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학년 때 거의 3학년 반 친구들이 거의 같은 반이었다.
이때만 해도 초등학교 그러니깐 그때 당시 국민학교겠다.
참 아이들이 많았다. 북적북적 시끄럽다.
이날도 어김없이 나는 학교에 갔다.
4학년 반 배정이 되었다.
이제야 뭐가 뭔지 좀 알 거 같은 기분이다.
그전까지는 아무 생각 없이 놀고먹기 바빴다.
다행인 거는 나쁜 것과 좋은 것의 구분은 할 줄 아는 지능은 있었다.
학교에서보다 집에서 엄마아빠한테 배운 게 더 많았던 것 같다.
그렇기에 어릴 때 가정환경은 매우 중요하다는 걸 커서 느낀다.
4학년의 말괄량이 이야기.
언니는 나랑 3살 차이가 난다. 언니는 이때 학교졸업 후 중학교에 갔다.
이제는 더 이상 같은 학교에 있지 않다.
그럼 남는 건? 남자친구 아이들. 개구쟁이 남자아이들뿐.
남자아이들은 참 의리가 있었다. 그게 좋았다.
싫으면 싫고 좋으면 좋지 이러쿵저러쿵하지 않았던 기억이다.
3학년 때 같이 놀던 아이들이 같이 4학년 같은 반이 되었으니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당연히 담임선생님은 바뀌었다.
솔직히 어떤 분이셨는지 기억이 안 난다.
하지만 그때는 교권이 매우 높았기에, 감히 선생님에게 대든다거나 하는 건 상상도 못 한다.
매도 많이 맞았고, 자로도 맞고, 엉덩이 매질도 꽤 맞았다.
이때는 그것을 "아동학대"라고 생각하지 않을 시절이다.
시대가 변하면 환경도 변하듯이 인식도 변한다. 그렇게 사회는 변화에 길들여진다.
하지만 나의 어린 시절은 그럴 때는 아니다.
4학년 어느 날
서울에서 전학을 왔다고 한다.
어떤 남자아이가 수줍게 인사를 한다.
내 이름은 "000이야. 잘 부탁해"라고 말이다.
속으로 생각했다 "얘는 얼굴도 뽀얗고 키도 크네? 서울 애들은 다 저렇나?"라고 말이다.
나도 전학 온 지 얼마 안 된 거는 생각도 못하고 그저 신기했었던 것 같다.
선생님이 말한다 " 저기 빈자리 옆에 앉아"라고 말이다.
그 아이는 내 뒷자리에 앉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주변이 웅성웅성 거린다. 익숙하다. 내가 처음 왔을 때도 그랬으니....
이제는 남자아이들이 매우 심하게 동요한다.
같은 반 여자아이들이 그 남자아이한테 관심이 많은가 보다.
부산사투리를 쓰는 꼬맹이들이 서울남자아이한테 말을 건다.
"니 윽수로 멋지네 ~ 어디 사노?"
"네 집 가깝나? 이연필은 어디서 샀니?"
"너네 아빠는 뭐 하는데?"
"누나나 동생은 있나?"
혼돈의 카오스일 것이다. 나한테 묻는 질문은 많지 않았다 내가 사전에 차단을 했으니
그런데 재밌는 건 이거였다.
이 서울 남자아이는 여자아이들이 묻는 말에 하나도 대답을 못한다.
왜??? 사투리의 의미를 모르니까!
여기서 해석을 한번 해보려 한다.
"니 윽수로 멋지네? -> 이거는 너 정말 멋있다!
"어디 사노?-> 어디 살아? 어느 동네야?
"너네 아빠는 뭐 하는데? -> 너희 아빠 직업은 뭐야?
"누나나 동생은 있나?-> 너 가족은 어떻게 돼?
대충 이런 것이다.
그런데 이 말이 아마도 그 남자아이에게는 이렇게 들렸을 것이다.
"니 윽수로 멋지네? - 너 멋있다
"어디 사노? - 어디서 사냐고? 뭐를 산다는 거지?
"너네 아빠는 뭐 하는데? - 너희 아빠 지금 뭐 해? - 왜 우리 아빠가 뭐 하고 있는지 궁금하지?
"누나나 동생은 있나? -있나? 있으면 있는 거고 없으면 없는 건데 있나? 는 뭐지?
이런 거 말이다.
"아. 이게 다 무슨 말이지?"라고 머릿속이 덜덜덜 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난 살아남기 위해 전학 오자마자 사투리를 따라 하고 집에 가서 연습도 했다.
엄마 아빠는 배를 잡고 웃으셨다.
서울아이는 얼굴이 빨개져서는 아무 말도 못 하고 고개를 떨구고 부끄러워한다.
속으로 생각했다 "쟤 소심하구나"라고 말이다.
하루 이틀이 지났다. 서울아이한테 여자아이들이 득실 거린다.
지금으로 치면 비주얼 깡패였다.
하지만 난 별로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혼자 있는 애들이 나는 더 눈에 밟혔다.
하지만 다행히도 우리 반에 지금으로 따지면 "왕따"라고 하는 것은 없었다.
여자아이들이 좋아 죽으니 남자아이들이 배가 아팠나 보다.
시비를 걸기 시작한다.
"야. 니 재수 없다. 서울말투 쓰지 마라 일부러 착한 척하지 마라!" 하면서 괜한 트집을 잡는다.
그냥 두고 봤다. 뭐 남자애들끼리 하는 말이니깐 저러다가도 친구가 되겠지 싶었다.
일주일이 지났다.
서울남자아이가 매일매일 운다. 일주일. 이주일 하루가 멀다 하고 운다.
매일매일 책가방을 챙기면서 운다.
계속 우니까 그때서야 관심이 갔다.
"야. 너는 남자애가 왜 그렇게 질질 짜냐?" "그만 좀 울어"라고 또 직언을 해버렸다.
아무 말도 없이 눈물을 뚝뚝 흘린다.
"야. 누가 보면 내가 울렸는지 알겠다. 그만 좀 울어"라고 했다.
남자아이는 아무 말 없이 고개만 끄덕인다.
하... 어쩔 수 없다. "너희 집 어디야? 내가 데려다줄게!"라고 말했고 그 아이 집에 데려다줬다.
참 웃기다. 나도 집을 잘 못 찾는데 누가 누구를 집에 데려다준다는 건가....
그날 그 아이를 집에 데려다주고, 나는 집에 가는 길을 잃었다. 말도 안 되는 멋진 척을 또 했다.
그래서 난리부르스가 났다. 온 동네에서 엄마가 나 찾아다니고 나는 동네방네 돌아다니면서 울어 댔다.
그러다 보니 동네 어른이 마실 나왔다가 나를 발견했고, 나를 데리고 집으로 갔다.
이날은 잊을 수가 없다. 엄마가 말한다.
"아이고 이제는 하다 하다 집도 못 찾아오네"
"저 할머니가 동네 할머니니까 그렇지 모르는 사람 막 따라가면 안 된다고 엄마가 말했지?"
뭐 어쩌라는 건가... 집에 와서도 혼났다.
집도 못 찾는 멍청이라고 혼나고 모르는 사람 따라왔다고 혼나고. 엉망진창이다.
억울하지만 참았다. 말해봤자 엄마가 또 혼낼 거 같아서이다.
그렇게 저녁 먹고 잠들기 전까지 혼났다.
이제는 하도 하도 혼나니까 별로 혼나는 것도 무섭지가 않다.
그렇게 배부르게 욕도 먹고 밥도 먹고 ~ 내일 학교 갈 책가방도 챙겼다.
다음날 학교에 어김없이 갔다. 당연하다 학교 안 가면 또 혼나니까.
학교에 가서 책가방을 풀었다.
서울 남자아이가 뒤이어 들어왔다.
1교시, 2교시가 끝나고 나서 사건이 터졌다.
서울 남자아이가 또 운다.
다가갔다. "야. 왜 또 유냐!""그만 좀 울어!"라고 소리를 질렀다.
서울남자아이가 말한다.
"나 지우개랑 연필이랑 없어졌어"라고 말이다.
뒤이어 내가 다시 말했다. "잘 찾아봐. 그게 발이 달려서 어디 갔겠어?"라고 말이다.
이 말은 엄마한테 자주 들었다. 엄마한테 뭐가 없다고 하면 "잘 좀 찾아봐 멀쩡한 게 발이 달려서 어디 갔겠어? 네가 어디 넣어두고 못 찾는 거겠지. 아니면 네가 또 칠칠치 못하게 흘렸겠지"라고 말이다.
그래서 엄마를 따라 했다.
"아니야. 나 없어진 거 한두 번 아니야.. 사실은 내가 매일 우는 거 맨날 없어져서 운 거야"
"집에 가면 맨날 엄마한테 혼나거든. 맨날 잃어버린다고"
라고 축 쳐져서 말한다.
순간적으로 또 영웅심리가 발동한 듯하다.
[집합소집! 교실을 뒤집어 엎었다]
무슨 용기였을까 교실에서 소리를 질렀다.
"야! 000이 연필이랑 지우개랑 책이랑 훔쳐간 사람 빨리 말해"
"나 아니야"
"나도 아니야"
"잃어버리고 왜 애들한테 그래?"
등등 다양한 반응이다.
또 나섰다. 서울남자 아이는 내 윗도리의 끝자락을 살포시 잡는다.
"하지마라"는 표시인듯 하다. 무시했다.
"야! 아무도 없다 이거지? 좋아 그럼 내가 너네들 가방 다 뒤집어 엎어본다"
성큼성큼 첫자리부터 가서 아이들 가방을 뒤집어서 바닥으로 탈탈 털어냈다.
한명한명 자리에 재빠르게 가서 우르르 다 쏟아냈다.
어떤 한 아이가 그때서야 말한다.
"야 장난 친거가지고 뭐 그러냐?" "여기 있어" 라고 하면서 건낸다.
더 일이 커지기전에 말한거 같다. 익살 스러운 표정으로 건내준다.
물어봤다. "야 이거 너꺼 맞아? 니꺼만 가져가" 라고 말이다.
왜 그런말을 그때 했을까? 그냥 다 그 서울남자 아이꺼일수도 있는데, 다른 사람꺼도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결론적으로 모든 물건은 다 서울남자 아이가 그동안 잃어버린 것이다.
"야 너가 이거 훔친거야?" 라고 따져물었다.
물건을 건네준 남자아이가 말한다.
"아니 내가 아니라 우리가 장난으로 하나 하나 갖고 있었던 거야" 라고 말한다.
내가 교실을 뒤집어 엎고 있을때 애들끼리 모은 모양이다.
"너네 앞으로 000이 물건 절대 훔치지마! 알겠지? 오늘돌려줬으니깐 선생님 한테 안이를께"
그러고는 서울 남자아이한테 가서 말했다.
"앞으로 니물건은 니가 잘 가지고 있어" " 잃어버리면 이제는 못찾아줘""그만좀 울고"
라고 퉁명스럽게 말하고 내자리에 앉았다.
너무 에너지를 써서 그런가 아직 2가지의 교육이 남아있음에도 도시락을 까서 먹어버렸다. 배가 너무 고팠다.
교실은 조용했다.
이 이야기를 이렇게 자세히 알수있는건 내 기억도 선명하지만 이때 내가 슈퍼우먼 처럼 보였다고 성인이 된때에 이 서울남자아이에게서 들었다. "그때 너한테 후광이 비췄어. 한눈에 반했었어" 라고 말이다. 뜬금없는 고백을 받았던 기억이다. 그아이는 내가 첫사랑이었다고 한다. 참 웃기다. 국민학생이 무슨 첫사랑인가
아무튼 각자의 기준이 있으니 고맙게 생각하고있다.
그렇게 그 이후부터는 서울 남자아이는 학교생활도 잘 했고, 나랑 제법 말도 많이 했고, 가끔 내가 다른 아이들과놀때 끼워주기도 했다.
외지에서 와서 놀림 당하는거가 얼마나 힘든건지 어릴때 알았나보다. 그래서 보호본능이 있었나보다.
보통은 남자아이들이 여자아이들을 보호해야 하는데, 난 내가 남자아이들을 보호했고 남자아이들은 싸우면 내뒤에 숨기 바빳다. 그런 학교생활을 보내고있었다.
[에피소드]
서울남자아이. 포부를 밝히다.
성인이 되서 나에게 연락이 왔다. 20살이 되던해 휴대폰이라는 신문물이 들어왔고 나도 가지고있었다.
그때 까지는 집전화로 연락을 주고 받던 시절이다. 내 번호를 모르니 집으로 전화를 한 모양이다.
집전화로 약속을 잡고 집앞 롯데리아에서 만나기로 했었다.
나한테 그 울보 남자애가 건장한 남자 아이로 성장해있었다. 가끔 연락은 헀어도 얼굴은 자주 보지 못했었다
키도 크고 얼굴은 거의 송승헌 뺨친다. 그대로다. 하지만 아쉽게도 내 스타일이 아니다.
그 친구가 말했다."00아 국민학교때 너가 나 구해준거 나 평생 못잊어 너가 첫사랑이야. 나 내일 군대가"
"군대에서 편지 보내도돼?" 내가 말했다 "어 보내도돼 그런데 내가 답장을 보낼지 안보낼지는 나도 약속 못해""아무튼 건강하게 잘 다녀와" 라고 말했고 "다녀와서 꼭 보자" 라고 이야기 했고 이후에 그 친구는 군대에서 매주 나에게 편지를 보내왔다. 그런 시절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