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않았는가... 나는 어릴 때 천방지축이었다고...
이런저런 사유로 인해서, 어릴 때 고생을 하고 있다.
친구의 배신, 동료들의 따돌림. 그리고 나름의 극복,. 나름의 소신까지 생겼다.
그 소신이라는 것이 고집이 되고 아집이 되었던 것 같기도 하다.
난 자랑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친구에게 의리를 지키기 위해 혼자 고군분투했다.
배신이지만 배신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사정이 있을 것이라고 그때는 생각했다.
그래 나 혼자 버티고 고생하면 언젠가는 좋은 날이 올 거야.라는 막연하고도 또 나름대로 소신 있는 삶을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친구의 연락 두절 이후 아주 긴 세월 동안 힘들었지만 그것은 내 일상에서 한 조각일 뿐 나머지는 내가 행복으로 채워야 하는 것이다.
난 말했듯이 핸드폰 매장에서 지지를 받으며 일했다.
내가 밥 먹을 시간에 대한 권리를 주장했고, 그것을 일상화하는 변화를 일으켰다.
그리고 그 꼴등 매장을 일등 매장으로 만들어 주기도 했다.
이때의 월급이 아마 지금의 일반인 직장 280만 원 정도 되었던 것 같다
까마득한 옛날인데 이 정도면 아주 큰돈이다.
지금은 초창기 기본급 정도인 금액일지 모르나, 이때는 그것이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의 부러움을 샀고, 그러나 그들은 응원해 주었다. 그래서 이곳에서 일하는 것이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집이 먼 것 제외하고는 말이다. 나중에는 너무 힘들어 하자 사장님이 직접 집 앞으로 오셔서 픽업해서 매장까지 나를 데리고 왔고 그렇게 거기서 몇 년을 다녔다.
우선은 애가 오늘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그때의 시절로 돌아가서 한바탕 웃어 보려 한다.
요즘 웃을 일이 없어서 이것이라도 적어보고 웃어보기라도 하려고 한다.
저녁약속. 이것은 오랜만에 친구들과의 술 약속이다.

이제 성인이기도 하고 23살 정도 다 되어가면 성인이다.
솔직히 술이 술인지 물인지 모르고 퍼 마실 때라. 무슨 맛인지 모르고 엄청 먹어댔다.
아침이면 시체처럼 일어나기 일쑤였고 엄마는 잔소리 폭격이다.
하지만 그 기분이 꽤 나쁘지는 않았다. 뭔가 술을 먹으면 용기가 생기는 것 같다.
지금은 아니지만 그때는 혈기 왕성할 때라서 더 그랬던 것 같다.
친구들과 오랜만에 술약속! 나는 휴대폰 매장이었지만 일요일은 쉬었다.
평일날은 쉬기 힘들다 친구들이 다 일을 하거나 학교를 가니까 말이다.
그래서 주말에는 꼭 쉰다. 약속이 있건 없건말이다.
친구들과 술을 먹었다. 그때 옆에서 시비가 붙었다.
가만히 쳐다봤다. 그런데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한 허름한 포장마차가 연결되어 있는 곳에 가서 술을 먹었다.
그곳은 횟집센터들이 즐비해있는 곳이었고, 그곳에서 서로 자기네 식당으로 오라고 홍보하고 아주머니들이 말을 한다. 나는 그냥 내가 내키는 곳으로 갔다. 나를 보면서 자꾸 자기 가게로 오라고 하는 아주머니를 뿌리치고 바로 옆집으로 갔다.
바로 옆가게와 그 가게는 천막으로 되어있다. 그래서 앉으면 기대었을 때 상대측 천막이 조금 움직임을 보이거나 이동된다. 1m라도 이동이 되면 생 난리를 친다.
아... 기분 좋게 먹으러 왔는데 오늘 또 왜 이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친구들도 나의 셩격을 알기 때문에 눈치 보기 바쁘다.
"야야 괜찮아 그냥 좀 댕겨 앉아"라고 한 친구가 말을 건넸다.
"아니 이거 좀 웃기지 않나?"라고 내가 말을 던졌고, 옆가게 아줌마가 "진짜 짜증 나네! 왜 우리 가게 자리를 자꾸 천막으로 치는 거야?"라고 말하면서 "아오 재수가 없으려니까.."라는 막말을 한다.
난 그 말에는 더 이상 동조할 수 없다.

"뭐? 재수 없어? 지네가게 안 갔다고 재수 없어? " "이 아줌마가 미쳤나 "라고 하면서 벌떡 일어났다.
친구들도 다 같이 일어나기 바쁘다.
그때 그 옆집가게 아주머니와 내가 있는 가게 아주머니가 싸우기 시작한다.
부산에서 흔히 있는 일이기도 하지만 난 항상 구경만 했지 내가 당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그렇다 자리싸움 손님 싸움이다.
"아줌마! 내가 내 발로 이 집에 온 거고, 아줌마네 가게는 가기 싫어서 안 간 건데, 뭐 손님들이 전부다 아줌마 가게에 가야 돼요? 그거 누구 법인데?"라고 살짝 반말도 썩어가며 술도 한잔 먹었겠다 난리를 쳤다.
그러자 그 아주머니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니 새파랗게 젊은 게 어디서 반말 질이야 네 부모가 그렇게 가르쳤냐?"라고 말이다.

이런 미친.... 이젠 내 부모까지 건드린다., 이거는 용서가 안된다.
순간적으로 눈이 돌아갔다.
"뭐? 너네 부모?"
"넌 나이 많이 먹어서 참 좋겠다. 왜 나이 어리니까 부럽냐? 나이 먹어서 천막에서 일하니까 좋냐? 너네 부모가 물려준 거냐?"라고 반말과 악담을 퍼부었다.

친구들은 뜯어말리기 바쁘다. 순간 전체 천막의 횟집의 아줌마들의 시선이 다 나에게 쏠아졌다.
상관없다. 그중에 나를 옹호하는 아줌마도 있고 말리는 아줌마 묵묵한 아줌마 다 내 눈에 다 들어왔다.

나는 정 중앙에 서서 한 바퀴 뱅글뱅글 돌았다.
"아! XX진짜 짜증 나네. xx 여기 있는 아줌마들 다 이 아줌마처럼 장사하세요? "
" 이거 완전 xxx 이잖아! ㅈㄹ 어이없네?"
비속어가 한참 나왔다.
그때 그 옆집가게 아줌마가 "이 미친 x 을 봤나라고 하면서 나의 멱살을 잡으려는 재스쳐를 취했고 위협적으로 다가왔다. 나는 눈앞에 있는 뭐든 찾아야 한다 방어를 위해서이다.
그때 때마침 소주병이 내 눈에 들어왔다.
소주병을 들어서 바닥에 내리 박았다.
그리고는 소주병의 조각들 중에 가장 큰 것을 들고, "왜 머 어쩔 건데!!!!!!!!!!!!!!!!!!!!!!!!!!!"라고 소리를 질렀다."아!!!!!!!!!!!!!!!!!!!!!! xx!!!!!!!!!!!!!!!!!!!!"이라고 하면서 말이다.
지금 생각하면 진짜 미친 거다.
이때는 왜 그랬을까? 소주병의 파편들이 손에 긁혀서 피가 철철 난다. 그래도 아프지 않았다.
열받는 게 더 중요하다.
그렇게 나는 그곳에서 한 오 분동안 난리를 쳤고, 술모임은 해산되었고 친구들은 거의 탈진상태이다.
나를 말리다가 너무 힘들어서 지켜봤다.
한 친구가 안 되겠는지 나를 그냥 억지로 끌고 나오자고 친구들에게 말했고 나는 거의 들려서 나왔다.
나오면서도 그 술병을 끝까지 놓지 않고 들고 있었다.
씩씩 거리는 나를 향해 친구들이 말을 한다.
"야 너 이런 적 한 번도 없잖아. 오늘 왜 이래?"라고 말이다.
나도 모르겠다. 그간의 스트레스가 한 번에 폭발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때서야 피가난 손이 눈에 들어온다.
"아야.. 아 짜증 나"라고 말했다. 친구들은 병원에 가자고 했다.
하지만 병원 가서 꿰맬 정도는 아니고 약을 바르고 붕대를 자주 갈면 나을 정도의 상처라서 그냥 괜찮다고 했고., 한동안은 어차피 겨울이니까 장갑을 꼭 착용했던 기억이다.
엄마 아빠는 모르는 일이고 알아서도 안된다.
하지만 매장의 사장님은 알았다.
왜? 내가 그때 그렇게 난리를 치고 경찰에 신고가 되어서 경찰서에 갔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 소명해 주거나 대리인 또는 보호자가 필요한데 나는 집전화번호나 아무것도 오픈하지 않았다. 사장님 전화번호를 불렀다.
그것도 아주 고민 끝에 말이다.
사장님이 거리가 먼데도 불구하고 한걸음에 와주셨다.
오셔서 나에 대한 이야기를 잘해주셨고 나는 경찰서에 1시간 넘게 정도 머물렀다
새벽이 3시이다. 집에 가서 좀 자고 싶다.
사장님께 말했다. 사장님 감사합니다.

근데 오늘은 출근을 안 하니까 참 다행이에요! (쉬는 날
사장님은 이미 내가 꼴통인 거을 안다.
"야. 제발 좀 사고 좀 치지 마라. 너 엄마 아빠한테 는 말안헀지? "라고 물어보신다.
"당연하죠 맞아 죽어요 "라고 말했고, 사장님과 나의 비밀이 생겼다.
이렇게 이날의 에피소드는 끝났고, 그날 쉬고 다음날 다시 매장에서 더 열심히 일했다.
어제의 배려와 보답을 위해서라도 열심히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만일 이번에 엄마 아빠한테 들켰으면 나는 지짜 여기 없을 수도 있다.
그때는 내가 회생기간이었고, 걔다가 그때 당시 우리 부모님은 그런 나를 못마땅해하셨고, 밥을 먹을 때나 누워서 잠을 잘 때나 월급날이 될 때나 나를 믿지 못하고 항상 비교하고 짜증을 내셨다.
그때 상처는 아물지 않는다.
나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그건 가족에게 듣고 싶었다.
하지만 듣지 못했다.
그런 나 이기떄문에 나는 이날 나를 도와주고 비밀을 지켜준 사장님에게 감사했었다.
"젊음은 아름답다. 젊음의 폐기와 소신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이 진정한 소신인지 아닌지는 본인이 시간을 지나고 되돌아보면 알 수 있는 것 같다. 이때의 나의 소신은 욕심내지 말자. 그리고 비록 가족이 나에게 등을 돌렸다고 해도 나는 가족을 지킨다. 그리고 불의를 보면 참지 않는다 " 였던 것 같다.
파란만장한 20대를 보내고 있는 나. 다음 편에서는 어떤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을까?
요즘은 그때그때 글을 쓰기 때문에 주제정하기가 힘들다. 하지만 아직은 매장에서 일했던 내용이 몇 개 더 있어서 껐을 바탕으로 조금 구성하고자 한다.
"여려 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