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해결되지 않았지만 힘을 내어보려고 했다.
아빠와 많은 이야기를 했다. 마산에서는 아빠와 단둘이 지냈기 때문에 거의대화가 없었다.
나는 아빠와 대화를 하면서 많은 눈물을 흘리고 속마음도 많이 털어놓았다.
그동안 내가 가진 마음과 서운한 마음 그리고 나의 심정에 대해 다 털어놓았다.
작은 술상이 차려졌고 소탈했지만 소주 한 병과 몇 가지 엄마가 만들어준 반찬들을 펼쳐놓고 아빠와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아빠는 한참 말없이 내 이야기를 듣더니 술을 거의 다 비우시고는 또 다른 술을 꺼내오셨다.
그렇게 처음으로 아빠와 술을 마시게 되었다.
"아빠 나는 아빠랑 엄마한테 무슨 존재일까? 나는 살고 싶지도 않고 그냥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했어"
"그래야 엄마 아빠가 나를 창피해하지 않을 테니까"
라고 입을 떼었다.
"아빠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는데 왜 그렇게 이야기하는지 모르겠다"라고 말을 한다.
"난 분명히 들어서 그것이 너무 상처이고 난 가족에게 위로받고 싶지만 오히려 감시를 받는 기분이야"
"난 이렇게 평생을 살아야 하나?"라고 물었다.
아빠는 아무런 대답을 이후에 하지 않았다.
마지막 한마디는 "피곤하다 가서 자자"라는 말이었다,.

아빠와 나는 각각의 방에서 잠이 들었고 밤새 아빠는 잠을 잘 못 주무신 모양이다.
나의 마음이 전달이 된 것인가..라고 생각을 했다.
아빠가 말한다.
"이제 부산으로 올라가서 일자리 구하고 하자 아빠가 당분간 너 일자리 구하는 곳에 데려다주고 태워오고 할게"라고 말이다.
아빠의 그 말이 너무나도 따뜻했다.
"알았어 아빠."라고 말하고 웃으며 처음으로 밥을 씹어 삼켰다.
나에게 변화가 오는 것일까..
아빠가 나한테 이야기한다. " 절대 이상한 곳이면 그냥 돌아 나와"" 밖에서 아빠가 기다리고 있을게"라고말이다. 이때만 해도 대기업은 상상하지 않았고 그냥 월급을 받는 것이 중요했다.
그래서 이곳저곳 돌아다녔지만 내가 맘에 드는 곳이 한 군데도 없었다.

면접이라는 것을 보고 되돌아 나오면 아빠의 트럭이 항상 근처에 있다.
차 안에 올라오면 항상 아빠가 물었다. " 어땠어?"라고 말이다.
나는 고개를 휘저으면서 "아빠 여긴 좀 이상한 거 같아 내일이라도 당장 나와줄 수 있냐고는 하는데 면접하는 사람이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질문도 거의 없어" 그리고 거기 일하는 사람들도 엄청 피곤해 보이기도 하고 낡은 게임기들을 다시 갈고 닭고 하는 이상한 공장이야 라고 말이다.
아빠는 그래서 안 갈 거지?라고 묻는다 당연하지만 물어본 거다.
"응 저긴 안 가려고" "조금 더 알아보고 가는 게 좋을 거 같아"라고 아빠에게 말했다.
그래 그럼 너무 급하게 서두리지 말고 천천히 알아보자. 진짜 가봐야 하겠다 싶은 곳이 생기면 한꺼번에 하루날 잡아서 쭉 면접 보러 가자.
라고말한다.
아빠도 아빠의 스케줄이 있으니 그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아빠와 스케줄조절을 다 끝내고 집에 내방으로 들어오니 갑자기 머리가 멍해진다.
보고 싶은 친구들과 또 사람이 있었다.
용기 내어 친구들에게 나 의복귀소 식을 알렸다.
친구들은 전부 다 기뻐하며 위로와 축하를 해주었다.

그 와중에 친구는 집으로 찾아서 먹을 것을 잔뜩 주고 간 친구도 있고, 엄마 아빠 드시락 과일을 사 온 친구도 있다. 친구들이 내가 힘든 모습을 보인적이 없어서 마음이 많이 쓰인 모양이다.
그러다가 몇 년 만인가. 남포동에서 친구들을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물론 이땐 친구들이 다 사줬다. 먹을 것부터 모든 것 다 친구들이 다 썼다.
그러던 중에 나를 다시 꺼내어 줄 계기를 만들어준 그 남자친구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많은 이야기를 했고,. 그동안 그 친구는 해외에서 공부를 했다고 한다. 여자랑은 담을 쌓고 아예 공부에 매진했고 유학도 다녀왔다고 한다.
그 친구의 부모님은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혼자서 누나와 이 친구를 정말 애지중지 키웠다.
그래서 이 친구는 자신의 어머니를 존경하며 어머니를 매우 아낀다.
나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나도 많은 이야기를 하였다. 오해가 풀렸고 조금씩 다시 속마음을 터놓는 사이가 되었다. 어릴 때부터 봐서 그런지 서로의 습관에 대해 너무도 잘 파악하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했다 엄마는 아닌 것 같다 아직도 이때만 하여도 엄마는 나를 믿어주지 않았다
그건 확실한 것이 항상 나에게 예전 이야기를 그때까지도 하고 있었고 "더 좋아지려고 그러는 거고 힘들었던 시기 잘 견뎠으니 앞으로 더 잘해보자" 가아니었다.
"이제 돈 벌어야지. 집에 있으면서 놀지 말고 돈 벌고 이제 너도 성인이니까 돈 벌면 다시 집에 보탬이 되고 월세라고 생각하고 집값을 좀 보태"라고 말하며 " 그 친구 그거는 아직 연락 없지?"라고 말했다.
난 그것이 너무 싫었는데 ,. 엄마는 엄마의 성향이 그런가 보다. 난 그때는 타격감이 없었다.
그때부터 엄마와의 대화는 거의 없었고, 또다시 침묵을 선택했다.
일을 구할 때 면접을 보러 갈 때와 친구들과 간혹 만나서 이야기하는 시간 외에는 거의 입을 열지 않았다.
밥도 집에서 거의 먹지 않았다. 괜히 내 자격지심인지 몰라도 "식충이"라는 소리를 가족에게 들을까 봐 겁나서 이었을 거 같다.
하지만 우리 엄마는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서툴다. 난 그렇게 이해한다.
자식 잘못되길 바라는 부모가 어디 있겠냐,라는 어른들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엄마만의 방식이었지만 그때는 상처였다.

하지만 이때는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 지금 와서 생각하면 세월의 무색함과 나의 삶에 대한 가치와 내가 다시 나올 수 있는 계기 나를 영원히 가둘 수 있는 계기가 모두 가족의 애정에서 나온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아버렸다.
여러분들도 자녀가 있다면 자녀가 힘들대 질책보다는 좋은 말을 해주기를 바란다.
말은 하지 않더라도 자녀의 입장에서는 비수로 꽂혀 백발노인이 되더라도 잊히지 않을 상처가 남을 것이다.
나는 그렇기 때문에 감히 결혼을 하고 자녀를 가지 굈고 자녀와 의사소통이 되는 분들이라고 한다면 따뜻한 말과 응원이 얼마나 천만 배의 파워보다 더 힘이 난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내가 그러했기 때문에, 나는 내 경험으로 아주 오랜 터널을 지나오면서 수없이 여러 가지 생각을 했고 느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