네가 000이니?"라고 묻는다.

" 네 맞습니다"라고 말했다.

"오... 너 이쁜데? 근데 왜 이렇게 속을 썩이니..라고 하면서 내 손을 덥석 잡는다...

"아. 죄송합니다"라고 하고 손을 뺏다.

굉장히 불쾌해하면서 말한다. " 너 진짜로 싹수가 없구나?"라고 직설타를 날린다.

이게 싹수없는 짓인가? 뭐지?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다.


이렇게 나의 사회초년생의 생활은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도 어이없이 시작되었다.

지금의 나라면 바로 싸대기를 날렸을 거 같다.

하지만 그때는 어렸고 그저 몰랐다.

사회 초년생들은 알았으면 한다.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 다닌 지 얼마 안 된 경우에 빨리 그만둬라.

이러한 경우를 겪었다면 참지 말고 신고해라라고 말이다.


그렇게 혹독한 나의 그곳에서의 생활은 1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고 난 그 회사에서 악으로 깡으로 버텼었다.

그렇게 나의 20살이 시작되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