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돌림을 심하게 받았다. 일기에는 매일 죽고 싶다고 적어놨던 기억
4학년이 지나고 5학년때는 뿔뿔이 다 흩어져서 내 반에는 단 한 명의 같은 반 친구가 있었다.
나를 따돌렸던 여자아이. 5학년이 되고 친구들을 일부러 만나러 가지 않는 이상 만날 수 없었고, 친구들도 다른 친구들을 사귀기가 바쁘다. 그렇게 난 나름대로 혼자가 됐다.
서울 남자아이는 아파서 자주 학교애 오지 못한다고 한다.
온다고 해도 같은 반이 아니다. 나름대로 지옥 같은 5학년을 보낸다. 누구를 챙기거나 할 여유가 없던 시절
이 기억만큼은 삭제하고 싶다.
언니와 학교에서 이제 더 이상 만날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학교를 마치면 언니 중학교에 자주 갔다.
갈 때마다 언니는 없었고, 없었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매우 익숙한 상황이었다.
하루는 학교 가기 전 언니한테 "오늘도 언니 학교에 갈 거야 "라고 말한 적이 있다.
언니는 정색을 하면서 "오지 마" "제발"이라고 말했다.
대답을 하지 않았다. 언니가 오지마라고 한다고 안 갈 사람이 나는 아니다.
언니의 이 말에는 이유가 있다. 내가 4학년 때 아이들을 데리고 언니 중학교 운동장을
내 거처럼 전세 내듯 썼기 때문이다. "청청스타일"이라고 청치마에 청자켓을 입고 언니가 수업하는 조용한 중학교에서 말뚝 박기를 남자애들과 치마를 입고 했던 나였다. 치마 안에는 그럴 줄 알고 엄마가 바지를 항상 입혔다.
말뚝박기를 하면서 한참 놀고 신나게 집으로 간 날. 언니가 집에 와서 울며불며 전학을 보내달라고 한다.
"학교에서 내 동생이라고 소문 전부 다 났어" " 애들도 00 이가 내 동생인 거 다 알아"
"부끄러워서 학교를 못 다니겠어" " 우리 담임 선생님은 네 동생 우리 학교 오면 참 좋겠다"라고 말씀은 하셨다고 한다. 하지만 언니는 중학교 때 학생회장을 할 만큼 똑똑하고 콘셉트가 나랑 달랐다. 그래서 내가 많이 부끄러웠나 보다. 그 일이 하루이틀도 아니고 내가 4학년때까지는 계속 언니운동장을 이용했기 때문에 언니는 내가 학교를 간다고 하면 질색 팔색이다.
말하면 행동으로 바로 실행을 해야 직성이 풀린다.
어릴 때 성격이 지금도 나오는 것 같다.
이날 학교는 12시도 안 돼서 마치는 날이었다.
점심까지만 먹고 집에 가는 날이었던 것 같다.
배도 든든히 채웠겠다 이제 배 꺼지는 운동만 할 시간이다.
애들이 줄줄이 학교가방을 다시 챙겨 매고 집에 갈 준비를 한다.
친구들에게 언니학교에 평소처럼 가서 놀자고 했다. 다들 왠지 모르게 거절들을 한다.
이때도 여자친구들이 없었다.
솔직한 말로 이때 여자친구들은 나에게 따돌림을 했었고, 나는 그 따돌림 속에서 아주 많은 것들을 생각했다.
나와 같은 반이 된 유일한 여자아이. 한 무리에 속해서 여자아이가 나를 본격적으로 따돌리기 시작했다.
아이들과 말을 섞기도 힘들 정도였다. 그나마 친한 남자친구들도 나를 피하는 느낌이다.
가장 많이 듣던 말이 "00 이는 남자아이들하고만 논다" " 쟤 남자애들 꼬신다" "여우 같다" 대략적으로 이런 말들이다. 참으로 가혹하고 힘들었다.
난 친구가 없었고 남자아이들과 어울려서 놀았던 것뿐인데. 그 어린 나이에 누굴 꼬시고 누굴 뭐 어떻게 하겠는가.. 하지만 여자아이들은 남자아이들과 어울리는 내가 꼴 보기 싫었나 보다.
그 이후엔 무조건 치마를 입고 거의 학교에 가지 않았다. 여자아이라는 티를 내기 싫어서였을까? 모르겠다.
치마를 입은 날이면 남자아이들이 "야 너 오늘 공주님 같다" "00아 너는 다리도 이쁘고 얼굴도 이쁘고" 그 뒤에는 "넌 성격이 남자 같아"라는 말을 했다. 사실 나는 맨 마지막 말만 기억에 남는데...... 그래서 아무렇지 않았는데.... 하지만 여자아이들의 귀에는 나에게 칭찬하는 말들만 걸려 들렸나 보다.
이때 치마를 입지 말자고 다짐했던 기억이다.
커서 생각이지만 사람은 듣고 싶은 것만 들으니까.. 이때는 그렇지만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할 나이였다.
그냥 괴롭힘을 당하고 심리적으로 압박감을 많이 가졌다. 학교에서 짝지어서 하는 모든 학습 활동에 나 혼자였다. 짝이 되는 아이는 나랑 말을 하지 않는다. 다른 애들한테 밑 보일까 봐 그런가 보다.
너무 힘들고 또 힘들었다.
매일매일 집에 가서 엄마한테 말했다.
"엄마 나 학교 안 가면 안 돼?"
엄마는 말한다.
"아이고, 맨날 남자애들이랑 놀고 다니더니 왜 또 쌈박질한 거야?"
"아니면 너 또 누구 때렸어?"
이런 말이다. 엄마는 죽어도 학교에서 죽으라고 하는 사람인데.. 내가 무슨 말을 하겠나...
그래도 용기 내서 말했다.
"아니 그게 엄마 그게 아니라 나 친구가 없어"
라고 말하면서 울었다. 한참 울었다.
"네가 친구가 없다고? 아이고... 욕심도 많다" " 얼마나 더 친구가 있어야 되는데?"
"윗집에 00이랑 같은 반이라며? 걔랑 친하게 지내면 되지! 엄마가 걔네 엄마한테 말해놓을게"
라고 말한다.
안 되는 일이다. 그 아이는 나를 따돌리는데 1등 공신인 아이다. 그래서 같은 동네 살아도 그 아이를 마주치기가 어려웠다. 그때는 친구가 전부였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그 아이도 모자라서 그 아이의 엄마까지 내가 감당하라고? 너무 싫었다.
엄마 바지를 붙잡고 이야기한다.
"아니 엄마 그러지 마""아니야 학교 갈게" " 그 아이 엄마한테는 따로 말하지 마"
라고 이야기 했다. 간절했다. 너무나도..... 더는 힘들기 싫었다.
엄마는 알겠다고 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신다.
그때 내 맘은 갈기갈기 찢겨나가는 것 같았다.
내 맘을 아무도 몰라주는 것 같았다. 언니도 학교생활한다고 바쁘고 동생이야 뭐 나랑 별 유대관계가 없고 또 동생은 공부에 열성적이라 나랑 어울리지도 않았다. 집에서도 혼자. 학교에서도 혼자다.
혼자가 익숙해질 만도 한데. 학교 가는 거는 너무 싫었다.
그날부터 매일매일 일기를 썼다. 오늘학교에 갔다. 나만 왜 이렇게 괴롭힘을 당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비가 많이 오는 5학년의 어느 날. 생생히 기억이 난다.
집 전화는 유무선이 같이 있었다. 혹여라도 들킬까 집 앞에서 비를 흠뻑 맞으면서 그 따돌림을 당하는 여자 아이의 집에 전화를 걸었다. 엄마가 알거나 누가 알아서도 안된다고 생각했다. 나 자신이 너무 초라했었나 보다.
친구가 없다는 거... 너무 슬펐다. 전학 와서 겨우 사귄 친구들도 이제 없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슬펐다.
그걸 해결하려고 했다. 비를 맞으면서 무선 전화기를 밖으로 들고 와서 전화를 건다.
"000집이죠?"라고 입을 떼었다 "저 000이랑 같은 반 000이라고 하는데요 000 집에 있어요?"
라고 물었다."응 집에 있는데 바꿔줄까? "라고 물어보신다.
"네. 바꿔 주세요"라고 말했고 뒤이어 그 아이가 전화를 받는다 "왜?"라는 단마디 말을 한다.
"아니.... 그게 아니라... 우리 사이좋게 지내면 안 될까?"라고 하니 그 여자아이는 당황했는지 "잠시만..."이라고 하더니 자신의 집의 무선 전화기를 들고 어디론가 이동하는 듯하다.
"야.. 너 누구누구도 너 싫어하고 누구누구도 너 싫어하고 하면서 우리는 네가 안보였으면 좋겠어"
라는 대답을 받았다. "미안해, 내가 잘못한 게 있다면 사과할게"라고 울면서 이야기한 기억이다.
내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지만 사과했다. 사과했더니 더 따돌림을 당했다. 아이들이 학교를 가니 더 수군거린다. 내가 잘못한 걸까?
그냥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 난 그냥 다시 엄마뱃속으로 들어가고 싶다.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된 큰 계기가 되었다.
이후에도 매일매일 일기를 썼고 그 일기장은 학교에 제출하는 일기장이 아닌. 혼자만의 일기장이었다.
5학년 꼬맹이가 죽는다는 게 뭔지 알았을까? 아마 지금 생각하면 난 이때부터 죽음에 대해서 알았던 것 같다. 죽으면 편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줄곧 해왔던 것 같다.
"내가 없어진다고 달라지는 건 없어"
"나는 죽어도 엄마 아빠가 슬퍼하지 않을 거야"
"언니랑 동생은 똑똑하니까 나 하나쯤 없어진다고 큰일 나지는 않을 거야"
"나 같은 건 죽어도 돼"
라고 나 자신을 매우 채찍질했었다. 철이 없었나? 생각이 없었나?? 아무튼 그랬다.
그래서 실행에 옮겼다.
1) 비를 일부러 맞고 온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감기가 걸려서 죽기를 바랐고, 2) 날씨가 추워지면 아무도 모르는 어느 집의 빈 연탄을 보관하는 고무통에 몸을 웅크리고 뚜껑을 덮고3) 공기가 통하지 않거나 숨이 막히거나 4) 아니면 얼어서 죽기를 기다리기도 했다. 매번 엄마나 동네 할머니들이 찾아내서 실패하기는 했지만
어느 날은 5) 일부러 빨간불에 뛰어들기도 했다. 그런데 차가 섰다. 차에 치여 죽지는 않았다.
어느 날은 6) 하루종일 물을 먹지 않았다. 이렇게 그 나이에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봤다.
이때 알았다. "죽는 것도 쉽지 않구나"라는 걸 말이다.
죽는 것이 뭘까? 어떻게 해야지 죽을 수 있나? 이런 것들을 고민해 왔었던 기억이다.
왠지 모르겠지만 아빠는 나한테만 뉴스를 보여주지 않았다. 뉴스가 나오면 티브이를 보고 계시다가도 티브이를 끄신다. 언니랑 동생은 보여주는데 나한테는 안 보여줬다. 아마도 뉴스에는 살인사건이나 사건들이 나와서 그랬나 보다. 잠시 그 시기에는 그랬던 것 같다.
내 일기를 본 걸까? 그건 아직도 모른다.
난 5학년동안 계속 시도했다. 아무도 모르게 말이다.
경찰아저씨들이 나를 발견하면 엄마 아빠는 나를 만날 수는 있게 말이다.
"엄마. 나 죽으면 슬퍼?"라고 물은 적이 있다. 엄마는 기억을 못 하신다.
"얘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 얼른 자" 이런 식이었기 때문이다.
언니는 "어린 왕자"라던지 여러 가지 소설들을 읽기 시작했다.
나는 그 반면 책이라면 담을 쌓았지만 "공포 이야기"같은 책을 보곤 했다.
귀신이 뭐가 무서워 사람이 무섭지..라는 것을 나는 이때부터 말했었다.
어차피 귀신도 사람이 죽어야지 되는 거잖아. 그러면 사람이 무서운 거지...
"나도 죽으면 귀신이 될까? 귀신이 되고 나서 엄마랑 아빠랑 언니랑 동생이 슬퍼하는 거 보러 올 수 있나?"
"죽고 나면 어디로 가는 거지?" " 하늘로 간다고 하는데 하늘은 어떻게 가는 거지?"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잠이 든다.
계기가 되었고, 난 매일매일 죽고 싶었다.
매일이 힘들고 매일이 지쳤다. 꼬맹이 5학년... 뭐가 그리 힘들었을까?
친구 그까짓 것 없으면 어때! 어른이 된 지금에서야 이런 말을 하지만 그때의 나로 되돌아가서 기억을 재생하며 글을 쓰다 보니 감정이 올라온다. 난 그때 왜 그렇게 힘들었을까?
그때 내가 죽었다면 어땠을까? 살아오면서 겪은 모든 힘듦을 격지 않아도 되는 것 아니었을까?
사실은 나는 지금도 그때의 생각을 하면 가슴이 먹먹하다. 과거의 나의 5학년은 온통 죽는 생각을 했다.
내가 없어도 사람들은 다 자기 할 일을 하고 아이들도 다 제각각 학교생활을 하고 선생님들도 다 관심이 없다.
그래서 나는 없어져도 된다고 생각했다. 난 그런 5학년을 보냈다. 너무나 가혹하고 힘든 5학년... 이때부터 나는 살아오면서 이런 생각을 지속적으로 해왔던 것 같다.
엄마 아빠의 탓도 아니다. 내 탓이다. 내가 못나서 따돌림을 받은 거다. 날 도와줄 사람은 없다. 나 혼자 버텨야 한다. 내 몫이다. 내가 태어났기 때문에 내가 벌을 받는 거다. 이런 생각을 한 5학년의 나. 힘들고도 아픈 기억. 힘들지만 꺼내본 기억. 이런 말은 어디 가서도 하지 못한다. 너무나도 맘이 아프다.
커서 들은 질문이다. 누군가 묻는다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언제로 되돌아가고 싶냐고... 난 없다고 답한다. 그럼 다시 태어난다면 무엇이 되고 싶냐고 묻는다. 바람이 되고 싶다고 이야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