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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on Oct 05. 2024

6학년.혼자 감당하게 된 슬픔의 정의

어느 날 소풍의 기억. 그리고 꼬마의 비밀

암울했던  5학년이 되고 나서 6학년이 되던 해.

또 반학생들이 갈리기 시작했다.

관심이 없었다. 누가 나와 같은 반이 되던지 말이다.

그런데 딱 하나 바라는 점은 그 여자아이랑은 같은 반이 되기 싫었다 

죽도록 말이다.

이때만 해도 학생들이 많았기에, 반을 다르게 하면 안마주 칠 수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6학년 반배정이 되었다.

그 여자가 이와 나는 언제까지 악연인가? 또 같은 반이 되었다.

그렇게 난 힘들게 또 6학년을 보내야 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6학년 때 친구가 거의 없었다. 당연한 결과이다. 저 아이가 또 5학년때 나한테 한 짓을 하고 있었다.

조금 무덤덤 해지기 시작했다. 친구가 없는 것도 괜찮았고, 누가 내 욕을 해도 아무렇지 않았다.

"난 따돌림받는 게 아니야" " 내가 따돌리면 되는 거야"라고 맘을 먹은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그렇게 마음먹고 나서부터는 따돌림에 대한 어떠한 반응도 하지 않았다.

혼자서 밥 먹어도 괜찮고 혼자서 음악 들어도 좋았고 혼자 글 쓰는 것도 좋았다.

집에 가면 그냥 그렇게 하루가 끝나는. 그런 학교생활을 했다.


소풍날이면 엄마가 김밥을 싸주신다.

하루는 엄마한테 말했다.

"엄마 소풍인데 도시락 내 거랑 선생님 거 같이 싸주면 안 돼?"

솔직히 이 말은 언니 때문이다.

엄마는 소풍에 도시락을 쌀 때 항상 언니한테는 선생님 거 까지 싸주셨다.

그런데 나에게는 내 거만 줬었다.

그래서 이번에 용기 내서 엄마한테 말했다.

엄마는 웬일인지 알겠다며 선생님 거 까지 싸주셨다.

소풍을 갔다. 아이들이 꺄르륵 대면서 서로 자기네 엄마 김밥이 더 맛있다며 나눠먹는다.

즐거워 보이기는 한다. 슬며시 가지고 온 엄마의 김밥을 선생님에게 가져다주려고 한다.

갑자기 아이들의 시선이 다 나에게 쏠린다.

그러더니 순식간에 선생님자리로 우르르 달려들 간다.

"선생님! 우리 엄마 김밥 드셔보세요!"

"선생님 엄마가 과일이랑 이것저것 싸주셨어요. 선생님 드리래요"

이런 아이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내가 움직이기 전에는 아무도 안 움직이더니 다들 움직인다.

아이들이 선생님에게 전해주는 도시락통은 엄청 이쁜 3단짜리 도시락 통이었다.

알록달록 과일들과 김밥들이 다양하게 선생님 앞으로 쫙 펼쳐진다.


김밥을 내 손 뒤로 감췄다.

엄마가 싸준 건 두 줄 정도 되는 은색 일회용 용기에 담아준 김밥이다.

"우리 엄마 거도 맛있는데...."

하지만 다른 엄마들을 보니 도시락 통까지 신경을 쓴 모양이다.

손이 부끄러워졌다

그래서 뒤돌아서 내가 앉아있던 자리에 혼자 조용히 앉아서 엄마가 싸준 김밥을 다시 숨겼다. 소풍이 끝나고 가는 길에 김밥을 혼자 다 먹었던 기억이다.

집에 가는 길이 너무 슬펐지만 소풍 때 뭘 했는지도 기억이 안 난다. 그냥 김밥생각만 난다.

그렇게 김밥을 집에 가는 버스를 내려 집으로 올라가는 길에 한 알 한 알 꼭 꼭 씹어서 다 먹었다.

엄마한테 차마 가지고 갈 수 없었다. 그래서 내가 다 먹었다.

이날은 아침 점심 저녁을 다 김밥을 먹은 거 같다.

"괜찮아. 엄마 김밥은 맛있잖아" " 잘됐지 뭐 맛있는 거 나 혼자 다 먹는 건데 뭐"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조금은 성숙해 진건가? 아니면 어느 정도 포기를 한 건가? 아이들이 그때 나를 일부러 골려주려고 그랬다고 알고는 있었지만 심리적으로 큰 타격감은 없었던 기억이다.

그냥 그저 그런 학교생활을 하고 있었다.


집에 가는 길이 그 여자아이와 같다. 아빠는 이때 연탄장사를 하셨다.

매일매일 딸딸 딸 거리는 연탄 트럭에 연탄을 가득 싫고 동네에 새벽부터 연탄을 나르셨다.

학교에서 이때만 해도 이런 설문조사를 했다.

아빠 직업 적기. 엄마 직업 적기. 동생은 있는지 몇 학년인지 언니는 있는지 , 오빠는 있는지 등등 말이다.

거기에 꼭 설문지를 받기 전에 선생님들이 물었다. 아빠가 사장인 사람! 손들어봐! 뭐 이런 거 말이다.

난 아무 데도 손을 들지 않았던 기억이다.

이날도 마찬가지다. 소풍을 마치고 나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

그 여자아이에게 우리 아빠가 무슨 일을 하는지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이미 동네에는 쟤 연탄집 둘째 딸 이잖아!라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그런 말을 듣는 것도 싫었던 기억이다.

매일매일 시커먼 옷에 엄마 아빠 얼굴에 잿가루가 묻어있는 것이 너무 부끄러웠던 모양이다.


터덜터덜 김밥을 한 올 한 올 주워 먹으면서 집으로 올라가고 있는데 저 멀리서 아빠의 연탄 트럭 엔진 소리가 들린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몸을 숨겼다.

아빠가 나를 알아보고 태워주실 것 같아서이다. 아는 척 안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숨었다.

좀 있으면 그 여자아이도 우리 집과 같은 방향으로 걸어올 거다

그러면 내가 아빠연탄차를 타고 집에 가면 또 다음날 학교에 가서 나를 놀릴 것이 뻔하다. 

다른 건 몰라도 엄마 아빠까지도 놀림받는 건 너무 싫었다.

내가 못나서 엄마 아빠가 욕먹는 건 싫었던 모양이다. 

하긴... 엄마는 맨날 나한테 "골칫덩어리"라고 했으니까.. 엄마는 몰라도 아빠한테는 미안했었다.

어린 시절의 내 생각이다. 커서는 고생하시면서 키웠다는 걸 알았지만 그때 그 시절 나는 그랬다.

그렇게 구석에 쭈그려 앉아서 김밥을 먹으면서 아빠의 연탄차가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딸딸 딸딸 딸"하는 엔진소리와 함께 아빠가 저기 지나가는 모습이 보인다. 한숨을 "후" 하고 쉬었다.

뒤이어 저 위에 여자아이가 지나가는 모습이 보인다.

아빠도 갔고 여자아이도 갔다. 바로 뒤따라 가지 않았다. 

아직 남아있는 김밥. 이걸 다 먹어야 하기 때문에.. 목이 메어도 꾸역꾸역 먹었던 기억이다.


그렇게 집에 가니 엄마가 왜 이리 늦게 왔냐며 잔소리하신다.

"선생님한테 김밥은 드렸어?"라고 물어보신다.

"응 드렸어"라고 거짓말을 해버렸다.

또 혼날까 봐 그런 것도 있고, 왜 안 줬는지 말하면 또 "그러게 왜 그걸 싸달라고 해가지고 그러니"라고 말할 거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그냥 드렸다고만 말하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

저녁을 먹자고 엄마가 부른다.

난 저녁을 먹을 생각이 전혀 없다. 아까 김밥을 너무 많이 먹어서이다.

이날은 나한테 최악의 소풍이었다.

방 두 칸인 우리 집, 방한칸은 엄마 아빠가 쓰고 나와 언니 동생은 나란히 방 한 칸을 같이 썼다.

언니와 동생은 즐거운 소풍이었나 보다. 편안해 보이게 잠을 잔다.

이불을 덮고 한참 훌쩍였다. 소리가 날까 봐 소리도 못 낸다. 언니랑 동생이 깰까 봐 소리 내서 울면 안 된다.

그래서 혼자 눈물만 하염없이 흘렀다. 

"왜 아빠는 연탄장사를 하는 걸까?"

"왜 엄마는 맨날 혼만 낼까?

"왜 그 여자아이는 항상 나에게 그럴까?"

"아.. 너무 학교 가기 싫다" 

뭐 이런 생각들이 들었던 것 같고 울면서 그냥 그냥 하염없이 나 자신이 초라했다.

울다 지쳐 쓰러져 잠이 든 거 같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눈이 잘 안 떠진다. 

울어서 눈이 퉁퉁 부었나 보다.

차가운 물로 엄청 세수를 많이 했다. 엄마는 내 얼굴을 쳐다보지도 않는다.

아빠도 새벽같이 연탄 배달을 나가신 모양이다. 그렇게 소풍다음날은 쉬는 날이었던 기억이고 난 아무에게도 내가 운 걸 들키지 않았었다.


지금도 엄마 아빠는 내가 잘 울지 않는다고 생각하신다.

지금까지 엄마 아빠 앞에서 울어본 적이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

그만큼 내 맘을 꽁꽁 숨기고 살았다. 어릴 때부터 그게 몸이 배었나 보다. 슬픔도 내 몫으로 남겨두는 습관.

그게 나에게는 익숙한 것이라는 것. 그렇게 익숙한 슬픔은 지금도 고스란히 나에게 남아있다.

슬퍼도 울지 않는다. 억울하면 눈물이 난다. 슬프다는 생각으로 운 적은 거의 없는 거 같다. 억울함에 분노에 못 이겨서 울었던 기억은 있다. 지금 나는 그렇게 성장한 것 같다.


그렇게 슬픈 것을 혼자 감당하려 했던 6학년. 이때부터는 정말 독립적인 성격으로 변한 것 같다.

울고 싶어도 참는다. 울어도 혼자 있을 때 운다. 슬퍼도 티 내지 말자. 이런 나름의 규칙이 생겨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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