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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on Sep 17. 2024

말발굽? 일본으로 가다

오늘은 2024년 추석이다. 잠시 쉬어가는 뜻으로 옛 기억을 떠올린다

오늘은 2024년 추석이다.

하지만 내 첫 R&D 직장에서의 일을 이야기하고 있다.

아직 할 말이 많기 때문이다.

오늘을 맞이하며, 그날의 기억으로 들어간다. 추석이기도 해서 적는 것도 있다.


회사에서 추석 쉬는 날로 일주일간이 휴가로 되었다. 

그때 아마도 징검다리 휴일이 아니었나 싶다.

추석에 부산에 거의가지 않는다. 서울로 온 이후 지금까지 딱 한번 가본 거 말고는 거의 없다.


가족들끼리 의논을 미리 했었다. 이번추석은 다 같이 가족여행을 가는 것이 어떻겠냐고

다들 미리 차례를 치르고 가자고 하신다.

이번에 여행은 언니, 형부가 가이드가 되었고 나, 남동생, 엄마, 아빠, 이모, 이모부 이렇게 가게 되었다.

첫날은 내가 동생과 4명의 어른들을 모시고 가게 되었다.

험난하다.

우리 집 식구들의 각각 성향이 매우 독특하다.

왠지 모르겠지만 시끌벅적함이 있다. 

남동생은 나와 그리 친하지 않다. 연년생이라서 그런지 나와 자주 어릴 적부터 다투었고 커서는 거의 대화가 없다. 그냥 남동생이 든든하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거의 주도해서 언니가 오기 전까지는 버텨야 했다.


뭔가 중책을 맡은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사실이다.

왜냐하면 우리 가족은 괴짜니까.

이모는 목소리가 아주 작아서 거의 초 집중을 해서 들어야 들을 수 있고, 엄마는 목소리가 너무 커서 귀를 막아야 그나마 잘 들린다. 아빠는 모든 걸 얼굴로 표현하고, 이모부는 그냥 대놓고 이야기하시는데 너무 재미있게 이야기를 잘하셔서 근처에 가면웃음이 터진다. 남동생은 그저 나한테는 잔소리 대상이다. 철이 없어 보인다.

고집부리는 성격은 최고 라고 할 수 있겠다.


아무튼 이런 분위기에서 첫 공항에서부터 난리도 아니었다.

이모부는 출장을 많이 다니시고 보안 쪽 소프트웨어를 개발하시는 분이고 그 업계애서 덕망이 높고 지혜롭고 재치가 넘치신다. 이모부가 척척 잘하신다. 덕분에 아빠랑 엄마는 이모부 통솔하에 다니셨다.

우리 엄마가 호기심이 많으시다. "이건 뭐꼬" "저기 가보자 저 뭐 있다" 뭐 이런 식으로 흡사 놀이동산에 얘기 혼자 내버려 두면 순식간에 잊어버리는 그런 스타일이다. 본인은 절대 아니라고 하지만 다들 그렇게 생각한다.

어딜 가든 중간에 엄마를 찾는 일이 생기니까~


겨우겨우 우당탕탕 마무리가 되었고 일본으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엄마 아빠는 비행기에서 주는 물을 먹지 않고 있다. 말했다

"엄마 이거 공짜야" 그때서야 엄마가 이거 저거 음료수를 먹기 시작한다.

이때 느꼈다. "아... 좀 자주 데리고 다닐걸::" "우리 엄마 귀엽네"

일본가족여행은 처음이다. 이때 심신이 나 또한 많이 지쳐있었던 거로 기억한다.

어디로 갔느냐! 일본 후쿠오카로 갔다 목적은 료칸이었다. 어른들 취향저격!

일본에 도착을 했다.

호텔부터 가야 한다. 체크인을 하고 나서 밥을 먹든 뭘 해야 하니까.

일단 호텔로 가서 키 4개를 먼저 받았다. 

하나는 내방, 하나는 남동생방, 하나는 이모네 방, 하나는 아빠네 방.

이렇게 키를 받고 사용법을 다 알려주었다.

여기 일본 호텔은 그나마 큰 편이었다. 

독자들이 알지 모르겠지만 일본은 검소한 나라이다. 그래서 그런지 호텔도 매우 적은 곳들이 많다.

우리나라 호텔에 비하면 2성급도 안될 곳 들이다.

하지만 그나마 나은 호텔로 잡았다. 하지만 항상 느끼지만 일본 호텔들은 화장실이 매우 좁다.

도착하자마자 전화가 온다.

"여기 호텔 화장실이 너무 적어" " 여기 호텔 쥐 꼴만 해가 지고 쓰겠나" " 언니는 언제 오니?"

아이고 어지러워. 그냥 말했다."몰라" "몰라" "몰라"

난 어떻게든 이 상황을 버텨야 한다. 


와... 일본에 와서 까지 우리 가족은 한 건 했다.

갑자기 내방문 두드리는 소리가 난다 " 누나, 누나" 

속으로 욕했다 " 아 이 자식 왜 짜증 나게 불러"

문을 벌컥 열었다 " 아! 왜!" 남동생이 서서 말한다.

"누나. 엄마 아빠 방이 잠겨서 내 방에 있는데 어떻게 좀 해봐라"

이런 젠장.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엄마 아빠 방은 왜 잠겼고, 얘는 또 나한테 왜 이러고 있는가.

잠겼으면 호텔에 내려가서 카운터에 이야기하고 열어달라고 하면 될 것을. 왜 날 찾아왔나.

짜증 내며 말했다. " 아 호텔카운터에는 가보고 이야기하는 거야?"

남동생이 말한다." 가봤는데 무슨 소리인지  못 알아듣던데? 아 몰라 짜증 나" 오히려 짜증을 낸다

그래. 이게 내 남동생이다."짜증 내지 마라. 나도 지금 짜증 나니까"라고 내가 말했고 남동생을 앞 세워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방에 들어가니 진짜 엄마 아빠가 앉아있다.

"아이고 우리 정여사 또 한 건 했나 보네" " 또 뭐가 궁금하셔서 아들방으로 피신을 오셨을까나~"

짜증은 났지만 엄마 아빠한테 짜증을 내긴 뭐 하고 슬쩍 비꼬으면서 이야기했다. 이게 내가 가족과 이야기하는 스타일이다::

"왜 웃니 가시나야. 난 죄 없다. 다 네 아빠 잘못이다"

"아빠 때문에 이런 사달이 났다 아이가. 아빠가 잘못이다 아이고 무슨 커피를 먹겠다고 해가지고"

내가 물었다.

"아빠. 무슨 커피?" 그러자 아빠가 말한다." 아빠가 커피 한잔 마시고 싶어서 엄마한테 집에서 가지고 온 커피믹스 있냐고 하니까 동생방에 있다고 해서 가지고 오라고 했더니만 저런다 아니가"


이게 뭐지. 앞뒤가 안 맞는다. 그니깐 결론은 아빠가 커피가 먹고 싶었는데 남동생 케리어에 그 커피믹스가 있어서 엄마가 그걸 가지러 남동생 방에 갔는데, 결론은 둘 다 같이 있고 문은 잠긴 상태인 거다.


"그럼 문은 왜 잠겼는데?"라고 물었다.

엄마가 말한다.

"내가 가지고  온다고 했는데 네 동생하고 있는 꼴 보니깐 잔소리가 나오잖아. 치우지도 않고 그대로 자빠져 누워가지고 그래가 몇 마디하고 있는데 그새를 못 참아가지고 네 아빠가 방문 열고 나와서 동생방으로 왔는데 커피 믹스 가지고 가니깐 문이 잠겨있데~" 

하....................... 문을 열고 닫을 때 키를 무조건 빼고 하나는 가지고 다녀야 한다고 내가 말 안 한 게 실수인듯하다. 호텔 카운터로 내려갔다.


난 여행을 좋아해서 기초적인 영어는 해외여행 때 아무런 불편함이 없을 정도로 한다.

하지만 여기는 일본,  일본 사람들은 아주 극소수 영어를 할 줄 알고 다 자국어만 한다. 더더구나  여기는 도쿄도 아니고 후쿠오카. 말 그대로 섬이다. 여기서는 더욱더 그럴 것이다. 하지만 다행이다.

우리 언니는 일본인만큼 일어를 잘한다. 하지만 지금 일본에 언니는 없다. 내일 온다.

하지만 언니한테 배운 일본어들이 있고 일본 여행을 다닐 때 자주 썼고, 일부는 답변을 알아듣기도 한다.


호텔 카운터에 가서 일본어로 물었다.

すみません.誤って ホテル の ドア が ロック されました。

(죄송한데요, 실수로 호텔문이 잠겼어요)

ドア を開けてもらえますか?(문을 열어주실 수 있나요?)

何号室ですか?(몇 호실입니까?) 힘겹게 호텔 직원과 소통이 됐다.

엄마아빠 호텔방 호실을 이야기해 줬고 바로 와서 문을 열어줬다.

ありがとう(감사합니다)


이렇게 엄마 아빠를 무사히? 방으로 들여보내고 방을 살핀다.

뇌리를 스친다. 아빠가 왜 아무 생각 없이 방을 나왔는지 말이다.

생각해 보니 일본 호텔이든 한국호텔이든 가정집과다르게 "말발굽"이 없다.

현관문과 바닥을 지지해 주는 그 말발굽 말이다.

현관문 지지대 (일명 말발굽)

이게 호텔에 없어서 아빠는 그냥 나오신 거다. 혼자 방에서 멍하니 생각하니 머리가 어질 했지만 너무 웃겼다,

아빠 엄마 방에 들어가자마자 한국에서 가지고 온 신라면과 미니고추장, 맛김치 등 여러 가지 한국음식들이 있다. 입맛 까다로운 아빠 때문에 챙겨 왔다고 한다.

한참을 이거 저거 막 정리하시더니 남동생방으로 또 가신다. 가서 뭘 또 챙겨 온다. 종이컵이랑 나무젓가락이다.

웃기지만 들떠서 이거 저거 챙겨 오신 거다.


몇 시간 뒤 이모랑 이모부랑 나랑 동생 엄마 아빠가 모이기로 한 시간이다. 저녁을 먹기 위해서,

아빠 받으러 내려갔다. 이때 나는 빵 터졌다.

아빠 나름대로 말발굽을 만들어 놓으셨다.

아빠의 아이디어? ㅋㅋㅋㅋ

너무 웃긴다. 한참을 웃었다.

아빠한테 물어봤다. 아빠 저 신발 되게 아끼지 않아? "아이고 우리 이사장님 아끼시는 신발을 저렇게 해놔도 돼요?" 또 내 말투다.

아빠는 말했다

"아빠가 너네 엄마가 하도 뭐라 해서 누구 들어올 사람 있으면 들어오라고 저렇게 임시방편으로 해놨다~" " 이따가 이모랑 이모부도 올 건데 또 문 열어 주기도 귀찮고"라고 하시면서 말이다.


이건 어느 나라에서든지 하면 위험하다.

방에 누구나 침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곧이어 이모랑 이모부가 오셨고 이모부가 말씀하셨다.

"이게 뭐꼬~ 형님 이거 형님 신발 아입니까?"

"한쪽은 또 어디 갔니?"라고 태연하게 물으신다.

이모는 아무 말 없이 혼자 또 막 웃는다,

이모목소리가 너무 적어서 웃는 것도 잘 안 들린다.

근데 엄청 웃으신 모양이다, 얼굴이 다 빨갛다.


뒤이어 말한다.

"언니. 가지고 오라고 해서 땡고추(매운 고추)를 내가  쫑쫑쫑 썰어서 가지고 왔는데 비행기 안에서 익었나 봐 상한 냄새가 나" 그래서 버렸어.라고 이모가 엄마한테 말한다.

엄마는 "아 뭐 어쩔 수 없지. "라고 말하면서 또 아빠를 주시한다.

"거봐라. 내 가상 한다고 했잖아 괜히 해오라고 해가지고서는 버리고 아이고 아까 버라"

그 말을 듣고 아빠는 아무 말도 안 한다. 

우리 아빠는 불리하면 말 안 한다. 그래서 아빠가 지금 상당히 불리하다는 걸 알았다 ㅋㅋ


내가 말했다. "그러지 말고 뭐 한국에서 사 올 거 있으면 미리 말해 언니 저녁 비행기 늦은 거 타고 내일 새벽이나  온다고 하니까" 너도 나도 알겠다고 하면서 전화를 해보라고  하신다.

스피커폰을 켜놓고 이야기했다." 언니 난데" 언니가 전화를 받는다.�

"어. 왜!" 나랑 똑같다. 우린 항상 전화를 받던 하던 이런 식이다.

다른 게 아니라 엄마 아빠랑 이모랑 이모부가 뭐 사 올만한 거 부탁한 데서 말해봐 봐

"뭘또 사가라고. 그냥 일본 갔으면 일본 거 먹으면 되지" 

라고 말이 끝나자마자 무섭게 아빠가 말한다.

"딸내미, 아빤데 커피믹스 어디 거 조그만 거랑 참치캔 몇 개랑 뭐 어쩌고 저쩌고"

"뒤이어서 이모가 말한다 그러면 올 때 뭐 어쩌고 저쩌고"

언니가 한마디 하면서 끊는다. " 아 몰라 시간 보고 되면 사가고 아니면 말고" 퉁명스럽다. 그게 우리 언니다.

하지만 속은 매우 여리다. 난 언니가 주문한  것들을 다 사 올 거라고 생각했다. 

당연히 다음날 언니가 다 사 오긴 했다. 

저녁을 먹으러 갔다. 아빠가 최고윗사람이라고 아빠 취향에 맞게 먹자고 한다.

아빠는 돈가스를 참 좋아한다. 다행이다. 일본에는 튀김류가 많으니까.

그래서 돈가스 집으로 가서 돈가스를 맛있게 먹었다.

맘속으로 생각했다. 언니.... 빨리 와...... 언니가 오고 형부가 오면 난 해방이다.

이때를 생각하면 지금에서야 일상 속의 하나하나가 다 개발이다.

말발굽도 누군가 처음에 개발했을 때는 이게 뭐야라고 했을 것이다.

우리에게 와서 "이거 개발하려고요"라고 했으면 이거 R&D 안되세요.라고 말했을 거 같다.

하지만 지금은 대중화되어있지 않은가?? 여행을 왔어도 이런 사소한 것들 이직업병인 듯 생각이 났다.


저녁을 먹었을 때도 마찬가지다. 

어느 음식점에 가면 일회용 물티슈를 주는가 하면 물만 부으면 부풀어 나는 일회용 물티슈를 주기도 한다.

[동전 물티슈]

이건 어디서부터 개발되었을까? 일본에서는 몇 번 본 적은 있지만 거의 드물다. 

만일 이 아이템으로 R&D를 했다면 가능했을 것 같았다.

일본 여행을 하면서 이거 저거 하나하나 우리나라에서 본 것 안 본 것 특이한 것 많이 느낀 것들이 있다.

여행을 하면서 소소하게 생각하게 된 것들도 많다.

이 기회 때문에 박람회나 여러 전시회를 다니는 계기가 되었다. 신기한 것들이 세상에는 아직도 많고 넘쳐흐른다. 이런 것들을 많이 접하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유창한 일본어로 언니의 가이드가 시작된다.

부족한 것 없이 원하는 대로 다들 여행을 즐겼다. 문제가 있거나 곤란하면 언니 가다 해결한다.

이때 언니가 존경스러웠다. 어릴 때부터 반에서는 물론 전교에서도 3등 이내에서만 놀았던 언니이다.

난 그런 똑똑한  언니를 뒀다. 하지만  그만큼 시기질투가 많아서 항상 친구들한테 따돌림을 받았었다.

선생님들이 이뻐하면 학생들이 미워했던 시절이었고, 언니는 착실하고 착했다. 

그래서 언니가 괴롭힘을 당하면 나는 그 인물을 찾아내서 따로 손을 봐줬다.

나름의 선행이었는데 언니는 그럴 때마다 울며 불며 엄마한테 나 때문에 쪽팔린다고 전학 보내달라고 울어댔다.

옛 생각이 많이 났다. 이 여행을 통해서 말이다.


아무튼 그렇게 이거 저거 여행을 했고, 어른들도 동심의 세계가 있다는 걸 알았다.

일본의 만화에 토토로라는 캐릭터가 있다. 그걸 엄마는 무척 좋아한다.

엄마랑 아빠가 대형 토토로 인형 옆에 나란히 앉아서 브이 표시를 하고 사진을 찍었다.

즐거운 여행이었다.


료칸으로 향한다.

지금 생각하면 어딘지 모르겠지만 언니가 예약을 해놨었다. 꽤 산 안에 있던 거로 기억한다.

너무 좋았다 여기 료칸에서의 이틀은 진짜 재미있었다.

일본 여행을 오기 전에 걱정이 많았다. 하지만 너무 즐거운 여행이었다.

다들 일본료칸에서  제공한 일본식 옷을  입었다. 

저녁식사를 하는데, 카이세키 석식을 먹으니 직원이 무릎을 꿇고 하나하나 설명하면서 뭐라 뭐라 하더니 나갔다가 다 먹으면 가지고 가고 또 다른 거 가지고 오고를 반복한다.


이때 이모부가 한마디 하셨다.

"이 뭐 맛은 있는데 불편해갖고 먹겠나. 그냥 한꺼번에 다 달라고 하면 안 되나?"

"이모부 이거 원래 이런 거라서 그냥 드세요" 하면서 언니가 웃었다.

"솔직히 내도 조금 부담스럽다. 저 사람들 뭐 팁 이런 거  달라고 하는 거 아니가?" 엄마가  말한다.

울 엄마는 못 말린다. 누가 그렇게 또 말했나 보다. 한참을 그냥 웃었다.

그렇게 저녁식사는 마무리되었고 각자 료칸을 즐겼다.


그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세월이 이렇게 흘렀고, 지금 우리 옆에 사랑하는 이모부가 계시지 않는다.

우리에게 이모라는 존재는 엄마라는 존재와 맘먹는다.

이모는 어린 조카들을 위해서 늦은나이까지 시집을 가지 않고 뒷바라지했다.

그때 우리 집 형편이 많이 안 좋았었고, 내 어릴 적 우리 이모는 이쁘고 상냥하고 조카 바보였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그때와 같다. 단지 이모의 짝이 먼저 하늘나라로 가신 것.. 그것만 달라져있다.

오늘 이 글을 우리 부모님이든 이 모든 읽을지도 모르겠다. 


오늘 다른 이야기를 적고자도 했었다.

하지만 내 브런치 북의 의도는 내가 살아가던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와 더불어 알아가는 R&D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렇게 추석에 맞게 글을 썼고, 글을 읽으면서 조금이라도 웃을 수 있는 독자가 있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하다. 다들 즐거운 명절 보내길 바라며 필자는 오늘의 글을 마치려고 한다.


휴식도 필요하다. 가족과 함께 할 수 없는 추석도 있다. 만일 그렇다면 혼자만의 추석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추석이 무조건 시끌벅적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휴식이라는 말을 하기는 하지만 진정한 휴식이 어떤 것인지 나는 아직 모르겠다. 쉬라고 막상 말하면 뭐 하고 쉬어야 할지를 모르겠다. 그건 내가 지금껏 쉬어본 적이 없어서일까. 오늘은 이 글을 마치고 오후부터는 쉴 거다. 


그냥 좋아하는 시사채널이나 형사물, 스릴러, 공포물, 무협 등 실컷 볼 예정이다.

독자님들의 즐거운 추석을 바라며 이 글을 마친다.

(많이 웃는 추석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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