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아무것도 몰랐다. 지금 난 R&D 10년 만에 대표가 다시 됬다
처음엔 아무것도 몰랐다. 이 업을 시작하기 전에 나는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었고, 어떠한 정보도 어떠한 지식도 없었다. 당시에 어린 나이에 사회에 뛰어들어 뒤늦게 학업에 뛰어들었고, 젊은 시절에는 그저 그런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사회에 대한 문제 중소기업들의 존재 이유, 중소기업들이 성장해야지 나라가 성장한다는 것도 남의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살았다.
매일같이 바쁜 하루를 보냈다. 내 나이 20대 후반이 되었을 때 수산물 가공이라는 생소한 업종에 발을 담갔다.
5평 남짓 안 되는 공간에서 겨우 셋방살이를 하면서 꽁꽁 얼어있는 냉동 수산물들을 한겨울에도 해수에 넣고 일일이 손을 넣어 얼키설키 섞여서 있는 생선들을 때는 일부터 시작했다. 온몸은 아파왔고 손에 동상이 걸려 손가락을 절단해야 할 정도의 지경까지 왔었던 적이 있었다. 그렇게 하루에 세 시간 정도 잠을 자며 일 년을 고생했고 우연히도 귀인을 만나 조그마한 공장이라도 얻게 되어 작게나마 시작하게 된 것이 내 인생 첫 대표였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남자들만의 세상인 수산물업계의 특성상 20대 멀쩡하게 생긴 여자가 밤낮없이 손발이 얼어붙을 정도로 일하는 것을 보고 가능성을 본 것 같다. 그때의 나는 그랬다.
그저 열심히만 하고 그저 꾸역꾸역 아무 생각 없이 일하고 닥치는 대로 일했다. 그러다 기회가 온 것이고 난 그 기회를 잡은 것이다. " 이게 R&D랑은 무슨 상관이냐" 고 하겠지만 내 인생에 두 번째 대표가 지금 내가 하고 있는 R&D 컨설팅사이기 때문에 나의 첫 번째 대표자로서의 성장과정이 중요하다 생각해서 적어 본다.
악조건 속에서 여러 가지를 배웠고, 사람을 다루는 방법, 사람의 마음을 아는 방법, 사람들과 소통하는 방법, 살아남은 방법, 배워야 한다는 중요함, 사회적 분위기와 내가 해야 할 일 내가 할 수 있는 일등 여러 가지를 첫 번째 대표자를 하면서 배웠던 것 같다. 많은 고통과 힘듦이 있었지만 많은 것을 배우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첫 번째 대표가 되었을 때.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 그저 일하고 또 일하는 거 밖에는... 그전에 팔팔한 20대에는 사회초년생으로서 열심히 놀고 열심히 벌고 쓰고 헀을 뿐... 지금 생각해도 그때 왜 수산물을 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저 막연히 수산물을 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을 거라는 생각만 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노력 없이는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유복하지 않은 환경에서 자란 나로서는 부모님의 도움을 단 1원도 지원받지 못하고 맨땅에 헤딩하는 인생을 살았다.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우연히 귀인을 만나 수산공장을 조그맣게라도 하게 되면서, 직원이 하나둘 늘어나기 시작했고, 직원들에 대한 생계가 나한테 달려있다는 막연한 책임감이 들었다. 그때 회사를 운영한다는 거는 구멍가게라도 힘든 거구나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악착같이 일했고 밤을 새워 일을 하는 날이 더 많았다. 자는 것도 사치라고 생각하고 일했을 때이다. 지금 내키는 167-8 사이다. 그때 당시 이 키에 몸무게가 44킬로가 채 나가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하루에 20-30kg이나 되는 냉동 수산물을 번쩍번쩍 들고 얼음물에 수도 없이 손을 담그고, 녹인 수산물의 생선을 손질하고, 손질한 생선들의 피를 온몸으로 맞아가면서 온통 하루종일 온몸에는 생선피로 칠갑이 되어있었고 그 상태로 오는 손님들이나 수산물 관련 종사 사람들과 앞치마에 한 손에는 생선 손질 칼을 들고 피를 잔뜩 묻히고서는 대화하곤 하는 것이 부끄럽지는 않았던 것 같다.
오히려 당당하게 그리고 담담하게 일만 해왔고, 그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남들이 7-8년을 해도 겨우 성장할 정도의 사이즈로 2년도 채 되지 않아서 나는 공장을 임대해서 조금 더 큰 사이즈와 많은 직원들을 두고 나만의 공장을 운영할 수 있었고, 회사의 포장지, 회사의 제품 박스 디자인등 그때부터 아이디어를 짜서 이거 저거 제품화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 고민하고 하루에 생선 한 마리가 얼마에 매입되었고 경매로 얼마나 이득을 봤는지 액셀 파일을 만들어 가면서 하루작업물량의 손익과 손실을 계산하면서 사무업무도 같이 해왔다.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내가 첫 번째 대표가 되었을 때 상황과 지금의 상황이 너무나도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내 인생 첫 대표가 30대 초반이었을쯤이없고 그때 너무나도 많은 일을 겪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수산물을 거의 7년 가까이하다 보니 그때 당시 말투는 두말할 거 없이 거칠어져 있었고, 매일같이 피를 보고 매일같이 전쟁인 생산 현장에 직원들과 함께 일하면서 다른 세상에 대해서는 고민도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저 그 일에만 몰두했다. 어쩌다 서울전화번호로 전화가 오면 부산에 있는 나로서는 "아 뭐지 이 서울 전화번호는?" " 아 이거 스팸이다. "아 이거 사기, 보이스피싱 뭐 그런 건가?"라는 생각만 들었고 전혀 들을 생각도 전화를 받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거래처들은 거의 내 핸드폰 번호를 다 알고 있어서 회사로 전화를 잘 안 했고 한다고 해도 내가 다 외우고 있었던 번호들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전화가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과 연관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