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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on Oct 07. 2024

6학년 가훈대로 살아본다.

가훈의 해석의 차이. 6학년 나에게는 가훈은 조금 특별한 기억이다.

파란만장한 외로운 6학년.

어느 날 아빠한테 물었다.

"아빠 오늘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가훈이 뭐냐고 물어보고 적어오라고 했어"

우리 집 가훈이 뭐야??

라고 물은 적이 있다.

"가훈"이라는 말의 뜻은 선생님이 알려주셨다.

한집안의 행동이나 가르침이 되는 말이라고 하셨다.

가르침은 선생님이 주는 건데 왜 집에서 그걸 물어보라고 하지? 하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어쨌든 학교 숙제이니까 해야 한다. 

그래서 아빠한테 물었다.

"우리 집 가훈?" 저기 있잖아.라고 하시면서 벽에 붙어있는 글자를 보여주신다.

우리 집 가훈은 짧고 굵다.

"하면 된다" 이게 우리 집 가훈이라고 한다.

왠지 너무 없어 보이는 가훈이다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하면 된다?" 저게 뭐야. 뭐 멋진 거 그런 거 없어?라고 아빠한테 말했었다.

아빠는 웃으면서 "저보다 더 좋은 가훈이 어디 있어"라고 말한다.아빠는 아마도 힘들때

하면된다고 많이 자신을 다독이셨던 모양이다.지금 생각하면 말이다. 하지만 난 겨우 6학년.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아빠한테 물었다.

"아빠. 하면 다 되는 거야? 그럼 뭘 해야 하는 거야? 무조건 하면 다 되는 거야?"

이것저것 폭탄 질문들이 마구 쏟아져 나왔다.

아빠는 길게 말하지 않았다.

"하면 된다라는 말은 뭐든 맘먹기에 달려있다는 뜻이야. 00 이가 열심히 하면 다 된다는 뜻이야"

이렇게만 설명을 해주신다.

뭐... 하면 된다라고 하니까 그렇겠지. 하고는 공책에 네 글자 "하면 된다"를 옮겨 적었다.

그리고는 학교에 숙제를 제출한 기억이다.


지금에서야 생각하지만 하면 된다 라는 말은 참 쉽고도 어려운 말인 거 같다.

죽도록 열심히 해도 안 되는 일이 있을 텐데... 가령 예를 들자면 출생 같은 거 말이다.

부잣집에서 태어나면 아무것도 안 해도 얻을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어려서 어느 정도 성인이 되어서 까지 해왔었던 나이다. 지금은 "하면 된다"라는 말에 대해서 깊이를 논 해볼 수 있다지만 그때 어린 시절의 나는 그저 허무한 가훈이었다.


하면 된다를 실천으로 옮겨보다.

말했지만 난 참으로 엉뚱하고 호기심 많은 말괄량이이다. 암흑기가 있었지만 성격은 달라지지 않는다.

우리 집은 우리 집만의 룰이 있다.

1. 밥 먹을 때 tv를 보면서 먹지 못한다. 밥 먹을 때는 밥만 먹어야 한다.

2. 밥을 입에 넣고 절대로 말하면 안 된다. 그럼 혼난다.

3. 밥상에 앉아있을 때 어른이 숟가락을 먼저 들기 전에 절대 먼저 들면 안 된다. 이건 밖에서도 마찬가지다.

4. 숙제는 미리미리 해야 한다. 숙제를 안 하거나 밀리면 언니, 나, 남동생 세 명이 동시에 맞는다.

5. 한 명이 잘못하면 무조건 3명 다 맞는다. 아빠한테 회초리를 맞는다.

6. 잠자라고 불 끄면 무조건 자야 한다. 이의가 있을 시에는 아빠나 엄마한테 미리 허락을 구하고 불을 켜고 볼일을 본다.(가령 숙제를 다 해야 한다거나, 복습을 하고 싶다거나 하는 학업에 대한 부분은 OK)

7. 잠은 무조건 9시 전에 자야 한다. 아침은 무조건 새벽 6시에 먹는다. 아침을 놓치면 아침은 없다.

이것들은 집에서 무조건 지켜야 하는 규칙이다.

어릴 때 이 부분을 귀에 못이 박힐정도로 들어서 몸에 베였다. 그래서 숙제도 준비물도 학교 가방도 전날 학교 가기 전에 무조건 준비한다. 빼먹은 게 없는지 몇 번이나 확인하고 절대로 준비물이나 늦어서 학교를 지각한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자. 하면 된다를 실현할 날이다.

이날의 사건으로 난 이걸 써먹었다.

오늘도 여전히 즐겁지 않은 하루를 보낸 6학년의 나는 집으로 향한다.

집에 가니 아빠는 장사를 가서 아직 안 오셨고 엄마가 집에 먼저 와있다. 저녁을 차리시는 듯하다.

언니는 학원 갔다가 아직 안 온 거 같다. 그때가 저녁 5시경이었던 걸로 똑똑히 기억한다.

엄마가 나한테 묻는다.

"00아 동생 어디 갔어?" 동생은 나와 1살 차이밖에 안 난다. 

그래서 남동생은 항상 나를 만만하게 본다. 이때만 해도 나와 남동생은 맨날 치고받고 싸웠다. 

"몰라. 어디 갔는지" " 또 오락실 갔을지도 모르지?"라고 말했다.

이때만 해도 오락실을 가는 것은 엄청 나쁜 일이라고 다들 생각을 했다.

오락실은 나쁜 형들이나 어른들이 가서 담배를 피우고 싸우고 아무튼 엄청 나쁜 곳이라고 했다.

이 당시 시대상으로도 그랬었다. 아마 나와 연령대가 비슷한 독자들이라면 이해를 할 것이다.


남동생은 하루가 멀다 하고 오락실을 간다.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비행기 게임이랑 스트리트파이터 게임을 계속한다.

동전은 또 어디서 저리 많이 가지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엄마가 말한다.

"좀 있으면 아빠 올 텐데 너 동생 안 오면 또 세 명이서 야단맞을걸? 아이고 지겹다 지겨워"

" 네 아빠 네 동생 오락실 간 거 알면 또 엄마한테 뭐라고 할 텐데 엄마도 힘들어 죽겠네"

"네가 나가서 동생 좀 찾아와라"

라는 말을 한다.

난 사실 줄곧 생각해 왔다. 아빠한테 회초리를 그리 많이 맞지 않았지만 어느 순간 우리 집에 규칙이 생기면서 남동생이 오락실을 가면 항상 언니와 나와 동생이 함께 맞았다. 

그것도 한 대 더 맞는 거도 아니고 잘못한 사람이나 잘못하지 않은 사람이나 똑같이 때렸다.


이때 난 "하면 된다"를 한번 시전 해본다.

"엄마" " 왜 내가 오락실을 간 것도 아닌데 내가 맞아야 해?""이건 너무 억울한데?"라고 말해버렸다.

엄마는 어이가 없는 듯하다.

"당연히 동생이 잘못했으니 누나로서 제대로 안 지켜 주니까 같이 맞는 거지"

라고 말을 한다.

이어 내가 말했다.

"쟤는 나를 누나라고 생각도 안 하는데? 그럼 나도 쟤를 동생이라고 생각 안 해도 되는 게 공평한 거 아니야?"

"그리고 언니는 맞고 싶으면 같이 맞던지 해도 난 상관없는데, 나는 같이 맞을 생각이 전혀 없어"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공평한 게 아닌데?"

"만일 맞는다고 해도 남동생이 더 맞아야 하는 거 아니야?"

"잘못은 쟤가 하는데 왜 우리가 맞아야 해?"

라고 따져 물었다. 엄마는 또 한 번 넋이 나간 모양이다. 

저녁을 하다 말고 나를 말똥말똥 쳐다보면서 기가 찬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동생 찾아오라는 게 그렇게 엄마한테 대들 일이냐?"라고 말이다.

그래서 엄마한테 말했다.

"아니. 그런 건 아닌데, 내가 오늘 동생을 찾아올 테니까 나한테 100원만 줘"

"나도 뭐 받는 게 있어야지 보람이 있지"

라고 어린 꼬맹이가 딜을 한 것이다. 엄마가 너무 어이가 없는가 보다.

"너 지금 엄마한테 돈 달라고 하는 거야? 이런 건 어디서 배운 거야?" 언성이 높아진다.

"아니 엄마 우리 집 가훈이 하면 된다 잖아? 그래서 나도 하면 될 거 같아서 해본 거야"

" 그니까 나한테 100원만 딱 주면 아빠오기 전에 동생 데리고 오고, 그러면 나도 안 맞고 엄마도 안 혼나고 언니도 안 맞을 거잖아" "이거는 다 좋은 거야" "나는 착한 일을 하는 거고" "착한 일 하면 선물 받는데 난 100원을 달라고 하는 거고"라고 말을 했다.


지금생각해도 어찌 저랬나 싶다. 이때말을 어른이 된 지금도 엄마는 가끔 하신다. 

이때 정말 기가 찼다고 말이다. 아무튼간에 그렇게 엄마한테 대가를 바랐고 엄마는 내 손에 100원을 주셨다.

"좀만 기다려봐 내가 데리고 올게"

불이 나게 달려가서 남동생이 자주 출몰하는 오락실로 향한다.

담배연기로 어질어질하다.

남동생을 찾은 거 같다. 내가 옆에 오는 줄도 모르고 열심히 게임을 하고 있다.

"야. 너 여기서 뭐 해? 엄마가 오래!" 

내 말을 무시하고 계속 게임을 한다.

"아빠 좀 있으면 올 건데, 너 이번에 빨리 안 가면 너 때문에 또 우리가 맞아!"

"왜 언니랑 내가 너 때문에 맞아야 돼?"

꿈쩍도 안 한다.

"야! 너만 맞아! 우리 맞게 하지 말고! 아니면 난 빼주든지!" 난 분명히 말했다!

라고 오락실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니 남동생도 부끄러웠나 보다.

내 얼굴도 마주 보지 않고 후다닥 가서 집으로 뛰쳐나간다.

속으로 생각한다."웃긴 놈이네" " 뭐 됐어" 

이렇게 집으로 돌아가니 남동생은 엄마한테 혼나고 있었다. 아빠는 다행히 아직 집에 안 오셨었다.

엄마를 쓱 쳐다보고는 아무렇지 않게 방 안으로 들어갔다.

엄마가 묻는다 " 동생 오락실에 있던 거 맞아?"라고 말이다.

아무래도 남동생이 오락실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고 우겼던 모양이다.

"응 쟤 00 오락실에 있었어! 거기서 게임하고 있길래 집에 가자고 했는데 무시하고 자기 혼자 집에 온 거야"

라고 말했고, 남동생은 그날 엄마한테 혼나고 울면서 나를 째려봤다. 뭐 어쩔? 지가 잘못한건데 뭐... 


난 남동생한테 가서 말했다.

"너 우리 집 가훈이 뭔지 알아? 하면 된다! "

"난 할 일을 했을 뿐이야. 네가 오락실을 안 가면 앞으로 이런 일은 없겠지?"

그러고는 나도 똑같이 무시했다. 


그렇게 하면 된다라는 말을 처음으로 실행하고 딜을 하고 뭔가의 목적을 이루어 나는 엄마와 비밀이 생겼다.

이후로 엄마가 가끔 돈을 주고 심부름을 시켰다. 당연히 공짜는 없었다. 나한테 시키는 심부름은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이후 나한테는 심부름을 잘 안 시키고 동생이나 언니한테 심부름을 많이 시켰다. 

아마 언니와 남동생은 무료 봉사를 했던 것 같다.

이렇게 나는 6학년 가훈을 몸소 실천했었다.

나름대로 뭔가 모를 짜릿함이 있었다. 그렇게 가훈이라는 것도 6학년의 나는 나름대로 해석했다.

이런 시절이 있었던 국민학교 끝자락. 남은 건 가훈이 참 멋지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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