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변하는 걸 원치 않았다. 그게 비록 새로운 것일지라도.....
내 인생의 첫 번째 대표였을 때 전자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서울 번호는 그냥 스팸번호였고, 주변에서 어떤 신기한 공정과정을 도입해도 무시했다. 변화하고 있을 때 변화를 거부한 것이다.
아마 그때부터 나는 일상 속에서 R&D라는 것을 미리 알았다면 더 발전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수산물은 특성상 겨울이 성수기이다. 많은 물량을 경매로 확보하고 냉동시켜 저장된 물량에 대해서 생산을 진행한다. 그럼에 있어서 공정과정은 매우 중요하다.
수산물의 신선도와 여러 가지 상품화가 되기까지의 과정들이 하나하나 사람의 손으로 진행된다고 보면 된다.
일일이 하루종일 서서 생선 한 마리 한 마리 손질을 하는 사람들의 라인과 손질된 생선의 무게를 전자저울로 한 마리 한 마리 중량대로 나눠서 담는 사람, 그 담은 사이즈별대로 쌓아서 냉동고에 넣는 사람, 기타 등등 모든 것이 수작업이다.
수산에서 생선을 손질하는 사람들은 기술자라고 한다. 하루에 손이 빠른 기술자는 생선손질을 2,000마리 정도 한다. 나도 기술을 익혀 하루에 생산 시간 동안 손질을 매일 1,500마리 정도 손질 하곤 했다.
하루종일 반복적이고 단순한 업무만 했고 그게 상품이 되면 돈을 받고 팔고 하는 일을 그냥 계속했다.
하지만 모든 회사가 그렇듯 경쟁사가 있지 않은가... 특이하게도 수산물 가공회사들은 경쟁사가 딱히 없다.
서로 친절하게 대하고 서로의 물건들을 서슴없이 보여주면서 때로는 자기들 생산물건이 아닌 물건인데도 동일한 물건을 도매가격으로 가져가서 되팔기도 하니 말이다.
가장 중요한 건 생산량이라고 할 수 있다. 판매물량의 주문은 계속 들어오는데 팔 수 있는 생산물량은 한정되어 있고 또 그러한 일이 수차례 반복되면 수산물 판매 업체들은 새로운 거래처로 바로 갈아타는 냉정한 세계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생산에만 몰두했고 주변에 환경의 변화에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매일같이 소처럼 일했다.
밥을 먹으러 갈 때였다. 동종업계의 가공공장의 대표 아들이 본인들의 회사에는 무게를 측정하는 기계를 도입했다고 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사람이 일일이 서서 무게를 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게 가능한가? 난 생각했다. 왜냐하면 작업의 특성상 생선 한 마리의 0.1g의 무게차이로도 대, 중, 소가 구분되어 분리되는데 그게 또 마리당 단가에도 측정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작업이기 때문이다. 그걸 온전히 생전 처음 도입하는 기계로 걸러낸다? 믿을 수 없었고 믿지도 않았다. 그래 잘해봐라. 너희는 그렇게 하든지 말든지 나는 나대로 마이웨이 ~ 하지만 한편으로는 궁금하긴 했다. 그냥 궁금한 것 정도였다. 궁금증이 해소되었어도 도입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때는 그랬다.
의문점 1.
기계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그 기계를 만들만한 인력이 그 회사에는 없을 텐데 어떻게 만들었지?
외주를 맡겼다고 하는데 외주사에 얼마를 준거야?
회사돈 하나도 안 들이고 개발했다고 하는데, 어떻게 그게 가능하지?
결국에는 자기들 편하려고 만들었지 어차피 상용화해서 다른 공장들한테 소개할 거도 아니면서 왜 잘난 척?
의문점 2
만일 저 기계가 정확성이 있어서 하루 10시간 가까이 서서 생선 무게만 재는 사람을 대처할 수 있다면 이 얼마나 생산성이 높은 기계인가! 그렇다면 우리 회사에도 저런 게 하나 있었으면 좋겠는데 어딜 가도 찾을 수가 없는데 저 사람은 어떻게 했을까?
하지만 이러한 의문점은 나 혼자만의 생각이었고, 물어봐도 답도 해주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모든 퍼즐이 맞춰진다. 맞다. 그 회사는 그때 R&D 지원금으로 공정과제를 진행한 것이다.
아..... 왜 난 그때 몰랐을까... 지금 생각하면 참 웃픈 현실이다.